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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불가능한가

박연수 지음 | 북오션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불가능한가

박연수 지음

북오션 / 2014년 4월 / 296쪽 / 15,000원





Chapter 01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이념)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보호한다는 민주공화국의 이상이 정파적 이념 앞에 굴복하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배경, 경제적 수준에 따라 자신만의 사회ㆍ정치적 가치 체계가 형성된다. 이를 우리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념이라고 한다. 개념의 이념에 대해서 누가 선이고 악인가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쪽으로 줄을 서고 이것이 투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념을 왜곡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너무 많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발붙이지 못했다.

오랜 정당 역사를 가진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경제적 계급 차이에 따라 지지 당원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들이 오히려 경쟁 붙이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보수 쪽에 가서 자리 잡는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 논리가 지배하던 한반도에서 좌라는 용어는 금기시되었고 정적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념은 본래 이런 것이 아니다. 이념을 드러내고 논쟁해야 더 나은 길을 찾아 사회가 진보한다. 논쟁을 통한 사회 진보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만 쫓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좌파라는 말도 안 되는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국민이 이러한 구도를 깨지 못하면 좌파의 가치는 광장으로 나오기 어렵다.

보수 쪽에서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몰아세웠지만 그는 좌파가 아니었다. 그의 정부가 국토 균형 개발 아젠다를 밀어붙여 전국 곳곳이 개발로 몸살을 앓았고 이 호재를 타고 전국의 땅값이 상승했다. 그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대학 설립을 자유화하고 대학 등록금도 시장 논리에 맡겼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권과 문화적 자유는 진보했을지 몰라도 경제적 불평등은 매우 심해졌다. 이 정도임에도 그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자들은 정신병자다. 좌파는 그의 경제 정책과 대척점에 있는 자들이 말하는 가치다.

그리고 우파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치 집단의 실상은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극우 정치 집단일 뿐이다. 극우 논리가 판치다 보니 유럽 정당 대부분이 정책으로 받아들인 부유세, 부동산 보유세가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대중 조작에 나서도 통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테제임에도 정서적 반감에 부딪치고 있다. 세계화 경제를 받아들인 독일도 10년 이내의 부동산 거래에 의한 시세 차익은 대부분 세금으로 환수한다. 때문에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이 장기 공공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정치를 떠나 균형과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좌파 경제학이 실현된 모습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좌’의 논리는 박해받았고 정치적으로 해석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만 외칠 줄 알았지, 경제성장의 폐해에 대한 어떠한 처방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암울한 그림자를 거둬내고 만인이 경제성장의 햇살을 받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판을 갈아엎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 위기에 대해 칠판 경제학(주류 경제학)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소위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이 모순 덩어리의 한국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만인이 행복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만인이 행복한 자본주의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행복한 자본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도그마다.

핀란드는 보편적 사회복지를 실천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유연하게 대응해왔다. 13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독립할 때까지 핀란드는 재정러시아 내의 핀란드공국이었다. 20세기 초에 독립의 꿈은 이뤘지만, 신생 독립국 핀란드의 경제ㆍ정치적 여건은 불안정했고 계층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리한 환경이 사회 통합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활용됐다. 핀란드의 사회복지는 1895년에 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에서 독립한 1917년, 8시간 노동제를 유럽 최초로 시작했고 의무교육법은 1921년에, 국민연금은 1937년에 만들었다. ‘국민 복지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진다’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편에서 참전함으로써 종전 후 소련에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자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국민은 궁핍했지만, 그럼에도 사회복지의 이상은 후퇴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됐다. 국가가 어려울수록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복지국가 건설을 향한 노력이 가속화해, 이를 사회통합의 계기로 삼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핀란드의 사례를 1인당 GDP가 2만 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당시 유럽의 후진국으로 국가적 역량이 부족했던 핀란드에서 이런 과감한 복지 정책이 짧은 기간에 추진됐다는 것을, 그것도 70년 전에 말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배경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납득되지도, 납득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핀란드는 GDP의 8%를 복지 정책에 쏟아부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었고 이것이 주춧돌이 되어 오늘날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이것이 얼마나 효용성 있는 정책이었는가를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가본 적이 없는 길은 항상 두렵다. 그러나 그 길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면 어떤 장애물도 넘고 가야만 한다. 그 길은 바로 20세기 복지국가 모델을 현실화시킨 좌파 경제학을, 정치성을 배제하고 적극 수용하는 것이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 날개로 나는 경제 체제로는 만인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Chapter 02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변화다(부동산)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변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때려 부수고 콘크리트 건축물로 세상을 도배하는 것일까. 환경은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공존하는 것이 우선이다. 때려 부수고 나면 과거의 역사는 사라진다. 과거의 역사는 한 권의 스토리텔링이 되어 문화 자원이 되고 경제적 가치를 생산한다. 인간에 비해 한참 하등한 생물에 불과한 연어가 어떻게 대양을 회유하고 자신이 부화된 곳을 찾아가는지 연어의 회귀본능은 경이롭다. 회귀본능은 본래 인간의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화영 선생은 “인간의 삶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계획이 균형을 이뤄야 온전해진다. 인간은 기억이 없으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 한데 우리 사회의 재개발 바람은 삶의 흔적(기억)을 산산이 깨부순다”고 말했다. 나는 김화영 선생의 말을 빌리면 정서적 실향민이다. 내 고향 이문동 산동네는 과거 기억의 단서가 될 만한 곳이 싸그리 없어졌다.

