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혁명
김재평 외 지음 | 버튼북스
소리혁명
김재평 외 지음
버튼북스 / 2018년 3월 / 291쪽 / 15,000원
미디어의 변화는 더욱 빠르고 강력해진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미디어의 놀라운 변화들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 개혁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도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산업혁명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은 늘 르네상스와 짝을 이룬다. 인문주의가 신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성직자의 독점권은 파괴되었다.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혁신하면서 성경은 성직자의 손이 아닌 인쇄기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두 달을 꼬빡 필사해야 성경 한 부가 완성되었지만, 인쇄술은 같은 기간에 4,000부를 찍어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성경 이외의 책들도 인쇄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촉발한 인쇄술: 출판 기술의 발전은 왕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민주주의 이론을 확산시켰고, 그에 따라 신의 뜻이 아닌 과학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이론서들이 양산되었다. 산업혁명은 이러한 배경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방향을 잡은 변화의 물길은 거세게 흘렀다. 인쇄술은 산업혁명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산업혁명 역시 인쇄술을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구텐베르크의 수동 인쇄기는 시간당 240장을 찍어냈다. 그런데 인쇄기와 증기기관이 결합한 1818년의 쾨니히 인쇄기는 10배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1843년에는 원통 회전방식의 윤전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본격적인 신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차 산업혁명기의 핵심적인 미디어는 책과 신문이었다.
전기의 도입과 미디어의 홍수: 2차 산업혁명으로 전기가 도입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다. 1867년에는 타자기가, 1876년에는 전화가, 1877년에는 축음기가, 1879년에는 전구가, 1895년에는 무선통신기와 영화가 등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발명광의 시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에디슨이나 벨을 비롯한 천재들이 기상천외한 제품을 계속 발명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사람의 생각을 담고 전달하는 미디어도 많았다. 책이나 편지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와 대비해서 이 시기의 미디어 발명품을 ‘뉴 미디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는 뉴 미디어의 뜻이 SNS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라디오와 전화, 전보에는 전에 없던 특성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미래를 알려주는 등불이었다. 그 방향이 거짓이었던 적도 있고 참이었던 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미디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행사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전성시대: 1843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꿔서 전송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팩스와 텔레비전은 이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서 1953년에는 미국의 RCA가 브라운관 방식의 컬러텔레비전을 출시했다. 곧 CBS와 NBC가 컬러 방송까지 시작하면서 브라운관 방식의 텔레비전은 평판 디스플레이가 텔레비전 시장을 재편하는 2000년대까지 전 세계 가정의 거실 중앙을 차지해왔다.
1950년대 미국의 가정에는 텔레비전이 빠르게 보급되어갔다. 당시에는 영화와 방송용 장비 시장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서, 방송도 영화처럼 필름으로 촬영해서 제작했다. 그런데 미국은 너무 넓었다. 시차 때문에 동부와 서부로 보낼 방송 영상의 복사본을 급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필름의 복사본을 빠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해결책을 낸 곳은 미디어 기술 기업인 암펙스였다. 암펙스의 직원인 레이 돌비는 1956년, 영상의 전기 신호를 자기 테이프에 기록하는 VTR 기술을 개발했고, VTR은 텔레비전의 전성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한편 1970년대에는 VTR 기술이 가정용 전자제품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1975년 소니는 가정용 베타맥스를 출시했고, 1977년에는 JVC가 VHS를 시장에 내놓았다. 소니와 JVC의 비디오 플레이어는 포맷도 달랐지만 마케팅 전략도 달랐다. 소니는 질적인 면을 강조했다. 단, 1시간에 불과한 짧은 녹화 시간은 약점이었다. JVC의 VHS 테이프는 크고 화질이 떨어지지만 녹화 시간은 2시간으로 영화 한 편을 통째로 담을 만큼 길었다. 그런데 JVC의 경쟁력은 테이프 자체에 있지 않았다. 기술을 시장에 공개하면서 히타치나 파나소닉 등 다른 회사들도 VHS 비디오 플레이어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 전략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략 차이였다.
