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변양균 지음 | 바다출판사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변양균 지음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 332쪽 / 13,800원
제1부 노무현이 꿈꾼 대한민국의 20년 후
살아온 길이 반대인 ‘대통령과 참모’
노무현 대통령과의 첫 만남: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참모가 된 것은 철저히 일로 엮인 일이었다. 인연의 시작은 당 파견근무였다. 나는 2000년 초부터 2002년 초까지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가게 됐는데, 이는 당정 협조를 위해 만들어진 ‘고위공무원 파견제도’ 때문이었다. 그 뒤 2002년 대선에 대비한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던 2001년 어느 날, 나로선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당시 당 대선 후보들은 중앙당 직원들에게 인사를 겸해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식사를 샀는데, 후보들이 어떤 말을 하나 궁금해 이인제 상임고문과 김근태 상임고문이 식사를 살 때 각각 참석해 봤다. 예상한 대로였다. 후보들이 연설하면 참석자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고, 연설이 끝나면 형식적인 박수를 치고 각자 식사하기 바빴다.
노무현 상임고문도 식사를 산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그 장소에 갔다. 시작 시간 훨씬 전에 갔는데도 넓은 식당이 가득 차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 미리 자리를 잡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식당 입구 쪽에서 고함 소리, 휘파람 소리,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노무현 상임고문이 식당에 도착한 것이었다. 놀랐다. 식당 입구에서 자리로 오는 것조차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환호하는 직원들 때문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할 때도 박수가 쏟아졌다. 다른 후보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유가 무엇일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희망: 이튿날 동료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조심스러워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해가 갔다. 노무현은 그들의 희망이었다. 왜냐하면 노무현만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희망이고, 그것만이 민주당 집권의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동료 직원이 나를 조심스러워 했던 이유는 ‘계급’ 때문이었다. 하급 당료인 그 직원 입장에서 보면 나는 상류층이자 가진 자였다. 당연히 반(反)노무현에 속할 사람으로 예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노무현 고문에 대해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2년 나는 친정인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으로 행정부에 다시 복귀했다. 부처 복귀 후 얼마 되지 않아 노무현 후보 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저녁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돈 안 드는 정치’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국가 재정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국가 재정을 국민을 위해 배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국가 재정의 존재 이유…….’ 경제ㆍ재정 전문가로서 나의 오랜 고민이었다. 어쨌든 나는 국가 재정의 ‘존재 이유’에 맞춰 재원 배분을 하기 위해선 기존의 예산 편성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재원의 한도에 맞춰 지난해 편성된 사업에 조금씩 깎거나 보태서 편성하는 소위 답습주의로는 합리적 재원 배분이 불가능하며, 언젠가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국가 차원에서 분야별로 먼저 재원 배분을 하고, 그 분야 내에서 필요한 사업별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지출 규모도 단년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산 편성 방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북유럽 선진국 등에서 운용하고 있는 소위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아니, 그를 통해 나의 구상을 실행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노무현 후보에게 “예산 편성 시스템부터 바꾸는 재정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재원 배분’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재정 개혁을 위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1년짜리 예산에서 벗어나라
틀을 깬 파격, 20년 후를 준비하다: 국가 재정의 작동 시스템을 바꾸려면 우선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3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봐야 한다. 한 해를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하다 보면 많은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기획예산처 차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로부터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들을 인솔해 대통령을 만나러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파격적인 지시였다. 20여 명의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을 인솔하고 청와대로 갔다. 대통령은 먼저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했다.
그리고 다 듣고 나중에 종합해서 각 부처 실장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주된 내용은 다름 아닌 재정 개혁이었다. “각 부처에서 소관 예산을 편성할 때 미래를 대비한 예산이 되도록 해 달라.”고 강력히 당부했다. ‘국가 정책과 재원 배분 간의 연계’도 강조했다. 그리고 “폭넓은 시각에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민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주문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은 기획예산처에 내린 주문이었고, 각 부처가 그 방향으로 기획예산처를 도와주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2003년 3월, 대통령 연두 업무보고를 하면서 재정 혁신의 골격을 제시했다. 물론 이때 제시된 골격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톱다운 예산 편성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필수적으로 따르는 5년 기간의 중기 재정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그리고 성과 관리 예산 제도, 디지털 예산 제도의 도입, 예산 편성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 확대, 공기업 개혁 등등이었다.
