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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경제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동화경제사

최우성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 288쪽 / 15,000원





성냥을 팔던 고사리손, 성냥으로 떼돈 번 큰손



산업혁명기의 동화작가, 안데르센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한 해의 마지막 날,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거리에서 앳된 소녀가 추위에 떨며 성냥을 팔았다. 집집마다 창틈으로 환한 불빛이 새어나왔고 맛있는 냄새가 주변으로 살포시 퍼졌다. 창문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가르는 국경 같았다. 소녀는 지붕이 유달리 예쁜 집 창에 발돋움하고 매달려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집 안에서는 파티가 한창이었다. 소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해진 옷을 걸쳐 입은 소녀는 다시 애원하듯 지나가는 마차를 향해 다가섰다. 하지만 마차는 쏜살같이 지나쳤고 소녀는 길바닥에 넘어져 신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건너편에 있던 사내아이가 냉큼 뛰어와 소녀의 신발을 낚아챘다. “아이 추워.” 소녀는 맨발을 동동 구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계속 성냥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도 소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 너무 추워 안 되겠어. 성냥불로라도 손을 녹여야지.” 잠시 모퉁이에 웅크린 소녀는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성냥이 밝은 불꽃을 내며 타오르는 것을 보고 따뜻함을 느끼려는 찰나,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래, 한 개 더 켜보자.” 그 순간 크고 멋진 방이 눈앞에 꿈처럼 펼쳐졌다.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식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위 요리가 올라가 있었다. 다시 한 번 소녀가 불을 붙였을 때, 아름다운 색깔의 촛불로 장식된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소녀 앞에 등장했다. “와, 정말 아름다워라.” 그 순간만큼은 추위도 배고픔도 가난도 소녀의 삶에 달라붙은 몹쓸 운명이 아닌 듯했다.

1845년 말 세상에 나온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속 소녀의 모습은 안데르센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러모로 닮았다. 1805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다. 안데르센 가족이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했다. 안데르센이 열한 살 때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공립학교에서 간신히 기초교육만 마친 안데르센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방직공과 재단사의 도제가 되어 일찌감치 노동의 삶을 몸으로 익혔다. 그러다 코펜하겐으로 거처를 옮겨 잠시 연극무대에 섰을 때 우연히 극단 관계자들이 대본을 가다듬는 안데르센의 재주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고전동화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1830년대부터 창작동화를 선보이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평생 150편 이상의 동화를 남긴 안데르센의 주된 활동 시기는 1835~1850년 즈음, 그가 30~40대일 때다. 이 시기는 유럽 여느 나라가 그러했듯이, 덴마크에서도 산업화가 시작되던 무렵이다. 1840년대 덴마크 전체 산업노동력은 연평균 3퍼센트 이상 꾸준히 증가했고, 이런 바람을 타고 1820년대 0.4퍼센트에 그쳤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840년대에 2.2퍼센트까지 높아졌다. 같은 시기 영국이나 스웨덴보다도 성장속도가 빨랐다. 그러나 모든 게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감자마름병, 유럽 중북부를 집어삼키다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된 1845년 여름, 갑작스레 감자마름병이 유럽 중북부를 덮쳤다. 대재앙의 불길은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로 번지더니 영국과 아일랜드까지 옮겨 붙었다.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가 유독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아일랜드의 감자 생산량은 1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이 굶어죽고 200만 명 이상이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을 나섰다. 이른바 ‘대기근(1845~1847년)’은 그렇게 벼락처럼 찾아왔다. 산업혁명에 앞섰던 영국이나 목축업 비중이 높았던 덴마크는 외관상 수치로 나타난 경제적 피해가 상대적으로 조금 덜했다고 하나, 고된 삶에 지친 도시 하층계급에는 고통이 배가되었다. 감자마름병이 퍼진 이듬해인 1846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영아사망률은 무려 230명(출생아 1,000명당) 선까지 치솟았다.

세상살이는 이제 예전 같지 않았다. “어떡하지?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했는데,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혼날 거야.” 엄마처럼 다정했던 할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집에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뿐이었다. 소녀는 빵 한 조각을 구하기 위해 사실상 구걸에 가까운 노동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당시 유럽 주요 도시 빈민가정 어린이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이 전통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빠르게 휩쓸어버리던 대변혁의 한복판이었다.

무엇보다도 가난을 바라보는 시각과 ‘빈민 구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가난은 게으름 탓이라기보다 자연재해 등 외적 요인에 의한 피치 못할 결과라는 의식이 강했다. 빈민 구제 역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당연한 책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산업화는 모든 걸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슷했다. 1834년 영국에서 제정된 ‘신구빈법’은 이런 변화를 더욱 부추겼다. 이 법은 그간 전국 각 지역의 교회 교구가 가졌던 빈민 구제 재량권을 없애고 대신 중앙정부가 마련한 지침을 따르도록 했다. ‘복지의 중앙집중화’라는 평가를 받게 된 배경이다.

