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
정철진 지음 | 아라크네
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
정철진 지음
아라크네 / 2012년 12월 / 237쪽 / 15,000원
시장은 ‘오야(おや)’ 맘이다
왜 똑같은 재료에 어느 때는 하락하고, 어느 때는 상승할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국제유가의 움직임에 대해 통찰한다고 해보자. 먼저 국제원유 수급을 확인해야 할 것이고, 세계 경기를 살펴봐야 한다. 호황기엔 공장이 잘 돌아가니까 석유가 많이 필요해 유가가 오르고, 불황기엔 그 반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 경제 상황을 정교하게 체크해야 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면 유가 통찰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계절적 변수도 더하면 좋다. 이번 겨울에 100년 만에 한파가 찾아온다면 난방 수요가 커져 유가는 오를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좀 더 뛰어난 실력자라면 세계유전이 집중돼 있는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상황은 어떤지, 미국은 중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중동 화약고가 일촉즉발의 상태라면 당연히 유가 상승 쪽에 비중을 높게 둬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런 정교한 분석과 과거 경험에 따른 통찰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밤 뜬금없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런저런 이유로)전략 비축유를 무제한 방출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해 버리는 상황이다. 물량이 쏟아져 나오니 이때 유가는 당연히 급락한다. 하지만 왜 이 시점에 비축유를 방출하느냐고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시장에 맞서지 말라!”는 식의 자위만 할 따름이다.
심지어 우린 거의 똑같은 재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호재로, 어느 때는 악재로 사용하는 걸 자주 본다. 똑같은 경제지표인데 언제는 긍정적인 증거로 활용되고, 또 언제는 나쁜 일의 전조로 취급받는다. 가령 벤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이 “달러를 시장에 왕창 풀겠다”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 순간 주식시장은 올라야 하는가, 아니면 내려야 하는가. 분명 80~90% 확률로는 오르는 쪽이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다. 오야 맘이기 때문이다. “돈을 왕창 풀 정도로 경제가 나쁘다”는 해석과 함께 주가를 하락시키면 그만이다. 그분이 호재로 사용하면 호재가 되고, 악재로 사용하면 악재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이 최종 파산하고 유로존은 붕괴돼 다시 개별 국가로 쪼개진다고 해보자. 분명 최악이다. 악재 중 이런 악재가 없다. 그럼 이제 전 재산을 털어 시장이 하락할 때 돈을 버는 풋옵션을 매수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순간 오야가 “드디어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라든가 “오히려 잘된 것”이라며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면 시장은 정상적인 논리를 깨고 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미있는 건 오야의 이런 ‘돌발적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제적인 이유를 달아 정당화시키는 집단이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일반적으로 금값이 급등했다면 달러화 약세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번엔 금값도 오르고 달러화도 강세가 되는 상황이 나왔다. 그러면 이때 누군가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돼 금과 달러 모두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해 준다. 반면에 금값이 내렸는데 달러화도 약세로 돌아선다면? 그렇다. 이번에도 역시 별의별 논리를 다 대면서 상황을 해석해 주는 전문가들의 리포트가 나오고야 말 것이다.
자본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다: 자본 피라미드의 정점에 존재하는 오야는 시작과 끝을, 사건의 양 극단을 모두 손에 쥐고 있다. 오야는 최후의 순간까지 상승이든 하락이든 그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그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 베팅을 해둔 채 막판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2013년에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해 파산한다고 해보자. 아니면 정반대로 파산을 하루 앞두고 있다가 극적으로 힘을 내 과거의 초강대국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해보자. 오야는 어떤 시나리오를 더 좋아할까? 전자일까? 아니면 후자? 그런 거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 어느 쪽으로든 오야는 돈을 번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 후보 모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대기업 회장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이 대기업 회장에게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자기는 차기 정부에서 5년 동안 마음 편히 경영할 수 있다. 이건 소위 ‘알파와 오메가’ 테크닉이라고 불린다.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손에 쥐고 판을 흔드는 방법이다. 아군도 내편이요, 적군도 내편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자신이 양극단을 모두 갖고 있기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마지막 해결을 할 종결자이기에, 세상을 창조하고 멸망시킬 수 있는 조물주와 같기에 그렇다.
