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
짐 로저스 지음 | 이레미디어
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
짐 로저스 지음
이레미디어 / 2014년 1월 / 300쪽 / 16,500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미국 앨라배마 출신인 나는 지금 중국 근처에 있는 싱가포르에 살고 있으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두 딸의 중국어 실력은 영어만큼이나 유창하다. 내가 싱가포르에 눌러 살게 된 과정은 땅을 파서 지구를 관통하는 것 못지않게 파란만장했다. 세상 이면의 작동원리를 직접 체험하고, 진실을 파헤치고, 몸소 탐험하려고 끝없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일주를 두 번 했다. 한 번은 오토바이로, 한 번은 자동차로 5년에 걸쳐 100여 개 국가를 훑었다. 나는 편안하게 앉아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는 모험을 통해 역사를 이해한다. 이 과정에서 앨라배마 산간벽지에서 말레이 반도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중국의 전초기지로 올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면 그리스인들이 제시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명제다. 인생에서 성공은 변화를 예상하는 능력에 좌우된다. 나는 세계에서 진행되는 역사적인 변화를 실감하고 싱가포르로 왔다. 이는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이 쇠퇴하고 그 자리를 아시아가 대신하는 극적인 지형 변화의 결과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세계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다. 대부분 국가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금융위기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들과 논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위기가 우리 세대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국가가 안고 있는 엄청난 부채 때문에 앞으로는 우리 모두의 생활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혼란기에 늘 그랬듯이 유서 깊은 기관, 전통, 정당, 정부, 문화, 심지어 국가들이 붕괴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매년 미국에서 배출되는 MBA는 20만 명이 넘는다
2010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 내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은 투자은행 근무를 열망했다. 이들은 나에게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라고 말했다. 이들은 시티(런던의 금융 중심지)에서 일하며 부자가 되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금융의 시대는 끝났으므로 대신 농업을 공부하라고 말했다. 1950년대 매년 미국에서 배출되는 MBA는 5천 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20만 명이 넘는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경영학 학위는 쓸모가 없을 것이며, 돈과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지금 금융계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새로운 통제, 규제, 세금이 부과되고 있고, 각국 정부가 금융계를 대하는 태도도 갈수록 비우호적이다.
장래에는 금융보다 농업이 훨씬 수익성 높은 부문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주식 중개인들은 택시 운전을 하고 농부들은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닐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 상품시장은 장기 강세장을 연출했다. 1970년대 농산물 강세장에서 식량 가격이 극적으로 상승되어 막대한 재고가 축적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식량 재고가 역사상 최고 수준이 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예를 들어 1974년 파운드당 66센트였던 설탕은 1987년 2센트로 폭락했다. 당시에 농업 부문이 재난을 당하자 장차 농부가 되려는 미국인들까지 MBA 학위를 받아 월스트리트로 진출했다. 돈이 몰려드는 곳이 월스트리트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 미국 농부의 평균 연령은 59세다. 일본 농부의 평균 연령은 67세다. 일본의 농장은 말라가고 있다. 일본을 돌아다녀보면 텅 빈 거대한 농장이 눈에 많이 띈다. 앞으로 식량 가격이 상승해서 농사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재 늙어가는 세계의 농부들은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량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매우 많았던 식량 재고가 지금은 역사적 저점까지 감소하였다. 세계는 극적인 식량 부족에 직면했고, 식량 가격은 상승 중이다. 현재 상품의 강세장은 1999년에 시작되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모든 강세장이 그러하듯, 강세장은 거품이 붕괴하면서 끝난다. 그때는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강세장은 몇 년 더 이어질 것이다. 세계경제가 회복되면 수요가 증가하므로 상품, 원자재, 천연자원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경제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정부가 함부로 돈을 찍어낼 것이므로, 역시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면 투자자들은 화폐가치 하락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은, 쌀, 에너지, 기타 실물자산 가격이 항상 강세를 보인다.
10년 S&P500 상승률 48%, 퀀텀펀드 수익률 4,200%
나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부터 국제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월스트리트의 국제투자회사는 두 곳뿐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안홀드앤드블라이흐뢰더>였다. 나는 이곳에 입사하여 부사장인 조지 소르소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우리는 역외 헤지펀드인 퀀텀펀드를 설립했다. 고객은 외국 투자자들이었고, 우리는 전 세계의 주식, 상품, 통화, 채권을 제약 없이 매매하거나 공매도했다. 헤지펀드는 공매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좋은 해나 나쁜 해나 항상 돈을 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성과보수를 받는 것이다. 소르소는 시장 선택과 트레이딩 감각이 탁월했고, 나는 주로 조사를 맡았다. 나의 관심사는 세계의 상황을 조사하여 시장 흐름을 예측하는 일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조사했고 기회가 보이면 세계 어디든지 투자했다. 부채를 대규모로 사용했으므로 위험이 컸지만, 다행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의 판단이 빗나갈 때보다 적중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이 극적으로 상승하기 2년 전인 1971년부터 퀀텀펀드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56년 이후 석유와 가스의 재고가 꾸준히 감소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과 전 세계에 심각한 에너지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973년 중동전이 벌어지고 OPEC 아랍 회원국이 석유 금수조치를 취했다. OPEC은 1960년에 설립된 이후 해마다 장관들이 모여서 유가 인상을 결의했지만, 당혹스럽게도 유가는 계속 내려갔다. 그러나 1973년에는 달랐다. 석유 재고가 바닥을 보자 사람들이 투자하기 시작했고, 시장이 반응해서 유가가 상승한 것이다. 내 펀더멘털 분석은 적중했다. 아무리 오래 투자해도 펀더멘털이 빗나가면 소용없다. 그러나 펀더멘털을 정확하게 파악하면 호재가 줄줄이 쏟아진다.