빈민이라 하더라도 노동능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엄격하게 나눈 뒤,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에게 작업장 강제 입소 등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조처가 신구빈법의 뼈대였다. 빈민에게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가 다분했다. 가난에 지쳐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지역공동체의 온정에 의존하던 부랑자들은 하나둘씩 산업노동력으로 탈바꿈해갔다. 이제 가난은 오롯이 제 잘못이자 책임일 뿐이라고, 세상은 냉혹하게 가르쳤다. 가난을 벗어나는 일 역시 오로지 개인의 몫이었다. 맨발의 어린 소녀가 헐벗은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성냥을 팔아야 했던 것처럼.



질병을 앓던 성냥공장 여공들

당시만 해도 성냥은 모든 가정의 생활필수품이었다. 현대적 성냥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세기 초. 백린이란 물질이 쉽게 불이 붙는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발견한 이후 이를 제품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하지만 초기 성냥은 늘 골칫거리였다. 작은 마찰력에도 불이 너무 쉽게 붙는 탓에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스웨덴의 화학자 구스타프 에리크 파슈는 1844년 ‘안전성냥’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형태의 성냥이다. 염소산칼륨과 황을 묻힌 성냥개비를, 적린을 주된 약제로 바른 성냥갑 마찰 면에 문질러서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특히, 안전성냥은 인체에 해로운 백린 대신 적린을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백린 성냥은 제조 과정에서 독가스를 내뿜는 데다 피부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등 인체에 치명적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 10대 여성이었던 성냥공장 노동자들이 건강을 해치는 산업재해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까지 백린 성냥이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1888년 런던의 성냥공장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여공들의 파업 사건이다. 10대 여공들은 하루 14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손에 쥐는 급여는 턱없이 적었다. 이들을 특히 분노하게 만든 건 백린 사용으로 인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작업환경이었다. 그해 7월 언론 보도로 공장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자 경영진은 정보를 외부에 흘린 노동자를 해고했고,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섰다. 이 사건은 결국 런던 노동위원회가 개입해 근무환경 개선의 성과를 거두며 마무리되었다. 1891년, 구세군 측이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적린을 사용한다는 점 등을 집중 홍보하며 자체 성냥공장을 세운 것도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여공 파업 사건이 끼친 직접적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후 1901년 브라이언트앤드메이 공장은 마침내 모든 생산 공정에서 백린을 완전히 없앴다.



‘성냥왕’ 크뤼게르

소녀들이 거리에서 애처롭게 성냥을 팔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성냥을 만들었지만, 성냥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람을 따로 있었다. ‘성냥왕’이란 별명이 따라다니는 스웨덴의 이바르 크뤼게르가 장본인이다. 스웨덴의 성냥산업은 1844년 안전성냥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안전성냥은 곧 스웨덴의 대표 수출품목이 되었고, 스웨덴 전역에 150여 개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중에 크뤼게르의 아버지가 세운 공장도 있었다. 크뤼게르는 스무 살이 되던 1900년에 단돈 100달러를 쥐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미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오가며 건축 분야에서 기술과 명성을 쌓았다. 이후 스웨덴으로 돌아온 그는 명성만큼이나 빠르게 재산도 불어났다. 여기까지는 똑똑한 엘리트 청년의 금의환향 이야기로 넘겨버릴 만했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크뤼게르는 건설업으로 모은 재산을 무기 삼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성냥산업이 자연스레 첫 무대가 되었다. 그때까지 스웨덴 성냥산업은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난립한 상태였다. 자금력에서 앞선 크뤼게르는 공격적으로 인수ㆍ합병에 나섰고 그 결과 1917년 대기업 스웨덴성냥주식회사가 탄생했다. 원재료와 목재, 기계, 인쇄 등 성냥 생산에 필요한 분야를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도 완성되었다. 크뤼게르의 장사 수완은 그 무렵부터 날개를 날았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각국이 저마다 재건과 복지를 위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크뤼게르는 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대가로 그 나라의 성냥 생산ㆍ판매 독점권을 꿰찼다. 프랑스ㆍ폴란드ㆍ그리스ㆍ독일ㆍ헝가리에 이어 멀리 라틴아메리카까지 손길을 뻗쳤다. 성냥왕 크뤼게르의 ‘영토’는 단숨에 세계 성냥 시장의 75퍼센트까지 확대되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30년대 초반까지 제지, 금광, 철도, 은행, 언론, 영화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갔다. 1929년 크뤼게르의 재산은 300억 크로나, 현재 가치로 따져 13조 원 정도였다. 성냥왕은 세계 3위 부호로 꼽혔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몰락의 시간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사실 그의 거침없는 쾌속행진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었다. 미국 금융 시장에서 넘쳐나는 투자자금을 끌어다가 여러 나라 정부에 빌려주는 자금 중개인 노릇을 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투자수익률 25퍼센트’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그가 세운 투자회사 ‘인터내셔널매치컴퍼니(IMCO)’는 고수익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 투자자들이 몰려든 탓에 7년 새 시가총액이 1,100퍼센트 폭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세계 성냥 시장을 한 손에 쥐었다 하더라도 수익률이 고작 8퍼센트 남짓한 마당에, 25퍼센트(계약)와 8퍼센트(현실)의 간극이 너무도 컸다. 그 간극을 임시로 메우는 방법은 ‘피라미드 사기’뿐이었다. 나중에 뛰어든 투자자의 투자자금으로 앞선 투자자의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대공황 여파로 곤경에 처한 크뤼게르가 자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피라미드 사기극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궁지에 몰린 크뤼게르는 1932년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천재’와 ‘사기꾼’의 묘한 조합

