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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는 아시아의 별 기회의 땅, 베트남

이광욱 지음 | 북오션
다시 뜨는 아시아의 별 기회의 땅, 베트남



이광욱 지음

북오션 / 2019년 1월 / 252쪽 / 18,000원





chapter 1 아시아의 다시 뜨는 별, 베트남



신남방정책의 핵심국가 베트남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APEC,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석차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 한-아세안미래공동체 구상’을 밝혔는데 이것이 문재인정부의 중점 대외정책으로 부각됐다. 이미 신남방지역은 한국에게 중국 다음으로 제2위 교역 대상국이고, 누적기준으로 미국ㆍ중국에 이어 3위의 투자 대상국이며 한국 기업의 대표 글로벌 생산기지가 있는 곳이어서 그 경제적ㆍ외교적 의미가 크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ASEAN) 지역에 있는 국가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조직해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튼튼히 하고 이를 활용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자율성과 발언권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북한이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로 개방한다면 신남방국가와 대륙을 잇는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릴 수 있다.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신남방국가와의 교류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국의 수준으로 격상 발전시키고 교역 규모도 2020년까지 중국 수준인 2,000억 달러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외교 측면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신남방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직접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이권이 얽혀 있는 지역의 복합적 안보 문제에도 공동 대처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마디로 아세안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어 대한민국의 4대 교역국이다. 2018년 2월 베트남을 방문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20년까지 한-베 양국 교역 규모를 1,000억 달러까지 확대키로 합의해 베트남이 신남방정책 주요 전략국임을 확인했다. 베트남은 풍부한 젊은 노동력과 낮은 임금 덕분에 경제가 고속 성장하고 있어 글로벌기업의 진출 ‘0’ 순위 국가로 급부상했다. 특히 베트남이 다 양한 국가와 맺은 무역 협정과 지리적 이점이 성장의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또 저렴한 인건비와 안정적인 정치 상황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 투자유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베트남 골드러시의 선봉에 한국 기업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이후 한국 기업은 주로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아 진출했다. 하지만 최근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중국의 자국 기업 우선 정책,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로 베트남을 대체 투자처로 삼은 기업이 늘었다. 베트남 입장에서도 한국은 경제성장의 큰 동력이다. 현재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양이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35퍼센트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진출, K팝과 K뷰티 등 한류문화의 확산 그리고 최근 박항서 감독의 활약까지 더해짐으로써 베트남인에게 한국의 호감도는 매우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미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념의 적에서 미래 동반자로



미국의 북베트남 침공으로 시작된 베트남전에서 대한민국은 자유 우방 진영 7개국 연합군과 함께 참전하였으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1만 명의 병력이 8년간 참전했다.

알 수 없는 전쟁: 한국이 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 각국의 전쟁 기록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가 먼저 차관 마련 등의 경제적, 군사적인 이유로 파병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경우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 소련 등의 공산권 국가를 자극해 베트남에서 한국전쟁처럼 대규모 대리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해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이 생각보다 어렵게 흘러가자 미국은 한국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한국은 연합군 중 미국 다음으로 최대 병력을 파병함으로써 화답했다.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을 끝으로 미국이 철수하자 우리 군도 5,000명 이상의 국군 전사자를 낸 베트남전쟁에서 8년 만에 철수한다. 미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연합군에게는 참으로 길고 힘든 전쟁이었다. 하지만 우리 군은 미군의 현대화 장비는 물론 해외전투수당과 원조수당 등의 자금을 참전 대가로 지원받았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경비 일체를 미국이 부담한 덕분에 해외전투수당과 추가 지원금은 경공업 육성에 투자됐으며, 이로써 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국토 개발 사업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산업화의 씨는 베트남 참전의 대가로 얻은 것이다.

