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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마테오 모텔리니 지음 | 북스넛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마테오 모텔리니 지음

북스넛 / 2015년 7월 / 268쪽 / 15,000원





Part 1 당신이 휘둘리는 이유



우리의 머리는 이렇게 계산한다

1만 원이 항상 1만 원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유달리 돈에 관해서는 액수가 크든 작든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무의식중에 모순된 판단을 내릴 때가 적지 않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장부는 겉으로 보기만큼 확실하지가 않아서, 하나의 거래를 두고도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내린다. 개중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해석을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일례를 보자.

오늘은 토요일이고 당신이 좋아하는 오페라 공연이 있는 날이다. 당신은 들뜬 마음으로 극장을 향했다. 그런데 입구 근처에 왔을 때 미리 사 두었던 20만 원이나 하는 입장권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입장권을 다시 사겠는가?

자,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설정은 동일하며, 지금 당신은 극장 입구에 있다. 다만 이번에 잃어버린 것은 입장권이 아니다. 입장권은 아직 사지 않았는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20만 원이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입장권을 사겠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첫 번째 질문의 경우 입장권을 다시 사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입장권을 산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엄밀히 바라보면 사실 두 고민의 내용은 완전히 똑같다. 양쪽 모두 20만 원을 손해 본 상황이며, 오페라를 볼 것인가 보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렇다면 왜 똑같은 고민에 정반대의 대답이 나오는 것일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지금은 크리스마스 세일이 한창이다. 당신은 전부터 점찍어 놓았던 신발을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에 진열된 신발의 가격은 9만 원이었다. 그래서 그 신발을 계산대로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친구가 “10분만 걸어가면 다른 가게에서 같은 제품을 8만 원에 살 수 있어.”라고 귀띔해 줬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더 싸게 파는 가게로 가겠는가?

다음 질문이다. 설정은 동일하다. 다만 이번에는 신발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점찍어 놓았다고 가정하자. 어느 가게에서 발견한 그 텔레비전의 가격표에는 199만 원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다가와 “10분만 걸어가면 다른 가게에서 같은 상품을 198만 원에 살 수 있어.”라고 속삭였다.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더 싸게 파는 가게로 달려가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첫 번째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두 번째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즉, 많은 사람의 경우 돈이 언제나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돈이 지닌 가치가 달라진다는 의미인데, 위의 예에서 두 경우 모두 10분만 걸어가면 1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신발이 1만 원 싼 것과 텔레비전이 1만 원 싼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누구나 돈을 여러 가지 부류로 나누고 그 출처나 모은 방식, 쓰는 법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다룰지 결정한다. 즉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계산’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머리가 하는 계산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상황에 따라 같은 액수의 돈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모순된 선택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다시 앞의 예로 돌아가 보자. 먼저 오페라의 예다. 첫 번째(20만 원짜리 입장권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 손실을 오락의 부류(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돈)에 넣으려 한다. 입장권을 잃어버렸으니 새로 사는 입장권은 추가 지출이 된다. 게다가 그 지출은 오락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오락을 위해 ‘합계 40만 원’씩이나 써도 되느냐는 문제가 된다. 단순한 오락을 위해 지출하기에는 쉽지 않은 금액이므로 많은 사람은 그런 큰돈을 지출할 바에는 극장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포기하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 ‘사용하지 않은’ 20만 원의 손실과 입장료는 머릿속의 계산에서 서로 다른 두 부류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입장권을 사는 데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페라를 위해 사용하는 돈이 실제로는 20만 원뿐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액수를 분실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우울하고 화도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발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두 가지는 별개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편 신발과 텔레비전의 예에서는 다른 가게로 갔을 경우에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돈의 가치가 물건을 사기 위해 치르는 돈의 총액에 따라 달라진다. 9만 원에서 절약하는 1만 원이 199만 원에서 절약하는 1만 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돈은 명확하게 정해진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돈에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경험이나 감정에 따라 채색을 한다. 한동안 입지 않았던 웃옷의 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너스 같은 돈과 열심히 땀을 흘려서 번 돈이 똑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따라서 똑같이 쓰지도 못한다. 교과서를 사는 데 쓰는 돈, 스포츠 관람료, 극장 입장료, 스키 여행의 경비, 복권이나 주식을 사는 돈 등을 전부 다른 범주에서 계산한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가 발견한, 소비 행동 등 돈을 계산할 때의 심리적 현상은 ‘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기존의 경제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현상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복권에 당첨되어 받은 100만 원이나 급여로 받은 100만 원이나 상속받은 100만 원이나 전부 똑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돈이 전부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돈에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순된 결론을 내다