소니와 VHS 연합군 사이에 미디어전쟁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홈비디오 시장에서 성인용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했는데, 성인영화는 소니의 닫힌 시장보다 VHS의 열린 포맷을 선호했다. 이 차이가 결국 비디오 플레이어 전쟁의 승패를 갈라놓았다. 1988년, 전 세계의 비디오 플레이어 시장에서 VHS 방식은 1억 7천만 대가 판매되었다. 2,100만 대가 판매된 소니의 9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소니는 결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홈비디오 시장은 계속 성장했다. 메이저 영화사들도 홈비디오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우월했던 소니의 패배는 콘텐츠의 수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미디어 시장에서 콘텐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메이저 영화사들의 입장 전환은 미디어 시장의 또 다른 측면을 알려준다. 콘텐츠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콘텐츠 생산자가 환경의 변화를 거부할 수 있는 기간은 제한적이다. 결국은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4차 산업혁명으로 미디어가 흘러갈 방향은 과거를 살펴보면서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내용 면에서 보편성의 확보가 가장 큰 특징이다. 미디어의 소비는 이제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의 기본적인 권리가 되었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미디어의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도 삶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최근 인기를 끄는 개인 미디어가 그 증거다. 미디어 변화의 두 번째 트렌드로는 직관성과 실시간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의 소비자는 미디어 생산자가 정한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따라야만 했다. 영화를 보려면 극장의 상영 시간을 확인해야 했고, 뉴스를 들으려고 해도 매시 정각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으로 누구나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더 이상 미디어 생산자의 일방적인 요구를 따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실시간 미디어 소비가 가능해졌다. SNS는 한발 더 나아가서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도 지워버렸다.
4차 산업혁명은 서로 다른 산업을 융합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환경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매스 미디어의 전통적인 시간 배열도 파괴되고 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극장 개봉과 방송 공개를 동시에 진행했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가 처음 방송될 당시 전통적인 영화가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칸영화제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전통적인 영화 범위에 포함시킬 수 없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편의에 따라 미디어가 재편되는 흐름은 피할 수 없다.
미디어는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두 가지 기술을 발전시켰다. 하나는 터치스크린이고 다른 하나는 음성인식 기술이다. 초창기 아이폰의 성공에는 터치스크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음성인식 기술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도 점점 활용도를 높여가고 있고, 음성인식 스피커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이 아닌 기업도 소리를 오브제로 삼으려고 노력 중이다. 현재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인 아마존은 ‘알렉사’로 미국의 음성비서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소리혁명
소리산업이 선진국 진입의 열쇠다
4차 산업혁명은 결국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 대해 무수한 예측을 해왔는데, 대부분의 전망은 문화의 시대 또는 서비스의 시대로 집중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산업에 문화를 접목시키는 추세다. 서로 다른 산업들을 융해해서 복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지금, 문화는 문제를 푸는 열쇠나 마찬가지다.
한편 산업은 기준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산업은 오감을 위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각을 위한 산업, 후각을 위한 산업, 미각을 위한 산업, 촉각을 위한 산업, 그리고 청각을 위한 산업으로 가늠할 수 있다. 건설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건설 분야의 시각산업으로는 도시디자인, 건축디자인, 실내디자인, 토목건축물 디자인 등이 있다. 후각산업은 도시나 건물에 악취가 발생하거나 퍼지지 않도록 하는 보건 관련 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각산업은 건축물에 어울리는 음식 문화와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대신 환기와 통풍 기술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 분야의 산업을 건축의 촉각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각산업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소리산업의 중요성을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방송음향 시설 기준은 스피커 출력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 기준 이상의 출력으로만 설치해서 소리가 크게 나면 그만이며, 소리를 명료하게 들려줄 수 있는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안내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잘못 내렸을 때의 손실은 그나마 적은 편이다. 다시 지하철을 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안내 방송이 재난 발생 상황에서의 대피 방향을 가리키는 내용이었다면 어떨까? 잘 듣지를 못해서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 생명과 바로 직결될 수도 있는 큰 문제다.
