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자본주의 이야기
김민주 지음 | 미래의창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자본주의 이야기
김민주 지음
미래의창 / 2015년 6월 / 368쪽 / 16,000원
1. 자본주의의 특성
자유 시장경제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중반 서유럽의 사회 및 경제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위 우파들은 자본주의라는 말보다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시장경제란 시장에서 상품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 만나 가격을 지불하고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자주 가는 백화점, 할인점, 전통 재래시장처럼 상품을 사고파는 곳도 시장이고, 증권 거래소, 곡물 거래소, 외환 거래소, 선물 거래소처럼 증권, 곡물, 외환, 선물을 사고파는 곳도 시장이다. 이처럼 시장은 다양하고 규모가 크다. 시장이 없는 자본주의는 아예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로운 조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liberalism)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는 사상으로, 최고의 정부는 가장 작은 정부라고 믿는다.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는 자유주의를 특히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 부른다. 자유주의는 18세기에 존 로크가 주장하고 애덤 스미스가 이를 발전시켜 고전파 경제학이 탄생되었으며 나중에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발전되었다.
자유 시장경제는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는 것이지만 현재 자유 시장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미국 외에는 국가가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는 혼합경제(mixed economy)를 채택한 나라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혼합경제에서는 국영기업의 수가 많고 도로, 항만, 교육, 금융, 통신 같은 사회 인프라를 국가가 건설, 관리하며 의료보험이나 연금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도 국가가 관장한다. 한마디로 말해 국가의 규제ㆍ개입이 늘어나 경제 전체에서 정부의 입김이 많아지는 것이 혼합경제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국가 사회주의의 타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 특히 선진국을 보면 자유 시장경제보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이 혼합경제에 가깝다. 역사를 살펴보면 민간의 자율에 맡겼을 때 서로 조정이 되지 않아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공교육, 교통 인프라, 사회보장이 대표적이다. 또 경제운영에서도 민간의 자율에 맡겨두면 호황, 불황의 사이클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고 게다가 그 폭이 너무 깊어서 정부가 재정 정책이나 금융 정책을 통해 실업이나 물가를 조절해야만 했다.
물론 시장경제와 국가 개입 간 혼합의 정도는 국가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혼합 정도가 매우 적은 편이고 유럽 국가는 높은 편이다. 북유럽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혼합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 가격 결정은 민간에 맡기되 사회보장 측면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북유럽 국가는 국민과 기업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그 대신 높은 수준의 복지와 친기업 정책을 제공한다. 그리고 기업은 개인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고 개인은 별다른 노사 분규 없이 양질의 노동을 제공한다. 이렇게 정부ㆍ기업ㆍ개인 등 사회구성원들이 높은 신뢰 수준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북유럽 모델의 큰 특징이다. 스웨덴은 1932년 이후 2015년까지 83년 중 65년간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집권했다. 한 정당이 장기 집권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할 수 있으나 스웨덴 사민당에서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계속 배출하여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다. 물론 한때 지나친 복지로 인해 경제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세율과 복지를 일부 낮추면서 연착륙에 성공했다.
1960년대에 서독 총리를 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이런 화두를 던진 적이 있다. 독일은 앞으로 ‘큰 스웨덴’이 될 것인지 ‘작은 미국’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경제 규모와 경제사회 체제 측면에서 본 것인데, 그는 독일이 작은 미국보다는 큰 스웨덴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런 화두는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적절한 질문이다.
2. 자본주의의 주요 이슈
세계화
오늘날에는 국민과 국가 간의 양적 교류의 확대를 넘어,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증대해 개인과 사회 집단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세계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 이후 한국에서는 KFC, 맥도날드, 도미노피자 등 다국적 기업의 음식을 즐기고,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세계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으며 세계 곳곳의 뉴스를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K-팝과 우리나라 드라마, 한식 등은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우리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지구가 마치 하나의 나라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전 지구적 세계화가 가능하기까지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우선 13세기 몽골이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유라시아 제국을 형성하자, 교통의 안전성이 확보되어 기존에 있던 비단길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당시 베이징에서 헝가리까지 편지를 보내는 데 겨우 7일이 걸렸다고 한다. 길 중간중간에 파발이 있어서 우편배달부가 말을 바꿔 타며 고속으로 질주했기 때문이다. 육지에만 비단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다 비단길도 생겨 처음에는 범선으로, 나중에는 내연 기관으로 움직이는 기선으로 많은 물량의 물품을 수송할 수 있었다. 육지에서는 19세기 중반에 철도가 생기고, 19세기 후반 들어 자동차가 나오면서 육지를 통한 이동과 대량 수송이 가능해졌다.
