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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경제학

고구레 다이치 지음 | 말글빛냄
진짜경제학

고구레 다이치 지음

말글빛냄 / 2012년 7월 / 223쪽 / 12,000원



1. 도덕 감정론



현대 사회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였다. 스미스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최상의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말했다. 참신한 선전 문구였던 탓에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아이러니하게 당초의 취지를 잃어갔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미스를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주장한 윤리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오해다. 스미스는 인간을 단순히 이기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분명 스미스는 사회가 잘 통합되고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이기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기심이 정의와 윤리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덕적 규칙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자유경쟁을 주장했다. 이것이 스미스의 경제이론의 근저에 있는 사상이다.

『도덕 감정론』이란 책에서 스미스는 경제를 생각하기 전에 “인간 사회는 어떤 원리로 성립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스미스는 인간이 올바른 행동을 하고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이 서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동감(同感)이라는 말로 응축되었다. 즉 스미스는 이 동감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본 우리는 A의 행동에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이때 우리는 A가 B를 때린 배경과 이유를 고려해서 A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한다. 그러고 나서 나도 A와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A를 응원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A를 비난한다. 이때 우리가 A를 응원하고 그가 옳다고 생각하면 A는 우리의 동감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동감의 개념이다. 스미스의 도덕관, 나아가 경제학의 사고방식은 모두 동감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주위 사람도 우리의 행동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라고 느낄 것이다. 그 감정이 바로 핵심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에게 동감을 얻고 싶다.”는 소망은 인류 공통의 가장 중요한 바람인 것이다. 인간은 항상 동감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생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100명 가운데 100명 모두에게 지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기준에 맞춰야 할까? 이 부분이 스미스의 주장에서 중요한 핵심이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만든 기준이다. 기분이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선악을 판단해 주는 재판관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가자’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만든 재판관의 판단에 따라 행동의 선악을 판단한다. 다만 사회로부터 어떻게 여겨질지를 알기 때문에 내면에 평가자를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재판관의 판단기준은 사회의 것과 같아야 한다. 재판관 자체는 자신의 내면에 만들지만, 재판관이 갖고 있는 법률(판단기준)은 사회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판단기준을 찾아 그것을 법률로 내면의 재판관이 흡수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도덕규준이 되는 것이다. 사회의 본질적인 판단기준을 흡수한 재판관은 ‘가상사회의 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재판관에 따르면 사회로부터 동감을 얻을 수 있다.

2. 애덤 스미스의 인간관



내면의 재판관은 늘 본질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만 세상으로부터는 표면적인 평가나 잘못된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두 종류로 나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 어느 쪽의 평가를 중시할지가 ‘올바른 사람’과 ‘그릇된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내면의 재판관과 사회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행동을 평가받게 된다. 이때 양쪽의 평가가 같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둘의 평가가 다를 때 어느 쪽의 결단에 따를지가 사람에 따라 나뉘게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내면의 재판관이 내린 평가는 본질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세상의 평가는 변덕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바로 ‘현명한 사람’과 ‘경박한 사람’이다. 이 말은 스미스의 인간관으로 ‘올바른 사람’과 ‘그릇된 사람’을 구별하는 말이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의 변덕스런 평가보다 보편적인 사회상식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반면 경박한 사람은 내면에 판단기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즉흥적인 세상의 평판을 의식한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이 경박한 행위를 비난했다.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천박한 자들만이 자신들이 전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칭찬에 의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재판관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스미스의 주장이다. 같은 과정을 밟아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결과가 좋고 나쁜 것은 우연에 좌우된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결과를 스미스는 ‘불규칙한 결과’라고 했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의 결과였다면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눈을 감고 배트를 휘둘러 홈런이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좋아, 나는 참 잘했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면 의도한 대로 완벽한 타이밍에 볼을 쳐서 홈런이 될 것 같던 타구가 돌풍에 되돌아와 센터 플라이가 되었다면 어떨까? 분명 결과적으로는 아웃이지만 결코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결과를 중시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주위 사람들에게는 과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래도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결과가 중요하다 해도 결과만 좋으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내려면 우연한 행운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과정과 준비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내면의 재판관의 판단을 중시한다. 자신이 제대로 된 과정을 밟고 있다면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면 경박한 사람은 세상의 평가가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과정이 어떻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결과가 나오는 것에만 주목한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것은 우연히 성공했을 때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박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알맹이가 없는 성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세상이 박수 쳐주면 그냥 기뻐하고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느껴버린다. 정말이지 꼴사납고 한심한 사고방식이 아닌가? 스미스는 이를 악덕의 근원이라 했고, 이처럼 경박한 사람은 도덕관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맹렬하게 비판을 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악행이 세상에 들키지 않았을 때 경박한 사람은 “세상에 들키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없던 일로 해버리자.”라고 생각한다. 나쁜 일을 해도 들키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우기는 것은 경박한 행위이다. 이것은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형성하는데 치명적이다.

