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 더숲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더숲 / 2014년 6월 / 235쪽 / 14,000원
제1부 부패하지 않는 경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 나의 샐러리맨 시절,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어린 시절부터 시골과 농사일을 막연히 동경했던 나는 서른 살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작은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들어갔다. 농산물 도매회사는 농산물이 수확되기 전에 미리 소매점과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작황은 하늘이 정하는 법, 당연히 계약서 내용대로 작물이 갖춰지지 않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회사에서 농산물의 산지를 속이는 방식으로 계약을 이행했다. 일하면서 ‘이건 원산지 허위표시잖아?’ 하는 생각에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어느 날 상사가 자재업자를 봐주고 뒷돈을 챙기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상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의 부정을 윗선에 보고했다. 그랬더니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내 모든 직원들의 눈총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회사 일이 갑자기 힘들어졌다.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아침마다 나는 헛구역질을 했고, 코피를 맨날 달고 살았다. 나보다 먼저 폭발한 사람은 훗날 아내가 된 마리였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신입사원이었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돼 연애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말은 유기농이라면서 농산물을 장삿거리로밖에 보지 않아. 이런 데서 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입사 2년째 되던 해 마리는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이런 데서 일하다가 몸까지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회사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워 선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나를 향해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 어, 이건 할아버지 목소리?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 군의관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꿈결에 나타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할아버지라고 확신했다. “그래, 빵을 만들자.”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모든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우울한 감정들이 전부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제빵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
역 자도 모르는 처지였다. 마리마저 의아해했다. “뭐, 빵이라고? 아니 왜?” 우리 부모님과 친구들은 ‘이타루가 또 백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2년 12월 나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마리와 살림을 차렸다. 당장 기술을 배울 곳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사실상 백수로 돌아간 셈이었다.
마르크스와의 만남 ?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4년 반 동안 빵집을 네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제빵 기술을 배웠다. 2007년 4월부터 나와 마리는 다니던 곳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빵집 개업을 위해 움직였다. 가게 자리를 찾기도 힘들었고 개업 자금을 아끼려고 내외장 공사를 직접 하느라 애를 먹었다. 고생 끝에 그해 말이 되어서야 겨우 메뉴 개발에 들어갔다. 재료를 정하고 레시피를 짜고 가격을 붙였다. 그러나 개업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빵을 만드는 재료인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의 주택거품이 붕괴되자 글로벌 투기자금이 상품시장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었고, 결국 곡물가격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경제상황도 악화되었다. 직장인은 정리해고의 칼날에 떨어야 했고,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했다. 국경을 초월한 이윤창출을 노리고 대규모 자본을 들이붓는 투기세력이 서민의 삶을 망치고 있었다. 그 문제는 내가 먹거리 세계에서 겪는 모순과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이타루, 너 마르크스를 읽어보지 그러니?” 부모님 댁에서 연말연시를 보내던 나는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불황 때문에 개점 직후 악전고투 중이라는 말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학자인 아버지가 마르크스를 읽을 것을 권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매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던 첫 번째 빵집의 수련 시절이었다. 마르크스는 약 200년 전에 태어났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는데,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과 빈곤에 시달렸다. 나는 마르크스가 당시 빵집 상황을 묘사한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배후에 자본가가 있는 빵집들은 오로지 종업원을 장시간 부리는 방법으로 엄청난 저가를 실현했다. 가혹한 노동환경 탓에 빵집 기술자의 대부분은 건강을 해쳤고 수명이 마흔둘을 넘기는 예가 드문 실정이었다. 책을 읽던 당시 내 나이도 마흔둘이었다. 날마다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첫 번째 빵집. 나는 왜 그렇게 혹사당해야 했을까? 마르크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자본가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자본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구조에 편입되어 노동자를 학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노동력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하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가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상품이 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유로운 신분일 것, 다른 하나는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빵집 수련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 내 노동력을 팔지 않았다. 나 자신의 의지로 사장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빵을 만드는 기계와 재료, 즉 생산 수단을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팔기 싫다면 자기 소유의 생산 수단을 가지면 된다. 그 점을 깨달은 나는 제빵 기술을 익혀 내 가게를 열고, 생산 수단인 오븐과 믹서 등을 갖추었다. 또한 근처 농가에서 재료를 구입하여 불안정한 시장에 좌우되지 않는 방법을 실천했다. 그렇게 조금씩 희한한 빵집의 스타일을 완성해갔다.