크뤼게르의 행보는 10년 정도 앞서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폰지 사기 사건을 빼닮았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찰스 폰지는 어느 날 우연찮게 스페인의 한 회사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편지봉투 안에는 반송용 국제우편환이 들어 있었다. 국제우편환이란 환율에 맞춰 우편환을 받는 나라의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대용물이다. 순간 폰지의 두뇌가 반짝였다. 제1차 세계대전 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가 추락한 이탈리아에서 국제우편환을 사서 미국에서 달러로 교환하면 큰 차익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1센트를 주고 산 국제우편환으로 미국에서 6센트까지 받을 수 있던 시절이다. 폰지는 지체 없이 투자회사를 차린 뒤 ‘45일 만에 원금의 50퍼센트, 90일 만에 원금 100퍼센트 수익 보장’이라는 조건을 언론에 집중 홍보했다. 투자자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고, 1920년 2월 5,000달러이던 투자금액은 불과 4개월 만에 10만 배로 폭증했다. 사람들은 평생 모은 돈과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앞다퉈 쏟아부었다. 이 희대의 사기극은 4개월 만에 피해자 4만 명, 피해금액 1억 4,000만 달러라는 기록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크뤼게르와 폰지. 닮은 꼴 두 인물의 피라미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폰지 사건이 단기간의 단순한 금융사기였다면, 크뤼게르의 경우는 성냥산업이라는 합법적 토대 위에 이루어진 복합 사기극 성격이 짙다. 주력 분야인 성냥산업의 패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합법과 범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천재’와 ‘사기꾼’이란 두 단어의 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한편으로 크뤼게르는 자산담보부증권ㆍ차입매수 등 현대적 금융기법 개념을 구체화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선 획기적이라 할 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를 띤 금융상품도 선도적으로 선보였다. 1920년대에 기업들이 의결권을 지닌 주식과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나누어 발행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이런 ‘차등의결권 제도’를 주도적으로 고안한 인물도 크뤼게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으로 신음하던 유럽 대륙에서 앞장서 투자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금융혁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그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가릴 수는 없다. 그는 피라미드 사기 행각을 감추고자 분식회계와 부외거래를 숱하게 일삼았고, 벌어들인 소득은 탈세를 위해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꽁꽁 숨겼다. 그가 몰락한 후 남긴 빚은 당시 스웨덴 정부 예산보다도 많았다. 1930년대 들어 월스트리트가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사이에 칸막이를 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도입한 배경에도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 천재 사기꾼에 농락당한 투자자들의 투자금 4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본 미국 정부가 서둘러 내놓은 대책이었다.



‘소녀’의 유일한 무기

성냥불을 켠 소녀가 눈앞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지려는 찰나, 불은 슬그머니 꺼져버렸다. 성냥불 연기 위로 별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면 한 영혼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란다.’ 소녀는 언젠가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누가 죽어가고 있나 보구나.” 소녀는 다시 성냥불을 붙였다. 순간 그토록 사랑했던 할머니가 눈앞에 나타났다. 소녀는 홀린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할머니, 가시면 안 돼요. 따뜻한 난로처럼, 맛있는 음식처럼, 멋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사라져 버리실 거죠?” 소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남은 성냥 다발에 모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눈앞의 할머니가 소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 품에 안겼고,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고 빛이 되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길모퉁이에 소녀가 벽에 기댄 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타버린 성냥 다발을 자그마한 두 손에 꼭 쥔 채….

어린 시절에 뼈저리게 체험한 열등감과 외로움의 상처, 가난의 무게는 오래도록 안데르센의 삶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가 남긴 동화 가운데 유독 죽음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많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역설적인 메시지로 산업혁명기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려 했던 걸까? 현실의 구원보다는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구원의 길을 택한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소녀가 지난밤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는지 몰랐다. 새해 아침에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행복한 나라로 떠났는지도…….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떠난 뒤에도, 맨발의 소녀가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찾은 뒤에도, ‘소녀’는 여전히 남았다. 가난과 배고픔에 힘겹게 맞서는 거리, 위험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에 짓눌린 공장, 도처에 ‘소녀’는 넘쳐났다. 어딘가에서 감자마름병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갈 때, 어딘가에서 훗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성냥왕 등극의 작은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를 공장이 세워졌다. 맨발의 소녀가 머나먼 하늘로 떠난 바로 그해, 땅의 현실이었다. 고사리손으로 거리와 공장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탱하던 이들의 유일한 ‘무기’인 성냥. 어느 누구는 그 성냥 하나로 떼돈을 벌어들인 사실에 비추어보면, 너무도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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