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마이클 J. 케이시, 폴 비냐 지음 | 미래의창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마이클 J. 케이시, 폴 비냐 지음
미래의창 / 2017년 7월 / 471쪽 / 19,000원
물물교환의 시대에서 비트코인의 시대까지
돈의 역사는 두 가지 과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즉, 상품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교환하고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이며,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기관은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인 신뢰가 부정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해야 하는가이다. 비트코인 혹은 다른 가상통화들이 이러한 중대한 과제에 대해 실천 가능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기준 중 하나에 따르면, 통화가 돈이 되기 위해서는 교환의 수단, 계좌 단위 및 가치 저장소로서의 기능을 해야 한다. 예로 달러는 전 세계의 물건을 사는 데 사용할 수 있고, 거의 모든 것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달러로 저축을 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가치는 보전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현재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에 의한 교환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단위 계정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트코인을 받는 가게의 주인도 결국은 자국 통화로 항상 제품 가격을 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 저장소로서 비트코인의 기능은 장기적 과제라 여긴다. 2013년 첫 11개월 동안 비트코인의 가치는 8,500%나 올랐지만 다음 6개월 동안 그 가치의 2/3를 도로 잃게 되는 경험을 했다. 어느 누가 저축을 비트코인으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가상통화가 돈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그리고 돈이라는 것의 기저에는 눈에 보이는 실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유용성의 여부다. 궁극적으로 그것이 교환, 상업 및 인간 상호 작용과 연관된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키는가 하는 부분이다. 확실히 비트코인은 거래 비용이 줄어들고 즉각적인 가치 이전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가능하게 하는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결국 꼭 비트코인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기술들을 사람들이 널리 사용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때는 어쩌면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들이 통화(Currency)가 돈(Money)이라는 데 동의할 때, 통화는 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비트코인이 돈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비트코인은 돈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반드시 만들어야 했고, 초창기 비트코인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대다수의 통화가 취해온 역사적 전략을 취했다. 그 시작은 일단 다른 화폐들과 유사한 화폐기호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비트코인 표기는 비트코인의 영문 첫 글자인 대문자 B에 달러 표시 $의 세로줄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인류학자인 빌 마우어가 언급한 것처럼 물리적ㆍ유형적 가치에 대한 의심을 덜어주기 위해 대다수의 화폐가 조폐국에서 생산된다는 점을 차용해서 ‘채굴(Min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화폐가 어디에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얼리 어댑터들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훨씬 많은 사용자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 그것이다. 비트코인을 받아들인 커뮤니티에는 처음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숫자에 대한 개념과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지속적으로 참가자가 증가하고 있다. 돈이라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법정화폐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커뮤니티의 확장은 해당 통화가 돈이 되려고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의 시작
2008년 10월 31일, 암호학 전문가 및 아마추어 등 관련자 수백 명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저는 신뢰할 만한 제3자 중개인이 필요 없는, 완전히 당사자 간 1:1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 통화 시스템을 연구해오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9쪽짜리 보고서를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보냈으며, 그 보고서가 업로드되어 있는 웹사이트는 두 달 전쯤 개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그 통화 시스템을 ‘비트코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서 말하는 통화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통화의 개념과는 좀 다르다. 나카모토는 “여기서의 ‘전자 코인(electronic coin)’은 일련의 디지털 서명의 체인입니다.”라고 정의했다. 이 시스템에서 원 소유자는 과거 ‘거래 내역 뭉치’와 다음 소유자가 될 사람의 ‘공개 키(Public Key)’에 디지털 서명을 해, 즉 과거의 디지털 서명의 체인에 하나의 새로운 디지털 서명을 더하여 전자 화폐의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있다. 수취인은 서명의 체인을 검증하여 그 소유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카모토는 두 당사자가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 등 그들의 금융 계정 관련 보안이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암호화를 사용해 가치를 가진 토큰을 교환할 수 있는 온라인 교환 시스템을 소개했다. 이 시스템은 중개인 없는 상거래라고 알려진 전통적 은행업 구조에서 탈피한 P2P 방식을 적용해 당사자 간에 직접 디지털 머니를 송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더 이상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등 지불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사람이나 “신뢰할 만한” 제3자가 필요하지 않은 구조이다. 사실상 디지털 화폐의 시대가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비트코인 혁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처음 이메일을 받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카모토의 연구를 검토하기 위해 초대된 연구자 커뮤니티 중에는 사이퍼펑크(Cypherpunk) 운동가들도 있었다. 사이퍼펑크는 테크니션 마인드를 가진 활동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인데, 이들은 처음에 1990년대 암호화된 개인정보 보호 도구를 통해서 정치ㆍ문화적으로 급진적인 변혁을 강제하려는 시도를 하며 악명을 떨쳤다. 사실 이들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긴 했었다. 투명성 운동가인 줄리언 어산지(Julian Assange)와 그가 최고 책임자로 있으며 기업 등의 비윤리적 행위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도 이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이퍼펑크 사람들에게 익명 디지털 통화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처음 구상했던 큰 그림 안에 있던 개념 중 하나였다. 단지 아직 아무도 이를 실현해놓지 못했을 뿐이었다.
