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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 지식노마드



축적의 시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지식노마드 / 2015년 9월 / 559쪽 / 28,000원





‘창조적 축적’, 한국 산업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



창조적 축적 지향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한다 - 이정동

‘Made in Korea’,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우리 경제의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려할 만한 점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이 최근 한두 해에 걸쳐 나타난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이래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이른바 ‘추세적’ 문제라는 점이다. 위기의 징후는 무엇보다 미시적인 기업의 성과와 거시적인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장기적인 추세로 볼 때 1960년대 10%를 넘던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1970년대 8%대, 1980~1990년대 7%대로 하락하였다가, 2000년대 들어 6%대, 그리고 최근 들어 5% 이하를 거쳐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9%를 웃돌았으나, 1990년대 6%대로 하락한 이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4%대 초반에 머무르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3%대로 하락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2020년대에는 1~2%대까지 잠재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국제기구들의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경제성장이 사실상 멈출 수도 있다는 걱정스러운 예측이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에게 뉴노멀의 환경이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으로 대처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위기요인이다. 장기 저성장 시대에는 기존의 범용적 조립기반 제품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말하듯 창의적 개념을 가진 제품, 혹은 게임의 틀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제품이 아니고서는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산업계가 장기 저성장을 버티고 이겨나갈 창의적 저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대외적 환경요인은 중국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긍정적ㆍ부정적 요인을 정확히 예측하고, 대처해야 하는 난제가 우리 눈앞에 있다. 중국의 커다란 내수시장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호락호락하게 내어줄 리 만무하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은 내수시장의 규모에 힘입어 빠르게 기술을 축적하면서 우리를 추격해오고 있다. 또한, 엔저를 앞세운 일본의 부활도 우리 수출시장에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외부적인 환경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적으로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고령화, 저출산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구 측면에서 국가경쟁력에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투자율의 저하도 심각한 문제다. 투자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먼저 성장을 뒷받침하는 하드웨어가 낡고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더 크게는 투자와 함께 들어오는 새로운 지식이 더는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우리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이런 문제에 대응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멘토들에게 물었다: 우리 산업의 당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객관적이면서 전문적인 의견을 줄 수 있는 26명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을 멘토로 선정하고, 멘토들에게 우리 산업의 근본적인 기술경쟁력과 제3자의 시각으로 본 경영 역량,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포함한 기업환경의 변화에 대해 질문하였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6가지 정도의 질문을 중심으로 통찰을 얻고자 하였다. ① 한국의 산업계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② 한국의 산업계가 돌파해야 할 관문이 무엇인가? ③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④ 산학협력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⑤ 대학(공대)의 역할이 무엇인가? ⑥ 우리 사회의 틀과 국가정책의 틀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는가?

한국 산업을 지배하는 몇 가지 그릇된 고정 관념들: 각 분야의 멘토들은 다양한 산업 및 연구 현장의 사례를 들어 우리 산업이 처한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해주었다. 26명 멘토의 의견을 모아 살펴보면서,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 산업계 혹은 더 넓게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빠져 있는 착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그릇된 고정 관념(myths)’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중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하였다. 이와 같은 고정 관념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산업이 당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과 미래 전략의 열쇠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정 관념 1] 생산 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 한다 - 이 고정 관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생산현장이 없이는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할 방법이 없고, 생산을 지원하는 지식기반서비스업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또 생산현장이 없으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고급의 경험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 불행하게도 지난 10여 년 이상 우리는 생산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내보내고, 국내에서는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가 팽배하였는데, 이는 미국을 포함한 산업선진국이 아웃소싱해 오던 기업의 생산 활동을 다시 자국 영토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고정 관념 2] 첨단 특허 한 건, 세계적 논문 한 편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 - 멘토들은 탁월한 특허와 논문이 분명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이 혁신적 아이디어가 스케일 업(scale-up)되어 실용화 단계로 나가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스케일 업할 수 있는 역량은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고도의 축적된 경험지식의 영역이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참고로 국내 산업계는 전례가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스케일 업할 수 있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설사 국내에서 세계적 논문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 혜택은 다른 나라가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각오하면서 스케일 업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정 관념 3] 필요한 경험과 지식은 살 수 있다 - 멘토들이 가장 우려하는 잘못된 관념의 하나는 경험과 지식은 돈으로 사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우리 산업계도 이미 표준적인 기술에서는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고급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교과서나 매뉴얼, 논문 혹은 특허에 명시적으로 표시된 지식과 달라서, 문자나 기타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사람의 머릿속에, 그리고 일하는 방식, 즉 루틴에 체화되어 있어서 심지어 필요한 경험지식을 가진 기업을 인수ㆍ합병을 한다고 하더라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멘토들은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통해 결국 최고급의 기술 역량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며,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축적해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정 관념 4]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멘토들은 한ㆍ중 간의 관계에서 한국이 부품소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조립하거나, 혹은 한국의 기업들이 설계도를 보내면 중국이 생산하는 방식의 도식적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강조한다. 공학인력 배출 수, 논문 및 특허의 양과 질,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제시되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사례 등을 고려할 때, 혁신의 관점에서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한국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멘토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어떤 품목의 경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고정 관념 5] 한국 대학들의 공학교육이 급속히 발전했다 - 국제적 평가지표로 볼 때 한국 대학의 공학교육 순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멘토들은 공통으로 여전히 학과 간 장벽이 높고, 논문 위주의 평가로 산업계의 현실과 더욱 거리가 멀어지는 방향으로 교육연구체제가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개념설계와 같이 창의적인 역량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특히 온라인 강의의 확산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기초적인 학문에 대한 교육이 무시된 채 무분별하게 난무하고 있는, 소위 준비되지 않은 융합교육에 대해서도 경종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고정 관념이 지배하는 원인] 위와 같은 고정 관념들은 무엇보다 통계적 착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즉, 글로벌 수준에 오른 극소수 대기업들, 혹은 극소수 대학의 성과가 과대평가되면서 평균적으로 우리 산업계가 질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또한, 과거 고도성장기의 모방추격형 루틴을 유지해오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익숙해서 아예 문자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잘못된 고정 관념이자,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멘토들은 산업 분야가 다르지만, 공통으로 우리가 빠져 있는 고정 관념을 깰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이러한 고정 관념들을 낳게 하는 우리 산업의 현재 특질, 즉 더욱 근본적인 관점에서의 원인 분석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멘토는 그 원인으로 우리 산업이 개념 설계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것은 그동안 경험의 축적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압축성장의 필연적인 부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산업의 아킬레스건 - 창조적 축적의 부재: [창조적 개념설계의 역량이 없다] 멘토들은 우리 산업의 위상과 어려움을 지적하고, 극복해야 할 장애를 제시하였다. 그중에서 우리 산업이 처한 공통적인 문제를 가려 뽑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된 키워드는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 역량의 부재였다. 개념설계 역량은 제품개발이 되었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건 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이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으로서, 실행 역량이 필요한 단계보다 더 선행 단계에서 요구되는 창조적 역량이다.