“그럼 자본에 대한 통찰이 왜 필요해요? 다 오야 맘이라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한 지적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오야의 마음까지도 자신의 통찰 분석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통찰 스펙트럼은 더 넓어지고 공고해진다. 이런 훈련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다. 또 “혹시 몸통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 세력은 없나?”라는 생각도 늘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를 통제하기 위한 자본의 음모
사악한 자본이 주도하는 공룡기업의 출현: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단일화, 통합화 추세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기업 부문이 될 것이다. 초대형 규모의 M&A(기업 인수 및 합병) 형식으로 국내 및 세계 기업들은 속속 뭉치고, 또 합쳐질 것이다. 어쩌면 향후 5년 내에 안 그래도 큰 굴지의 세계 기업들이 모두 연속적인 M&A를 통해 울트라 슈퍼 공룡기업으로 거듭날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는 전 세계에 은행 그룹 3개, IT 관련 공룡기업 2개, 에너지 기업 3개 등만이 존재할 수도 있다. 세계인이 모두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은행의 계좌만 갖고, ‘쉐보레폭스바겐도요타’ 자동차만을 몰고, ‘카길네슬레몬산토’의 곡식만을 먹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은 현금을 들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지난 2008년 이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곳은 바로 기업이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세계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었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 돈을 넙죽 받아가 놓고는 투자를 통한 고용창출이나 경제성장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금고에 꼭꼭 숨겨 놓았다. 경기가 좀처럼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굳이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M&A는 기업이란 경제 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해법이 된다. 이미 ‘검증된’ 기업들끼리 연합해 몸집을 불린다면 투자 실패의 위험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선두기업이 후발주자를 M&A 할 수도 있고, 비슷한 수준의 기업끼리 합병할 수도 있다. 또는 전혀 다른 업종의 기업과 합치는 사례도 등장한다. 이런 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단일화, 통합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합쳐지면 심각한 경제 왜곡, 나아가 세상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확률이 높아진다. 혹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구글이 휴대폰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M&A 했다는 뉴스를 들어 보았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반칙이다. 독점적 지배력을 확보한 모바일 운영체제(OS)를 소유한 곳이 단말기까지 만들면 세상의 여타 IT 기업들은 이제 모두 이 ‘구글·모토로라’ 연합전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더 재미있는 건 이 대칭점에 또 다른 거인, 애플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애플 역시 충성도 높은 OS와 단말기를 모두 만들고 있다. 이것은 실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네 IT 세상을 ‘애플’과 ‘구글’이 모두 장악해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이고, 시작과 나중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사악한 자본이 주도하는 이런 형태의 M&A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금융업계, 철강·조선업계 등등 동종 및 이종 간의 합병이 이어지면서 소수의 공룡기업들만 남아 경제를 이끌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룡기업 원톱 시대엔 어떤 일들이 펼쳐지게 될까. 우선 주가는 꽤 오를 것이다. 장기는 몰라도 중·단기로 보면 강한 상승 탄력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참고로 말하면 주식시장은 옆집 철수 네가 잘살고 못살고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기업에 베팅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서울역 노숙자가 5만 명으로 늘어도 기업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반면 우리네 생활은 급속도로 획일화될 것이다(참고로 말하자면 자본이 가장 좋아하는 게 ‘획일’이고, 가장 싫어하는 건 ‘버그(bug)’다).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기업을 키우는 게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방향과 규모, 속도대로 사람들이 소비를 강요당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지금도 대기업들에 의해 콩나물에서부터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점령당하고 있지만 이젠 국경을 넘어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완벽하게 실현된다. 아마도 앞으로 전기자동차를 애용하게 될 텐데, 이때 브랜드는 ‘쉐보레 + LG화학 + 도요타 + 오펙’ 아니면 ‘다임러 + 바스프 + 삼성SDI + BMW’ 중 양자택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기업들이 통합해 공룡기업이 되고, 이런 공룡기업들 위에 군림하는 자본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그리고 인류가 획일화된다는 건 결국 ‘세계 단일 정부’의 기초를 닦는 일이 된다. 공룡기업을 통해 서울에 사는 철수, 런던에 사는 찰스, 중국의 처얼쑤, 미국의 찰리, 러시아의 짜알쯔, 아랍의 찰싼이 모두 비슷한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을 갖게 될 때 ‘정치 통합’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10년 내에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 개별 정부가 아시아 지역 정부로 통합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이처럼 세계 단일 경제와 세계 단일 정부는 자본이 원하는 궁극의 지향점이다.
혹시 ‘세계 단일 정부’라는 것에 대해,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하에 살아가는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글쎄…… 그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왜 하느님은 인간들이 세워 올린 바벨탑을 무자비하게 박살 냈을까. 우리가 원해서 하나가 되는 것과 자본의 힘과 계획에 의해 하나로 뭉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이걸 착각하면 안 된다.