처음 나카모토의 이메일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서(white paper)를 읽기 귀찮아했고, 당연히 비트코인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카모토는 단념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스템은 두 가지 혁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블록체인이라는, 절대 침범되지 않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원장(Ledger)을 통해 누구나 거래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일련의 금전적 인센티브로서, 개별 컴퓨터 소유자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장부를 업데이트할 유인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면이 시스템에 해커와 대항할 만한 힘을 부여해 투명하게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나카모토는 이미 백서를 발표했을 즈음에, ‘bitcoin.org’라는 도메인 주소를 구입해 웹사이트를 개설해놓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첫 번째 비트코인을 생성할 프로그램을 조용히 개발하고 가동해봐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듬해에 그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가동하고, 소위 비트코인 ‘채굴’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채굴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용어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 네트워크 컴퓨터의 ‘광부(miner)’ 혹은 ‘노드(node)’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거래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채굴된’ 거래가 유효함을 확정 짓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생성된 매우 복잡한 수학 퍼즐을 풀어야 하는데, 비트코인 채굴이란 이 수학 문제를 첫 번째로 푼 컴퓨터에게 주는 보상을 의미한다. 네트워크에 더 많은 컴퓨터가 달라붙어서 네트워크의 컴퓨터 파워가 증가할수록, 이 보상을 받기는 갈수록 급격히 어려워진다.
나카모토의 컴퓨터에 비트코인 소프트웨어가 깔리고 그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1번 노드’가 만들어졌다. 인터페이스는 심플했으며, 단순하게 작업 결과만 보여줬다. 그리고 컴퓨터 네트워크에는 나카모토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직 작업하고 확인해야 할 제3자 거래 내역에 대한 거대한 문자열이 뜨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거래 내역이 없었다. 나카모토는 자신이 사용하기 위한 디지털 ‘지갑’을 만들었는데, 그는 PC에서 쉽게 비트코인을 그 ‘지갑’으로 옮길 수 있었다. 현재는 이 네트워크에 전 세계의 유저들이 속해 있으며, 채굴을 위한 컴퓨터 작업 수행 필요량은 상당히 높아져, 특수 창고에 매우 크고 비싼 전문 장비를 사들여놓고 작업을 해야 수익이 약간 날 정도로 채굴이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초에는 비트코인을 채굴해서 계정에 적립하는 것이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실행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이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나카모토는 제네시스(Genesis) 블록을 만들었다. 제네시스 블록은 가장 처음 만들어진 50개 비트코인 ‘블록’이다. 처음 6일 동안 그는 블록에 내장된 스케줄대로라면 10분에 4만 3,000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2014년 8월에 지금으로 따지면 약 2,100만 달러어치 비트코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나카모토 외에는 전송할 사람도 전혀 없었고, 지불 수단으로도 전혀 쓸 수 없었다. 만약 통화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유용성이라면, 이 당시의 비트코인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 따라서 이제 나카모토는 다른 사람들도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창세기 블록을 만든 6일 뒤에 나카모토는 또다시 그 암호화 전문가 메일링 리스트로, 프로그램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첫 번째 비트코인이 만들어졌음을 발표합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이며 P2P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이중 비용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더한다. “중앙 서버도, 중앙집권화된 권력도 없는 완벽히 탈중앙집권화된 시스템입니다.” 사실 이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전에도 이런 류의 얘기들을 많이 들어봤고, 대부분 이런 시도들은 실패에 그쳤기 때문에, 나카모토만 특별히 이전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성공했을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 문제점이 바로 사기 거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위 이중 지불(double-spending) 문제였다. 과거의 거래 내역 유효 확인 업무를 하는 중앙 당국이 없는 모델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났던 문제였다. 이런 일들이 있었기에 암호학 전문가 커뮤니티에서 나카모토의 두 번째 메일에 대한 반응도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나카모토의 걸작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속성을 갖고 있었다. 일단 한번 사용되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최초 어댑터였다. 이제 그는 두 번째 어댑터가 필요했다.
