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붕괴의 서막
조철선 지음 | 전략시티
자본주의 붕괴의 서막
조철선 지음
전략시티 / 2016년 4월 / 347쪽 / 17,600원
1부 지금까지 없던 세상이 온다
변곡점에 다다른 글로벌 자본주의
흔들리는 지구촌, 무너지는 대한민국: 2016년 3월 국제통화기금 IMF의 데이비드 립턴 수석 부총재는 공개적으로 ‘세계 경제가 궤도를 이탈할 위험 기로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어 IMF조차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015년 들어 세계 무역 규모가 감소하자, 세계 각국의 총수요 감소로 무역 절벽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게다가 2015년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률이 7% 아래로 떨어지더니, ‘잃어버린 10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경제만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특히 EU와 일본 등 선진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저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인한 자원부국의 위기와 맞물려 향후 어떻게 진전될지 예상하기조차 힘들다. 중국 경제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경고 신호등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우리는 무너지기 십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며 인내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간다. 그러다 보니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과거엔 어렵고 힘들어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 대신 절망만이 뒤덮고 있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죽어라 공부했지만, 정작 사회에 나갈 시기가 되면 실업자 신세가 된다. 취직도, 결혼도, 아이도, 주택도, 저축도 포기하는 N포 세대는 미래를 바라보기조차 힘들다. 힘들게 취업했어도 조기 은퇴로 비참한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 든든한 배경이 있는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에게는 암담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도전해 쟁취하던 대한민국이 이렇듯 희망이 없는 나라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부의 양극화, 청년 실업, 점점 더 심해지는 경쟁 강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고착된 저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저성장 기조는 성장을 최우선시하는 보수 정권 집권기에 더욱 강화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5.2%와 5.5%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집권 8년 동안 연간 성장률 3%에 맴돌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저성장 기조가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성장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데, 성장률 순위는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글로벌 경제 전체가 시간이 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어, 대한민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와 함께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지금의 저성장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이 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접근법에는 지금의 저성장을 단순한 악재로 여기고, 조금만 버티면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호황과 불황 사이클에 국한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장률 추이를 바라본다면 성장 기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1965년부터 지금까지 50년간의 세계 경제 성장률 추이를 분석한 결과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와 1990년대 미국 소비 침체와 아시아 외환 위기, 2000년대 IT버블 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 위기 등 악재로 인한 불황과 그 이후의 호황이 반복되는 것과 함께 장기 추세선이 시간이 갈수록 저성장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지금의 저성장은 단순히 스쳐 지나갈 불황이 아니라, 40년 넘게 지속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한 결과인 것이다. 세계 경제만 회복되면 다시 성장의 날개를 펴고 도약하리라는 장밋빛 미래는 허황된 꿈일 뿐이다!
넥스트 10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절반의 민주주의인 자본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게 될까? 물론 새로운 체제는 수요 부족이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한 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체제냐고 묻는다면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울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엔 먼 미래를 상상해보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다른 얘기지만 이는 개인이나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면, 먼 미래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 명확한 비전이 자신의 인생 설계나 기업 경영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지금부터 100년 후의 지구촌 미래를 상상해보자. 전쟁과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고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모든 게 풍요로운 세상일 것이다. 지금의 후진국들도 선진국 못지않게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식량과 에너지 문제, 온난화 등 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도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제품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일자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로봇들이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육체적인 노동은 자동화 될 것이다. 또한 2016년 구글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에서 보듯이, 정신적인 노동 분야에서도 인공 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만약 그때도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풍요로운 미래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대부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로봇들이 제공하는 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은 가난한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인공 지능과 로봇들은 대부분 일류 기업들의 자산이기에, 기업들을 장악한 소수의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라면 대다수 사람들이 구매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극심한 수요 부족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가 없다. 설사 강압에 의해 유지된다고 해도 사람들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회가 미래에 존속된다는 건 인류에 대한 모욕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로봇보다 자본주의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라고 했듯이 말이다.
