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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 파라북스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파라북스 / 2015년 1월 / 223쪽 / 12,000원





1부 시장만능주의의 최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기

팍스라는 말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에서 나온 것이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의 힘에 의한, 로마를 위한 평화’라는 말에서 시작되어, 로마제국의 붕괴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말은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이고, 그 뒤를 이어 지금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팍스 브리태니카는 분명한 시대 구분이 없어 그저 기본적인 특징을 막연히 그렇게 표현한다. 팍스 브리태니카는 19세기 초에 시작되어 ‘영국의 힘에 의한, 영국을 위한 평화’로서 100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계기로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의 힘에 의한, 미국을 위한 평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팍스 브리태니카가 남긴 비참한 피해: 1805년에 유명한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 함대가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패배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팍스 브리태니카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로부터 10년 후,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연합군에게 완패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때를 팍스 브리태니카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먼저 팍스 브리태니카는 영국의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해적적인 자본주의가 세계를 제패하는 시대였다. 거기에는 투파워 스탠다드(Two-Power Standard)라고 부르는 영국의 해군정책이 있었다. 영국의 해군력은 세계 제일이어야 하며, 두 번째와 세 번째 나라의 해군력을 합친 것보다 강한 전력을 갖추겠다는 정책으로, 당시 영국은 이것을 팍스 브리태니카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걸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삼아 해적적인 자본주의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어갔다. 세계 도처에서는 팍스 브리태니카에 의한 인간의 파괴, 사회의 파괴, 문화의 파괴, 역사의 파괴가 일어났다.

팍스 브리태니카에 의한 피해는 비참했다. 나는 인도에 자주 가는데, 그 피해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인도의 자연을 파괴하고 역사를 파괴했으며 문화를 파괴하고 인간마저 파괴해갔다. 인도에서의 팍스 브리태니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인도 엘리트층의 우수한 자녀들을 영국의 대학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식 사고방식, 생활태도를 몸에 배게 해 본국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로 삼는 것이다. 그것이 영국 식민지 정책의 특징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는 인도인이 현지인을 대신해서 팍스 브리태니카의 첨병이 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이 팍스 브리태니카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오스만투르크의 쇠망과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붕괴해간다. 그 붕괴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세계대공황이다. 알다시피 세계대공황은 1929년의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시작되었는데, 실은 영국 경제는 그 이전인 1920년대 후반부터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결국 미국의 대공황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는 식으로 나는 이해한다.

베버리지-케인즈 시대: 팍스 브리태니카의 쇠퇴기에 두 사람의 경제학자가 나타나 힘을 모아 붕괴를 막으려고 했다. 바로 케인즈와 베버리지이다. 케인즈는 자본주의라는 제도, 즉 팍스 브리태니카의 기본적인 경제 제도에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항상 존재하는 불균형과 실업의 대량 발생, 물가의 불안정과 경제활동 전체의 비사회성을 염두에 두고 팍스 브리태니카의 붕괴를 막기 위해 힘을 다한 것이다. 그와 달리 베버리지는 팍스 브리태니카에 희생당해 괴로워하는 사람들, 실업자나 질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가장을 잃어 일가족을 지탱해야만 하는 여성 등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경제학은 케인즈-베버리지 시대 혹은 베버리지-케인즈 시대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베버리지는 일종의 사회운동가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베버리지를 제대로 알게 된 후로 그가 케인즈를 뛰어넘는 훌륭한 경제학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를 통해 팍스 브리태니카의 쇠퇴기에 경제학자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케인즈보다 네 살이 많은 베버리지가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취직한 곳은 토인비 홀이라는 세계 최초의 세틀먼트 하우스였다. 세틀먼트 하우스는 민간 사회복지관으로 교회 같은 단체가 만들어, 목사나 연구자들이 입주해 살면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었다. 토인비 홀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이스트엔드에 있었다. 베버리지는 그곳에 들어가 3년 정도 살다가 일간지 《모닝 포스트》의 기자가 되는데, 거기서도 실직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힘을 썼다.

당시에는 빅토리아시대의 흐름이 강해 실업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태하거나 술만 마시기 때문에 실직한 것이며 개인의 부도덕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버리지의 생각은 달랐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거나 병에 걸렸거나,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과 이혼 또는 사별했기 때문이지 부도덕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업은 사회적인 제도나 경제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1909년에 『실업: 산업이 낳은 문제』를 출간한다. 실업을 사회적 문제 혹은 경제적인 문제로 다루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인 훌륭한 책이다. 한편 케인즈는 1936년에 『고용ㆍ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말을 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건강 때문에 직장을 찾지 못한다는 개념을 일반이론의 핵심으로 놓은 것인데, 그 시작이 베버리지의 『실업: 산업이 낳은 문제』였던 셈이다.