20년 만의 국교정상화: 참전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나라는 베트남 입장에서 이념의 적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연합군의 참전국 중 하나였고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양국 간 국교가 정상화된 시기는 베트남전 철수 후 20년이 지난 1992년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 ‘도이머이’ 정책으로 사회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과감하게 자본주의 기반 정책으로 고쳐 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한강의 기적’을 모델로 삼고 ‘메콩강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2009년, 한-베는 경제 파트너를 넘어 정치ㆍ외교적 우군을 의미하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서로를 명명하고 다양한 경제ㆍ외교 협력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베트남은 또 한국과의 실질적 협력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북한과의 우호 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향후 북한이 시장경제로 개방한다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관계 만들기: 현재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교역국이며,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의 기업이 베트남의 총 GDP 중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한국과 베트남은 밀접한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나는 어떻게 베트남인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대한민국과 그 국민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북부 출신 베트남 지인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인에게 베트남전은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물론 뼈아픈 기억과 상처를 남기지만 결국 베트남과 베트남 국민이 미국과 연합군을 몰아낸 ‘승리한 전쟁’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인구의 65퍼센트가 30세 미만인 전후세대라서 사실 전쟁의 상흔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베트남인은 현재 한국을 자신들의 ‘선생님’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들어와 베트남의 산업화를 이끌고 있고, 박항서 감독이 지도하는 축구대표팀은 동남아시아 최약체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시켰다. 따라서 전후세대에게 한국은 좋은 선생님이며 한국의 손이 닿으면 성공이 따라온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앞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미래의 동반자적 관계로 가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저항의 역사 속 ‘호치민’, 그를 알면 베트남 정신이 보인다



호치민(1890-1969), 민족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베트남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베트남 국민에게는 외세에 대한 저항과 독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베트남의 아버지’,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베트남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호치민은 베트남 정신을 이해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인물이다.

독립의 산증인: 19세기 이전 베트남은 1,000년이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 이후로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반도 통치에 편입돼 오랜 기간 열강의 지배 아래 놓였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주둔했고, 1945년에는 다시 프랑스와 독립 전쟁을 벌여야 했다. 이 30년에 걸친 피나는 독립의 역사 속에 호치민이 있다. 호치민은 젊은 나이에 유럽, 미국, 러시아 등 해외를 돌며 선진 문물과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했으며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 운동을 베트남에 정착시키려 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호치민을 수반으로 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월맹)은 독립을 선언했다. 한편 프랑스는 일본군이 물러난 베트남에서 식민 지배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고, 베트남은 이에 맞섰다. 프랑스와의 항전은 호치민이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며 마무리됐다. 프랑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호치민은 프랑스군에게 “당신들 한 명이 죽을 때마다 베트남인 열 명이 희생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은 반드시 패배하고 우리는 이길 것이다”라며 베트남 인민의 저항정신을 고취했다.

미국과의 전쟁: 그렇게 독립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지만 공산주의가 베트남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막으려 한 미국은 이미 망가진 남베트남 왕조를 몰아내고 응오 딘 디엠을 수상으로 내세워 허수아비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렇게 북부의 호치민, 남쪽의 응오 딘 디엠으로 나라는 다시 반으로 갈라졌다. 나중에 북베트남을 폭격하려고 조작한 사건임이 들어난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미군이 이끄는 남베트남과 호치민이 이끄는 북베트남 사이에서 베트남전쟁이 발발했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이어진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2차 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에 사용한 폭탄 전체보다 많은 폭탄을 이미 오랜 기간 식민지와 전쟁으로 고초를 겪은 땅에 쏟아부었다. 그야말로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살육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20년, 혹은 100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내 이길 것이다”라고 호치민은 대답했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하며 북베트남이 승리의 전기를 잡았고, 1976년 7월 마침내 베트남은 다시 통일되었다. 1969년에 타계한 호치민은 비록 다시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독립정신과 민족애를 기리고자 베트남 국민들은 남부의 대표 도시인 사이공을 호치민 시로 개명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국부(國父)다. 호치민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은 변함이 없다. 공공기관, 대형 상점이나 식당, 일반 가정집에서도 벽에 걸려 있는 그의 초상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베트남 국민에게 호치민은 성공한 저항의 기억이다.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열강의 침략과 맞서 싸워 이긴 이 ‘성공한 저항’의 기억은 외세에 대항해 독립된 국가를 이루고자 한 그들의 대의와 자존심을 상징한다. 이런 감정이 베트남 국민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는 나라 베트남,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싸워 이기는 베트남이라는 이 감정은 베트남 국민에게 성공의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베트남 국민은 자존감도 매우 높고 애국심도 매우 높다. 공산당 1당 체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국가가 정하는 정치나 경제적 방향을 묵묵히 따르는 성향이다.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나 대의에 중심을 두는 선택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으며, 개인의 작은 희생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조금 느릴지라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는 ‘베트남 정신’, 그 뿌리에 ‘호 아저씨’ 호치민이 있는 것이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두 가지 문화 코드, ‘체면’과 ‘가족’



