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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금융공학

이진재, 진경철 지음 | 에이콘



처음 만나는 금융공학



이진재, 진경철 지음

에이콘 / 2016년 1월 / 216쪽 / 15,000원





1부 금융공학 이야기



금융공학은 처음이지?: 금융공학을 알면 좋은 이유



금융공학은 말 그대로 금융과 공학이 합쳐진 말이다. 공학은 주로 통계학과 수학을 다룬다. 통계학과 수학은 과학의 영역인데 굳이 공학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과학이 학문적 접근인 반면, 공학은 현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공학은 통계학과 수학을 통해 금융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학문이다. 금융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파생상품과 관련된 것들이다. 파생상품은 일반적인 상품, 즉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상품이다. 기초자산은 주식, 채권, 통화와 같은 금융상품뿐만 아니라, 농축산물 같은 상품을 말하며 파생상품에는 선도, 선물, 옵션, 스왑 등이 있다. 파생상품의 가치(가격)는 기초자산의 가치변동으로부터 파생되어 결정된다. 금융공학은 주로 이러한 파생상품들의 가격 결정과 다양한 파생상품의 개발을 다루는 학문이다.

금융공학은 공부해서 뭐하게?: 금융공학에서 다루는 파생상품은 미래의 거래 조건을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래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1년 후에 거래할 어떤 상품의 수량과 가격을 현재 시점에 결정하는 것이다. 왜 이런 거래를 할까?

첫째는 미래에 발생할 리스크를 최소화하거나 피하기 위해서다. 전문용어로는 이를 '헤지(hedge)'라고 하고, ‘리스크를 헤지한다.’라고 표현한다. 미래에 거래할 특정 상품의 수량과 가격을 지금 결정해 놓으면, 그때까지 그것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마음 놓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은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해 향후 발생할 다양한 리스크를 헤지하고, 본연의 비즈니스에만 충실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공학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금융공학을 통해 미래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론과 논리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금융공학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리스크를 줄여준다.

둘째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미래에 발생할 거래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정확히 예측하고 좀 더 빨리 움직인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 거래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돈을 잃는 사람 반대편에는 반드시 돈을 버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와 같은 금융시장의 투자가들이 바로 금융공학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대표적인 세력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선물이나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개미들도 많지만 말이다.

역사에서 배운다: 세상을 뒤흔든 파생상품 거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공학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복잡한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한 무분별한 파생상품 거래가 없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금융공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에 상응하는 실물경제의 발전이 정체 상태를 면치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해서 자동차를 대중화시킨 헨리 포드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해서 금융공학이 폐기되거나 비난받는 일은 옳지 않다. 로버트 머튼의 주장처럼 오히려 금융공학은 더 정교하게 분화되고 발전할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사건들과 그 사건의 배경에 있었던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금융공학이 제공하는 이점과 폐해에 대해 살펴보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글로벌 금융위기: 2008년 9월 15일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자본주의가 일시에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전 인류를 엄습한 날이었다. 바로 전 세계를 주름잡던 글로벌 투자은행인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한 날이었고, 리만 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공황이 시작되었다. 금융공학의 시각에서 볼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공학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파생상품이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2000년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바닥을 찍은 이후 미국 경제는 호황기에 접어들게 된다. 저금리가 유지되고 시장에는 유동성(돈)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주택 가격이 폭등하게 되고,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모두 돈을 벌었다. 모든 사람이 주택을 구입해 돈을 벌고 싶어 하게 되고, 은행과 모기지 회사는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이용해 모기지 대출(주택담보대출) 판매를 대폭 늘렸다. 소비자는 주택 구입을 통해 돈을 벌고, 은행과 모기지 회사는 모기지 대출을 팔아 이자수익을 챙겼다. 누구 하나 불행한 사람이 없는 정말 모두가 행복한 시기였다. 은행과 모기지 회사는 이러한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현금이 필요했다. 현금이 있어야 모기지 대출을 더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미 판매한 모기지 대출을 유동화하는 것이다. 즉 모기지 대출을 증권화해 판매한 후 현금을 확보하고, 그 현금으로 다시 모기지 대출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권을 모기지 유동화 증권(RMBS, Residential Mortgage Backed Securities) 또는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증권이라고 한다.

RMBS를 매입한 은행과 투자은행은 금융공학을 활용해 무시무시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낸다. 바로 RMBS를 기초자산으로 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즉 부채담보부증권이다(CDO는 RMBS외에도 다양한 채권들을 섞어 유동화(현금화)한 증권이다). 은행과 투자은행은 CDO를 팔아 현금화한 후 또 다른 CDO를 매입하고, 이를 또 다시 유동화해 CDO를 발행한 후 현금을 확보하고, 또 다시 CDO를 매입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 이유는 수익률이 좋기 때문이다. 저금리인 상황에서 고금리의 CDO는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었다. 이제 CDO를 매입한 은행과 투자은행도 함께 행복하게 되었다.

