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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형 국가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기업가형 국가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8월 / 324쪽 / 15,000원





위기에서 혁신적 노동 집단으로

국제 금융 위기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국가 재정을 축소해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있다. 공공부문은 제쳐두고 민간부문에 기업가 정신과 혁명의 힘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기업, 자유주의적 정치가들은 민간부문을 역동적이며 혁신적이고 경쟁적인 ‘혁명가’로 규정한 반면, 공공부문은 느리고 관료적이며 ‘참견꾼’으로 규정하는 단순 대비를 통해 이분법적 사고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입하며 이것이 상식이고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야기한 2007년 금융 위기의 원인을 공공부문에서 쌓인 적자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승자 선택인가, 패자의 국가 선택인가?: 국가는 흔히 기술이나 경제부문, 혹은 어떤 기업체를 특정한 ‘승자로 선택’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의 ‘실패’는 대부분, 국가가 민간기업보다 훨씬 더 어려운 목표를 이루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가가 효율적, 혁신적 기관으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해왔다. 국가가 감당한 리스크는 간과하고 실패한 결과만을 탓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가가 수행하는 투자의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할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예를 들면, 공공 벤처자본의 경우 민간 벤처자본과 그 역할이 많이 다르다. 공공 벤처자본은 민간 벤처자본보다 더 고위험 분야에 투자하며, 미래 수익에 대해 낮은 기대치를 두고 있는 인내자본이다. 우리는 공공 벤처자본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투자의 결과적인 수익만을 놓고 민간 벤처자본과 비교해왔다.

안타깝게도 국가는 인터넷이나 애플을 승자로 선택한 것이 바로 국가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이 시도한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의 경우처럼, 국가의 투자가 실패한 경우에는 강한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국가가 이런 비판에 소극적인 대응을 취한 결과, 민간 이익을 위해 공공 자원을 찾아다니는 로비스트나 경제발전의 근원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전문가가 활개를 치게 된다.

1970년대 미국 벤처금융 산업은 로비를 통해 자본 이득세를 크게 감소시켰다. 이들은 인터넷과 초기 반도체 산업에 자금을 제공한 것은 벤처금융가들이며, 자신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혁신이 일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벤처금융 산업은 ‘닷컴혁명’이라고 불리는 국가 투자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벤처금융가들은 정부 로비에 성공하여 세금감면까지 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에 손을 벌려 사익을 취하는 주제들 때문에, 혁신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국고가 바닥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라는 허황된 말에 쉽게 무너진다. 여기에 거대 제약사는 공공자금을 통한 연구개발에 의존하면서도, 자신들이 너무 많은 규제와 형식주의에 매여 있다며 정부를 압박한다. 중소기업협회도 자금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러 국가에 청원해왔다. 중소기업은 국가에서 지원받는 만큼의 일자리나 혁신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경찰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만약 국가가 공공 투자를 통해서 구글, 애플, 컴팩처럼 엄청난 성공을 가져올 회사를 다시 만들어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기업들의 이런 주장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는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없다. 참고로 획기적인 신약 개발의 경우 국가의 투자가 큰 역할을 한다. 필자는 지금 그저 ‘정치적인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역사를 연구한 결과, 의료부문에서도 국가는 참견하는 역할이 아닌, 창조하고 혁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혁신적인 역할은 제약 회사가 담당하고 있으며, 정부는 단순한 ‘참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제약 회사는 정부의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연구개발비’라는 명목하에 의약품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만 정부의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고, ‘시장’의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평탄치 않은 위험한 혁신의 길에서: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신지식과 혁신은 혁신 시스템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각 지역과 국가에서 혁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 금융기관, 교육연구, 공공 기금, 중개 기관이라는 여러 행위자를 역동적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조직과 기관 내에 수평적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굴곡이 많고 복잡하고 위험한 혁신의 길에서 행위자 각자가 수행할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각 행위자가 부적절하게 배치되었고, 현재 정부의 혁신 정책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예로 오늘날의 친환경 기술 같은 신규분야를 보면, 벤처자본이 이런 분야의 초기단계에 발생하는 위험성을 감수해주리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거의 그렇지 못했다. 벤처자본은 생명기술, 나노기술, 인터넷과 같은 분야에서 공공부문 자금이 가장 중요한 투자를 하고 난 뒤 15~20년이 지나서야 유입되었다.

역사적으로 민간 자본은 자본 집약적인 분야, 혹은 첨단 기술개발과 시장성 측면에서 위험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를 기피해왔다. 따라서 이런 분야에 투자를 위해 공공부문은 다양한 형태의 대규모 자금과 이를 순조롭게 운용할 비전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했다. 그 결과, 기술적 혁명이나 장기적 성장기의 배후에는 국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우리에게는 시장이 실패할 때만 나서는 국가가 아니라, 위험 부담에 동참하고 새로운 비전을 창조하는 기업가형 국가가 필요하다.