체면: 베트남 문화를 흔히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체면의 근간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 문화라는 배경 외에 앞에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도 독립을 지켜냈다는 베트남인의 높은 자긍심과 자존심이 숨어 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신분, 사회적 위상, 선임자에 대한 공경 등이 유교문화의 유산으로 남아 있어 나이나 신분에 따라 상대방도 나에게 상응하는 존경을 표하리라 기대한다. 오랫동안 투쟁의 역사를 보내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공동체 의식도 ‘체면’을 중시하게 만든 주요 요소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체면’을 세워주는 행동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베트남에서 현지 직원을 고용해 사업을 할 때도 직원의 체면을 꼭 생각해서 지도, 감독해야 한다. 한국에서 파견된 지사 직원이 간혹 현지 직원을 사람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하다가 현지 직원의 신뢰와 존중을 잃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로 느끼는 것이다. 부처 간 이해가 충돌할 때도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 못지않게 상대가 체면을 차리고 물러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족: 유교 영향으로 베트남인들은 자식의 효도를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한다. 자식은 부모와 가족의 은혜에 늘 고마움을 간직하며 나이를 먹을수록 부양에 대한 책임감을 지려 한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몇 대가 모여 사는 구조에서 벗어났지만 민족명절인 ‘텟’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어김없이 귀향하는 사람들로 터미널이나 공항이 북적거린다. 현재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20~30대의 소비 형태를 분석할 때도 단지 그들의 소비 성향만 고려하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스턴컨설팅의 ‘베트남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69퍼센트의 응답자가 “가족의 필요가 채워지기 전에 자신에게 소비를 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가족은 베트남인에게 소중하다. 이처럼 가족이 중요하고 적극적 경제활동 인구 중 부모를 부양하는 층이 많기 때문에 가족은 베트남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파악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다. 대도시에 사는 20대 초반의 젊은 커리어 여성이 가족의 기대에 맞춰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모습이나 부모님의 건강관리나 의료 관련 지출이 가처분소득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 형태는 베트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chapter 2 베트남의 공산당, 다음 세대를 꿈꾸다



재정 적자, 가파른 경제성장의 피할 수 없는 비용



부담되는 공공부채 증가: 베트남은 70년대에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땅에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7퍼센트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산업화에 성공해서 개발도상국 후보로 도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때 휘청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베트남은 2007년에 150번째 국가로 WTO에 가입한 이후 견조한 경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해야 하는 사회, 경제적 인프라 개발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정부의 공공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IMF는 베트남의 실질 공공부채는 GDP 대비 10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공공부채의 증가 원인은 매년 발생하고 있는 재정 적자다. 6~7퍼센트의 GDP 성장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는 줄지 않고 있다. 지출 측면을 봐도 공무원 인건비 등 경상비 지출은 증가하는 한편,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되는 비중은 줄고 있어 공공 부문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투자 우선순위 문제, 그리고 부정부패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공공부채 증가에 대한 대내외의 우려가 높아지자 베트남 정부는 공공부채 관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공공 영역의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민간 부문을 활성화해 보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빠듯한 예산으로 공급하고 있는 교육,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민간의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공공-민간 협력(PPP)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PPP와 민간 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개발 프로젝트가 증가할 것으로 판단되며 국영 기업의 발 빠른 민영화가 불가피하다. 재정적자 때문에 발생하는 민간의 기회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베트남 공산당 그 리더십에 대하여



쫑 주석의 등장: 베트남은 국가 최고 권력 기관인 공산당과 서열 1위의 서기장을 정점에 놓고 국가주석(외교, 국방),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이 권력을 나누어 통치하는 체제다. 1당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도이머이 이후 개혁파가 부상해 보수와 개혁 양 계파가 균형을 이뤄 서로 견제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원로 정치인이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권력 구조와 흡사하나 중국은 시진핑이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겸임하면서 집중된 권력을 누리는 반면,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분리한 분권형 구조를 지향해 왔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도 최근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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