여기에 AIG 같은 보험회사도 이 행복한 판에 슬쩍 끼어든다. 보험회사는 CDS((Credit Default Swap)라는 보험을 판매한다. CDO가 쓰레기가 되더라도 투자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개발해낸 것이다. CDO에 CDS를 결합하면, 혹시라도 CDO가 쓰레기가 되더라도 CDS를 판매한 보험회사가 투자자의 CDO 투자금액을 대신 지불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과 투자은행은 CDO를 구입하면서 CDS도 세트로 함께 구입하게 된다. 이를 '합성 CDO(Synthetic CDO)'라고 한다. 이 얼마나 완벽한 금융상품인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보험까지 들어있는 안전한 고수익 파생금융상품’인 것이다. 이제 CDO 판매로 보험료를 벌어들일 수 있게 된 보험회사도 함께 행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고 주택거래가 감소하면서 모기지 대출에 대한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었다. 미국에서 모기지 대출(주택담보대출)은 대출 받는 사람의 신용등급에 따라 프라임(prime), 알트에이(alt-A), 서브프라임(subprime)으로 나뉜다. 신용등급이 가장 좋으면 프라임, 그다음으로 좋으면 알트에이, 가장 나쁘면 서브프라임이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말이 나온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연체율이 급등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RMBS와 CDO가 쓰레기가 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워낙 크다 보니, 아무리 CBS보험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보험회사가 대신 지불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모두가 불행하게 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주택 가격 하락과 대출금 연체로 불행해졌고, 모기지 대출을 판매한 은행과 모기지 회사는 대출원금과 이자를 회수하지 못해서 불행해졌고, RMBS와 CDO에 투자한 은행과 투자은행은 투자 손실을 보게 되어서 불행해졌고, 보험회사는 쓰레기가 된 CDO의 규모가 너무 커서 이에 대해 대신 지불해줄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해졌다. 결국 모기지 회사, 은행, 투자은행, 보험회사 등은 파산하거나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금융시장이 촘촘하게 얽혀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CDO와 CDS가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위기는 미국 내부의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리스크 헤지’가 아닌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재앙의 전모다.

베어링 은행 파산: 1995년 2월 26일 영국 여왕은 233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의 자존심과 같은 베어링 은행의 파산 소식을 들으면서 국왕으로서 큰 치욕과 상실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베어링 은행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것은 약관 28살의 일개 트레이더였다. 니콜라스 리슨이라는 이름의 청년 트레이더는 파생상품 거래로 총 13억 달러의 손실을 회사에 안김으로써, 베어링 은행의 전체 자본금 9억 달러를 순식간에 잠식해버렸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1993년 싱가포르에 위치한 베어링 은행 선물거래 지사에 관리자로 임명된 리슨은 이후 1년 동안 트레이딩 과 백오피스 업무를 모두 거머쥐게 된다. 그의 상관이 상업은행 출신으로서 파생상품 거래에 대해 거의 무지했던 사실을 잘 이용한 셈이다. 부임 초기의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본 경영층은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그의 거래 뒤에 숨은 리스크를 간과하며 그가 보고하는 모든 거래 내역을 믿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경영층이 그의 거래가 상당한 투기적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외환시장과 일본 오사카 거래소시장 사이의 가격 불일치에 근거한 무위험 차익거래에 치중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데 있다. 즉 거의 리스크가 없는 거래만 수행하고 있다고 신뢰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리슨은 다양한 형태의 투기적 거래를 제멋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시장에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장이 안정적인 경우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숏 스트래들‘ 전략을 아무런 헤징 방법도 만들어놓지 않고 거래했다. 스트래들 전략이란 같은 기초자산에 대해 풋옵션과 콜옵션을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롱 스트래들은 풋옵션과 콜옵션을 매수함으로써 변동의 방향은 모르지만 시장이 위아래로 심하게 변동될 것이 예상될 때 사용하는 전략이고, 숏 스트래들은 시장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에서 콜옵션과 풋옵션을 매도함으로써 옵션 프리미엄 수익을 얻는 전략이다. 숏 스트래들 전략을 구사할 때는 항상 시장이 급변동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에 걸맞은 리스크 관리 절차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어쨌든 리슨은 향후 시장 상황이 상당히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숏 스트래들 전략을 구사했다. 즉, 닛케이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풋옵션과 콜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리슨이 선택한 숏 스트래들 전략의 수익 패턴은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해, 콜옵션을 매도해 주가가 행사가격 이하에서 움직일 때는 수익을 얻고 행사가격 이상이 되면 점진적으로 손실이 확대되게 하며, 또 반대로 움직이는 풋옵션을 매도해 서로 이익과 손실을 상쇄시킴으로써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 들어올 때는 수익을 얻게 되는 방식이다. 직관적으로도, 숏 스트래들 전략은 상당히 위험한 전략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닛케이지수가 만기에 행사가격 부근에 다다르면, 즉 시장이 안정적이라면 옵션 매도 프리미엄만큼의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지수 변동이 심하면 심할수록 손실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1995년 1월, 일본 닛케이지수의 변동성은 약 10% 수준으로 상당히 낮았다. 지수는 약 19,000 수준에서 미세한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리슨은 이러한 낮은 변동성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95년 1월17일 고베 지진이 발생하면서 닛케이지수는 2,000 포인트가 빠진 17,000을 기록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리슨이 매도한 옵션들은 시장의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더욱더 비싼 값에 거래되었고 결과적으로 리슨은 아주 싼 값에 옵션을 매도한 꼴이 되고, 손실이 커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거래 횟수를 늘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그의 지속적인 거래는 손실을 더욱더 부추길 뿐이었다.

