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판 새로 짜라
곽수종 지음 | 글로세움
한국경제 판 새로 짜라
곽수종 지음
글로세움 / 2012년 10월 / 384쪽 / 14,800원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
위기 후 세계경제의 신질서는 누가 주도할 것인가: 미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오히려 글로벌 경제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다. 변수는 중국이다. 정치 민주화의 연착륙과 함께 중국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국의 리더십, 중국의 견제라는 새로운 글로벌 운용질서를 도출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20년 이후 보다 구체적인 모습이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중국이 실패할 경우, 현재의 미국과 유럽 중심 체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 갖는 21세기 문명사적 의미: 오바마 정부의 탄생이 갖는 21세기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변화'다. 문제는 오바마 당선이 주는 '변화'는 '완성'의 의미이기보다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불확실성과 도전 그리고 기회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지각변동'을 살펴보자. 먼저 긍정적 변화로 금융 위기를 극복하게 되면 세계경제 질서의 패러다임이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미국이 이 패권을 다시 잡을 수 있을지 고민되는 부분이다. 또 다른 긍정적 변화는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인식혁명으로 '가치 체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부정적 변화 요인들도 있다. 극우 및 극좌 세력의 창궐과 사회마찰로 인해 과거의 '이념 간 갈등'과는 사뭇 다른 형질의 '갈등'이 돌연변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긍정적 변화의 힘이 부정적 변화의 힘보다 우세할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려운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일단 이 '두려움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하는 단계를 밟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바마의 변화'는 먼저 금융 위기의 극복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통해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평가는 2012년 11월 대선에서 내려질 전망이며, 2012년 9월 기준 재선은 다소 낙관적이다.
한국경제의 현주소
세계경제 위기에 무방비 상태인 한국경제: 한국경제는 '수출의존형 강소국 지향 경제'다. 그래서 세계경제 위기는 한국경제의 위기다. 특히 수출 가운데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24%에 이른다. 그래서 중국경제의 향방이 한국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 한국 수출 전략의 '몰빵' 전략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이해와 회피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1980년대 이후 구조적 전환 시도에 실패하고 2만 불 소득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되면서 한국경제의 '수출 의존형 구조'는 지속되고 있다. 이 틀을 깨지 않고선, 이 개혁을 국민 모두가 '가치와 인식구조'의 개혁, 즉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한 패러다임의 자발적 변화로 지원하지 않고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단연코 불가능하다. 한국경제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앞으로 한국경제 성장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경제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할까. 크게 2가지 형태의 고민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미시적 측면에서 구조적 문제들이다.
먼저 거시적 고민의 3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한국경제는 더 이상 제조업 경쟁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전략일 수 없다. 따라서 신성장 동력산업이 필요한데, 지식 서비스 혹은 지식 융합 서비스 산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2)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분리와 시장에서 경쟁과 협력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엄격한 '룰' 적용과 이를 위한 관리감독체계가 분명해야 한다. (3) 한국경제의 성장정책을 종전의 정량적 성장정책 중심에서 고용률 확대와 같은 질적 성장정책으로 전환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나를 덧붙인다면, 여기에 어떻게 북한과의 경제협력 과정에서 한국경제의 효율성을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시적 고민은 다음 5가지 현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한국 인구구조의 변화 형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고령화라는 현상은 경제성장, 자산시장의 구조 변화, 직업, 교육,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영향력을 가져다 줄 변수이다. (2) 교육제도의 불안정성이다. 빈부 간의 갈등과 세대 격차는 교육의 부조화와 연결 선상에 있다. (3) 추락하는 중산층 문제다. (4) 부동산 시장의 끝없는 침체다. (5)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노동시장 문제가 잠재해 있다.