교통의 발달에 따른 국가 간 이동은 무엇이 이동하느냐에 따라 노동력 이동, 상품 이동, 자본 이동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노동력 이동에는 먼저, 사람을 강압적으로 특정 지역으로 보내서 노역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노예 무역을 통해 노동력을 이동시키는 것인데,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남아메리카로 보낸 것이 그 시초다. 두 번째 노동력 이동은 해외 근로를 위한 이동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을 보낸 것이나 중동에 건설 인력을 보낸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노동력 이동은 이민이다. 이민은 아예 국적을 바꾸는 것이다. 본국에서 살기가 힘들어 고용 기회가 많고 살기 좋은 곳으로 생활 터전을 바꾸거나, 결혼을 하기 위해, 혹은 자연 환경 악화나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 이민하는 등 이동의 이유는 다양하다.
상품 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되었다. 세계 무역의 완전 자유화를 주장하는 세계무역기구의 출범과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의 활발한 체결의 영향이 컸다. FTA는 체결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 장벽을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협정으로, 과거에는 협정의 대상 범위가 상품에 국한되었다면, 최근에는 서비스 부문과 교육 부문,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부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FTA 체결의 장점은 시장의 규모가 커져 무역 이익이 늘어날 수 있고, 국내 기업은 외국 기업과 경쟁을 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 최초로 FTA를 체결한 이후 53개국과 FTA를 체결ㆍ발효했다.
원료나 상품 이동, 노동력 이동이 어려운 경우에는 자본 이동, 즉 해외 투자가 이루어진다. 19세기 해외 투자를 가장 많이 한 나라는 영국이었고,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해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자체 공장이 없어도 해외 기업과 제휴하여 현지 생산을 하고, 본사에서는 상품 기획과 마케팅만 하는 플랫폼 기업이 크게 확산되었다. 애플, 나이키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경제력이 커지면서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해외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노동력 이동, 상품 이동, 자본 이동이 경제적 차원의 세계화를 가져왔다면, 초국적 조직의 등장은 정치적 차원의 세계화를 촉진했다. 국가 간 교류의 증대로 기존의 국민 국가 틀 내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연합, 국제통화기금 등의 정부간 조직과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등의 비정부조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정치ㆍ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교통ㆍ통신ㆍ과학 및 환경 영역에서 발생하는 초국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개별 정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문화의 세계화 또한 통신 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가 가져온 풍요와 편리 이면에는 여러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먼저 경제적 차원의 문제로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 경제 지배와 그에 따른 지구적 수준의 불평등 심화를 들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의 상품은 제3세계 자원을 무분별하게 채굴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노동자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어 인권문제도 발생한다.
또 해외 투자에 유입되는 국제 금융자본은 각 나라의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이익이 되지 않을 경우 투자를 중단하여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기도 한다. FTA의 경우, 발전된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가진 선진국이 싼값에 농ㆍ축산물을 대량으로 수출하면 후진국의 영세 농민들은 큰 피해를 입는다. 후진국의 농ㆍ축산업이 무너지면 식량이 무기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후진국이 선진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문화적인 종속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그중 특기할 만한 것은 미국화 경향이다. 오늘날 어느 나라건 할리우드 영화와 팝송, 디즈니랜드로 대표되는 미국식 대중문화와 생활양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문화적 세계화의 문제는 기존에 존재하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에 잠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자국의 경제나 문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무역이나 국가 간 교류에서 폐쇄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다. 또한 세계화에는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시장을 확대하고 경제나 문화적 삶을 향상시키는 기회로서의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세계화에 대한 더욱 포괄적이고도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며, 공정한 무역, 인간다운 근로 조건 약속, 국가의 복지와 인권 보장,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어린이 보호, 환경 보호 등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3. 자본주의를 만든 혁명
농업 혁명
오늘날 세계 인구는 72억 명이 넘는다. 1800년 초만 해도 10억 정도였던 것이 무려 7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식량이 풍부했을 때 인구가 급증했다는 것은 역사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18세기 후반 청나라에 고구마가 들어오면서 곡물 재배가 어려운 지역에 고구마 재배가 늘어났고, 식량 사정이 넉넉해지자 중국 인구가 1억에서 4억으로 늘어났다. 반대로, 1845년부터 7년간 이어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인해 800만이었던 아일랜드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아사했고, 남은 사람들도 먹을 것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결국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인류는 수렵 채취와 농경, 야생동물의 가축화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왔다. 오늘날과 같은 인구 폭발 시대에 이 많은 인구가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농업 혁명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농업 혁명은 식량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인구 혁명을 촉발시켰다. 농업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세계 인구는 이 정도로 늘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경제발전 또한 매우 더뎠을 것이다.