작업반장이 된 대통령: 나는 국가 철학에 맞춰 재원 배분을 하려면 대통령이 전 국무위원과 함께 참여한 가운데 국가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처음 시도한 대통령 주재 재원 배분 회의는 시작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재원 배분 회의는 탄핵 정국이 마무리된 6월 19일에야 열렸다. 이러한 준비 작업을 바탕으로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장기 국가 재정 운용 계획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5년 12월 6일, 계획서 초안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첫 보고를 했다. 일종의 중간보고 성격이었다.
대통령은, 적절한 때 제대로 된 내용을 들고 왔다고 기뻐했다. 청와대 1차 보고를 하고 나서 우리는 작업팀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우선 비전 작업 TF(60여 명의 민관공동 7개 팀) 회의를 팀별로 4~7차례 더 열어 주요 이슈들을 재분석했다. 1차 보고 때 부족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보완하고 더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몇 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 2006년 2월과 6월에 두 차례 더 중간보고를 했다. 비공식 서면보고도 세 차례나 했다. 보고 때마다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었다. 사실상 대통령이 작업반장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출물이 바로 <비전 2030>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 <비전 2030>
<비전 2030>이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렇다. “모든 국민에게 원활한 계층 이동과 다양한 기회를 보장한다. 근로자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실업 걱정에 매달리지 않게 한다. 기업인에게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규제 완화는 물론, 필요한 규제는 투명하게 운영한다. 학생ㆍ청소년에게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제공한다. 여성에게는 출산ㆍ육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노인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한 노후 생활이 가능하도록 한다. 장애인은 삶의 질이 향상되고 완전한 사회 일원으로 통합되도록 한다.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기초생활과 건강을 보장한다. 농어업인은 활력이 넘치는 살기 좋은 환경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한다.”
무덤 속으로 들어간 대한민국의 미래
2006년 8월 30일, 마침내 <비전 2030>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발표 뒤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비전 2030>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했다. 보수 신문들은 공격을 쏟아냈다. “증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탐지용”이라고 매도하거나 “세금청구서”, “차기대선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정권 재창출을 도와야 복지 정책이 계속된다는 대선용 메시지가 아닌지 의혹이 있다”는 식으로 국민을 협박한다고 보기도 했다. 사설은 더 심했다. “허황된 미래상으로 국민을 현혹하려는가?”, “허튼 수작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1100조 돈은 어디서……”, “세금 먹는 하마 노 정부의 <비전 2030>”……. 진보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적 언어는 절제했지만, 보수 언론의 비판과 비슷했다. 다른 신문들도 대동소이했다.
또 당시 야당(한나라당)의 호의적인 평가는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비판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언론과 야당의 공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마저도 지지를 보내 주지 않았다. 사면초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안했다.
정말 세금 폭탄이었나? 재원 조달의 세 가지 방법: <비전 2030>에서 제시된 추가 재정 소요 1100조 원을 2006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400조 원 수준이다. 25년간 매년 평균적으로 GDP 2% 수준에 해당하는 돈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 경제로 가려면 어느 정도의 국민 추가 부담은 불가피하다.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인 복지 지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할까? 2006년 당시 GDP 대비 복지 지출은 8.6% 수준이었다. 그래서 <비전 2030>에서는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을 2020년경 2001년의 미국과 일본의 복지 지출 수준(GDP 대비 15~17%), 2030년경에야 2001년 OECD 평균(GDP 대비 21%)에 이르는 수준으로 제시했다.
참고로 <비전 2030>에서는 재원 부담 방법에 대해서도 증세를 주장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을 얼마만큼의 국민 부담으로 추진할지는 결국 국민이 선택할 문제다. 물론 2011년 이후 추가 재원 조달 방안을 고민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대통령과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2010년까지는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ㆍ감면 축소 및 세정 합리화와 투명성 재고 등을 통해 증세 없이 추진한다. 2011년 이후 추가 재원 조달 방안은 국민적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구체적으론 이런 방식이 있을 것이다.
