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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전략

문휘창 지음 | 미래의창
K-전략

문휘창 지음

미래의창 / 2012년 12월 / 320쪽 / 16,000원





PART 1 대한민국, 기적을 만들어 내다.



한국기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전통 경제학 이론에서는 국가건 기업이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상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잘하는 부분, 즉 비교우위를 특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POSCO,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설립 초기부터 해당 산업에서의 비교우위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들의 성공신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국내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어떻게 노력했고 어떻게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정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 미쓰비시 보고서: 삼성전자는 1970년대 중반까지 주로 TV, 라디오 등 백색가전을 조립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했다. 1974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전자 내의 한 개 사업부로 명목상 반도체사업부를 운영했지만, 전자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증가하는 반도체산업의 기술혁신 속도가 너무 빨라 이내 한계를 절감했다. 이에 1983년 이병철 회장이 ‘도쿄선언’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는 본격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체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 진출을 발표하자 국내외에서는 모두 삼성전자가 조만간 파산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한국기업의 반도체사업 진출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들이 제시한 5가지 이유는 협소한 한국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 자체의 작은 규모, 빈약한 기술 등이었다.

사실 미쓰비시 보고서에서 제기된 삼성전자의 다섯 가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시 한국경제와 삼성전자 상황을 고려했을 때 꼭 틀린 분석이라고 할 수 없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때 1980년대 초의 한국은 자본이나 기술, 시장 수요, 관련 산업 발전 등 어느 하나에서도 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쓰비시 보고서는 선진국 경제이론과 달랐던 한국식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잘못된 결과였다. 삼성전자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과감히 열위를 극복하는 노선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우위를 창출해냈고 이러한 삼성전자의 능력은 휴대폰 시장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삼성은 1988년 애니콜Anycall이란 브랜드로 국내 휴대폰 시장에 진출했으나 소형화 및 경량화된 외국 제품의 유입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외국기업의 강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휴대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 삼성전자는 모토로라는 물론, 휴대폰 시장의 수성이었던 노키아까지 제치며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의 애플Apple과 경쟁을 벌이며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한국기업들은 철저한 벤치마킹과 그것을 뛰어넘는 발전을 통해 경제발전 초기의 열위를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향상시켜왔다. ‘한국기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한국기업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경제정책 변천사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은 가난에 허덕였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며 섬유, 의류, 신발,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을 생산한 1962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100달러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노력으로 경제가 발전했고, 국민소득이 증가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철강, 기계, 전자, 조선, 석유화학 중심의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했다. 1980년대에는 기존 산업을 확장시키면서 반도체소자, 정밀화학 등 첨단기술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발전시켰다. 경제발전과 함께 지속적인 개방정책도 이어졌다. 1992년에는 외국인에게 자본시장을 개방했고, 1995년에는 WTO에 가입했으며, 1996년에는 OECD 회원국이 되었다. 수출장려정책 및 개방정책과 더불어 발전을 거듭하던 한국경제는 1997년에 불어닥친 아시아 경제위기를 맞아 한동안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위기를 극복하여 세계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만연한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1986년 10월 27일에 미 의회가 발표한 ‘한국경제에 대한 의회의 견해’는 국제통화기금이 발간한 「성공적인 적응사례 : 1980-84년 시기 한국의 경험」을 인용하여 한국발전의 주요 원인으로, (1)국민의 총력, (2)정치적 지도력, (3)한국 내수시장의 성장, (4)수출 진흥 정책을 꼽았다. 이 가운데 ‘국민의 총력’은 ‘정치적 지도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목적이 국가의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배치해 가치창출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고, 이러한 정부의 능력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발전의 역사를 보면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한국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열위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우위를 창조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PART 2 한국식 성장모델 : K-전략의 ABCD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본적인 성장동력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국식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한국발전의 비밀인 ‘K-전략의 ABCD’를 제시해 보겠다.

K-전략의 ABCD

ABCD를 합해야 종합경쟁력: 많은 사람들이 한국경제의 발전을 하나의 신화 또는 기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단순한 분석으로는 유용한 시사점을 별로 얻을 수 없다. 기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성공패턴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

한국경제발전의 비밀은 매우 포괄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를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 제시하게 된 것이 K-전략이다. K-전략의 ABCD를 살펴보면 민첩성(Agility)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피드를 기본으로 정확성이 더해져야 하며, 벤치마킹(Benchmarking)을 위해 모방을 하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융합(Convergence)은 혼합을 하되 시너지 창출효과가 수반되어야 하며, 전념(Dedication)하기 위해서는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목적지향성이 뚜렷해야 한다. 바로 이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합쳐진 것이 한국발전의 비밀이다. 물론 한국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ABCD 전략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우리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정확성이 조금 떨어지고, 모방을 할 때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혼합만을 주장하는 비관련 다각화로 시너지 효과를 떨어뜨릴 때도 있고, 성실하지만 목적의식이 부족할 때도 많다. 앞으로 ABCD 전략의 부족한 요소를 보완하며 종합경쟁력을 강화하면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경제발전 모델과 K-전략의 응용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과 K-전략: 195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에서 겨우 벗어난 상태였다. 제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산업 인프라는 전무했고, 사회적?정치적 안정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국의 경제발전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된 경제를 재건하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했던 국민들의 열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일본을 이기고자 하는 열망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동기가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6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다. 새마을 운동은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가집을 없애 새로운 집을 만들고, 열심히 일을 해 새로운 마을도 구성하고, 소득을 늘리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잘사는 새로운 국가로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OEM을 통해 기본적 품질을 갖춘 경공업 제품생산이 시작되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1960년대, 군수품 OEM 생산을 통해 한국의 대미 전자제품 수출이 급증했다.

