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인사이트 2018
유상철 외 지음 | 올림
차이나 인사이트 2018
유상철 외 지음
올림 / 2017년 11월 / 318쪽 / 18,000원
중국 공산당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 정치 & 사회
‘100년 가게’ 넘보는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살아남았나_ 이희옥(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최근 중국 정치를 연구하는 필자를 우리 기업인이 많이 찾는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2021년 창당 100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장수 비결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사람이나 기업 모두 100년을 한결같이 지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독일 인구보다 많은 8,800만에 가까운 세계 최다의 당원을 보유한 중국 공산당은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기에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그 답을 찾아봤다.
서방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제 지배에 회의적이다.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다당제 도입만이 공산당 체제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이 서구식 정당제를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중국은 당 개혁만으로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이 이미 군주입헌제, 의회제, 다당제, 대통령제 등을 두루 시도해 봤지만 실행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의 미래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특유의 수축과 적응 능력을 발휘하며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 공산당이 아래로부터의 지지 없이 강제만을 일삼았다면 옛 소련이나 동구권의 전철을 밟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내구력에 다른 원천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크게 여덟 가지다.
첫째는 위기의식이다. 중국 공산당은 항상 긴장감을 유지한다. 당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면 한낱 ‘진흙 속의 거인’이 되고 만다는 걸 중국 현대사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 조직이 관료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개혁의 칼을 빼 든다. 시진핑의 ‘파리든 호랑이든 다 때려잡자’는 반(反)부패 운동이나 사치 바람 등 4대 악풍을 타도하자는 캠페인은 ‘인심의 향배가 당의 생사존망과 직결돼 있다’는 위기의식의 소산이다. 이런 위기감의 배경엔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 주기율을 터득한 결과가 깔려 있다. 왕조의 평균 수명은 200년이고 왕조 성립 후 50~60년이 지나면 정체와 쇠퇴를 거듭했는데, 현재 중국이 그 시기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점이다. 당의 모든 간부는 직급에 상관없이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 짧게는 수주에서 길게는 1년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중앙에서 현급 지방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설치된 3,000여 개의 각급 당교가 중심이다. 여기서 당 간부들은 주기적으로 중요 정책에서 세계정세에 이르는 다양한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하고 학습한다. 간부로서의 자세를 다지고 새로운 시대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시진핑의 ‘시작합시다’라는 한마디로 시작되는 정치국 집단학습은 중국 최고 지도부의 공부 모임이기도 하다. 2002년 후진타오 집권 시기부터 시작된 정치국 집단학습은 연 8~9회 개최되며 2016년 초까지 이미 107회를 넘었다.
셋째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는 ‘당이 결정하면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박수를 치고 정치협상회의는 만세를 부른다’는 속어가 있다. 이처럼 당은 중국의 길을 설계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한 지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며 정책적 신뢰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의 당 대회 보고서를 보면 북한과 같은 ‘휘황한 설계도’ 대신 중국이 처한 대내외 환경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부분이 많다. 실례로 당 지도부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G2 국가라 부르는 법이 없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큰 나라일 뿐이라고 말한다. 2002년 2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이 세계 80위권 밖에 있는 국가에 불과하다고 밝힌 점도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이런 솔직한 현실 인식은 공산당의 정책 거품을 제거하는 데 기여한다.
넷째는 유연성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모든 문화를 하나로 녹여내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다. 중국 사회주의도 ‘휘어지기는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진다. 2002년 당 강령에는 공산당이 기존의 노동자ㆍ농민과 함께 지식인과 자본가도 대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더 이상 과거의 혁명정당에 머물지 않고 대중정당으로 전환한다는 선언이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흡수하는 데도 놀라운 신축성을 보여줬다. 필요한 자본주의 수단은 모두 받아들였다. 상(商)나라의 후예답게 선전과 상하이에 주식시장을 열었고,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별하는 기준은 생산력을 높이고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런 유연성은 혁신을 불러오는 공간을 제공한다. 중국 공산당은 혁신만이 개혁개방 과정의 마찰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장쩌민이 2002년 당 대회에서 90분에 걸친 고별 연설을 하면서 혁신은 민족을 진보하게 하는 영혼이라며 새로운 신(新)을 90번이나 강조한 배경이다.
다섯째는 차세대 양성이다. 중국 공산당은 좋은 간부는 자신의 치열한 노력과 함께 당 조직의 양성 시스템 속에서 배양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정치국 상무위원급 지도자는 적어도 20년 이상의 양성 과정을 거쳐 배출된다. 그 과정에서 두세 개 성(省)의 당 업무를 관장한다. 한 성의 인구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웬만한 나라 몇 개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시진핑은 푸젠성과 저장성, 상하이 당서기를 거쳤고 리커창 총리도 허난성과 랴오닝성 당서기를 지냈다. 차세대 지도부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와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도 정치력을 검증받는 중이다. 당의 고위 간부가 어떻게 선발되는가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적어도 누가 선발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수월하다. 우리와 같은 낙하산 인사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섯째는 현장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일찍이 마오쩌둥이 ‘조사 없이는 발언권도 없다’고 밝힌 이래 역대 지도자 모두 현장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도입은 1990년대 덩샤오핑이 선전 등 남부 지역을 시찰하며 언급한 내용을 정리한 결과였다. 시진핑도 2016년 1월 초 서부 지역 현지 조사를 통해 공급 분야 개혁 등의 중요 메시지를 현장에서 발신했다. 이제 중국에서 대형 사건이 터지면 당정 지도부가 즉각 헬리콥터를 타고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정착됐다. 어떤 경우는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방문해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관철하기도 한다. 시진핑은 지난 5년 동안 벽지인 허난성 란카오현을 세 번이나 방문해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빈곤 퇴치 바람을 일으켰다.
