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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에 산다면?

에가미 오사무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에 산다면?

에가미 오사무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17년 12월 / 256쪽 / 15,000원





프롤로그_ 당신이 잔혹한 ‘100명 마을’의 주민이라면?



‘설마……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이겠지?’라고 생각했는가? 어쩌면 당신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당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과는 무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녀는 어떨까? 그 자녀의 자녀들, 그러니까 당신의 후손은? 과연 그들도 잔혹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용케 피해갈 수 있을까?

냉철해지자. 당신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잔혹한 마을의 주민이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빚더미를 떠안을 것이고, 학비가 없어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운 좋게 교육을 받아도 취업난에 고통받고, 수백 대 일 경쟁을 뚫고 취업해도 박봉에 시달리느라 결혼하지 못하고, 노후연금이 없는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암울한 미래지만 이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다. 잔혹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사회(일본)에는 1억 2,700만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만일 이 거대한 공동체를 100명이 사는 마을로 압축하면 어떻게 될까? 49명이 남성이고, 51명이 여성이다. 13명이 어린이이고, 61명이 생산 가능한 노동자이며, 26명이 노인이다. 초등학생 5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3명, 대학생 2명이 이 마을에 산다.

가장 잔혹한 현실은 급격한 인구 감소 문제다. 2050년에는 아동이 13명에서 10명으로 줄어들고, 생산인구는 61명에서 52명으로 감소하며, 노인은 26명에서 39명으로 늘어난다. 머지않은 장래에 이 마을은 어린이와 생산인구가 자꾸자꾸 줄어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나이 든 사람들만 보이는 ‘노인의 마을’이 될 것이다.

사실, 이 마을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마을 전체가 빚더미에 짓눌려 있다. 돈을 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마을 전체 빚은 마을 사람들이 1년 동안 죽어라 일해서 벌어들이는 돈의 갑절에 달한다. 월급 300만 원인 가정에서 다달이 490만 원이 필요하므로 매달 190만 원이 부족하다. 연봉 3,600만 가정에서는 1년에 5,880만 원이 필요하므로 연간 2,280만 원이 부족하다. 부족한 금액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돈이 나가야 할 구멍은 넘쳐나는데, 그중에서도 사회보장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회보장비란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의 의료와 병간호 등에 사용하는 돈, 그리고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이다. 마을에 노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25년 사이에 자그마치 3배로 불어났다. 잔혹하게도 이 빚은 아이들과 20대 젊은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100명이 사는 마을에서는 41명의 마을 사람이 고용되어 일한다. 41명 중 26명이 정규직이고 15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란 계약직, 파견직, 위탁,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등을 아우르는 용어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아도 군소리 한 마디 할 수 없는, 마을에서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정규직은 한 시간에 1만 9,370원, 비정규직은 1만 2,290원을 받는다. 연봉 2,000만 원 이하의 ‘워킹 푸어’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는 9명이나 살고 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하는 사람을 남녀별로 보면, 더욱 잔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정규직의 평균 연봉을 살펴보면 남성은 5,000~6,990만 원, 여성은 2,000~2,990만 원이다. 비정규직 평균 연봉을 살펴보면 남성은 1,000~1,990만 원, 여성은 1,000만 원 미만이다. 여성의 저소득은 한 부모 가정의 가난으로 이어진다. 이 마을 아동ㆍ청소년(18세 미만)의 약 16%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빈곤 아동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그중 절반이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이 100명인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의 절반인 50명이 ‘생활이 팍팍하다’고 푸념한다.

이 마을의 노인들은 과거에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마을에서 받는 연금만으로는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축내며 사는 노인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한 푼도 저축하지 못하는 가정 수는 마을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 마을에는 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미리 들어두어야 하는 보험료를 낼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험에 가입한 가정의 5분의 1이 보험료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다. 정규직도 되지 못하고, 월급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저축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실이다(여기서 ‘보험’은 우리로 말하자면 ‘국민건강보험’이다).