한국전쟁 시기에 산업기반 시설이 거의 파괴되어 제대로 된 항만과 도로가 없어 수출이 가로막히자 정부는 한국과 세계를 잇는 항만시설과 한국 전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 등, 기본 산업인프라 확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때 한국인들이 보여준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목적지향성과 이를 위해 발휘한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전념(Dedication)은 다른 여타 개발도상국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념의 유무는 경제성장 수준의 차이로 드러났다.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유리한 상황에서 출발한 다른 국가들이 오늘날에는 한국보다 낮은 수준의 경제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전념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K-전략의 ABCD 중 맨 마지막 항목인 ‘전념’은 경제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준 선진국의 특징은 제조업의 발달, 우수한 품질의 제품, 산업단지 확충, 효율성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특징은 K-전략의 전념을 기반으로 한 ABC 즉 민첩성, 벤치마킹, 융합으로 쉽게 풀어 다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각 항목 중 민첩성의 ‘스피드’, 벤치마킹의 ‘모방’ 그리고 융합의 ‘혼합’이 특별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제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은 제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빨리 성장할 수 있으며 국민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국은 선진 국가와 기업의 제품을 모방하는 방식을 채택해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 상대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수 있었다. 간단한 제조업의 부흥과 더불어 어느 정도 산업인프라가 형성된 뒤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해 경공업과 중화학 공업에 집중했다.

이처럼 국가발전을 위한 정부와 국민의 강력한 목표의식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속도, 모방, 혼합’은 당시 국가 및 산업 발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부족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자신들의 발전의지에 부합하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으며, 이러한 정부 차원의 지지 덕분에 대기업은 몸집을 부풀리며 양질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최근 한국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며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전에 강조하던 속도보다는,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정확성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단순한 모방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조해 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여러 요소의 단순 혼합보다는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혼합으로 그 경향이 점차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변화의 기조에는 역시 성실함과 목적지향성을 기반으로 한 전념이 있는 것이다.

전념과 관련해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존의 목적지향성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의 목적지향성은 다 같이 공평하게 사는 것, 또는 불우한 이웃을 위한 복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점차 방향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기업은 이러한 기조에 맞추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준 선진국적 성향을 띠고 있어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기업들은 국민과 사회가 지향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기업의 본분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국가경제발전에 있어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은 바로 성실함과 목적지향성으로 구성된 전념이며, 이를 기반으로 스피드에 정확성을 기한 민첩성을 업그레이드하고, 단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 이를 뛰어넘는 벤치마킹 전략을 확고히 하며, 혼합을 하되 시너지를 창출해낼 수 있는 융합을 이루어낼 때 진정한 선진국에 이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PART 3 국제화와 K-전략



국제화의 다양한 사례

경제위기와 국제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홍콩에서 시작되었다. 그해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아시아 금융의 중심인 홍콩에 투자하던 투자가들이 자본을 이동시킨 탓에 홍콩의 주식시장이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그 영향이 주변국가로 파급되면서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차례로 쓰러졌다. 그러나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중요한 사실은 살아남은 국가들이 모두 국제화가 자리 잡은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국제화가 경제위기를 불러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제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셈이다.

2008년에 발생한 또 한차례의 경제위기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이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발생한 미국발 경제위기는 여러 국가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부동산 경기 성장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경제 호황이 이들 국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미국이 되레 경기 침체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한국경제의 구조는 무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수출입 규모에 따라 국내 경기가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기 침체가 발생할 때마다 세계경제환경을 탓하곤 한다. 더러는 대한민국의 국제화 정도가 너무 심해 우리 경제가 국제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반反국제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무역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왜곡해서 해석한 잘못된 생각이다.

작은 나라가 살아남는 길은 국제화 말고는 없다. 대개 한국경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국제화가 편중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해외로부터의 직접투자 환경을 건실하게 이루지 않고 자본시장을 성급하게 개방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2008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 한국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장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질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국제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여러 상황과 시장에 대해 유연한 대처능력을 기른 기업들은 자국 상황 또는 세계경제 상황이 나빠진다 해도 꾸준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세계경제 둔화에도 불구하고 매년 《포춘》에 실리는 글로벌 500대 기업은 평균 매출과 평균 이익에서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사회와 국제화: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토크빌은 자국 정부의 명을 받아 1831년 미국을 방문했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가 어찌 그렇게 힘차게 발전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돌아보면서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파악했다. 당시 인구가 1,300만 명에 불과했던 미국이었지만, 토크빌은 이 나라가 100년 이내에 세계 초강대국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국 발전의 원동력을 정치 부문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비즈니스는 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지난 20년 동안 유럽은 더 많은 인구를 갖고도 500만 명의 일자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3,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바로 앞에서 제시한 국제화가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발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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