혁신 생태계 - 공생인가, 기생인가?: 혁신 시스템을 보통 혁신 생태계라 부른다. 혁신 생태계에서 공공과 민간부문의 관계가 기생이 아닌 공생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혁신 생태계에서 이 둘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국가의 투자가 증가하면 민간부문이 투자를 줄이고 자신의 유보이익을 ‘주식환매’와 같은 방법으로 단기 이윤 자금줄로 사용하게 되는가? 아니면 장기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인적 자원 형성이나 연구개발과 같이 위험성이 큰 분야에 투자를 늘리게 되는가? 보통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구축효과’의 개념이 도입된다. ‘구축효과’는 국가 투자가 늘어나면 민간부문의 투자가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는 경제학 가설이다. 케인즈 학파는 이 가설에 반대했다. 케인즈 학파는 ‘구축효과’는 완전 자원 활용이 이루어져야 가능한데, 완전 자원 활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하려 한다. 민간부문에서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투자하지 않은 분야에 기업가형 국가는 투자한다. 그러나 국가가 이런 투자로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며 용감하고 비전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투자는 보통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하려는’ 심리 상태 때문에 제한된다. 케인즈 학파는 이를 ‘야성적 충동’이라 불렀다. 실제로 기업 차원의 연구에 따르면, 회사가 특정 부문의 산업 진출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기존의 수익이 아니라 해당 부문의 기술력, 시장 잠재력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잠재력은 해당 분야의 국가 투자액과 연결된다.

그러나 만약 공공부문의 투자 때문에 민간부문의 투자가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필자는 이 질문에서 국가가 민간 투자를 ‘밀어내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기생관계가 아닌 공생하는 민관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에서 혁신을 위한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투자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정책 입안자와 민간부문은 국가의 투자를 민관파트너십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민간부문은 국가의 투자를 민관이 함께 도전하며 나아갈 공동 노력의 일부, 즉 공생을 위한 길로 보지 못했다. 민간부문은 국가의 투자에 기생하기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연구개발 관련 사업 지출을 줄이자, 민간의 전체 연구개발비용이 줄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연구개발투자는 기업의 투자를 대신하려는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정책 입안자는 국가의 투자가 기업을 위한 이익에만 그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한다. 즉 민간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기업체도 해당 부문의 혁신을 위해 자기 지분과 투입을 증가시키도록 요청해야 한다.



미국의 기업가형 국가

미국은 민간부문에서 부의 창출을 이끌어낸 본보기의 역할을 한 국가로 인식되지만, 미국에서 혁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원대한 기업가적 모험을 무릅쓴 것은 국가였다. 여기에서는 미국의 주요 성공사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역할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역사에서 경제성장과 발전에 군사개입의 역할은 여타 근대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기술을 발전시킨 모습은 혁신정책을 개선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이 모델에서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이 모델에서는 특정 분야를 겨냥하여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회의 창을 여는 것, 민간 및 공공 벤처자본을 포함하여 기술개발을 위한 민관 교류를 중개하는 것, 기술개발에 따른 상업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까지가 모두 국가의 역할이었다.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뉴딜정책이 미국의 경제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라 강조했다. 반면에 블록은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혁신정책 발전에 더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다음 시기는 바로 펜타곤이 원자력위원회와 미국항공우주국과 같은 국가안전국과 서로 긴밀히 협력하던 때였다. 각 기관 간의 협력이 컴퓨터와 제트기, 민간 원자력 에너지와 레이저, 그리고 바이오산업 같은 기술개발로 이어졌다. 이는 1958년 펜타곤에서 설립한 고등연구계획국의 개척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이 기관은 보통 방위고등연구계획국으로 불리며, 진취적으로 다양하고 폭넓은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기술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끈 것은 컴퓨터 분야의 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이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다양한 분야에 기술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진취적이고 임무 지향적이며, 정부와 관련은 있지만 독립적인 기관이다. 기관의 연간 예산은 30억 달러를 넘고, 240명의 직원이 소수의 간접비로 효율적으로 작업한다. 뿐만 아니라 4년에서 6년의 단기 계약을 추진하여, 이 기간 동안 기꺼이 리스크를 부담하려는 고급 프로그램 매니저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하여 영입하였다. 이 조직은 실패 확률이 높은 장기간의 연구와 군대의 기술 발전을 연관시키기 위해 구성되었다.

