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지음
이다미디어 / 2014년 6월 / 376쪽 / 16,500원
예수가 채찍을 휘두른 이유는? - 고대 성전의 독점과 담합
지오토 그림 속의 분노한 그리스도: 이탈리아 파도바에는 중세 후기 이름난 부자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의 개인 예배당이 남아 있다. 지오토 디 본도네가 전성기에 그린 보석 같은 프레스코 벽화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아치형 천장은 짙푸른 바탕에 금빛 별로 가득하고, 성모자와 성인들의 초상이 해와 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양옆 벽면과 기둥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후면 벽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예수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 중에 놀라운 그림이 하나 있다.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그림 오른쪽에 있는 두 남자를 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온화하고 자비로운 이미지에만 익숙한 이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오른쪽에 있는 턱수염이 난 남자는 놀라 어쩔 줄 모르며 두 손을 들어 올린 반면, 턱수염이 없는 젊은 남자는 두려워하면서도 ‘아, 왜 나만 갖고 그래요?’ 하는 것 같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한 손만 들고 있다. 그의 다른 손에는 빈 새장이 들려 있고, 그의 발밑 우리에서는 놀란 양 한 마리가 뛰쳐나가고 있다. 비둘기를 가진 한 아이는 채색이 다소 벗겨진 탓에 마치 제자의 의상 무늬처럼 보이게 돼버렸다. 하지만 나머지 한 아이가 다른 제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모습, 또 그 제자가 아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고 생동감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지오토의 그림답다.
지오토의 작품은 구도가 전반적으로 간결ㆍ명쾌하고 집중성이 있으며, 각 인물의 몸짓과 표정이 개성 있고 생생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화가이자 저술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그의 저서 《미술가 열전(원제: 이탈리아의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에서, 지오토야말로 중세 미술과 차별화되고 르네상스 미술의 근간이 된 사실적인 묘사를 처음 도입한 화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장면일까? 새장과 짐승 우리는 왜 있는 것이고, 예수는 왜 어린아이들이 겁에 질릴 정도로 거친 모습인 것일까? 이 장면은 《신약성서》의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다.- ‘요한의 복음서’ 2:13-17(공동번역성서)
그렇다면 예수에게 혼이 나고 있는 남자들은 가축 상인과 환전상이고, 어린아이들도 비둘기 상인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 예수가 그토록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전에 궁금한 것은, 어떻게 신성한 성전 안에 이런 동물 장사꾼과 환전상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가축상과 환전상은 어떻게 성전 안에서 영업을 했을까?: 당시 유대인들은 정기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흠 없는’ 소, 염소, 양, 비둘기 등을 희생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야 했다. 번제일 때는 도살한 제물의 모든 부위를, 다른 제사일 때는 특정 부위를 불에 태워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었다. 또 아이를 낳은 산모나 속죄를 할 일이 있는 사람도 그때그때 희생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제물로 바칠 동물을 끌고 성전까지 오는 것이,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는 중에 동물이 다쳐서, ‘흠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게 되거나 병들어 죽는 일도 생겼다. 그래서 결국 성전 바로 앞에서 규정에 맞는 가축을 파는 상인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장사가 성행하면서 그들은 성전 안으로까지 비집고 들어오게 됐다.
또 유대인 성인 남성은 성전세를 정기적으로 내야 했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는 “인구 조사를 받을 사람은 누구나 ‘성전 세겔(Shekel, 화폐 단위)’로 셈하여 반(半) 세겔을 내야 한다. … 이십 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다 인구 조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야훼께 예물을 바쳐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성전 유지에 쓰이는 성전세가 되었다. 성전에서는 오로지 성전 반 세겔은 은화만 받았고 다른 종류의 화폐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외지에 살면서 로마 화폐를 비롯한 외국 돈만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외국 화폐를 성전 반 세겔 은화로 바꾸는 환전이 성행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환전상들도 성전 안으로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탈무드》를 보면, 해마다 과월절이 있는 달의 전달 25일부터 환전상들이 성전 뜰에 일종의 이동 점포를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문제는 이들 환전상이 높은 수수료를 받았고, 희생 제물용 가축 장사꾼들도 바가지를 톡톡히 씌웠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구전 율법을 집대성한 《미슈나》를 보면, AD 1세기에 제물용 비둘기 값이 폭등한 이야기가 나온다. 본래 비둘기는 소나 양을 바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그런 비둘기 값마저 한 쌍당 금화 한 닢까지 오르는 바람에 빈민의 등골이 휠 지경이었다.
