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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경제학

박병률 지음 | 원앤원북스
영화 속 경제학

박병률 지음

원앤원북스 / 2014년 9월 / 380쪽 / 16,000원





1부 영화 속 경제학, 개인 이야기



814만분의 1이 주는 환상, ‘기준점 효과’ <연애의 온도>

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 행동경제학자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197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것으로, ‘닻내림 효과’라고도 한다. 배가 닻을 내리면 그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근처를 맴도는 것처럼,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처음 인식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2013)는 동화 속 판타지를 쏙 빼고 요즘 연애를 민낯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직장 이야기가 좀 코믹스럽긴 해도 연애의 감정만큼은 덧붙이거나 더 뺄 것이 없어 보인다. ‘19금’짜리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170만 명 이상이 봤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했다는 이야기일 테다. 은행원인 이동희(이민기 분)와 장영(김민희 분)은 3년째 사내 비밀연애를 하다가 ‘쿨’하게 헤어지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 사랑이 그런가. 미련이 남고 아쉬움이 남아 서로를 미치게 만든다.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알아내 접속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가 싶어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운다. 이제는 남의 사람이라고 선언했는데, 마음 한편은 여전히 내 사람이다. 연애란 그렇다. 그래서 영은 말한다. “많은 연인들 중 82%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대.”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그중 계속 만나게 될 확률은 3%래.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진대. 같은 이유로.” 미련이 남아 다시 만나보지만 두 사람을 헤어지게 했던 이별의 원인은 그대로다. 미련마저 소진될 때 연인은 다시 헤어진다. 두 번째 헤어질 때는 울지도 않는다. 그저 말이 없을 뿐이다.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이 잘될 확률은 고작 3%.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때 동희가 말한다. “로또 1등 당첨될 확률이 814만분의 1이래. 그래도 매주 몇 명씩 당첨되잖아. 그러니까 그 3%는 정말 큰 거야.” 814만분의 1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알베르 자카르도는 “로또는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또 다른 세금”이라고 말했다. 814만분의 1은 0.00001%다. 여기에 비하면 3%는 무지무지하게 높아 보인다.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가치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행동경제학에서는 ‘기준점 효과’ 또는 ‘앵커링 효과’라고 부른다. 정박한 배는 닻을 내린 지점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생각도 처음 어떤 시각이 자리 잡으면 그 범위를 잘 벗어나지 못한다. 일종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행동경제학자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UN가맹국 중 아프리카 나라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묻는 실험을 했다. 한 실험자에게는 숫자 10을 보여주고, 또 다른 실험자에게는 숫자 65를 보여줬다. 10을 본 실험자들은 UN가맹국 중 아프리카 나라가 평균 25개국이라고 답했다. 반면에 65를 본 실험자들은 45개국이라고 답했다. 최초에 어떤 숫자를 봤느냐에 따라 이들의 추정치가 달라졌다.

기준점 효과는 특히 마케팅에서 자주 쓰인다. 판매자가 희망소비자가격을 1,500원이라고 표기해놓고 700원에 팔면 희망소비자가격을 1,000이라고 해놨다가 700원에 판 것보다 소비자는 더 저렴하게 산 것처럼 느낀다. 판매자들이 과도하게 희망소비자가격을 올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아예 공표하지 못하도록 했다. 요즘은 식음료나 가전제품, 의류 등 전국적으로 팔리는 제품에 대해 일률적인 고정가격을 제시할 수 없다. 기준점 효과는 법정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검사의 구형이 높으면 판사의 선고 형량도 높고, 구형이 낮으면 선고 형량도 낮은 경향이 있다. 결국 검찰이 높은 구형을 내리면 법원도 영향을 받는다. 여론 등을 고려할 때 형량을 크게 낮추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기준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동희가 영을 제대로 설득시키려 했다면 814만분의 1이라고 표현하기보다 0.00001%라고 말하는 게 유리했다. 소수점 아래 0이 잔뜩 달린 확률은 정말 낮아 보인다. 그랬다면 영은 “3%도 높은 확률이구나.”라고 더 쉽게 착각했을는지 모른다. 무릇 세상일이 그렇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 삶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도,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상대 비교 때는 더 그렇다. 한국 축구 실력을 브라질이나 이탈리아에 견주면 아쉬운 점이 많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교하면 자랑스럽다. 노덕 감독은 “사랑이라는 게 가끔은 누구의 잘못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별)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닥쳤을 때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픔의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2부 영화 속 경제학, 기업 이야기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인질이 되는 이유, ‘홀드업 문제’ <카페 드 플로르>

홀드업 문제(hold-up problem): ‘hold up’은 ‘손 들어’, ‘꼼짝 마’라는 뜻이다. 특정 관계를 고려해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이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좁아지는 문제를 말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납품을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다가 다른 기업과는 거래를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많이 빗댄다.