다시 말해, 한국경제가 품고 갈 수밖에 없는 경제의 가치철학 문제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어떻게 하면 기회의 균등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배분할 것인가이다. 둘째, 공정경쟁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반칙이나 특권적 기득권이 없는 공정한 경쟁은 권력의 집중이나 분산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셋째, 시장경쟁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이루어질 때, 패자에 대한 재기와 부활을 위한 보호 및 지원이 이루어지고, 이런 고려가 자동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에 의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미래 성장과 분배 정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를 촉발할 수 있는 트리거(trigger, 계기)는 무엇일까? 이것이 사실상 가장 중요한 핵심 이슈이다. 두 가지 트리거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한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이는 곧바로 동북 3성과 연해주까지 확장되는 3억 이상의 내수시장을 형성하면서 지속적인 남북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술력 개발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한국경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찾는 것이다. 만일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과거 미국과 중국 간 이해와 군사적 충돌 요충지로서가 아니라, 동서 간의 화합과 교류의 장으로서 한반도를 활용한다면 어떨까?
앞으로 5년이 더 중요하다
한반도 주변 강국이 움직인다: 최근 한반도 주변 상황을 놓고 정치ㆍ경제, 외교ㆍ통일, 사회ㆍ문화적 변화의 바람이 간단치 않다. 일부에서는 중국과 한반도를 둘러싼 전반적인 분위기가 마치 청 말, 조선 말과 흡사하다고까지 한다. 왜 그럴까? 먼저 미국의 군사력 재배치와 글로벌 경제리더십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위한 안보 공약으로, 올해 안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미군이 이들 지역에서 철수하게 되면 본토 도착 즉시 해체가 불가피하다. 이는 미국경제의 실업률 증가나 실업수당 지불과 같은 노동시장에 상당한 정부비용 지출을 야기할 것이다. 또 미군의 일부 병력은 한국에 재배치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한국 정부가 미국 군사비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이와 함께 조지워싱턴 항모가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면서 이미 서해안은 소련, 중국, 일본 함대의 전략적 각축장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북한도 미국과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의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미국의 대북 신뢰도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북한은 지난 2012년 4월 13일 광명성 3호를 발사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신뢰도 악화라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자초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정치ㆍ외교ㆍ안보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한국경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위기대응계획'의 구축이 절실하다.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운용되어야 하는데, 첫 1~2년간은 '최고 경계단계', 다음 1~2년간은 '경계단계', 그리고 그 후 1~2년 동안은 '주의단계'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대응 전략'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위기관리 전략이 절실한 이때, 이에 대한 선제적이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국경제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산업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성장구조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 즉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구조의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둘째, 산업구조를 제조업 중심에서 지적 서비스 산업으로 경량화, 고부가 가치화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국이라는 이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창조적 신사업 창출과 같은 창조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셋째, 분배구조의 왜곡에서 파생되는 체계적 위기 상황과 가능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지향하는 가운데, 국가와 국민이 함께 추구해야 할 '핵심이익'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핵심이익과 전략'은 반드시 국민적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국가 핵심이익과 전략과 전술'은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근간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국가의 핵심 정책이 성공적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일관성과 투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의 핵심이익과 가치는 국가의 생존, 번영, 그리고 안정을 근간으로 한다.
한편 요즘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경제민주화'란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의 복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발생할 경우, '보이는 손'에 의한 간섭도 배제하질 않는다. 다만 이 '보이는 손'이 '자본'이라는 시장에서 파생된 '괴물'에 의해 조정될 경우 되풀이되는 '시장실패'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의 균형 잡기인 양 비쳐질 수 있다는 부분이 문제다. 이를 제한하기 위한 가치개념이 '경제민주화'로 보인다. 문제는 이 제약과 제한이 자본처럼 물질적이지 않고 '정신적'이며 '가치체계적'이라는 데 있다.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으면서 머리로도 이해될 수 없는 단순한 경제와 민주화의 조합어로 보인다. 이는 국가 경제가 지속해야 할 핵심이익이나 가치가 아니라, 전략적 전술이라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엔 다음과 같은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 있다. '(1)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정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경제민주화'를 말할 때는 주로 2항만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경제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조항을 해석해보면, 1항을 포함한 119조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의미하는 조항으로 생각된다. 1항이 기업과 가계, 즉 개인 부문의 민주화를 이야기한다면, 2항은 기업과 개인이 시장실패를 할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의 효율과 효용을 회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경제민주화라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조항 속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보면 많은 의문이 생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해석: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복지국가를 향한 거창한 구호나 정책이 아닐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싶다'일 수 있다. 무엇이 잘 먹는 것인지는 알 듯한데,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여기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해 둔다. '한정된 행복'을 추구하려는 제한적 이미지가 아니라, 정치적이기보다 경제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 대한 지나친 생활보장의 요구는 자칫 국가로 하여금 방대한 사회복지 영역에 전념하게 하거나 몰입하게 한다.
