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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박성원 지음 | 이새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박성원 지음

이새 / 2017년 7월 / 212쪽 / 13,000원





우리가 아는 세상은 사라졌다



목적지를 모르고 떠나는 여행

예전에는 우리 행동의 결과가 빚어낸 미래사회, 즉 미래의 목적지가 분명했다. 우리도 노력하면 일본이나 독일 기업과 같은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고, 미국인들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현 수준이 더 이상 우리가 다다르고 싶은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앞으로 만들어낼 미래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회에서는 선생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변화에 내던져진 어린 학생들이 변화의 내용이나 방향에 대해 선생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의 방향에 대해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삶의 의미와 방향은 ‘찾는’ 시대가 종말하고, 의미와 방향을 ‘만드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이해한다면 이 시대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뻔한 생각의 궤도에서 벗어나라

몇 년 전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들과 미래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겪은 일이다. 미래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을 미래사회로 불러들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로 30년 뒤,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도착한다고 가정하고 화성에 살고 있을 생물체를 상상해서 그려보라고 한다. 참여자 대부분은 영화나 만화에서 본 전형적인 외계생물체를 그린다. 얼굴은 크고 다리는 많은 그런 형태들이다. 그런데 매우 소수지만 이런 전형적인 형태와 다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구름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돌멩이를 그리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만나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이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상상의 한계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미래워크숍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그런데 그날 모였던 참여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남긴 후기를 찾아보았다. 어느 참여자가 이런 장문의 글을 올려놓았다. ‘미래연구자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다. 생명에 대한 정의도 모르면서 무슨 미래를 연구하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생명이 구름이나 돌멩이일 수가 있는가.’ 그러나 나는 이 참여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1~2년 뒤 미래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미래일 것이다. 그러나 15~20년 뒤 미래는 분명 지금의 시각에선 낯설 것이다.’ 15~20년 전의 우리 사회를 기억해보자. 그때 지금의 삶의 방식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앞서 미래워크숍에서 상상했던 생명의 미래는 어떤가. 우리가 정의하는 생명체는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생명이다. 지구와 다른 환경인 우주에서는 생명체의 정의가 달라질 것이다. 생명에 대한 지구에서만 통용되는 하나의 정의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내가 알고 있다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확장된다.

미래 지향성을 높여야 할 때

내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또는 직장이 나에게 등을 돌려 배신한다고 느껴질 때가 방랑(wandering)을 시작할 적기다. 방랑인은 세상의 불안정한 흔들림에 불안해하기보다 즐기는 사람이다. 흔들리다 보면 기회가 오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방랑도 똑같이 목적지향적 행동이 된다. 목적을 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 연결되고, 이전의 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새로이 찾을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위인들은 저열하게 배신당하고, 심각하게 공격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 남은 게 하나도 없을 때 방랑을 시작했다. 방랑 끝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방랑 중에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방랑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늘 하던 대로 살게 된다. 세상은 변하고, 붕괴되고, 새로 시작되는데도 정작 자신은 변화와 동떨어져 살다가 어느 날 해고 통지를 받는다. 방랑은 내가 간과하거나 무시한 부분을 이해하고 채우는 활동이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 필요하다.

미래는 늘 불확실해 우리의 준비를 비웃는다. 이럴 때에는 내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어떤 지식에 치우쳐 있는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다양한 미래의 모습을 토론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지향적 마인드의 개발과 활용은 급변하는 시대에 중요한 소양이자 태도이다. 미래지향성을 갖춘 개인은 가능한 미래, 실현할 수 있는 미래, 바람직한 미래를 상상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전략, 자원과 지지자를 확보하거나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개인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당장 유용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유용한 것들을 분별해내며 때론 성찰적이고 비판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라볼 줄 안다. 이런 개인들은 또한 창의적인 사고를 지향하고 개발하며 고난이도의 복잡한 업무도 잘 처리한다.