3. 국부론



스미스의 『국부론』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제1편: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요인과 생산물이 각 계층에 분배되어 가는 자연 질서, 제2편: 자본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식으로 축적, 이용되는가? 제3편: 각국의 발전방법의 차이, 제4편: 경제정책의 사고방식, 제5편: 국가나 공공시설이 필요로 하는 경비와 세금, 채무.” 스미스는 이 5가지 주제를 분석하여 “국가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고찰”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스미스는 부는 필수품, 편익품이라고 생각했다. 즉 우리 소비자가 사용하는 상품이 부이다. 그리고 국민의 풍요로움은 ‘소비인구로 나눈 필수품과 편익품의 총량에 의해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에도 국민의 풍요로움을 1인당 GDP로 측정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스미스가 “실제로 국민이 사용하는 물건이 ‘부’이다.”라고 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국가의 경제번영을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상주의란 자국 내에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 무역정책이다. 하지만 귀금속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국민들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스미스가 생각한 부는 소비자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이다. 그리고 그 상품은 인간의 노동으로 양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당연한 말이지만, 중상주의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있던 당시에는 인간의 노동이 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은재화 자체가 부였다. 또한 스미스는 부를 늘리려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물건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키워드는 분업과 자본축적이다. 국가에 얼마만큼의 상품(부)이 생산될지는 ‘국가의 생산량 = 일인당 생산량 X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수’로 결정된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일인당 생산량 또는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수를 늘려야 한다. 일인당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생산효율을 높인다는 말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분업과 자본 축적이다. 생산하는 사람의 수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것도 자본축적이다. 자본축적이란 “생산에 사용하기 위한 돈이나 원재료를 모아두는 것이다.” 왜 자본축적이 필요할까? 그것은 분업을 진행하려면 생산에 필요한 기계나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업을 하고 생산량을 늘리려면 사전에 자본축적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미스는 국민의 부를 늘리기 위해 분업과 자본축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이 성장만을 외치는 무의미한 경제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경제발전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압도적으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의 의도를 오해하게 된다. 그가 의도한 경제발전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빈곤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는 분업과 자본축적의 결과, 부가 증산되고 그것이 사회의 최하층까지 확대된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최하층을 구제하기 위한 분업이고 자본축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가 발전하면 자본가만 더욱 돈을 버는 격차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스미스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자유경쟁을 인정하고 어떤 의미로는 격차를 용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 결과 빈곤이 구제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스미스가 격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냉철한 경제학자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배경과 경제발전의 의도를 알면 그런 이미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장이 성립하는 것은 사회의 부를 늘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시장이 크고 안정될수록 “특정 상품의 생산에 전념해도 시장에서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다.”라는 신뢰감과 안도감이 생겨나서 분업이 촉진된다. 이 말은 시장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분업을 저해하고 국가의 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스미스가 자유거래를 방해하는 것으로 꼽은 것은 독점, 관습에 따른 배제, 정부에 의한 규제 등이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자유롭고 정당한 거래를 할 수 없다. 그 결과 시장에서 거래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스미스가 자유거래를 제창했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이해하지만 왜 자유거래를 주창했는지 그 이유는 이해하지 않고 있다. “자유거래를 하지 않으면 가난한 국민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나라의 풍요로움을 결정하는 것은 상품의 생산량이다. 그리고 상품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은 분업과 자본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자본축적은 분업을 촉진하고 부의 증산에 공헌한다. 다만 어떤 형태이든 관계없이 자본만 축적하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가 생각하는 국민의 풍요로움이란 ‘국민 1인당 상품량(필수품과 편익품의 양)’이다. 필수품(농업)과 편익품(제조업)이 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증산에 기여하는 것이 유용한 자본축적이다. 아무리 자본이 축적되어도 그것이 필수품과 편익품의 생산 확대에 사용되지 않으면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예를 들어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생산하거나 외국에서 모아 오는 비즈니스는 부의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것들이다. 먼저 필수품을 확보하고 필수품이 충분히 모이면 그다음으로 편익품을 확보한다. 편익품도 세상에 충분하게 확보되면 그때 비로소 사치품을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순서이고, 이 순서로 산업이 발전하도록 자본축적을 해야 한다.