세 가지가 있으면 중간을 선택한다: 고민 끝에 선택을 할 때 ‘합리성’을 위반하는 현상은 또 있다. ‘양극단 기피’라는 유명한 현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출한 성격의 선택지를 추가하면 ‘중간’ 성격의 선택지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실시되었던 실험을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보자.

어떤 그룹의 사람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사게 하고 싶다. 모델은 두 가지로, 첫 번째 모델의 가격은 38만 원이고 두 번째 모델의 가격은 76만 원이다. 두 모델의 브랜드는 같다. 사용법은 전부 소상히 설명했으며 가격은 두 모델 모두 타당한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이 그룹의 사람들이 두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비율은 50퍼센트로 차이가 없었다.

자, 이번에는 다른 그룹에 앞의 두 모델 외에 128만 원짜리 모델이 동시에 제시되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생각해 보면 제일 비싼 모델을 선택한 사람이 몇 명이든 간에 그 밖의 사람들의 선택은 처음 두 모델에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다. 품질도 가격도 상급인 세 번째 모델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이 중간 모델을 선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을 선택한 사람은 50퍼센트에 이르렀지만 두 번째 그룹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줄어들었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중간을 선택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적당한 이유를 발견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의 메뉴를 만들 때 이 현상을 이용한다. 메뉴에 눈이 튀어나올 만큼 고가의 특급 와인을 추가해 놓으면 손님들은 값싼 와인보다 중상 정도 수준의 와인을 선택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레스토랑으로서는 이익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다못해 ‘치약’ 하나를 살 때도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 자유롭게 고르다 보면 오히려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무엇을 살지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갈등이 시작되어 필요성과 취향, 편리성 등이 싸움을 벌이며, 결국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수확은 적다.’는 모순된 상황에 빠진다. 청바지를 한 벌 사려고 가게에 들어가 스무 벌이나 입어보고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가게를 나가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왜 선택의 가능성이 무한하면 마음이 느긋해지기는커녕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내려고 쓸데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쇼핑도 즐겁지 않고, 일단 이것이다 하고 결정해도 계속 후회가 남기 쉽다. ‘이것으로 선택하기는 했는데 사실은 저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손해만 보는가

이익을 낸 주식은 팔지만 손해를 본 주식은 팔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기를 싫어하며, 투자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상승 중인 주식을 급하게 파는 투자가가 있는가 하면, 하락 중인 주식을 팔기를 주저하는 투자가도 있다. 여러분 자신이 어떤 투자가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테스트를 해 보자.

당신은 지금 새로운 주식, 예를 들어 전력공사의 주식을 사기로 한다. 그런데 현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가지고 있는 주식을 일부 팔아야 한다. 그래서 X사의 주식을 팔지, Y사의 주식을 팔지 생각한다. 최근 수개월 사이에 X사의 주식은 20퍼센트 상승했고, 반대로 Y사의 주식은 20퍼센트 하락했다. 과연 어느 쪽을 팔아야 할까?

광범위한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에 파는 주식의 수는 수중에 남겨 두는 주식의 수보다 평균 3.4퍼센트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주식을 일찍 파는 것일까? 당연히 상승 중인 주식이다. 투자가들은 가지고 있어야 할 주식을 서둘러 팔고, 팔아야 할 주식을 늦게 파는 경향이 있다. 투자가들은 대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을 매입했을 때의 가격과 비교한다. 손익 계산의 판단 기준은 매입가다. 만약 현재의 주가가 매입했을 때의 가격보다 높으면 ‘확실히 이익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이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익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빨리 팔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현재의 주가가 매입했을 때의 가격보다 떨어졌다면 손해를 본 셈이 된다(지금 팔면 확실히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 손해를 보고 있으면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손해를 확정하기가 싫어서 리스크를 감수하려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식을 늦게 팔게 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손해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가급적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다. 매입했을 때보다 주가가 하락했더라도 주식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아직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주식이 다시 오르기 시작할지도 몰라…….’라든가, ‘매입 가격 근처까지만 오르면 바로 팔자.’라든가, ‘여기까지 떨어졌으면 슬슬 오를 때도 됐지…….’라든가, ‘이제 바닥까지 내려왔으니 오르는 일만 남았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에서 Y사의 주식을 놔두고 X사의 주식을 파는 바람에 손해를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다.