우리 사회가 지식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아 문해력(literacy,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높이는 데 노력한 결과, 국민의 90% 이상이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 우리가 빠른 속도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지식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해력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래 문해력(futures literacy)이 필요한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미래사회를 예측해볼 수 있는 각종 정보를 모으고 해석하며,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상상하는 미래를 담는 서랍



미래를 담는 4가지 서랍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수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언뜻 불가능해 보이지만 정보를 분류하는 기준을 잘 세우면 가능하다. 이 작업의 성패는 분류 기준이 얼마나 명확한가에 달렸다. 각각의 기준은 독특하고 서로 배타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가 분류되고 정리된다. 또한 분류 기준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기준이 복잡하면 기준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분류 기준이 너무 많아도 문제이고, 너무 적어도 문제다. 그래서 적절한 분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와이대학의 하와이미래학연구소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골몰해왔다. 어떤 기준이 상식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이해도 되고, 쉬우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으며, 다양한 미래를 효과적으로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세계의 수많은 미래연구자들에게 설문 형태로 미래를 보는 시각에 대해 묻기도 했고, 각 정부에서 발표한 미래보고서를 분석하기도 했으며, 연구소의 보고서나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시나 소설, 노래 가사나 영화 등에도 미래를 보는 시각이 제시되어 있다면 그것까지도 분석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1970년대 말, 미래를 보는 시각이 10개 정도로 좁혀졌고, 80년대 중반에는 최종 4개로 줄여졌다. 좀 더 설명해보자.

[1번 - 중단 없는 성장] 이 미래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계속 성장한다고 가정한다.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도 이런 궤적을 그리며 경제적으로 성장해왔다. 인구는 증가했고 온갖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역동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에너지 소비량은 대폭 증가했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수많은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환경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오염되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시민은 여전히 지속적 경제성장을 바란다. 이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이들이 원하는 미래상이다.

[2번 - 붕괴] 이 미래는 사회가 붕괴될 것으로 가정한다. 우리가 1997년 경험했던 외환위기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자원고갈과 환경재앙 등도 한 사회를 붕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도덕적 타락, 사회 개혁의지의 실종, 전쟁 등도 사회 붕괴의 원인이다. 이 미래에서 인구는 감소하고 자원은 고갈되며 환경은 오염된다. 경제는 쇠퇴하고 과학기술의 발달도 정체된다. 한 사회가 붕괴된 뒤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 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된다.

한편 붕괴라는 미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미래상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이 사회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붕괴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사회의 내부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사회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기경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위기는 곧 현실이 된다.

[3번 - 지속가능(보존사회)] 지속가능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유행이지만, 대부분 지속가능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지속가능 다음에 오는 ‘성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미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삶을 이야기한다. 물질적 성장보다 정신적 성숙을, 자원의 소비보다 자원의 보존을, 환경개발보다 환경보호를 주장한다. 이런 가치를 중시하는 이유는 사회가 붕괴 직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붕괴를 막으려면 새로운 공공가치, 이전과 다른 삶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경제개발 방식이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을 사전에 막으려면 새로운 방식의 개발 모델이 필요하다.

[4번 - 변형사회] 이 미래는 우리 사회가 과거,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고 가정한다. 언뜻 흥미로워 보이지만 설득력 있는 미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예측의 대상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나비가 애벌레였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애벌레와 나비를 전혀 다른 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두 존재의 연결은 매우 혁명적인(또는 파괴적인) 변화의 결과인 셈이다. 과거 예를 든다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변화된 것이다. 요즘 이 미래상이 우리 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으로 통상 7가지가 거론되는데, 인구, 에너지, 경제, 환경, 문화, 과학기술 그리고 정치(또는 지배구조)를 들 수 있다. 한편 4가지 미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7가지 동인을 담아내고 있는데, 각 미래별로 적용되는 정도가 다르다. 아래 표를 보면 각 미래가 7가지 동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타낸다. 참고로 변형의 미래에서는 인구라는 변수가 독특하다. 신인류의 등장은 그것이 인류의 변형된 형태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기술이 발달해 로봇이 지능을 갖춘 사회적 존재로 간주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에너지원은 다양하고 경제는 하찮은 요인으로 대접받는다.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거나, 더 이상 물질적 생산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물질의 희소성을 근간으로 한 경제적 활동은 그 중요성이나 유용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는 매월 기본소득을 받아 일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일, 직업 등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이런 활동에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과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일의 의미가 전복되는 것이다.