《모닝 포스트》의 기자로 있을 때 베버리지는 시드니와 베아트리스 웹 부부와 친분을 쌓는다. 웹 부부는 페이비언 협회를 만든 새로운 유형의 노동 운동 지도자였다. 그들 부부가 중심이 되어 영국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을 위한 대학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이다. 이스트엔드 근처에 있는 이 대학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와는 달리 건물이 매우 초라하다. 베버리지는 이곳의 교수로 부름을 받았고, 그 후 학장으로 18년간 재직했다. 현재 런던정치경제대학은 세계 일류 대학이 되었다.

NHS의 탄생과 그 고난의 길: 1941년 1월에 베버리지는 당시 영국 수상 처칠에게 편지를 쓴다. 1940년에 영국군은 대륙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독일의 런던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이어서 가장 비참한 시기였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 전쟁은 영국에 최대의 고난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기다리는 것은 비참함과 파괴된 잔해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전후 영국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를 상세히 연구하고 그것을 발표해 국민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1941년 6월 ‘사회보장에 관한 소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베버리지가 그 위원장에 임명된다. 소위원회의 과제는 현행 사회보장제도를 조사ㆍ연구해 문제점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베버리지는 그 과제를 훨씬 넘어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베버리지 보고서>가 하원에 제출되었다. 1942년 11월 말이었다. 그 보고서는 12월에 일반에게 팔리기 시작했는데, 발매 2시간 만에 7만 부가 팔렸고, 1년 동안 62만 5,000부가 팔렸다. 게다가 여론조사 결과 <베버리지 보고서>에 90%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수당의 당수였던 처칠은 이 보고서를 무시하고 만다.

그런데 1945년 7월 총선거에서 노동당이 압승하고 애틀리가 수상이 된다. 애틀리 내각의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된 베번은 베버리지 보고서를 실제로 제도화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당시의 영국 노동당은 상당히 급진적이어서 베버리지의 안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모든 의료기관을 국영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영국 노동당의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국영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상당히 시간이 흐른 1948년에야 베버리지의 안을 구체화시킨 제도가 나왔다. 바로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국민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이다. NHS는 영국 거주 외국인도 포함해 모든 국민이 무료로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1952년에 일부 수정되면서 처방전이나 의안, 의치 등은 환자가 부담하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세수로 부담하는 제도이다.

케인즈와 미드의 협력: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회보장제도, 즉 의료와 연금, 기초연금, 자녀수당 등을 보장함으로써 전후 영국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보고서를 전쟁 중에 발표한 것은, 일반 국민들이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전쟁에 협력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베버리지는 소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재정이나 거시경제에 대해 케인즈에게 조언을 구했다. 케인즈는 당시 재무부의 고문이었다. 베버리지의 요청을 받은 케인즈는 베버리지의 보좌진으로 제임스 미드를 지명한다. 미드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이다. 경제성장론이나 국제경제, 그 밖에도 훌륭한 경제이론 모델을 잇달아 만들어낸 천재적인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현실 감각이 매우 풍부하고 사회 정의 감각도 갖춘 이상적인 경제학자이다.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예를 들어서 정부의 재정 지출을 1억 파운드 늘리면 그것이 여러 파급 효과를 내서 국민소득이 몇 배나 증가하며, 그에 따라서 세수도 증가한다는 승수 효과이다. 미드는 특히 의료에서의 지출이 매우 높은 승수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미드는 또한, 의료를 비롯한 사회 보장의 시작은 단순히 경제적인 승수 효과만이 아니라 사회를 안정시키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것은 원칙적으로 소득세를 중심으로 한 세수로 조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득세는 누진성이 높기 때문에 부자일수록 상대적으로 더 부담하게 된다. 결국 의료 혜택은 모두 평등하게 받지만, 부자일수록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드는 케인즈와 베버리지 사이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은 NHS에 반영된다.