4. 경제발전은 왜 필요한가?



『도덕 감정론』을 쓴 당시만 하더라도 스미스는 탐욕과 야심이 사회적 복지와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7년 뒤 출판된 『국부론』에서 그는 부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복지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원래 그는 부를 추구하는 탐욕스런 경쟁은 경멸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으나, 그 경쟁은 국민 대다수의 복지로 이어지므로 결국 필요악이었던 것이다.

경제발전이 정말 일반 대중을 구제할 수 있는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경박한 사람이다. 경박한 사람은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한 일념 하나로 많은 부를 쌓고 싶어 한다. 많은 부를 손에 넣은 경박한 사람은 허영을 부리며 자신이 쌓은 부를 주위 사람에게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양의 농산물을 수확한 지주는 부유해진다. 그는 “모두에게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남은 농산물을 팔아 많은 하인들을 고용하고, 사치스러운 요리와 호화스런 물건 등을 소비하고자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나 여러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또한 일자리가 창출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급료가 지급된다. 이와 같이 점점 부가 분배되어 간다.

지주가 허세를 부리며 호화롭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찜찜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지주에게 허영심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부를 손에 넣으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 부가 주위 사람들에게 분배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부를 추구하는 지주나 자본가들 스스로가 이런 사회복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각자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결과물이다.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결과적으로 빈민구제라는 사회복지를 낳은 것이다.

스미스는 경제발전을 국민에게 부를 분배하는 복지와 연계하여 인식했다. 하지만 경제발전 자체를 최우선에 둔 것은 아니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만 있다면 무엇이든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스미스는 부와 지위에 대한 야심은 우리 사회의 번영을 촉진하는 한편 사회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우려가 있다고 했다. 즉, 인간은 부와 지위를 가지려는 과정 속에서 혼란, 동요, 강탈과 부정을 일으키며 그것들이 사회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스미스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해도 되는 경쟁’과 ‘해서는 안 되는 경쟁’으로 구분 지었다. 스미스가 인정한 것은 ‘공정한 경쟁’의 규칙에 기초한 경쟁과 그로 인한 경제발전이다.

공정한 경쟁이란 다른 사람의 길을 방해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남들보다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길을 방해하거나 속이고 상처를 입혀서 상대를 배제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스스로의 실력을 향상시켜 이기는 것이므로 공정한 경쟁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향상된 것도 아니며 방법 자체가 대단히 비겁하다. 스미스는 이런 방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스미스가 말한 공정한 경쟁은 ‘형사범죄 금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규제’나 ‘독점’ 역시 공정한 경쟁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스미스가 ‘이익 지상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경제발전을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경쟁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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