나카모토에게 아주 감사하게도 누군가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53세 중년 남성인 할 핀니라는 PGP 주식회사의 수석 개발자였다. 핀니는 자연스레 나카모토의 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 나카모토가 보낸 이메일의 수신자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 보이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2009년 1월 10일부터 이 둘은 2주짜리 특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들은 이메일을 통해 서로 협업하고 노트를 공유했으며, 비트코인 프로토콜을 가동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창시자의 안내문에 나온 대로, 핀니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고, 지갑을 만들었으며, 비트코인 50개 블록을 채굴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2번 노드’가 되었다. 시험 삼아 나카모토는 그 협력자의 지갑으로 비트코인 10개를 옮겼다.
핀니는 그의 컴퓨터가 일주일 정도 더 비트코인을 채굴하게 두었고, 결국 비트코인 약 1,000개를 생성시켰다. 그러나 그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으로 엄청난 강도의 데이터 작업을 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핀니는 이렇게 계속하다간 컴퓨터가 고장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채굴을 그만두고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2013년 3월, 핀니가 가진 비트코인의 가치가 약 6만 달러(2017년 2월 말 기준, 12억 원)에 이르게 되자 핀니는 채굴을 그만두었던 것이 후회되었다.
나카모토와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던 때로부터 10개월이 지난 후 핀니의 자산 가치는 더 높아졌다. 그 당시 그는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우리가 그에게 연락했을 당시, 그는 휠체어 생활 중이었으며 생명 유지를 위해 의료 기기와 그의 아내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4년 8월 그는 사망했다. 비트코인 파이어니어 중 하나가 세상을 뜬 것이다. 그의 아내는 그가 “언제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핀니가 비트코인에 묻어놓은 재산은 언젠가 일어날 그의 부활을 위해 그의 시신을 극저온 냉동상태에서 보관하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주의 한 시설을 후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핀니가 2009년 1월에 나카모토와 둘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했던 결과는 비트코인이 꽤 쓸 만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윽고 다른 이들이 이를 알아채고는 흥미를 갖고 모여들었다. 그해에 신규 진입자들이 꽤 유입되어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네트워크의 새로운 노드가 되었고 비트코인 채굴 작업에 착수했다. 상호 간의 소통을 위해 이들 중 상당수는 나카모토가 ‘bitcoin.org’ 사이트에 개설한 IRC 채팅 채널을 이용했다. 10월에는 신규 진입자들을 위한 IRC 채팅방이 #bitcoin-dev이라는 핸들로 만들어졌으며, 11월에는 이 채팅방이 비트코인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되었다. 비트코인 사용자들의 커뮤니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추가적으로 새로운 유저가 유입되면, 비트코인 채굴에 소요되는 컴퓨팅 파워 및 전기 소모량이 증가했다. 이는 비트코인 소프트웨어가 50코인 배치를 얻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컴퓨터 노드가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는 확률도 줄어든 것이다. 비트코인이 발전하려면 코인을 얻기 위한 대체적 채굴 방법이 있어야 했다. 즉, 달러나 다른 통용되는 통화로 비트코인을 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가격을 매겨야 할까? 그래서 2009년 10월까지 몇몇의 커뮤니티에서는 그들 스스로 달러 기반의 환율을 인용했고 ‘새로운 자유주의자의 표본’이라는 새로운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채굴에 따르는 전기 비용은 기준 계산법에 따라 처음에는 1달러당 1,309.03 BTC로 표시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1비트코인당 0.08센트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사이트가 비트코인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는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플로리다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라슬로 한 예크가 밝혔던 것처럼, 이전의 CPU 사용 채굴 방식에서 벗어나 그래픽 카드(GPU)를 이용해 채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것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비록 일개 비트코인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면 미래에 큰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코어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보다 강력한 버전인 0.2 버전의 출현과 동시에 비트코인 마켓이라는 두 번째 교환시장의 설립과 함께 한 예크라는 사람이 비트코인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련의 암호학 관련자들이 이 새로운 골드러시 경쟁에 합류했다. 사람들은 그래픽 카드를 탑재한 가정용 컴퓨터를 소규모 디지털 화폐 채굴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컴퓨터 노드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세계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