서민의 등골 휘게 만든 성전의 독점과 담합: 상인들이 그렇게 값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수요가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의 경우,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든다. 하지만 희생 제물용 동물 값이 올라간다고 누가 감히 신의 불벼락을, 그리고 그보다 먼저 닥칠 대제사장의 벼락을 각오하면서 안 사고 버틸 것인가? 제물용 가축과 성전세용 환전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가격 변화에 지극히 비탄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슈나》를 보면 AD 1세기에 비둘기 값이 폭등하면서 특히 가난한 산모들이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온다. 당시는 산모들은 아이를 여러 명 낳았고, 그때마다 비둘기를 한 쌍씩 바쳐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혜로운 랍비 시메온 벤 가말리엘은 비둘기 한 쌍을 바치는 것은 아이를 5명째 낳을 때마다 한 번씩이면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그날로 비둘기 값이 한 쌍당 금화 한 닢에서 은화 1/4닢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시메온은 비둘기의 수요를 낮춰줌으로써 가격이 하락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의무적인 수요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때 가격 상승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상인들 간의 경쟁이다. 《미슈나》에는 성전 상인들이 탐욕으로 비둘기 가격을 마구 올렸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성전 밖에 그들의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동시에 자기들끼리는 가격 담합을 해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만일 저가 정책을 써서 담합을 깨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성전에서 퇴출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독점과 담합의 뒤에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관계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인들이 성전에 들어오려면 제사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또 희생 제물이 레위기 기준에 맞는지는 성전 측이 판단한다. 참배자들이 외부에서 소나 양, 비둘기를 가져올 경우, 성전 측에서 흠이 있다고 퇴짜를 놓으면 결국 참배자들이 성전 안에서 동물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즉 성전 안 상인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엄청난 상납금을 받아 챙기면서 말이다.
실제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성전이 대제사장 ‘안나스(Annas)의 장터’였다고 했다. 안나스 가문은 대를 이어 로마 황제에게 뇌물을 바치며 장기간 대제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뇌물로 나간 돈을 성전 비즈니스로 메우고 그 이상의 돈을 뽑아냈다. 그러기 위해 친인척과 상납금을 바치는 자들이 제물용 가축 판매와 성전세용 환전 서비스를 독점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라고 한 것은 성전에서 행상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기보다, 독점과 담합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행태를 비난한 것이었다. 게다가 해수욕장 바가지 음료수는 참고 안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희생 제물과 성전세는 그럴 수가 없으니, 독점과 담합으로 그 가격과 수수료를 마구 올리는 것은 악질적인 일이었고 그리스도가 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전상이 엎어지는 모습은 대부업자에 대한 조롱: 야콥 요르단스의 작품 중에 예수의 성전 정화를 그린 것이 있다. 가축 상인들은 그리스도의 채찍을 피하면서 자기 동물과 물건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오른쪽에는 이를 통쾌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화면 중앙에서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넘어지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나이다. 그의 옆으로는 여러 종류의 동전이 쏟아지고 있고 장부도 흩어져 있어 그가 환전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요르단스의 그림은 환전상에 대한 야유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는 물론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까지도, 환전상은 환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업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빌려준 돈에 이자를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고대부터의 시각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대부업을 겸한 환전상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지오토의 걸작 프레스코로 가득한 스크로베니 예배당도 대부업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됐다. 이 예배당을 세운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부친은 대부업으로 가문의 재산을 축적했다. 부친은 단테의 고전 《신곡》의 ‘지옥’ 편에 등장할 정도였다. 《신곡》 제17곡에서 흰 바탕에 푸른 돼지가 그려진 문장의 돈주머니를 목에 건 채 불벼락을 맞고 있는 자가 바로 그다.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지옥에서 불타고 있을 부친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이 예배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가 예배당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예배당 후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 벽화에 묘사돼 있다. 그 바로 옆에는 대부업자들을 비롯한 온갖 죄인들이 지옥에서 악마의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대부업자는 지옥으로’라는 인식은 그 후로도 몇 세기 동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혁명적 속도에 매혹된 화가와 학자 - 산업혁명과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
터너의 그림 속 증기선에 끌려가는 범선: 지는 해의 광선이 장려한 트럼펫 소리처럼 대기 중으로 뻗어나가 구름과 강물 위에 찬란한 금빛 울림을 남겨놓았다. 이때, 유령같이 창백하고 거대한 범선이 돛을 내린 채 그보다 작은 체구의 검은 증기선을 앞세우고 나타난다.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그림 <전함 테메레르> 이야기다. 이 그림의 원제는 ‘해체를 위해 최후의 정박지로 이끌려가는 전함 테메레르’다. 저 장엄하지만 빛이 바랜 듯 희끄무레한 범선이 테메레르인 것이다. 증기선은 그것을 끌고 가는 예인선이고.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해서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던 전함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 높은 배도 세월이 흘러 낡을 대로 낡은 데다가 증기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결국 1838년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됐다. 그 소식을 접한 터너는 템스 강에 나가 이 노장(老將)의 장례 행렬과도 같은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고는 붓을 휘둘러 그 모습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 바로 그림 <전함 테메레르>다. 따라서 <전함 테메레르>는 기본적으로 실제 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하지만 원래 이 범선이 이끌려간 곳은 서쪽이었으므로 석양을 등지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낭만주의 화가 터너는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저녁놀의 장려한 빛과 대기의 떨림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범선이 증기선을 앞세우고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도록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알레고리 같은 작품, 즉 저물어가는 옛 문명과 떠오르는 새로운 기계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수평선 위로 기울어진 태양은 전함 테메레르의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쇠락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 석양이 불그레한 금빛으로 물들인 구름은 마치 죽은 노장을 위해 쏘아 올려진 예포의 포연처럼 대기 중으로 퍼진다. 그리고 증기선이 뿜어내는 불같은 연기는 그 석양의 마지막 빛과 대구를 이루며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 시대 말이다.