14세 때 첫눈에 반해 만나 20대에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천생연분이 아닐 수 있을까? 프랑스는 사랑이 흔한 나라다. 현 대통령이 동거를 하고, 그 동거인은 앞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전 대통령도 재임기간에 이혼하고 재혼을 했다.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동거를 인정하는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 제도를 두고 있다. 팍스는 사실혼 관계보다 느슨한 동거도 재산분배와 세금, 교육, 사회복지 등을 똑같이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카페 드 플로르>(2011)는 결혼과 이혼, 동거에 익숙한 ‘프랑스인의 사랑’이 담긴 영화다.

영화에는 두 가정이 나온다. 1969년 파리, 재클린(바네사 파라디 분)은 아들 로랭을 낳는다. 로랭은 다운증후군 환자다. 재클린은 아들 로랭을 세상의 편견에 맞서 키우고 싶어 한다. 25세 이상을 살 수 없다는 다운증후군에 맞서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7살이 된 로랭에게 베로라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아들의 사랑을 뺏긴 것 같아 재클린은 날카로워져 간다. 한편 2011년 몬트리올에는 앙투앙(케빈 파랑 분)과 카롤(헬렌 플로렝 분)의 가정이 있다. 앙투앙과 카롤은 20년을 함께 산 부부이지만 어느 파티에서 앙투앙이 로즈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로즈에게 한눈에 반한 앙투앙은 카롤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카롤에게 앙투앙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다른 남자와 키스 한 번 한 적이 없다. 14세 때, 둘은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감독은 집착과 사랑 간의 관계를 캐묻는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특정 관계를 위한 투자’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나 한 가지 일에 관심이 과도하게 쏠리면 다른 사람, 다른 일과는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다. 그 사람과 헤어지거나 그 일을 그만두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이처럼 특정인에 볼모 혹은 인질이 되어버린 상황을 ‘홀드업 문제’라고 한다. 게임이론에서는 두 사람 간 관계에서 더 적극적이었던 쪽이 불리해져 상대방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미국의 경제학자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는 기업에 대한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경제적 지배구조를 연구해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홀드업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에서 종종 발생한다. 자동차부품업체가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독점 납품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기계 설비를 도입했다. 그런데 자동차회사가 어느 날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구하면 난처해진다. 이 설비로 만드는 부품은 이 자동차회사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는 부품이다. 부품업체는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대기업 임원들에 대한 접대비 부담도 눈덩이처럼 늘어나곤 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맺는 납품관계를 극단적으로 ‘개미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한번 대기업과 거래를 트면 제힘으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동차 주문량이 급증하자 부품업체가 돌연 부품 납품가격을 2배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대기업으로서는 다른 답이 없어 할 수 없이 일단 가격을 올려주고 봐야 한다. 최근 국내 재벌들이 계열사를 마구 늘리면서 ‘홀드업’을 반박논리로 내세운다. 중소기업에 부품을 맡겨서는 안정적인 경영전략을 세울 수 없으니 아예 자신들이 납품업체를 설립해 부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에 “가격 더 올려달라.”고 내세울 배짱과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대기업은 ‘갑’, 중소기업은 ‘을’인 경우가 많다. 홀드업 문제를 내세우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위한 궤변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중소기업이 홀드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계약서를 깐깐하게 써놓으면 된다. 그러나 법무법인을 동원해 완벽한 계약서를 쓰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특별히 뛰어나 다른 중소기업 제품이 대체할 수 없는 경우라면 홀드업 문제를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 기술을 보유하기란 쉽지 않다.

직장생활도 비슷하다. 30년 평생 회사 하나만 알고 일하다 막상 퇴직하면 할 일이 없어 공황상태에 빠지는 샐러리맨들이 많다. 직장에 ‘올인’한 나머지 삶 전체가 인질로 잡힌 것이다. 애정관계도 비슷할 수 있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집착하다 그 사람이 떠나버리면 실연의 충격에 빠지는 청춘남녀들이 종종 있다. 그렇다고 양다리를 걸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애정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여지는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3부 영화 속 경제학, 국가 이야기



로빈후드는 의적인가 악당인가, ‘로빈후드 효과’ <위험한 관계>

로빈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려다 사회 전체적으로 부가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귀족들에게서 돈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로빈후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로빈후드 효과를 줄이는 방법은 설득이다. 자발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네가 천사 같은 저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내기하자. 내가 이기면 네 땅을 줘, 네가 이기면 나를 줄게. 단 조건이 있어. 그녀의 마음만 사로잡아. 네 마음을 줘서는 안 돼. 자, 내기할까?”

허진호 감독의 영화 <위험한 관계>(2012)를 보면 어느 여자든 마음만 먹으면 정복할 수 있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상하이 최고의 플레이보이 셰이판(장동건 분)이다. 셰이판이 갖지 못한 여자는 단 한 명, 모지에위(장백지 분)인데 돈과 권력, 섹시함을 모두 소유한 팜므파탈이다.