따라서 국가는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기보다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약하고 속박함으로써 열악하게 제도화된 기존의 정치경제 구도를 통해, 사회 비효율과 부정부패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동안 서구와 동양에서 시도된 대부분의 혁명과 개혁들이, 주장하는 목적에 맞게 사회와 제도를 개혁하는 데 실패했던 횟수가 더 많았다는 사실과, 적어도 주장했던 것만큼의 변화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경제'의 민주화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다음은 파레토의 『정치경제학 강의』의 한 구절이다. '어떤 개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강탈하려는 투쟁이 인류의 전체 역사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여기서 파레토는 '착취'나 '잉여' 같은 단어 대신에 '강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강탈은 지배계급이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국가는 강탈을 위한 매개체나 기득권의 보호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이러한 '강탈'은 과거 봉건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서 지배계급 혹은 자본가 계층에 의해 대물림이 이루어지고, 가문과 같은 조직이 이러한 분배구조를 악화시켰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민주주의의 도입과 민주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중 강탈'이 더 크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나의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까지 '지속 가능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탐욕은 매우 도덕적이어야 하고, 또 그러한 배분은 어떠한 자연, 학연, 성차별적 차별화를 전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빈곤층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길이, 그 특정 계층의 부의 양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주장보다, 전체 사회의 부의 양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는 주장은 결국 우리가 목적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빈곤계층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시키기보다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스티글러 교수는 저서 『국민소득 재분배에 관한 디렉터의 법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공지출은 중산층의 최대 이익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과연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중산층은 우선 빈곤층들의 투표 참여를 줄이는 선거제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그 집단의 이익에 적합한 재정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요사이 대학가에서 제기되는 반값 등록금제도와 영유아 무상 보육제도 등의 수혜자들은 주로 중산층 및 상류층 자녀들이다. 아울러 경찰력과 같은 치안과 안보의 혜택도 주로 부자나 중산층에게 돌아가기 십상이다. 결국 빈곤층은 경제적인 시장보다 정치적 시장에서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틴 펠트스타인 교수의 『해로운 신화』에서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실업수당 사례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즉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가난하거나 그것이 없으면 가난해질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이성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실업수당을 받는 가정의 수와 혜택을 받는 지급 액수는 소득 수준별로 볼 때 전체 인구분포와 똑같은 비율로 분포한다. 혜택의 절반은 소득 분포상 상위 절반에 해당하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더욱이 그는 고소득자와 빈곤층의 수급자를 비교해 보면, 실업수당의 분포가 완전히 역설적이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보호되지 않는 직업에서 일하는 듯하고, 수급 자격을 얻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을 근무하거나 일자리를 그만두는 일이 많은 듯하다. (중략) 반면에 중산층이나 고소득층 사람들은 보호되는 곳에서 더 많이 일하고, 최대 기간 동안 혜택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취업을 하는 듯하다.'
결국 중산층 및 고소득 계층의 수급자들이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는 데 더 우월한 정보와 지식,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복지국가'를 지향하지만, 사실 그 운용에 있어서는 가난하지 않은 부자들과 중산층들이 끼어들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울러 그런 일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는 정책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수혜자 명단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그 정책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정부의 사람들만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과 개인 등 경제주체 모두가 포함되는데, 역사는 이들이 그렇게 결백하거나 투명하거나 선의를 지녔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 속에 이런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앞으로도 어떤 개혁이나 구조변화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수혜자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