그럼 미래는 어떤 체제가 효과적일까? 구체적으로 체제를 묘사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자본가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회, 인공 지능과 로봇, 발달된 과학 기술이 창출한 풍요로움을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근로 소득이 없어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18세기에 주장된 천부인권 사상이 진정으로 실현되는 미래일 것이다. 단순히 말로만 인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경제적인 토대가 제공되는 사회일 것이다. 즉, 자본이 주인인 세상을 넘어 경제적으로도 민주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고 20세기 실험대에 올랐던 공산주의식의 무조건 평등주의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20세기 말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무조건 평등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발전의 동력을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명예, 권력, 부를 좀 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부의 토대는 사회가 제공하되 개인 간의 차등은 어느 정도 허용하는 완전 민주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또한 수요와 공급이 조화롭게 조정되어 자본주의가 지닌 모순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불평등을 기반으로 한 자본의 집중을 허용하면서 이기적인 인간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절대 왕정이 무너지며 사람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는 절반의 민주주의에 불과했다. 정치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주인인 시대로 진화했다. 귀족에서 평민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백인에서 흑인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대로 발전했지만, 정작 경제적으로는 자본가만이 주인이었다. 봉건 시대의 귀족에서 자본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봉건 귀족들의 지위가 세습되었듯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가들도 자신의 지위를 세습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에게 경제력이 집중되는 불평등에 기인한 ‘수요 부족’이라는 모순은 자본주의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풍요의 시대를 맞아 저출산ㆍ고령화까지 진행되며 수요 부족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결국 절반의 민주주의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 시대로, 자본가가 주인인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주인인 세상으로 진화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모든 사람이 주인인 시대가 올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체제로 진화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 거라는 점이다. 이에 자본주의 붕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자본주의 모순인 수요 부족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역사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기에,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을 혼돈과 침체를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수요를 창출하여 지금의 수요 부족 모순을 완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먼
저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인 자본가들이 수요를 창출할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다. 2008년 빌 게이츠는 다보스포럼에서 “자본주의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이기적인 자본주의가 가진 맹점을 제거하기 위해 자본가나 부자들의 자발적인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기부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순순히 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구조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자 증세,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이나 경제 민주화, 기본 소득 제도 도입 등이 그러하다. 2016년 3월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 집안인 록펠러 가문 후손과 월트 디즈니 손녀 등 뉴욕 주의 갑부 40명이 ‘상위 1% 부유세’ 도입 등 부자 증세를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이런 움직임들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변혁을 도모하는 방안들이기에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2부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어리석은 대한민국
지금이라도 수요 창출 정책으로 전환하라: 2016년 대한민국 경제에는 수요 부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저출산·고령화, 부의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과 청년 실업, 과도한 부채 등은 수요 증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란 누군가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순환하는 체제인데, 구매력을 가진 수요가 지속적으로 부족하다면 그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2008년부터 집권한 보수 정권은 수출과 대기업에만 의존하며, 소득 불평등 개선이나 균형 발전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부채의 증가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잘못되더라도 지금 당장의 성과를 위해 삽질 정책과 부동산 부양책으로 성장률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만 집중했다.
이렇듯 오로지 경쟁력 강화만을 지향하는 보수 정권의 모든 정책은 가뜩이나 구조적인 요인들로 어려운 상황에서 수요 부족을 더욱 심화시켜 대한민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경쟁 패러다임을 버리고 수요 창출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인데도 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재빨리 수요 창출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경제 구조를 혁신해 나간다면,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수요 창출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이다.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발전에서 균형 발전 정책으로의 전환: 먼저 경제 구조의 혁신 과정에서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발전으로 위축된 내수 수요를 진작시키는 균형 발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균형 발전 방향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첫째,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2008년부터 집권한 보수 정권은 과거의 보도(寶刀)였던 수출 주도형 전략을 꺼내들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무역의존도는 2007년 67.4%에서 2014년 99.5%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렇듯 수출 중심의 불균형 발전 모델을 추구하다 보니, 글로벌 수요 부족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었다. 또한 수출 주도형 전략은 내수 수요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둘째,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 동반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수의 대기업만 우대하는 방향에서 내수 기여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시장 경제에 맡기면 대기업만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과거 경쟁력이 강한 외국 기업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했듯이, 대기업과 경쟁에서 밀리는 중소기업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 편에 서야 한다.
셋째,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균형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방은 수요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진보 정권 시절 균형 발전이란 모토하에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지역 균형 발전 계획이 보수 정권에 들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다시 수도권에 집중되며 대다수 지방 경기는 더욱 침체에 빠졌다. 그러므로 다시 진보 정권 시절의 정책으로 돌아가 지역 균형 발전 계획을 재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요 창출형 신산업 육성: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등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이 모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어느 산업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을 정도다. 이렇게 된 데는 대부분의 산업이 성숙기로 진입해 성장 여력이 없다는 점과 글로벌 공급 과잉에 따른 경쟁 과열이 그 원인이다. 2016년 대한 상공회의소가 13개 수출 주력 산업의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곳 중 8곳은 사업이 성숙기나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성장세를 구가했던 스마트폰 역시 신규 교체 수요의 감소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산업 정책은 기존 산업 중심에서 벗어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 신산업 육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수요 부족이 점점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추진할 대기업들이 현재에만 안주한다는 데 있다. 사실 지금의 위기는 대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유지하며 그 과실을 만끽하는 데에만 집착하느라 신규 사업을 키우지 않은 대가라 할 수 있다. 보수 정권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기업을 보호해 주는데 굳이 모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20세기 후반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과감하게 중화학 공업과 자동차, 전자 산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대기업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지원과 압박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만일 1970년대에 지금처럼 대기업들에게 자유롭게 원하는 사업을 하라고 했다면, 어려운 중화학 공업이 아니라 돈 벌기 쉬운 사업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도 재벌들은 돈벌이가 되는 중소기업형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빵집이나 식당을 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보수 정권은 ‘잘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안겨 주기에만 정신 팔려 있다.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묻지마’ 대기업 지원정책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과감하게 지금까지의 대기업 지원 정책을 중단하고, 대기업들이 미래 신산업 개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7, 80년대 정부가 나서서 신규 산업 진출을 유도했듯이, 현실에만 안주하는 대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