일곱째는 연속성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우리의 정치 풍토와 달리 중국 공산당은 우선 전임자의 낡은 부대에 자신의 새 술을 붓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색깔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1981년 중국 공산당이 채택한 역사 결의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하고 새 지도부의 개혁개방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혁에 가장 책임이 컸던 마오쩌둥에 대한 ‘공(功)은 70%, 과(過)는 30%’로 정리했다. 역사는 청산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란 걸 학습해온 결과다. 지금도 헌법과 당 강령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이 남아 있다. 비록 강조점을 달리하고 해석을 달리하지만 정통성과 합법성의 근거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중국 정치의 호흡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의 고위 간부 중 새 지도부가 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직책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왕후닝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은 장쩌민 시기부터 3대째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끝으로 당원들이 미래 비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흔히 중국 간부는 위의 지시에 따라 한목소리만 낸다는 핀잔을 받는다. 그러나 위에서 비전을 만들면 여러 층위에서 이를 회람하고, 또 기층 현장의 여론을 수렴해 위로 보내는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또 이런 비전을 만들기 위해 정치국 상무위원이 담당하고 있는 중앙정책연구실을 비롯해 수많은 전략기구를 둔다.
물론 중국 공산당이 뛰어난 수축과 적응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근본적 위기는 참여와 경쟁, 효율, 소통, 책임성, 반응성 등 민주주의의 부족에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100년 내구력에는 유연성과 학습, 현장 등의 요소가 잘 결합돼 나타난다. 지배구조의 변화 없이도 내부 혁신을 통해 100년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짝퉁의 나라에서 혁신의 나라로 - 경제
선전은 어떻게 ‘짝퉁 본산’서 ‘ICT 성지’로 변했나_ 한우덕(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ㆍ차이나랩 대표)“중국 인터넷, BAT 시대가 저물고 TMD 시대가 시작되다.” 최근 중국 인터넷 업계에 나도는 말이다. TMD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콘텐트 제공 회사인 터우탸오(Toutiao), 최대 O2O(Online to Offline) 사이트인 메이퇀(Meituan), 인터넷 자동차 콜서비스 회사인 디디(Didi) 등을 일컫는다. 이들이 바이두ㆍ알리바바ㆍ텐센트(BAT) 등을 밀어내고 업계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터우탸오 얘기를 해 보자. 요즘 중국 광고업계는 터우탸오가 등장한 후 판도가 바뀌고 있다. “최대 광고매체인 중국중앙방송(CCTV)의 광고가 예년보다 30%가량 줄었는데, 그 포션을 가져간 회사가 바로 터우탸오다.”라는 말이 나온다. 휴대전화에서 이 회사 앱을 다운받아 설치해 보면 그 경쟁력을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골라 그것 위주로 소식을 전해준다. “물론 악성 콘텐트를 걸러내는 일에 사람 손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용자의 검색을 바탕으로 최적의 콘텐트를 찾아내고 보내주는 건 100% AI가 합니다. 우리는 콘텐트 회사가 아니라 기술개발 업체입니다.” 터우탸오의 코파운더 장난의 설명이다.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5초 이내, 관련 기사를 송출하는 데 10초 정도 걸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네이버가 일부 뉴스에 대해 AI를 막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위력이다. 그는 “사이트를 방문하는 하루 방문객 수는 6,600만 명, 그들은 하루 평균 76분을 사이트에 머문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설립된 터우탸오는 현재 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업체로 성장했다.
메이퇀은 지난 2~3년 진행된 ‘O2O 전쟁’의 승자다. 한때 5,000개가 넘던 이 분야의 경쟁 업체들을 모두 평정했다. 그 넓은 중국 대륙의 지역별 맛집, 여행 정보 등을 제공한다. 2015년 소비자들의 평가로 음식점 순위를 정하는 다중뎬핑을 손에 넣으면서 이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디디 역시 자동차 콜 업계에서 벌어지던 치열한 전쟁의 승리자다. 콰이디(2015년), 우버(2016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업계를 제패했다. 시장의 유일한 강자인 이들에게 투자금이 몰려들면서 ‘BAT를 능가할 무서운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 바로 “중국은 과연 혁신이 가능한 나라인가?”라는 것이다. ‘중국 혁신’의 속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BAT는 과연 무슨 혁신을 이뤘나? 검색엔진을 처음 개발한 것도 아니요, 전자상거래란 시스템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들이 새로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는 없다. 혁신 2세대라는 TMD 역시 마찬가지다. AI를 선도하는 건 미국이요, 자동차 인터넷 콜 서비스는 우버가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혁신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 혁신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 창출이 아니라 기존 기술ㆍ서비스의 ‘상업화’에 있다. 대규모 시장이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중국은 기술과 시장을 결합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고 있다는 게 매킨지의 해석이다. ‘기술과 시장의 결합’, 그게 중국 혁신의 첫 번째 속성이라는 지적이다.