옛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그 자체가 산업자본이다. 산업자본 중에서도 리스크가 없는 무위험 자산이고 그 생명력은 영원하다. 이런 장사가 어디 있는가. 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사업이다. 이탈리아, 스페인은 개발을 선택하는 대신 사는 데는 다소 불편하지만 옛것을 지킴으로써 세계 최고의 관광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발생한다. 캐나다에서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밴쿠버가 속해 있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주도는 빅토리아다. 이 도시에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5년에 유럽에서 귀향한 제대 군인을 위해 지은 낡고 허름한 맨디스아파트가 그대로 있다. 도시 건설이 1843년에 시작돼 겨우 170년밖에 안 된 빅토리아는 이 하찮고 낡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조차 역사 유적화하고 상품화시켰다.

사람들은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경쟁력 있는 인프라를 ‘초고속 인터넷’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우리의 경쟁력 있는 인프라는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을 고이 간직한 백두대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능선이다. 이 자체가 가만히 두면 천 년, 만 년 갈 수 있는 관광 인프라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행태는 가만두면 되는 것을 개발을 못 해서 안달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가만두면 자연이 된다. 현재 지방 자치 단체가 자연 환경을 개선한답시고 내놓은 개발 계획은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행위다. 지금이 개발 성장 시대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더 이상 대규모 토건 사업은 경제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상황에서 값이 오르는 부동산은 한옥뿐이다. 실제 서울 북촌, 가회동, 삼청동에 있는 한옥들은 가격이 폭등하고 돈이 있어도 매물이 없어 못 산다. 투자의 트렌드가 바뀌었기 때문인지 모르나, 옛것에 대한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30년 후 서울의 모습이 궁금하다. 경제적 과학성을 대입시켜 미래를 예측한다면 서울은 아비규환의 도시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탐욕에 눈먼 정치 집단과 그에 영합하는 국민들이 구 도심을 다 뒤집고 재개발함으로써 얻을 높은 토지보상금, 개발 이익에 취해 있겠지만 30년 후 재개발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를 다시 재개발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고층 아파트는 재앙이 될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용적률을 높일 수도 없고 건폐율을 늘릴 수도 없다. 개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재건축을 통해 개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아파트는 똥값이 된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90년대 초 입주가 시작된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서울 접근성 인프라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층 아파트는 재건축을 해도 개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장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정치인, 관료, 국민들이 합작해서 만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근콘크리트 범벅, 환경 유해 건물 고층 아파트의 뒤처리는 누가 할 것인가. 그대로 방치해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깨닫게 하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Chapter 03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라(노동)