멘토들은 지금껏 한국 산업의 발전모델이 선진국이 제시한 개념설계를 기초로 빠르게 모방, 개량하면서 생산하는 모방적 실행 전략에 기초해 있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을 우리나라와 같이 빠르고 성공적으로 밟아온 나라가 없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성장모델이 한계에 도달하였다고 진단한다. 결국, 가치사슬의 앞 단에 있는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산업선진국으로 진화할 수 없다는 것이 멘토들의 공통된 관찰이다.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표준화된 생산기술보다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산업의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은 표준화된 기술 영역에서 중국 등 개도국이 빠르게 추격해오면서 수익이 더 약화하고 있지만, 새로 개척해나가야 할 고부가가치 개념설계 영역에서는 선진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지 못한 결과이다. 둘째, 개념설계는 글자 그대로 제품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속 생산 단계를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에 위치한 기업들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새 버전을 출시할 때마다 전 세계 모든 전자기업의 전략이 바뀌는 것을 보면 그 파급효과를 쉽게 알 수 있다.

[창조적 축적 - 축적된 경험이 없이는 개념설계 역량이 생기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서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진단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설계의 역량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 점에서 멘토들은 흥미롭게도 개념설계의 역량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드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멘토들은 산업현장의 살아 있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새롭게 접하는 문제에 대해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해법으로 제시해보고,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의 축적 없이는 개념설계 역량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대로 표현하자면,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고, 그 원인은 사실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오지 못한 데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창의적 개념설계에 필요한 지식은 교과서나 논문, 특허 등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핵심적인 개념설계 역량의 확보 과정을 ‘창조적 축적(creative accumulation)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글로벌 챔피언으로 불리는 기업들은 바로 이런 고급 경험지식을 지속해서 축적해온 기업들인 셈이다. 이런 축적된 경험은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전수도 어렵다. 따라서 후발기업들이 쉽게 따라갈 수 없고, 심지어 인수ㆍ합병을 하더라도 쉽게 이전받을 수 없다.

멘토들은 또한 개념설계 역량의 문제가 특정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즉, 개념설계가 중요한 산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산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산업에서부터 디자인산업까지, 심지어는 서비스산업까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개념설계 역량은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역량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 산업이 처한 공통의 문제로서, 처방도 모든 산업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문제가 된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이런 창조적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성공적인 발전모델이 가져온 불가피한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경험 축적의 비법 - 선진국의 오랜 산업 역사와 중국의 규모의 경제] 모든 산업에서 선진기업들은 새로운 개념의 제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글로벌 산업지형도를 바꾸어가고 있다. 그 바탕에는 근대 산업발전기 이후 길게는 수백 년간 축적해온 시행착오의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수없이 많은 교량과 기계, 프로그램을 설계해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그 결과로서 노하우를 축적해온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개념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 현대적 산업기술이 올바로 도입된 것은 불과 반세기 전에 불과하므로,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경험의 축적에서 양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축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축적에 필요한 기간을 어떻게 단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 산업화의 후발국인 중국의 전략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시간’적으로는 근대 산업기술의 경험이 길지 않지만, ‘공간’적으로 내수시장이 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매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산업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경험하게 될 개념설계의 사례들을 10년 만에 10배 많은 수의 사례를 접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해 특정한 기관이나 기업에 경험을 집중시켜 축적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최근 중국이 해양플랜트, 자동차산업, 가전, 휴대폰 등 거의 전 산업 영역에서 전 세계에서 최초의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벌써 축적의 시간적 한계를 공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전략의 결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축적지향의 사회체제] 우리는 선진국처럼 지금부터 100년을 기다리면서 찬찬히 경험을 축적해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 같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에 경험을 축적해나갈 공간적 이점도 없다. 우리 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잠정적인 우리의 해답은, 산업 차원의 축적 노력으로는 선진국과 중국의 축적된 경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산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축적해가는 체제를 갖추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체계, 문화를 바꾸어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가 축적을 지향하도록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축적의 범위를 산업의 바깥 경계로 극적으로 넓혀 생각할 때, 비로소 선진국의 시간과 중국의 규모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고유한 축적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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