첫째, 국가 채무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행정부 단독 결정으로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고, 현 세대엔 부담이 없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 그러므로 정치적 부담은 적다고 볼 수 있으나 국가 채무 누적으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약화될 수 있다. 둘째, 조세로 조달하는 방법이다. 납세자의 저항과 국회의 반대가 예상되어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항구적인 재원 조치이기 때문에 건전 재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셋째, 국채와 조세로 나누어 충당하는 방안이다. 세율 인상폭은 다소 줄어들지만,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미래 세대로의 부담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장래를 위해 할 수만 있다면 국민들의 동의하에 조세로 조달하는 방안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처럼 국채를 통해 조달할 것인지, 뉴질랜드처럼 조세로 충당할 것인지, 독일처럼 국채와 조세를 혼합해 충당할 것인지 또는 조세로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담배, 주류, 도박 따위에 부과하는 악행세로 할 것인지, 방법은 다양하다. 선택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무섭다고 피할 일이 아니었다: <비전 2030>은 2006년 8월 발표된 직후부터 제대로 논의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개혁을 추진할 만한 정치적 기반과 동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2030년이 국민들에게는 너무 먼 미래로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 발전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준비했던 그 모든 노력의 결과가 허망하게 논쟁의 장에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사실상 <비전 2030>폐기를 선언했다. 지나치게 장기적이며 ‘고세금 고복지’ 정책으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비전 2030>은 당시 우리 사회가 직면했던 구조적 문제들을 모두 포괄한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이었기 때문에,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도 대부분 <비전 2030>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복지’다. 민주당은 소위 ‘3+1’ 정책을 내세웠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그리고 반값 등록금이 ‘3+1’이다. 민주당의 ‘3+1’ 무상복지 정책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던 한나라당도 최근에는 반값 등록금을 내세우며 민주당이 제기한 복지 담론에 뛰어들고 있다. 아무튼 최근 복지 논쟁 또한 (시혜적 복지를 넘어) 사회복지도 곧 ‘투자’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했던 <비전 2030>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하자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먼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무엇인가? 수출주도형 압축 성장식 모델을 해체하고 양극화 현상, 저출산ㆍ고령화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해결책을 택할 것인지, 어떤 길을 통해 어떤 목적지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우리 사회 다양한 주체들이 당리당략과 사심을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방법론 면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국가 발전을 위해 여야, 민관 모두 마음을 열어 진정한 대화를 나눠야만 한다.
제2부 노무현의 경제학 10강
소외 없는 따뜻한 사회가 경쟁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간적으로만 따뜻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로서 경제 정책과 복지 정책을 접근하는 마음에서도 참으로 따뜻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철학을 잘 보여 주는 두 가지 표현이 있다. “자동차 뒤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속도를 높여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빠른 발전은 성공했지만 고른 발전은 실패했습니다.” 자동차로 상징되는 고속 성장의 뒷자락에 바동바동 매달려 있는 서민들의 고통을 국가가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을 그대로 낙오시킨 채, 아니 처참하게 매단 상태에서 내달리는 고속 성장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 해결과 사회보장 체제, 복지 시스템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때 언제나 항상 나에게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참여정부 시절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양극화 문제를 절감하게 되는 시기였다. 보수 정권이 야기한 거품경제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왔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계화 개방 질서를 확대했다. 때마침 저임금을 무기로 한 중국의 개방과 세계 진출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등 저생산 분야를 강타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노무현 정부다. 임기 내내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치ㆍ언론의 지형상으로도 너무나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빈부격차를 눈에 띄게 줄이지 못했다. 이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노무현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세금 문제 침묵하면 미래는 없다
얼마 전 재정의 적정 규모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우리 정부의 재정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큰지 작은지, 향후 재정 규모를 더 늘려가야 하는지의 여부까지 연결된 문제였다. 참고로 우리나라 재정 규모는 OECD 기준으로 지난해 GDP 대비 28% 수준이다. 선진국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왜 그럴까? 선진국들은 사회복지를 구축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과 관련 지출을 확대한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부담’과 적어도 복지와 관련해서는 ‘작은 정부’를 선호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