한편 모지에위는 상하이 가전 재벌 진즈환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복수를 꿈꾼다. 그녀는 셰이판에게 진즈환이 좋아하는 16세 소녀 베이베이의 처녀성을 빼앗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셰이판은 “너무 쉽다.”며 거절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지목한다. 정숙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 분)다. 그리고 ‘저 여자를 정복하면 너는 내 것’이라고 모지에위에게 내기를 건다. 이들에게는 사람의 마음도 게임을 위한 도구다. 허진호 감독은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호우시절>을 통해 물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그 물음은 <위험한 관계>까지 이어지지만 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셰이판은 기부천사 뚜펀위에게 한눈에 반한다. 뚜펀위는 화려한 기부행사가 열리는 동안에 호텔 밖으로 나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사망한 남편이 남긴 고가의 목걸이를 동북3성 피난민들을 위해 내놓는다. 또한 “여러분의 기부가 곧 그들의 희망임을 잊지 말아 달라.”며 기부를 유도한다. 언론은 이런 뚜펀위를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칭한다. 사회ㆍ경제적으로 보면 기부는 세금과 함께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한다. 부자들의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전되기 때문이다. 세금이 강제력 있는 조치라면 기부는 자발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 속 모지에위는 기부행사 축사에서 “지금 상하이에 모여든 동북 피난민들은 우리와 공동운명체가 됐다. …… 그들이 다시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기부가 상하이뿐만 아니라 도시 모두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부가 재분배돼 서민들에게 나눠지면 서민들이 그 돈으로 다시 물건을 사 내수를 살린다는 의미다. 정말 세금을 올리거나 기부를 유도해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까? 로빈후드의 경우를 살펴보자. 로빈후드는 탐욕스런 귀족과 상인, 성직자들에게서 재산을 뺏어 서민들에게 나눠줬다. 처음에 서민들은 좋아했다. 그런데 귀족들이 로빈후드에게 빼앗긴 재산을 채우기 위해 서민들을 더 몰아붙였다. 부자상인들은 못 살겠다며 마을을 떠났고, 물건 가격은 상승했다. 결국 로빈후드의 선한 뜻과 상관없이 서민들은 더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로빈후드 효과’라고 부른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사회 전체적인 부는 축소되고 서민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집주인에게 주택보유세를 대폭 물렸더니 세입자에게 전가했다. 전세금을 올린 것이다. 고소득자의 소득세와 법인의 법인세를 대폭 인상했더니 아예 해외로 떠나버렸다. 수요가 줄고 투자가 침체되면서 경기가 위축됐고 서민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부를 재분배하겠다.’라는 선한 뜻에서 시작됐지만 결과는 서민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로빈후드 효과는 보수파들이 부자 증세의 반대 논리로 종종 인용한다. 과도하게 세금을 올리면 부자들이 지갑을 닫게 되고, 그러면 내수가 위축돼 서민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로빈후드 효과를 줄이는 방법은 설득이다. 강제로 빼앗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놓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고소득층은 정부에 세금을 올리더라도 기분 좋게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증세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같은 세금을 올려도 흔쾌하면 문제가 없지만 불쾌하면 반발할 수 있다. 증세나 사랑이나 그 미묘함은 똑같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부자 증세는 결국 보수정권이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통상 부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증세를 단행할 경우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서민 살기는 1980년대가 좋았다? ‘골디락스 경제’ <써니>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늘면서도 물가는 안정된 이상적인 경제상황을 말한다.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속 금발 소녀의 이름이다. 골디락스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곰이 사는 집에 들어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수프를 맛있게 먹는 데서 ‘골디락스 경제’가 유래됐다.

그 시절, 어느 학교나 칠공주가 있었다. 육공주도, 오공주도 아니고 꼭 칠공주였다. 화장을 짙게 했고, 교복치마는 짧았다. 가끔은 담배를 꼬나물며 나이트클럽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드잡이를 하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고, 옆 학교 오빠들과 어울리면서 갖가지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 아이들, 지금쯤 주부가 되기도 했을 텐데 자녀에게 과거를 고백했을까?

영화 <써니>(2011)는 진덕여고 폭력서클 ‘써니’의 이야기다. 써니는 소녀들의 영웅이던 심야 라디오방송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 ‘종환이 오빠’가 칠공주의 영원한 우정을 기원하며 붙여준 명칭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여 년이 흐른 오늘, 나미(유호정 분)는 사장님 사모님이다. 물질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그녀지만 창밖으로 지나가는 햇살 속 10대들이 부럽다. ‘그렇지, 나에게도 저 시절이 있었지.’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나미는 써니의 리더였던 춘화(진희경 분)를 만난다.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춘화는 나미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써니 멤버 칠공주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그녀들. 나미는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누구에게는 거칠고 힘들었을 1980년대, 그러나 학창 시절을 보내는 그녀들에게는 찬란한 시절이었다. 전경과 대학생이 맞부딪치는 것도, 또 다른 폭력서클 ‘소녀시대’와의 격렬한 싸움도 그래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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