소리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척도: 선진국의 안내방송 기준은 주변의 소음과 방송이 되는 공간의 소리 특성까지 고려하여 방송음향 시스템을 설비한다. 참고로 우리가 듣는 소리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 공간의 반사음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잡음까지 모두 포함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방송음향 시스템이 아무리 고가의 제품이어도 공간의 반사음 특성이 적절하지 못하고, 공간 내부에서 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형태의 잡음을 통제하지 못하면 소리의 명료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명료도까지 요구하기 위해선 지금의 전기음향 중심의 시설 기준에서 건축음향까지도 고려하는 시설 기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좋은 소리, 나쁜 소리: 좋은 소리를 향한 탐구는 소리산업과 바이오 분야를 이어줄 수도 있다. 소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 몸에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온갖 부자연스러운 소음이 가득한 현대는 ‘귀의 수난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의도적으로 좋은 소리를 찾아서 들어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과연 어떤 소리를 들어야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일반적인 사람의 가청 영역은 20~20,000㎐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16,000㎐ 이상의 음을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음성 난청 때문에 인류가 청각을 잃어가는 것이다. 인류 초기의 가청 영역은 20~20,000㎐보다 넓었으리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 이하의 초저주파나 20,000㎐ 이상의 초고주파까지 감지할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동물들에게 소리는 생존의 기회를 넓혀주는 중요한 감각이었다. 인간 역시 오랜 기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본능적으로 이로운 소리와 해로운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과 관련된 소리는 이로운 소리로, 삶의 안정성을 깨는 위협적인 소리는 해로운 소리로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나 전통 음악들은 자연과 인간에 가까운 소리로 인간에게 따뜻함, 편안함,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인간의 생체 리듬에 혼돈을 주는 소리까지 음악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갖가지 스트레스에 노출된 환경을 극복하려는 자기보호의 본능이 록이나 헤비메탈의 대중화를 이끌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렇게 강렬한 음악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정신적으론 스트레스를 해소할지 몰라도, 인체 세포는 이명이나 난청,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무기력, 두통, 집중력저하, 혈압상승, 정신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도 발생 가능하다.
나쁜 소리는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숲은 나쁜 소리를 집어삼키는 자연의 흡음재다. 그런데 도시화, 공업화, 현대화로 녹지 비율이 줄어들면서 소음을 흡음할 수 있는 역할도 줄어들었고, 우리 귀는 옛날보다 수백 배나 강한 소음에 노출되고 말았다. 세계보건기구는 1억 2천만 명이 소음으로 건강 문제를 앓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음원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시스템이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어 처리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듣는 소리는 아날로그 형태의 신호다.
디지털 음원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서 저장하는 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은 표본화와 양자화, 부호화 단계로 이루어진다. 표본화는 아날로그 신호를 세로로 잘게 자른 과정이고, 양자화는 아날로그 신호를 가로로 자르는 과정이다. 세로 가로로 잘게 잘라서 나온 사각계단 형태의 신호는 크기에 따라 0과 1의 부호로 정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잘려져 나온 정보들은 모두 버린다. 디지털 신호는 잡음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아날로그 신호보다 깨끗한 음질을 낸다. 또 음반 대신 음원을 담기 때문에 디지털 장치는 휴대성이나 편의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선 디지털화한 신호를 다시 아날로그로 변환해줘야 한다. 이때 아까 잘려나간 소리의 빈자리는 양자화 잡음이 대신하게 되는데, 양자화 잡음은 귀에 들리진 않지만 몸의 세포에 스트레스를 준다. 압축을 많이 한 디지털 음원일수록 양자화 잡음도 많아지고, 생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도 커진다.
좋은 소리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의 소리, 디지털로 가공하지 않은 아날로그 소리, 명료한 소리, 지나치게 크지 않은 소리다. 그러나 인공적인 소리를 배제하고 디지털 음원을 금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을 버리고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린이용 영화의 사운드를 고민할 수는 있다. 유기농 이유식처럼 말이다. 사용자에 맞추어 소리의 크기와 형태를 조절하는 맞춤형 강의실은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많은 나라들이 맞춤형 공장인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고 있다. 소리를 제어하는 스마트 랩이나 스마트 호스피탈이라고 안 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소리의 품질을 고민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리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우리나라는 IT 강국, 반도체 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이다. 그런데 사회 안전과 공정한 교육환경 확보 등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소리는 크기가 아니라 품질로 결정된다. 소리의 품질에 대한 고민은 재난 안전방송이나 영어 듣기평가의 수준 향상뿐만 아니라 방송기술을 강화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UHD 방송을 실시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서 UHD의 표준도 정했다. 4K의 영상에 10.2채널의 사운드가 대한민국의 UHD 방송표준인데, 돌비의 차세대 음향 포맷이 아니라 MPEG-H 3D 오디오라는 포맷을 표준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MPEG은 mp3 파일 때문에 오디오 규격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MPEG은 1988년에 설립된 동영상전문가집단이다. 세계의 통신산업 및 전자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 미국의 퀄컴과 AT&T, 영국의 BT 등이 대표적인 회원들이다. 이들 기업의 면면을 하나씩 살펴보면 하나의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