Part 2 경제에 먹히지 않으려면



리스크를 정확히 읽어라

‘1퍼센트’와 ‘100명 중 한 명’의 차이: 우리는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어림짐작으로 결단을 내린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기술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한다. ‘정서에 따른 휴리스틱’의 예를 하나 살펴보자.

당신이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하는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가정하자. 지금까지 먹어 온 약은 사망률을 0.06퍼센트까지 낮추며, 가격은 30만 원이다. 그런데 제약 회사에서 사망률을 0.03퍼센트까지 낮추는 신약을 시판하려 하고 있다. 당신은 이 신약을 사기 위해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는가?

이번에는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신약은 사망률을 100만 명에 600명을 300명으로 낮춘다. 당신은 이 신약을 사기 위해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는가?

이 두 질문은 결국 똑같은 이야기다. 100만 명에 600명이면 0.06퍼센트이고, 100만 명에 300명이면 0.03퍼센트다. 결국 양쪽 모두 리스크를 절반으로 줄여 주므로 같은 금액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첫 번째 질문에는 평균 34만 원, 두 번째 질문에는 평균 58만 원까지 낼 의향이 있었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사에서는 분명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리스크가 아니라 기회를 선택할 경우도 똑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가령 슈퍼마켓에서 참치 통조림 진열대 앞에 섰다고 가정하자. 한쪽에는 ‘두 개 가격에 세 개’라고 표시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같은 가격의 할인율이 퍼센티지로 표시되어 있다. 이 경우는 명백히 전자가 후자보다 감정에 강한 인상을 준다. 전자는 ‘공짜로 받는’ 분량이 이미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 중개료를 청구할 경우 중개료를 총액보다 퍼센티지로 표시할 때가 많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표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개료로 내야 하는 금액이 눈앞에 제시되면 현금의 일부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자신감 과잉의 함정: 당신의 자동차 운전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꽤 잘한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평균 이상인가? 아니면 평균 정도인가? 평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바란다.

광범위한 운전자를 대상으로 이 질문을 하면 3분의 1은 평균 이상, 3분의 1은 평균, 나머지 3분의 1은 평균 이하라고 대답할 것 같은가? 실제로 스웨덴에서 이와 같은 조사를 실시했는데, 9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자신의 운전 실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모두가 자신이 발렌티노로시나 미하엘 슈마허인 줄 아는 이탈리아였다면 평가는 더욱 높았을 것이다.

이것은 운전 기술에 한해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의 대부분이 ‘나는 평균 이상으로 머리가 좋고 정직하며 편견도 없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고등학생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학생의 70퍼센트가 자신의 리더십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평균 이하라고 대답한 사람은 불과 2퍼센트였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떨까? 교사는 좀 더 겸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어서, 94퍼센트가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일을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공자는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식을 잘못 파악하고 대체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우리는 공자의 훌륭한 제자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문제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다. 특히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의 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분명히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의 범위는 자각하는 편이 좋다. 적절한 선택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가나 펀드 매니저의 대부분이 자신은 시장의 동향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20개 종목의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판단하게 했는데,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47퍼센트(동전을 던져서 점을 친 결과보다 조금 낮았다)인 데 비해 자신의 예측이 옳다고 생각한 사람은 평균 65퍼센트나 되었다. 자신의 판단 능력을 평소에 과신하고 있으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기 쉬우며 자신이 상황을 능숙히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쉬워진다. 이것은 많은 운전자가 빠지는 과신과 유사하며, 투자를 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험의 훼방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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