리슨이 저지른 또 하나의 실수는 닛케이 선물시장에서의 채권포지션 문제였다. 리슨은 77억 달러의 닛케이 선물을 매수하고, 160억 달러의 일본 국채선물을 매도했다. 이 거래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없는 거래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일본 닛케이 주식 지수와 채권가격은 역의 관계를 갖고 있다. 즉 주식가격의 상승은 채권가격의 하락을 가져오고 그 역도 성립한다. 채권가격과 주식가격이 서로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주식가격에 기초한 닛케이 선물을 매수할 경우, 이것을 헤지하기 위해서는 일본 국채선물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슨은 일본 국채선물을 매도함으로써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투기적 거래를 감행한 것이다. 리슨이 거래 전략에 따른 총 VAR(Value At Risk; 정해진 신뢰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는 최대 손실)은 8억 3,500만 달러에 달했다.

리슨의 비도덕성도 곱씹어봐야 할 문제였다. 그는 88888이라는 에러 계정을 따로 개설해 거래 손실과 이익을 비밀리에 관리했다(8이 중국에서는 행운의 숫자로 인식되기 때문에8을 사용한 계정을 만든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처음에는 악 2만 파운드의 거래 손실을 숨기기 위해 이 계정을 만들었지만,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 에러계정은 그의 거래 사실을 숨기는 요긴한 은신처 역할을 하게 된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손실이 불어나기 시작한 리슨은 이 계정을 은밀히 이용함으로써 내부 감시자들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닛케이 인덱스 급락에 따른 실질 손실은 이미 그의 은닉행위로 커버하기에는 너무 큰 손실이 되어버렸다. 결국 1995년 3월, 233년 역사를 지닌 베어링 은행은 ING 은행에 1파운드에 팔리고 만다.



2부 금융공학 좀 더 들여다보기



쌀 거래에서 시작되다: 선물과 옵션



임진왜란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붕괴되면서 시작된 에도 시대의 경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장세를 구가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사무라이라는 엘리트 계층이 장악하고 있던 시대였는데, 당시만 해도 이들은 주화 대신 직접 쌀을 봉급으로 받고 있었다.

임진왜란 후의 일본: 이때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쌀 중개상들은 사무라이들이 처치 곤란한 쌀을 동전을 이용해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는 지폐를 만들어내기까지 함으로써 일본 시장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간다. 이러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일본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정확히 100년이 흐른 1697년, 일본 쌀 중개상의 중심지인 오사카에 도지마 쌀 교환소가 설립됨으로써, 세계 최초로 근대적 개념의 선물 및 옵션거래를 시작했다.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가 옵션가격 결정 방정식을 발표하기 무려 275년 전의 일이다.

선물거래란 미래 특정 시점의 자산을 지금 사고파는 행위를 말하고, 옵션은 미래 특정 시점에 옵션 구매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선물은 상황이 어찌되었건 미래 특정 시점에 자산을 사고팔아야 하는 계약(의무)인 반면, 옵션은 옵션 구매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아도 되는 계약(선택)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옵션거래는 장사꾼들에게 참으로 유용한 거래 방식이었다. 만약 독자가 1600년대 말에 일본에서 큰 식당 체인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음식의 주원료가 쌀과 쇠고기라고 하면, 내년에 얼마나 많은 양의 쌀과 쇠고기가 필요한지, 혹시 흉년이 들어서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상인들은 이런 미래 상황에 대비해 미리 합리적인 가격을 정해서 미래 특정 시점에 거래하는 선물거래와 함께, 그런 선물거래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옵션거래를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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