두 번째 속성은 기술과 생산력의 결합이다. 지금 중국 혁신을 이끌고 있는 도시는 선전이다. 화웨이, 텐센트, 드론 제작업체 DJI 등 혁신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IT제품에 관한 한 없는 게 없다’는 화창베이도 그곳에 있다. “선전은 1980년대 이후 중국 최고의 제조업 생산단지였습니다. 그러나 과거 이곳에는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산자이’, ‘짝퉁의 도시’라는 악명을 얻었던 거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선전으로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짝퉁의 본산이 ICT의 성지’로 둔갑하고 있는 거지요.”(최문용 네이버랩스 선전대표처 총경리). 선전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다양한 규모의 시제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1주일 안에 시제품이 뚝딱 만들어진다. 1주일에 시제품 10개를 만들어 주는 화창베이의 ‘창업가’가 있고, ‘글로벌 다이궁(代工, 대리 생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폭스콘은 한 달에 100만 개도 공급할 수 있다.
세 번째 속성은 IT와 정책의 결합이다. 흔히 혁신은 민간 부문의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도 혁신 대열에 참여한다. ‘인터넷 플러스’, ‘중국제조 2025’ 등 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민간이 ‘짝짜꿍’하면서 혁신을 이끌어간다. 전기자동차 업체 BYD를 보자. 이 회사 역시 출발은 ‘다이궁’ 비즈니스였다. 지금도 삼성 스마트폰의 커버를 BYD가 만든다. 그렇게 축적한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배터리로 넓혔고, 결국 전기자동차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선전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의 60%는 전기차다. 3년 후 100%로 늘린다는 게 선전 시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전량 BYD가 공급한다. 가솔린 엔진에서는 뒤졌지만, 전기자동차에서는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모두 BYD에 투사되고 있다.
화웨이 역시 오늘의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데는 정부의 직간접 자금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IT는 정부와 결합돼 시장을 만들고, 파이를 키워간다. 탄탄한 시장과 무궁한 생산력, 그리고 정부 정책이 IT와 결합되면서 지금 중국에서는 ‘중국식 혁신’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애초부터 청년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로 무에서 유를 일구어낸 실리콘밸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혁신 DNA다.
나이 스물에 사장이 못 되면 대장부가 아니다_ 조상래(플래텀 대표)
한국에선 많은 젊은이가 좋은 직장 취직을 꿈꾼다. 중국에선? 너도나도 창업해 ‘라오반(老板, 사장)’이 되려고 한다. 남이 장군이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오.”라고 읊은 반면 요즘 중국의 청춘 사이에선 ‘나이 스물에 사장이 되지 못하면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를까’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그만큼 창업 열기가 뜨겁다. 창업의 밑천으론 모두 다 혁신을 외친다. 어떤 힘이 중국을 창업 국가로 만들고 있을까.
1990년생 왕양은 체중계 제조업체 ‘윈마이’의 창업주다. 2015년 스마트 체중계 50만 대를 팔아 샤오미 체중계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왕양은 중학 시절 게임에 빠져 20만 회원의 게임 커뮤니티를 운영했지만 학교로부터는 자퇴를 권고받았다. 부모의 설득으로 다시 학업에 매진한 그는 대학생이 돼선 PC용 소프트웨어 상점을 차려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생 세 번째 창업에 나선 건 24세 때인 2014년. 창업 아이템으론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체중계를 택했다. 정통 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자는 ‘인터넷 플러스’ 열풍을 타고 체중계를 가족 건강을 챙기는 ‘스마트 매개체’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성공하려면 혁신이 필요한 법, 그의 체중계는 중국 최초로 중국인이 무게를 잴 때 익숙한 근(斤ㆍ1근=500g)을 기준 단위로 채택했다.
또 스마트폰 앱과 연동시켰다. 비만 상태를 알려주는 신체질량지수(BMI)와 골격량, 신체 나이 등 8가지 데이터가 스마트폰 앱에 표시되며 식단 조절과 운동법까지 알려준다. 놀라운 건 가격이다. 프리미엄 모델인 ‘윈마이 하오칭’이 199위안(약 3만 5,000원)이고 79위안짜리 체중계도 출시했다. 그런 윈마이에 중국 벤처업계는 2015년 4,000만 위안을 투자했다. 향후 10조 위안을 웃돌 중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윈마이가 체중계의 성공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건강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현재 1억 2,500만 위안인 기업 가치가 얼마나 뛸지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