원시시대에 사람들은 들과 산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서 사는 수렵채취 생활을 했다. 기원전 1만 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난해지고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주위 초원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에 주목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보리를, 황하 지역에서는 강아지풀에서 시작된 조를 재배ㆍ수확해 먹게 되었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인간은 집에서 가축도 기르기 시작했다. 소, 염소, 양, 돼지, 말, 개 등의 동물을 가축화함으로써 큰 혜택을 받았다. 고기 및 유제품은 먹는 데 사용했고 가죽과 털은 입는 데 사용했다. 또 물건을 나르고 땅을 경작하는 등 운송과 농사에 사용했다. 동물의 분뇨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비료로 사용했다.
15세기 후반 이후 지리 혁명의 결과, 신대륙의 식물이 유럽과 아시아로 퍼지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옥수수, 고추, 고구마가 유출되었고 안데스에서는 토마토, 감자가 유출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는 담배, 땅콩이 나왔고 아마존에서는 카카오, 파인애플이 나왔다. 고구마는 중국, 일본, 한국으로 건너가 가뭄이 졌을 때 구황작물로 큰 역할을 했다. 유럽에 들어온 감자는 처음에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감자의 울퉁불퉁한 모양이 종양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발아 직후의 싹에 독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30년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지자 프러시아는 감자 재배를 독려한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많고 수확하는 부분이 땅속에 있어 냉해를 잘 입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공적인 농사를 위해서는 농업의 전 과정에서 혁신이 필요했다. 곡물 품종이 좋아야 했고, 땅을 잘 개간한 다음, 씨를 알맞게 뿌려야 했으며, 물과 비료도 적절히 줘야 했다. 자연적인 조건이나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 외에, 기술의 발달을 통해 다량의 곡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된 것은 농기계가 개발되어 농업의 기계화가 가능해진 이후였다.
곡물의 풍족한 수확을 위해서는 농업의 기계화 외에도 땅의 비옥도를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9세기까지 농부들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재, 가축의 배설물을 이용했다. 가축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인간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했다. 배설물을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처리한 화학 비료를 처음으로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영국의 존 베넷 로즈였다. 그는 뼈에 함유된 인을 용해하는 방법을 찾아내 1843년 공장을 세워 과인산 비료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질소, 칼륨, 인 등 식물 재배에 필요한 영양소를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화학 비료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농업 혁명에 크게 기여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육종 기술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요한 그레고르 멘델은 사제로 있으면서 수도원 정원에서 8년 동안 완두콩을 심으면서 다양한 품종을 교차재배해 유전법칙을 발견한다. 1921년 들어 육종 기술로 개발된 잡종 밀이 판매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잡종 밀의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여 1960년에는 밀 전체 생산량의 96%나 차지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을 통해 가지, 사탕무, 배추, 오이, 호박, 시금치, 강낭콩, 멜론, 조, 양파, 수박, 수수, 토마토 등 거의 모든 곡물, 채소, 과일의 잡종 종자가 탄생하고 상품화된다.
살충제의 개발도 농업의 생산성을 급격히 증진시켰다. 사람이 재배하는 곡물, 채소, 과일에 해를 끼치는 곤충을 죽이기 위한 살충제는 1870년대부터 꾸준하게 개발되어 살포되었다. 그중 살충 효과가 매우 강력했던 DDT는 1940년 스위스에서 특허를 받은 이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ㆍ부작용이 1960년대 들어 알려지면서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한편,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처럼 농산물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농업 혁명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농기구의 기계화, 화학 비료, 육종 기술, 살충제 개발이 크게 기여했다. 여기서 나아가, 농산물 보관 기술이 발달하면서 쥐 같은 동물에 의한 피해나 열에 따른 부식을 막아 농작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발효 기술의 발달은 농산물을 다른 형태로 변형시켜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농작물을 가공하여 진공포장을 통해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통조림의 발명은 식량보존의 혁명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