국가가 지원한 기술 발전으로 야기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 이후, 연방 정부는 배너바 부시의 1945 보고서의 추천안을 서둘러 실천했다. 이 보고서의 추천안에 따르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연구를 향한 대중의 지속적인 지지가 필요했기에,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바로 시행되어야만 했다. 정부와 과학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캐나다가 참여해 원자폭탄의 발명을 이끈 미국의 핵심 과학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으로 인해 더 돈독해졌다. 물리학자들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신기술을 어떻게 군사적으로 적용할지 알려주었다. 그 시점으로부터 어떤 기술이 군사 목적과 상업용도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되었다. 블록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많은 정부 관료들은 혁신 목표 달성과 연구원 확보 등을 위해 직접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로 인해 정부는 전통 군사적 기능뿐만 아니라, 경제와 민간을 위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설립되기 전에는 군사의 연구개발 예산관리는 오로지 군대의 몫이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설립을 통해 연구개발에 쓰이는 군사 지출의 일부가 ‘비현실적인 아이디어’, 즉 너무 기발하여 10년 혹은 20년 뒤에도 뚜렷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연구에 쓰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전략을 동원하여 획기적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연구를 위한 자금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단순한 연구자금 지원을 넘어서 컴퓨터 공학부서 설립 및 신생기업 초기연구 등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연구에 기여했으며, 인간과 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를 지원하고, 인터넷의 초기 단계를 관장했다. 이런 활동은 1962년에 설립된 정보처리기술부에서 수행되었고, 이를 통한 전략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컴퓨터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후 개발된 개인용 컴퓨터 디자인을 포함한 많은 기술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 연구원들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이 시기에 또 하나의 주요 사건은 1957년 8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윌리엄 쇼클리가 시작한 기업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새로운 혁신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흔히 ‘8인의 반역자들’이라고 불리는 이 조직은 페어차일드 반도체 기술을 증진시키고, ‘끊임없는 기업분할로 새로운 경제적 도전’을 계속 이어나갔다. 기업분할 비즈니스모델은 1957년 이후의 기술발전에 기여했는데, 이때 국가가 참여하지 않고 초창기 이들의 주요 고객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패러다임의 부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새로운 혁신환경이 가져올 가능성을 단번에 알아보고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먼저 대규모 방위 계약기업보다 소규모 자금을 지원하기에 용이한 신생 소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블록은 실질 경쟁에 뛰어든 신생 소기업이 늘어나고 기업분할 모델이 제도화되면서 대기업들 또한 기술 발전을 위해 뛰어들었다고 언급했다. 이 새로운 환경을 이용함으로써 정부는 대기업과 소기업, 그리고 대학 연구소와 정부 연구소 모두에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주역을 맡았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수행한 역할 중 하나는 1960년대 미국의 여러 대학에 컴퓨터공학과 신설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 소속된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여 컴퓨터 칩 생산 비용을 부담했다. 이에 따라 더 나은 마이크로칩을 빠르게 생산하는 참여자들이 늘어갔다.

한편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역할은 컴퓨터산업의 성공 외에도 1970년대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초점은 기업들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혁신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핵심은 기업이 훨씬 실무적인 접근법으로 모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도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공공부문은 혁신적인 방향을 발견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기업과 직접적으로 협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정부에는 없는 패기를 보유한 전문 지식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아이폰의 배후에 숨겨진 국가

애플혁명에서 ‘국가’의 역할: 애플은 디지털혁명의 한계를 넘어서고 가전제품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전자제품의 선두에 서 있다. 애플 제품의 성공과 인기는 이동형 컴퓨팅 장치와 통신기술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애플의 획기적인 상품에 담겨 있는 핵심 기술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국가 혁신 투자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애플 제품의 성공은 훌륭한 디자인과 잡스의 천재성, 애플 조직원들의 원활한 협력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이팟과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최첨단 기술은 정부의 연구 지원 성과였다.

기술발전의 파도를 타다: [애플Ⅰ부터 아이패드까지 : 국가의 손길로] 시작부터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을 설립하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공공 및 민간 투자의 원천을 찾았다. 그리고 애플이 컴퓨터 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기술과 더불어 이상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980년 신규상장에 앞서 애플은 콘티넨털 일리노이 벤처기업에서 받은 초기주식투자 50만 달러를 추가로 획득해냈는데, 콘티넨털 일리노이 벤처기업은 소기업 투자를 위해 중소기업청에서 허가를 받은 중소기업투자업체다. 한편 애플이 1976년에 애플Ⅰ 개인용 컴퓨터 세트를 판매하기 위해 설립되었을 때, 제품의 주요 기술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컴퓨터 산업에 개입한 공공 투자에 기반을 두었는데, 이 개발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 AT&T 벨 연구소, 제록스 PARC, 쇼클리와 페어차일드 등 다양한 민관 협력 연구소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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