은행은 돈을 빚으로 만들었다
자본의 선봉에 선 은행: 은행은 누가 뭐래도 자본이다. 자본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핵심이 바로 은행이라고 할 만큼 은행과 자본과의 관계는 끈끈하고 밀접하다. 때로는 ‘은행=자본’이라 불려도 될 만큼 그들은 한 몸이요, 자웅 동체이기도 하다. JP 모건, 록펠러, 로스차일드 등도 모두 은행가 가문이다. 자본의 똘마니 노릇을 하고 있는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 역시 ‘은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특히 현재 자본과 가장 밀접한 관계라는 (때론 자본의 하수인이라는 비판도 받는) 미국의 중앙은행이자 세계의 중앙은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FRB(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역시 은행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심지어 국내에서 대형 사고를 쳤던 ‘저축은행’도 은행이라는 이름 때문에 온갖 탈법과 비리가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은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자본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은행과 한 몸을 이루면서 성장해 왔지만 이젠 자본이 직접 전 세계 은행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자본이 뭔가 프로젝트를 펼칠 때 은행은 그 선봉에 서거나 때로는 보급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번 물어보겠다. 은행은 좋은 곳인가? 아마도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은행의 실체를 잘 알고 있어서 10명 중 절반은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엔 이렇게 물어보겠다. 저축은 좋은 것인가? 아마도 10명 중 9명, 혹은 10명 중 10명은 “저축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심지어 자본 스스로 주식 투자는 투기일 뿐이고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이 진짜 올바른 행동이라며 세간의 분위기를 몰아가기도 한다.
자, 그런데 우린 어디에 저축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바로 ‘은행’이다. 그래서 종종 저축과 은행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알게 모르게 우린 좋은 저축을 가능케 하는 은행도 역시 좋은 곳이라 착각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자본은 바로 여기를 파고든다. 이건 자본의 전형적인 속임수 패턴이다. ‘저축은 좋은 것’이라는 개념을 슬쩍 ‘은행은 좋은 곳’으로 바꿔 우리를 설득하는 수법이다.
지난 2011년에는 한 해 동안 저축은행과 관련된 온갖 비리들이 뉴스에 연일 쏟아졌다. 당시 여당과 야당 모두 저축은행 사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는데 이때 “도대체 어느 정권부터 문제가 잘못된 건가”라는 원죄 추궁에 있어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 시대까지 올라갔다. 이때 한 가지 명확한 점은 저축은행 사태는 분명 ‘명칭’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축은행은 과거 ‘상호신용금고’로 불리던 곳이다. 그런데 이 금고가 어느 틈에 은행이 된 것이다. ‘금고’와 ‘은행’이 주는 심리적 차이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저축은행이 일종의 ‘은행’으로 불리게 되면서 대중들은 기존 은행에 부여하던 신뢰와 믿음을 저축은행에도 부여했다. 그리고 악덕 범죄자들과 그들을 부리는 자본은 이런 대중의 믿음을 철저하게 희롱했던 것이다.
평소엔 시장논리, 급하면 정치논리: 특히 은행은 시장논리와 정치논리가 동시에 통용되는 곳이다. 시장논리와 정치논리를 양손에 쥔 채 그때그때 자신이 유리한 대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사악한 자본이 구사하는 패턴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행 대출과 관련된 이자율을 살펴보자. 이건 지극히 시장논리로 책정된다. 신용등급 1등급인 사람은 대출금리가 아주 싸다. 떼일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용등급이 내려갈수록 금리는 급등한다. 연체 확률이 높기에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은행은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신용등급 7~8등급 이하는 제1금융권에서는 아예 대출이 불가능하다.
당연하게 느껴진다. 분명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경제논리로 보면 한 은행을 꾸준히 이용하고, 착실하게 저축도 하고, 알뜰살뜰 카드를 사용한 사람은 당연히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또한 신용등급이 나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마땅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정반대의 논리를 말하기도 한다. 신용등급이 낮고,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대출이자를 낮춰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신용등급이 좋은 사람에게 이자를 더 받자는 건 아니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건 생활이 어렵거나 경제적 약자라는 뜻이기에 일단 저렴한 이자율로 돈을 빌려줘야 갚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환상 속의 주장만도 아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Grameen) 은행은 이를 실천에 옮겼고, 설립자인 유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분명 “경제적 약자는 빚 갚을 능력이 떨어져 돈 떼일 위험이 높기 때문에 비싼 이자를 물려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적 약자들은 거의 소액대출이어서 피해 규모 역시 매우 적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국내 은행에서 돈 떼먹어서 한국 경제 자체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경제적 약자였던가? 아니다. 나라 경제 책임진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며 저금리로 엄청나게 돈을 대출받았던 기업(또는 사람들)이었다. ‘위험’으로 따지면 이들의 위험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은행은 꼭 시장논리만 구사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정치논리를 들고 나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잘 알다시피 현존하는 대한민국 은행들은 대부분 부실 경영, 방만 경영으로 최소한 1회 이상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 국민들의 혈세로 은행들이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은행이 망하면 경제가 흔들리고 나라가 망하기 때문에 은행을 어떤 식으로든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한 결과이다. 불과 어제까지 시장논리 운운하다 한순간 정치논리로 뒤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