균과 기술혁신 이야기
빵을 만들려면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숙성시켜야 한다. 반죽을 만들어놓으면 그 안에서 무수한 균들이 발효 작용을 일으킨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효모는 밀에 포함된 당분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출한다. 밀가루를 빻아 물로 반죽하면 단백질이 결합하여 점성과 탄력을 겸비한 글루텐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 글루텐이 효모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꽉 붙들어두기 때문에 빵 반죽은 풍선처럼 부풀게 된다. 효모와 밀의 찰떡궁합이 발효라는 신비한 작용을 통해 빵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빵집 수련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시 내가 이해가 안 간 부분은 이스트와 천연효모의 차이였다. 당시 빵집에는 공부깨나 할 것처럼 보이는 아르바이트 청년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스트와 천연효모의 차이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연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천연효모가 존재해요. 보이지 않을 뿐 모든 장소에 서식하죠. 그 많은 야생 효모 중에서 제빵에 적합한 효모를 골라내 인공적으로 배양한 것이 바로 이스트예요. 영양이 풍부한 배양액 속에서 효모를 증식시키는 방법을 쓰는데, 그 안에 첨가물이 여럿 들어가기 때문에 이스트가 몸에 나쁘다는 거예요. 또 효모를 개량하기 위해 약품을 쐬거나 방사능을 쏘이기도 한답니다.” “이스트는 안 좋으니까 천연효모로 빵을 만들자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것 말고도 이유가 또 있어요. 맛과 향기가 다르거든요. 이스트로 빵을 만들면 맛과 향이 단조로워요. 반면에 천연효모를 쓰면 다양한 성질을 가진 서로 다른 효모가 작용하기 때문에 풍미가 확실히 다르죠.” “안전하고 맛도 좋다면 다들 천연효모로 빵을 만들면 될 텐데 이스트는 왜 쓰는 거예요?” “균이 많으면 발효 관리가 어려워요. 게으른 균, 부패시키는 균까지 섞여 들어가니까 온도나 습도, 주위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거든요. 편하게 관리하려고 이스트를 쓰는 거죠.”
빵이 일본에 상륙한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당시에는 이스트가 없었으니 발효시키기가 빵 만드는 기술의 핵심이었다. 발효 기술은 빵집의 비전으로 여겨져 스승이 제자에게 도제식으로 전수했다. 하지만 1920년대 이스트 제조법과 이스트를 이용한 제빵 기술이 확립되면서 누구나 간단히 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스트는 빵집의 경영과 노동 형태를 바꾸어놓았다. 제빵이라는 작업에서 기술과 숙련도가 필요 없어졌고, 스승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 제도가 무너졌다. 대신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적 고용관계가 빵집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정당한 가격을 매겨야 하며, 제빵사는 본인의 기술을 살린 빵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빵집이 지향하는 바이다.
부패하지 않는 빵과 부패하지 않는 돈
빵집 수련 시절 사장은 빵집 간판에 천연효모라고 당당히 써 붙여두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이스트와 마찬가지로 비닐 자루에 든 ‘천연효모 빵종’이라는 것을 업자에게 받아서 반죽에 섞은 뒤 빵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아르바이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천연효모 빵을 찾는 손님들이 많으니까 비싼 가격에 파는 거죠. 빵집은 어딜 가나 경영이 어려우니까 빵종이 장삿거리가 됐어요. 웃긴 얘기죠.” 빵집에 다니면서 신경 쓰이는 점은 또 있었다. 색소와 향료를 마구 섞어 빵을 만들면서도 무첨가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행위였다. 그는 그런 조작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예외적으로 첨가물 표시를 생략해도 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어요. 가공보조제라고 해서 조리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과 캐리 오버(carry over)라고 해서 원재료에 들어 있는 첨가물, 영양강화제라고 해서 영양을 강화할 목적으로 넣은 첨가물은 표시를 안 해도 돼요. 무엇보다 가게에서 만든 물건을 그대로 파는 대면판매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뭘 얼마나 썼는지 표시할 의무 자체가 없어요.” 그러나 나는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물질은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먹거리를 다루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여야 한다고 믿는다. 첫 번째 빵집에서 일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코를 훌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밀 알레르기 반응인데, 수입 밀에 농약을 뿌리기 때문이다. 농약 성분 때문에 제빵사들은 대부분 코가 안 좋거나 피부가 상하게 된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할 물질마저 일정 기간 억지로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첨가물과 농약 같은 식품 가공 분야의 기술혁신도 마찬가지 작용을 일으켜 자연의 섭리에 반해 부패하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음식은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나아가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시키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써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간다.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에서 벗어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돈이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은 이윤과 대금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바로 이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내용이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도심지의 빵집에서 수련하면서 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것과 정반대로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시골빵집은 단순함을 지향한다. 만드는 자에게는 직업으로서, 소비하는 자에게는 먹거리로서의 풍성함을 지키고 키워가기. 그러기 위해 비효율적일지언정 더 많은 정성으로 한 번이라도 더 많은 손길을 거쳐서 공들인 빵을 만들고, 이윤과 결별하기. 그것이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다. 마르크스가 찾아낸 자본주의의 모순을 풀 열쇠는 균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바로 그것이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시골빵집이 구워낸 자본론이다.