중동전이 시작되자 이집트 공군이 이스라엘 제트기들을 격추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 전역의 방위 산업체들을 방문했다. 이집트군은 소련에서 받은 첨단 전자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파산 상태였던 록히드는 첨단 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방부에 정밀무기들을 공급하고 있었다. 나는 록히드 같은 방위 산업체의 주가가 매우 싸다는 것을 알고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록히드의 주식은 이후 2년 동안 100배 상승했다. 나와 소르소의 퀀텀펀드는 통념을 거슬러 투자했다. 모든 은행과 펀드들이 주가 수익비율이 100~200배에 이르는 대량 우량주가 지극히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장기 보유했지만, 소르소와 나는 이 주식들을 공매도했다. 또한 파운드화도 공매도했으며, 금값이 폭등했던 1980년에는 금을 공매도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해마다 이익을 냈다. 그것도 월스트리트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약세장 기간에 말이다. 1980년까지 10년 동안 S&P500의 상승률은 47%였다. 이는 어머니가 지역은행 예금통장에서 받는 이자율 수준이다. 이 기간 동안 퀀텀펀드 수익률은 4,200%를 기록했다.
당신이 똑똑하다면,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공매도는 평범한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기법이 아니다.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고, 충분한 준비도 필요하다. 정통한 투자자만 사용해야 한다. 주식을 10달러에 사면, 그 주가는 0까지만 내려간다. 최대 손실률이 100%이다. 그러나 주식을 10달러에 공매도하면, 손실은 이론상 무한대가 된다. 판단이 빗나가면 단기간에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 나는 초년병 시절 공매도를 하다가 무일푼이 된 경험이 있다.
1970년 나는 주식시장 붕괴를 예상하고, 돈을 모조리 긁어모아 풋옵션을 샀다. 5개월 뒤 예상대로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시장이 바닥을 치던 날, 나는 풋옵션을 팔았다. 투자원금이 3배 늘어났다. 이때 내가 투자에 통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장이 반등하기를 기다렸다. 시장이 반등하자 나는 풋옵션으로 번 돈을 모두 동원해서 공매도를 했다. 나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 6개를 골라 공매도했다. 그리고 2개월 뒤, 완전히 털려버렸다. 6개 기업의 주가가 계속 상승하자, 나는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계좌에 증거금이 부족해서 주가가 하락할 때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포지션을 뒤집어야 했고,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그 이후 2~3년 안에 내가 공매도했던 6개 기업이 모두 파산했다. 내 예측은 맞았지만 나는 돈을 모두 날렸다. 이때 “당신이 똑똑하다면, 왜 부자가 못 되었는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는 똑똑한데도 부자가 되지 못한 완벽한 사례다. 나는 너무 똑똑해서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나는 시장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의 격언 하나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당신의 증거금보다 시장의 광기가 더 오래간다.” 이 경험은 시장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었다.
큰돈을 벌고 싶다면 분산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무일푼이 될 일도 없지만, 큰돈 벌 일도 없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좋은 종목 몇 개를 발굴해서 집중 투자하라. 1970년대라면 상품을 사서 10년을 보유한 다음, 1980년에 상품을 팔아 일본 주식을 보유하고, 1990년에는 일본 주식을 팔고 기술주를 사서 2000년에 기술주를 팔았다면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에 분산 투자해서 시장평균수익을 얻었다면, 지난 30년 동안 큰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큰돈을 벌고 싶으면 돌아다니지 말고 잘 아는 분야에 머물면서 집중 투자해야 한다. 물론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면, 완전히 무일푼이 될 수도 있다.