이 마을에서는 65세 이상의 병간호를 필요로 하는 노인이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 노인들을 병간호해야 하는 사람은 남편과 아내, 자식들이지만 그중 3분의 2가 여성이다. 한 술 더 떠서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이 60세 이상으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병간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마을 사람들에게 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자기 생활에 대해 “고민스럽고 적잖이 불안을 느낀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100명 중 67명이나 되었다. 그중 “노후가 불안하다.”라고 답한 사람은 58명에 달했다. 이 마을의 행복도 순위는 158개 마을 중 46위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사는 마을의 잔혹한 현실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먼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현실을 똑바로 보고 깊이 생각해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만만치 않은 문제에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을 때 마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제1장. 우리가 사는 ‘100명 마을’은 어쩌다 이런 잔혹한 사회가 되었을까?



표면적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고 감이 잡히지 않는 신념이나 사상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배후에 ‘돈’의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자신이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건 우리는 그 구체적인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스무 살 즈음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돈과 진지하게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돈의 정체와 본질’에 대해 간파하고 있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에서 나는 오랫동안 자산관리전문가 등 경제전문가로 일하며 통찰한 돈의 정체와 본질, 정교한 작동 메커니즘을 낱낱이 공개하고자 한다.

“돈도 노화해야 한다”

나는 자산 관리사다. 돈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이런 내가 불후의 명저 『모모』로 유명한 독일 환상문학의 대가 미하엘 엔데를 만났다. 『엔데의 유언』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돈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빵을 사는 돈’과 ‘주식거래소에서 오가는 자본으로서의 돈’이 전혀 다른 돈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주옥같은 명언들로 빼곡하다. 아동문학가인 미하엘 엔데와 사상가 실비오 게젤의 사상이 스며든 명언들은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준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돈은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 독특한 재화다. 이것이 돈이 지닌 비인간성이자 가장 부자연스러운 속성이다. 제아무리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저택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산해진미도 먹어버리면 사라진다. 먹지 않고 내버려 두면 썩어 없어진다. 오로지 돈을 제외하면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돈만은 오래도록, 아니 거의 영원토록 변하거나 썩지 않고 본래의 가치를 유지한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거나 그로부터 이자를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이 가진 돈을 굴려 끊임없이 증식시킨다.

“돈의 가치가 영원하다고? 그럴 리가 없어.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다고! 아무리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진 돈이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이야!” 하며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엔데의 유언』을 읽다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서 말이다.

“돈도 노화해야 한다.”라는 실비오 게젤의 말은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당신은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마음 한구석에 ‘아무리 그래도 돈의 가치는 영원한 법이야’라는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에서 가치가 줄어드는 돈이라는 예를 퍼뜩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계에 ‘노화하는 돈’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작은 마을이 그 역사적 무대다. 세계 대공황 이후 벌어졌던 일이다. 이 마을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짊어져야 했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대공황의 악영향 탓이었다. 이 마을의 인구는 4,300명에 불과했다. 이곳에 무려 500여 명의 실업자와 1,000여 명의 예비 실업자가 있었다. 돈이 돌지 않아 순환이 정체되었고,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지속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촌장은 현행 화폐와 병행하여서 한 달에 1%씩 가치가 줄어드는 돈을 발행했다. 이 돈을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가치가 줄어든다.

그러자 주민들은 앞다투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물건을 사들였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번 사람도 버는 족족 그 돈을 썼다. 돈이 돌면 경제효과가 커진다. 실제로 경제활동은 몇 배로 활발해졌다. 또 돈을 빌려도 (가치가 줄어드는 돈이었기에) 이자가 붙지 않는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마을은 산더미 같은 부채를 모두 말끔히 청산했고 실업자도 사라졌다. 이 실험적인 사업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개입해 금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실비오 게젤이 주창한 ‘노화하는 돈’이라는 개념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주창했던 이론과도 닮았다. 슈타이너는 게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다. “돈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는 엔데의 말은 강력하고 또 타당하다. 그의 말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미국의 기업가 클린트 W. 머치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돈은 비료와 같다. 골고루 뿌리면 도움이 되지만, 한곳에 쌓아두면 악취를 내뿜는다.”