제2부 부패하는 경제
어서 오세요. 여기는 시골빵집입니다
“오늘은 있어요?” “호밀빵 말씀이시죠? 오늘은 있습니다!” “다행이다. 전엔 없더니…” “그랬죠? 모처럼 오시는데 그땐 죄송했어요. 저희 가게는 요일별로 메뉴를 바꾸거든요. 호밀빵은 금요일에 나옵니다. 근데 호밀빵을 유난히 좋아하시네요.” “살짝 신맛이 나는 게, 자꾸 당겨요. 또 사러 올게요.”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호밀빵을 쓸어가는 중년 남성 이야기다. “하, 이 빵을 먹고 나면 다른 빵은 입에 댈 수가 없다니까.” 우리 가게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주변에 커피와 맛있는 빵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며 목요일마다 카페를 찾아주는 우아한 중년 여성들의 모임도 있다. 공방에서 빵을 만들면서 바로 옆 매장에서 마리와 스태프가 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한없이 행복해진다. 가끔 공방 유리문으로 내다보는 평일의 거리 풍경은 종일 고요하다.
오카야마 현 마니와 시 가쓰야마. 우리 가게가 터를 잡은 인구 8천 명의 이 마을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2008년 2월 지바 현 이스미 시에서 처음 가게를 연 이후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우리는 이곳 가쓰야마로 이주해 2012년 2월 새 가게를 열었다. 장사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을 우리 부부가 선택한 이유는 가쓰야마에 숨어 있는 커다란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아사히가와 강과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술 양조장이 바로 그 보석이다. 발효와 양조 문화가 면면히 이어져온 이곳은 분명 균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장인들이 사는 곳이라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넘친다. 우리가 빵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고택이 죽 늘어서 있기도 하다. 작은 마을이라 좋은 점도 있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8살 난 딸 모코와 4살 난 아들 히카루는 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사랑받는 아이들이다. “아유, 빵집 아이들이로구나. 오늘은 무슨 일로 행차하셨나?” “손님 안내하는 중이에요.” “세상에, 착하기도 해라.” 마을 곳곳에서는 이런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우리 빵집 이름은 ‘다루마리’이다. 이국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나(이타루)와 아내(마리코)의 빵집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지은 것이다. 나는 빵을 잘 만들지만 배포가 부족한 탓인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끙끙 앓는 성격이다. 독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출은 형편없었다. 나 혼자라면 가격을 내려서라도 일단 팔았을 텐데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심지가 굳어서 주변 여건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덕분에 나는 가격을 뛰어넘는 품질의 빵을 만들겠다는 장인정신을 활활 불태울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이 힘을 합해야 가게가 돌아가니 우리는 말 그대로 일심동체다.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마리는 가게 경영을 맡고, 나는 제빵을 맡아 다루마리를 꾸리고 있다.
우리가 만드는 빵은 5가지 효모를 이용한 것으로 종류는 30가지에 이른다. 요일마다 서너 종류로 스무 가지 안팎의 빵을 만든다. 월ㆍ화ㆍ수요일은 휴무다. 대표 메뉴는 일본 술 양조에 쓰는 효모로 만든 주종 빵(쫄깃하고 촉촉하면서 살짝 단맛이 나는 빵)이며, 빵의 평균 가격은 400엔이다. 일주일에 사흘 가게를 닫고, 일 년에 한 달 장기 휴가를 간다. 매달 매상은 200만 엔 안팎이다. 직원은 우리 부부와 미나토 군과 미우라 군, 우리 집 아이들 둘까지 합해 모두 6명이다. 우리 식구의 살림집으로 쓰는 가게 건물은 2층을 생활공간으로 쓰고, 1층을 공방과 카페와 주방으로 개조해 쓰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 가게를 희한한 빵집이라 부른다. 우리 부부가 지향하는 빵집은 ‘부패하지 않은 경제’의 정반대 개념과 통한다. 규모는 작아도 진짜인 빵집이다. 가급적 우리가 사는 고장의 재료를 쓸 뿐 아니라 환경과 사람, 지역에 의미 있는 재료를 선택한다. 이스트나 첨가물을 섞지 않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드는 데 가치를 둔다. 우리는 제대로 된 먹거리에 정당한 가격을 붙여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판다. 또 만드는 사람이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만드는 사람이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