증기기관, 산업혁명을 견인하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농업 중심 사회에서 공업 중심 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영국에서 1780년부터 1840년까지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산업화를 가리킨다. 그 변화의 주요 동력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그 밖의 기술 혁신이었다. 물론 단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갑자기 천지개벽하면서 농업과 가내수공업이 주를 이루던 사회가 기계 공업 사회로 변모한 것은 아니다. 영국은 18세기부터 그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이미 봉건사회적 길드가 공장제 수공업으로 전환됐고, 또 농업의 대형화에 따라 몰락한 군소 농민들이 도시의 노동자로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식민지 개척으로 면화를 포함한 풍부한 자원이 해외에서 들어오고 있었고 해외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8세기 후반에 새로운 방적기가 연이어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공장 시대가 열렸다. 기계 제작에 필요한 철을 가공하는 제철업과 제철을 위한 석탄산업이 발전했으며, 마침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증기기관으로 대규모 기계를 돌릴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증기선과 증기기관차가 나타나 운송의 혁신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격변을 미술가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평론가들은 <전함 테메레르>가 위대한 옛것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기계문명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드높은 돛대를 단 창백한 범선 테메레르는 마치 몰락했으나 여전히 기품 있는 왕족처럼 숭고하고 영적으로 묘사된 반면에, 그것을 끌고 가는 시커먼 증기선은 마치 천박한 신흥 세력처럼 속되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터너는 정말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을까? 그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비, 증기, 속도>를 보면 그렇다고만 단정할 수 없다.
기차놀이가 낳은 걸작 <비, 증기, 속도>: 예술ㆍ사회평론가 존 러스킨에 따르면, <비, 증기, 속도>는 터너가 기차를 보면서 그린 게 아니라, 기차를 타본 다음 그 인상을 바깥에서 본 시점으로 재구성해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당시 많은 영국인이 특별히 목적지가 없어도 증기기관차에 오르곤 했다. 기차가 주는 그 놀라운 속도감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획기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기차를 타는 것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런던 토박이 터너는 어느 비 오는 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 풍경이 열차의 빠른 속도로 인해 쭉쭉 늘어나고 흔들리고, 빗줄기 속에서 어그러지며 빛과 뒤섞이는 것을 봤다. 또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바람으로 그 속도를 느꼈다. 터너는 그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혁신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던 것이다.
<비, 증기, 속도>의 과장된 원근법은 그림의 주인공인 증기기관차가 더욱 극적으로 속도감 있게 모습을 드러내게 해준다. 빗줄기와 안개를 뚫고 나타나는 기차의 불빛을 보고 있으면 증기기관의 굉음까지 귀에 들릴 듯 박진감이 넘친다. 고전주의 풍경화들과 달리 거친 붓질로 묘사된 빛과 대기의 떨림이 역동성과 속도감을 더해 준다. 이 그림이 증기기관차의 새로운 기계문명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을 드러내는지, 반대로 흥미와 끌림을 나타내는지 애매하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산업혁명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던 러스킨은 이 그림에 대해서도 ‘참으로 추한 소재’를 애써 잘 다뤘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터너는 그전부터 동적인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고, 또 굳이 기차를 타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는 걸 보면, 새로운 탈것이 주는 속도감과 에너지에 매혹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