제2장.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 3가지 자본



우리는 잔혹한 나라, 잔혹한 사회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잔혹한 공간에서 잔혹한 시간을 견디며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해야 좀 더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잔혹한 사회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희망을 만드는 비결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잔혹한 세상의 중심에는 돈이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인생의 중심에서 돈이 차지하는 무게는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 않다. 오히려 돈보다 훨씬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치를 담은 요소가 우리 삶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게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

멋진 부자가 되고 싶다면

밑도 끝도 없이 ‘불행한 부자’니 ‘불행한 가난뱅이’니 하는 말을 해서 당황한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돈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기준으로 인간을 분류해 본 적이 있다. 우선, 세상 사람들을 지극히 단순하게 부자와 가난뱅이라는 2가지 기준만으로 나누었다. 그러고는 1번과 2번에는 ‘부자’라는 단어를 쓰고, 3번과 4번에는 ‘가난뱅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런 다음 ‘멋진’, ‘꼴불견인’, ‘행복한’, ‘불행한’의 4가지 형용사를 차례로 짝지어 보았다. 그러면 다음의 4가지 유형이 나온다.

1. 멋진 부자

2. 꼴불견 부자

3. 행복한 가난뱅이

4. 불행한 가난뱅이



먼저, ‘멋진 부자’란 어떤 사람일까? 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자본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베풂을 받는 사람의 본원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자본’과 도움을 징검돌 삼아 다른 사람을 성공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자신이 50만 엔을 벌면 2명의 부하 직원에게 20만 엔씩 기꺼이 나누어 주고, 자신은 10만 엔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젊은 경영자가 한 말이다. ‘멋진 부자’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자신이 일군 자본과 가치를 기꺼이 쏟아부어 타인의 가치를 끌어올려 주는 사람, 넉넉히 베풀 줄 알고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다. 그런 자질을 지니고 있고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잠시 리더의 흉내를 낼 수는 있을지언정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리더로 오랫동안 존경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파나소닉의 창업주이자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그야말로 탁월한 경영자다. 그는 ‘사는 사람이 즐겁고, 파는 사람이 즐겁고, 세상이 즐거워야 한다’는 기업경영철학을 주창했다. 그렇다. 파는 사람, 즉 기업이 만족스럽고 사는 사람, 즉 소비자가 만족스럽고 세상, 즉 모든 사람이 함께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어느 한 주체나 개인만이 이익을 창출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힘을 합해 큰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구조를 구축해가야 한다.

‘멋진 부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유형은 ‘꼴불견 부자’다. 꼴불견 부자는 자신만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늘 속이려 든다. 그들은 영리할 뿐만 아니라 언변도 뛰어나서 사람들을 곧잘 속이고 농락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속임수가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승승장구할 수도 있지만, 머지않아 불의한 일이 드러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부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행복한 가난뱅이’다. 행복한 가난뱅이는 자신이 하는 일이나 사회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여 한정적인 성과밖에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과감한 도전도 하지 못한다.

또 하나의 유형으로 ‘불행한 가난뱅이’가 있다. 불행한 가난뱅이는 다른 사람에게 늘 무언가를 빼앗아 자기 이익을 챙길 궁리만 하는 사람이다. 이는 4가지 유형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꼴불견 부자’라면 일시적이나마 돈을 벌 테니 그나마 최악은 아니지만, 불행한 가난뱅이는 돈을 모으려 아무리 용을 써도 늘 빈털터리 신세다.

불행한 가난뱅이는 다른 사람의 자원을 착취하는 데 항상 혈안이 돼 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 이외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자신의 실패를 회사 탓, 혹은 사회 탓으로 돌린다. 이런 사람의 주위에는 사람이 없고 한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탐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터라, 때때로 세상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대에 멋진 부자, 행복한 부자로 살아남으려면,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를 치명적인 위기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우리 안의 탐욕을 지혜롭게 다스려야 하고, 탐욕의 시대와 작별을 고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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