내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당신이 아는 바를 따르라
오늘날 미국 대학 교육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이 종신재직권이다. 교수가 종신재직권을 얻으려면 책의 출간과 연구, 교내 정치가 중요하다. 종신재직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강의는 방해물로 취급된다. 종신재직권은 무능한 선생들의 도피처가 된다. 7년 일해서 평생 일자리를 보장받는 직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대학을 제외하면 말이다. 35세에 대학에서 종신재직권을 얻은 교수는 더 이상 실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종신재직권이라는 예외주의 탓에 오늘날 미국 고등교육계에 거대한 거품이 형성되었다. 오늘날 프린스턴 대학의 학비는 내가 1964년 예일 대학에 다닐 때 들어간 비용의 50배에 달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다닐 만한 가치가 있다는 명문대학들의 주장에 사람들이 모두 넘어갔다. 하지만 오늘날 꼭 명문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널려 있다. 명문대학들이 파는 것은 상표에 불과하다. 앞으로 명문대학들은 응시생을 모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비용 상승에 맞춰 대학들이 수업료를 계속 인상하면 수업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증가할 것이며, 외국 학생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오는 대신 자기 나라 근처에 있는 좋은 학교를 찾아갈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발표된 대학 순위를 보면 아시아 대학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유서 깊고 교육이 훌륭한 대학들이다. 이제 치열한 경쟁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날 아이들에게는 제2의 천성인 기술이 있다, 컴퓨터로 편리한 시간에 효율적으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데, 무슨 이유로 아침 일찍 일어나 매주 세 번씩 수업을 들으러 가겠는가? 미국에 값비싼 스페인어 종신교수가 3천 명이나 필요한가? 인터넷을 이용하면 스페인어를 훨씬 더 빠르게, 더 싸게 배울 수 있다. 회계학, 물리학, 미적분학도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선생 2~3명이 인터넷으로 가르치면 학생 수백만 명이 최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지금 파산 직전이다. 최고 인력이 매주 5~10시간 일해서는 어떤 사업도 버틸 재간이 없다. 종신재직권에 기대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을 해고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더욱 그렇다.
펀드매니저 생활에서 은퇴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아서 강의하던 나는 1990년 여자 친구 태비서 이스트부룩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에 나섰다. 아일랜드에서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길에서 22개월을 보내면서 10만 마일을 달려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6개 대륙에 걸쳐 50여 개 국가를 통과했다. 어떤 나라든지 국경을 통과한 다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환전이다. 이때 그 나라에 암시장이 존재하면 그 나라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다. 암시장 환율에 프리미엄이 잔뜩 붙어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나는 언제든 여행할 때면 유망 기회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여행 중에 보츠와나에서 주식시장을 발견한 나는 곧바로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종목에 투자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모두 7개였다. 보츠와나는, 국토는 매우 넓고 인구는 적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 투자로 18년 동안 막대한 이익을 얻고서 2007~2008년 신흥 시장 투자가 과열 상태일 때 보츠와나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떠오르는 상품
상품은 주식보다 이해하기 쉽다. IBM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종업원, 제품, 부품, 공급자, 경쟁자, 정부, 재무제표, 노조 등 수십만 가지 요소를 다루어야 한다. 반면에 면화는 아주 간단하다. 단지 면화가 지나치게 많은지 지나치게 적은지만 알면 된다. 물론 이것을 파악하는 일도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질문 자체는 단순하며, 이 질문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는 상품 펀드를 만들려고 직접 지수를 개발했다. 다른 상품 지수들이 있었지만 종목 구성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지수 구성이 매년 바뀌며 지리적 편협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수 개발에 착수한 시점은 1998년 8월이었는데 우연히도 19년간 이어진 약세장이 바닥을 치기 4~6개월 전이었다. 원래 나는 시점 선택 능력이 신통하지 않으며 단기 트레이딩에도 능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내가 그동안 투자에서 거둔 성공은 모두 주요 변화와 추세 전개에 주의를 집중한 덕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저스 상품 지수는 원자재에 일관되게 투자하는 광범위 지수로서, 13개 국제거래소에 상장된 36개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수는 처음부터 다른 상품 지수보다 복리 수익률이 높았다. 2012년 8월의 총수익률은 281%다. 같은 기간 S&P의 총수익률은 62%에 불과했다.
허드슨 강변 주택
1999년 나는 페이지 파커라는 여성과 함께 밀레니엄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그녀와 결혼을 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뉴욕에서 첫째 딸인 해피가 태어났다. 둘째 딸 베이비 비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뉴욕 집을 팔고 아시아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나는 1976년에 구입한 뉴욕 허드슨 강변의 5층 저택에서 30년을 살았다. 월가의 바쁜 생활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가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주택 개조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밀레니엄 모험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중국이 차기 패권국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에 관해 계속 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TV에 출연할 때마다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고 조언했다.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었으므로 내가 했던 조언을 따를 때가 되었다. 여행 중에 나는 언어를 모국어로 말할 때의 이점을 눈으로 보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중죄인이라 하더라도 그 나라 언어에 능통하다면, 그 나라 말에 서툰 박사, 억만장자, 외교관 못지않은 위치에 서게 된다. 나는 내 아이들이 외국어에 능통한 정도가 아니라 모국어처럼 말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해피를 뉴욕에서 키우면 중국어 가정교사를 두더라도 중국어를 절대 모국어처럼 할 수 없다. 그래서 뉴욕 집을 매물로 내놓고 아시아에서 살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아이들 때문에 이사하는 부모를 비웃던 내가, 이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