상상한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

나는 수년 동안 4가지 미래를 대학생과 대학원생들, 중고교 학생들, 또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가르치고 대화하면서 4가지를 벗어난 미래를 상상하는 경우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혹자는 이 4가지가 일정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것이지 4가지 중 어떤 미래가 독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맞는 지적이다. 대신 4가지 미래 중에서 어느 미래가 조금 더 지배적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있다. 지금의 시대를 봐도 그렇다. 산업사회를 넘어 탈산업사회로, 정보화 사회에서 지능정보화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농경사회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지배적인 삶의 형태인지는 말할 수 있다. 1970년대 1,400만 명이 농업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300만 명도 되지 않는다. 농업에 종사했던 1,100만 명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4가지 미래는 다양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시각으로 봐도 좋다. 세계 미래학자들은 하와이미래학연구소의 4가지 미래를 마노아학파(하와이대학이 마노아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의 미래연구 방법론,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패턴(deep pattern), 사회의 전형(archetype)으로 평가한다. 경험적으로 증명된 사회적 유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사회적 대화를 촉발하는 미래연구

미래연구의 목적은 앞으로 현실화된 미래를 알아맞히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미래연구의 목적은 미래의 여러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토론하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다. 미래연구는 이런 논의를 통해 현재의 불합리를 바꾸는 활동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는 미래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를 들고 전국 각지의 시민들을 만나보았다. 20대에서 50대까지 520여 명의 시민들과 48차례 미래워크숍을 진행했다. 지금부터는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래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풀어볼 것이다. 우리는 시민들이 어떤 미래를 선호하는지, 어떤 미래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토론했다.

20~30대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경제의 계속성장에 대한 믿음: 우리가 만난 20~30대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미래를 가장 가능한 미래로 꼽았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 세대는 근대 이후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 확보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믿고 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일자리가 창출된다. 성장을 해야 좁게는 동아시아(중국과 일본), 넓게는 세계 주요 선진국들과의 경쟁체제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성장을 해야 국방을 튼튼히 하고, 첨단 과학기술개발도 가능하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한 데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은 급격히 고갈되고 있으며 성장률도 과거와 비교해 현격히 떨어진다. 출산율 감소와 사회의 노령화 현상은 경제의 지속적 성장에 걸림돌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소비가 늘고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을 20~30대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경제의 계속성장을 ‘가능’하다고 봤을까.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고성장을 일궈냈다. 앞으로도 난관은 있겠지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못할 것이 없다.’ 이런 믿음을 진보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관성적 사고에 의해 경제의 계속성장을 가장 가능한 미래로 봤을 수 있다. 20~30대의 가능미래 선택에서 흥미로운 점은 경제의 계속성장 다음으로 보존사회(32.68%)를 꼽았다는 점이다.

보존사회의 목표는 성장이 아닌 성숙: 이 미래상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경제적 성장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적 성장을 신체적 성장으로 간주하고, 신체적 성장이 멈추더라도 정신적 성장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의 미래 목표는 성장이 아닌 성숙이다. 이들에게 경제 중심의 성장주의는 자연을 회복 불가능의 수준으로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켜 사회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의 계속성장 미래와 보존사회 미래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어떤 미래를 예상하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 준비의 내용과 실현을 위한 노력의 정도, 사회적 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에 시민들이 선택한 가능미래에 대한 해석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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