노동권이 만인에게 평등한 나라

인간이 만든 가장 비인간적인 학문인 경영학은 완전한 기계 가동율과 빈틈없는 설비 유지 및 보수를 위해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화했다. 통찰력과 창조성이 지배하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말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우하는 노동은 효율성 면에서 보면 뒤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인간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서, 노동 가치를 효율성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스톡홀름, 헬싱키, 코펜하겐을 잇는 노선의 배편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편리하게 예약하는 방법과 유선전화를 통해 안내원과 직접 대화해 예약하는 방법이 있다. 효율성과 비용 면에서 보자면 전자가 낫다. 그럼에도 후자의 방식으로 예약하는 고객이 많다. 그러한 고객이 없다면 안내원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효율성보다는 비용이 들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IMF 이후에 우리 자본주의가 완전히 신자유주의로 편입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롯데쇼핑에 시장을 완전히 내준, 만년 2등 백화점에 불과했던 신세계가 서울 강북 창동에 소재한 국내 최초 대형 할인 소매점인 프라이스클럽을 매각한 돈으로 이마트를 만들고 대형 할인 소매점 시장을 선점해 단번에 국내 유통시장 판도를 바꿔버린 것은 경영 사례로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서구에 비해 자영업 비중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에서 지역 소상인 상권이 붕괴되었고, 대형 할인점이 독점적 시장 지위를 이용해 납품가를 후려쳐서 결과적으로 납품 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대형 할인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분노를 살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체류가 급증하는 이유는 대기업의 압력에 납품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현실과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있다. 해방 후 60년에 이르는 경제사는 효율성을 중시한 압축 성장의 결정체다. 그런데 이 압축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 요인은 무엇인가? 바로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 등 기층민의 희생이다. 삼성, 현대, LG 등 국내 재벌은 국가의 정책 자금을 독식해 일어선 기업이고 저임금에도 열성적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헌신으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국발 금융 공황 상황에서 삼성, 현대차가 마켓셰어를 늘리고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고환율 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지식 중심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풍부한 양질의 노동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한 경제이다.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은 국민에게 너무도 많은 은혜를 입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임금이다. 버블을 통해 얻는 소득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역사는 계급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혁명을 통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변혁을 위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은 너무도 크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축적함으로써 계급 간 갈등이 커진다고 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으로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을 피하기 위해 자본은 인간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상생하기 위한 방법은 정당한 임금의 지급이다. 한때는 미국에서도 US스틸 근로자의 단위당 임금이 화이트컬러보다 많을 때가 있었다. 그때가 60년대다. 70년대 들어와 세계 경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제 현상과 만나게 된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대공황 이후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에 불황의 시대가 다시 온 것이다. 미국은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보수의 길을 걷게 되고 사회 진보의 가치는 후퇴하게 된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서 자본주의 역사를 200년 전으로 되돌리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진보의 반동으로 생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우리나라에도 이식되어 경쟁의 논리만 강요하는 노동시장을 만들었다.

산업 혁명시대에나 있을 법한 인간에 대한 착취가 경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G20 의장국가 대한민국에서 만성화되었다는 점에 우리는 실망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우유 배달, 편의점, 주유소에서 12시간 일해야 겨우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 수 있는 사회. 이들의 상층구조인 매일, 남양, 서울우유, GS칼텍스, SK정유, 현대오일뱅크, 롯데그룹의 계열사 등의 주가는 고공 행진을 하는데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제도권 경제의 중심에서 한 번도 공권력에 도전하지 않았고 국가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내 시대는 갔다. 내 아이를 이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미래에 내 아이가 사회에 나왔을 때 그 아이가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아이의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에 살게 하고 싶다. 지금처럼 우리 청년들의 의지를 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 그마저도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는, 쉬운 선택만을 하려 하는 경제 시스템 안에서 우리 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대체된 노동자들에게도 정당한 임금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노동자들이 그들 때문에 역차별을 받지 않는다. 호주는 아무리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국 노동자와 똑같은 노동조건을 보장한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를 우대하기 위함이 아니다.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면 자국 노동자들이 퇴출되거나 정당한 노동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십만 명이 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고용 조건이 열악해지고 노동자의 권리를 해치게 된다면 이는 어떤 도덕적, 경제적 가치가 있을까? 제조업은 아직도 인력이 부족한데 청년들이 생산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자발적 실업자가 많다고 한다. 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들이나 하는 얘기다. 과연 중소기업의 생산 공장에서 일이나 해보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쉴 새 없이 컨베이어는 작동하고 쉬는 시간 없이 10시간~12시간을 일해 본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그 노동의 강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것이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다. 대학 교육을 받아 눈높이가 높아진 당신의 자녀에게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 강도, 그럼에도 턱없이 낮은 임금, 노동을 통한 정당한 보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현장에서 일하라고 권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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