보건부 장관 베번은 마침내 병원들을 국영화한다. 개업의는 일반의로서 NHS와 계약을 맺고 비용을 지불받는다. 마치 옛날 일본의 쌀 배급과 같은 제도로, 각 지역에 NHS와 계약을 맺고 일반 개업의로서 일하는 의사의 리스트가 있었다. 그즈음 나는 케임브리지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NHS와 계약을 맺은 100명 정도의 의사가 있었다. 그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 1년 동안 가정의로 지정하면, 몸이 안 좋을 때나 병에 걸렸을 때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 약을 처방해서 받기도 한다. 모두 무료다.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그 가정의의 소개가 있어야 했다. 당시에 재무부가 병원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새로운 병원은 만들 수 없었다. 새로운 설비도 갖출 수 없었다. 게다가 의사의 급여 수준도 매우 심하게 억제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그러자 1960년대에는 의사가 되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의사들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호주로 떠나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의사가 부족하고 병원의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NHS는 병원을 철저하게 관리해 관료적인 통제하에 두었다. 그것은 의사의 직업의식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결국 병원을 국영화한다는 베버리지의 이상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망비율과 살상비율: 의사의 대우를 개선하지도 않고 병원 신설도 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자, 1970년대를 지내면서 상황은 점점 어려워진다. 여기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사람이 마거릿 대처이다. 1979년에 수상이 된 대처는 개혁이라 일컬으며 철저하게 시장만능주의적인 정책을 진행시킨다. 대처 내각 1기에는 먼저 철도, 우체국, 전신전화를 모두 민영화한다. 하지만 NHS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2기에 들어서서야 NHS를 손보기 시작하지만, 국민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혀 민영화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유사한 민영화를 생각해낸다. 미국의 경제학자 알레인 엔토벤을 불러들여 그를 중심으로 철저한 효율화를 노리며 의료비 억제를 계획한다. 그 계획의 핵심은 한 사람의 환자가 죽을 때까지 해마다 드는 의료비를 최소화하자는 의료비억제정책이다. 시간이 흘러 1997년 수상이 된 블레어가 NHS를 재건하려 했는데, 그때 입원 대기환자가 130만 명에 이르렀다. 약 6,000만 정도 되는 영국의 인구를 생각할 때, 130만은 굉장한 수이다. 그래서 엔토벤이 도입한 개념은 사망비율이라고 할 만한다.

의료비억제정책은 특히 60세 이상 노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엔토벤의 영향이 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신장투석 시술을 금지한다는 통고까지 나온다. 상당한 비용이 드는 신장투석 의료를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베풀어도 어차피 그다지 오래 살 수 없으므로, 그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엔토벤의 생각이었다. 참으로 극단적인 시장만능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엔토벤은 베트남전쟁 때 45세 정도였는데,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신임을 얻어 국방차관으로 임명되어 베트남전쟁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된 인물이다. 그때 그가 사용한 것이 살상비율이다. 살육비율이라고 할까? 베트콩 한 명을 죽이는 데에 몇 달러가 드느냐로 전략과 전술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살상비율을 가급적 줄이려는 작전을 각 부서에서 실행에 옮겼다. 즉, 제한된 전쟁 예산으로 가능하면 많은 베트콩을 죽인다는 것을 베트남전쟁 수행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것이 《뉴욕 타임즈》 기자의 취재로 기사화되자 전 세계로부터 비난이 들끓었다. 이 일로 맥나마라 장관은 추궁을 당하다 일종의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연설할 때에는 갑자기 큰소리치며 “이번 베트남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다. 윤리의 붕괴이며, 미국의 명예는 이제 땅으로 떨어졌다”는 ‘명연설’을 해서 스스로를 사임으로 내몰았다. 그 후 존슨 대통령도 재선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베트남 평화의 길이 열렸다. 평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엔토벤도 공로자다.

하지만 이 살상비율은 맥나마라 자신이 생각해낸 개념이었다. 그는 전쟁 중에 육군항공대에서 일본 공략의 기본적인 작전을 짜는 일을 했는데, 그때 살상비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대 일본전쟁에서의 살상비율은 일본인 한 명을 죽이는 데 드는 비용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는 것이었다. 즉, 제한된 항공력으로 많은 일본인을 죽이는 것을 전쟁수행의 목표로 내걸었다. 그것이 일본 폭격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던 제21폭격단의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의 눈에 들었고, 맥나마라는 괌으로 불려가 거기에서 일본 공략작전을 짜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예를 들면 새로운 소이탄인 네이팜탄을 개발한다. 이것은 목조 가옥을 효율적으로 불태우도록 어떤 종류의 화학약품을 섞어 놓은 것이다.

맥나마라의 일본 공략작전이 가장 큰 규모로 실행된 것은, 1945년 3월 10일에 있었던 도쿄대공습이었다. 도쿄 주변의 상업지역에 B29 폭격기를 투입해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하룻밤 사이에 사망자 8만 명, 부상자 5만 명, 불에 탄 가옥이 30만 채였다. 이것은 그때까지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피해를 준 것이다. 제한된 항공력으로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일본의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인다는 전략은, 그 후 일본의 주요 도시로 파급된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 폭탄이었다. 맥나마라는 그 후 <전운: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의 고백>이라는 기록 영화에 직접 출연해 당시의 일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르메이 장관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만일 이 전쟁에서 진다면 우리는 모두 전범으로 처형될 것임에 틀림없다.” 맥나마라 자신도 그러한 일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시장만능주의적인 전쟁수행, 즉 제한된 예산으로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사고방식은 어떤 의미에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출발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맥아더의 일본 점령으로 시작되는데, 그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네오리버럴리즘이다. 네오리버럴리즘은 일본에서는 한결같이 ‘신자유주의’라고 번역하지만, 자유주의란 리버테리어니즘(자유지상주의)이고 이 둘은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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