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마티아스 빈스방거 지음 | 비즈니스맵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마티아스 빈스방거 지음
비즈니스맵 / 2012년 4월 / 288쪽 / 13,000원
1부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보이지 않는 손'의 불편한 진실 - 시장은 항상 이성적일까?
'보이지 않는 손'의 탄생: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형성될 때 우리의 삶이 윤택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자연발생적인 시장과 더불어 분야의 특성상 시장이 성립되지 않는 곳에도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얼마 전 작고한 밀턴 프리드먼일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일생을 통해 시장은 좋고 국가는 나쁘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이러한 시장숭배사상은 그 창시자의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기본사상을 거스른 채, 19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에 의해 처음으로 경제정책에 반영되었다. 이듬해에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영국의 노선을 따랐고, 마침내 민영화, 규제완화, 경쟁 같은 말들은 신진보주의 혁명이 내세우는 슬로건이 되었다. 1979년에 시작된 이러한 노선 변경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영국의 경제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노조는 막강한 세력을 내세워 국영기업의 파업을 조장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국민의 생활을 곤궁에 빠뜨렸다. 이때 대처 수상이 국가의 개입을 포기하는 경제정책을 발표하자, 영국 국민들은 해방의 종소리를 들은 듯했다. 그 후 실제로 인플레이션이나 파업을 비롯한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대처 내각은 목표를 달성한 뒤에도 시장숭배에 입각한 경제정책에 지나치게 오래 매달렸다. 영국 국민들은 철도를 비롯한 공기업들이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후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전 정권의 국가숭배사상으로 곤궁에 처했던 자신들이 이제 시장숭배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휩쓸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밀턴 프리드먼도 자유시장의 효용가치를 믿으라고 선전만 했을 뿐, 그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유시장의 효용성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경제학에서는 이성을 지닌 존재, 즉 인간을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고 부르고, 영리를 추구하는 방법에 따라 경제인을 다시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눈다. 생산자는 공급자이기도 하며 소비자는 수요자라고도 하는데, 생산자들은 최대 이윤을 위해, 소비자들은 최대 효용을 위해 애쓴다. 생산자는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동시에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자 애쓰고, 소비자는 높은 효용가치를 보장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아니면 비싼 값을 치를 마음이 없다. 따라서 생산자의 공급이 소비자의 수요와 일치하고, 그에 합당한 가격이 정해지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이윤 최대화와 효용 최대화의 상호작용에 의해 소비자의 욕구를 최상으로 충족시켜주는 상품이 나온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 즉 시장경쟁은 가격체계에 의해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킨다. 즉 기존 생산요소를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생산이 정확히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진다면, 공공의 복지가 증진되는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시장은 효율적이고, 효용가치의 상승으로 모두가 이익을 보게 되므로 도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 오늘날 경제학에서 효용이라는 말이 모든 논의의 핵심이 된 일도, 시장의 기능을 맹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용성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일도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문제는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은 단지 운명에 의해 부잣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생산과 소비의 가능성은 천지 차이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자들은 사치스럽고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부자들이 먹는 양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아주 조금 더 많을 뿐이기 때문에, 부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득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은 불평등한 초기배분의 문제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아담 스미스는 주장했다. 그러나 방금 설명한 효용성과 시장이 지닌 고유의 장점은 단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상에서만 발휘된다. 그와 같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한 시장: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 시장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이른바 완전한 처분권이 보장되어 어떤 재화나 서비스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도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손'이 기능을 발휘한다.
(1) 시장 참여에 제한이 없어야 하고,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시장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 완전경쟁원칙이 유지되므로 시장경쟁이 가능해진다. (2) 시장의 투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3) 시장 참여자 각각은 합리적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공급자는 이윤 최대화를, 모든 수요자는 효용 최대화를 추구하며, 이때 누구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한 제품이 추가로 생산될 때마다 생산비용이 증가해야 하고(한계비용의 증가), 동일 상품의 소비가 늘어날 때마다 효용가치는 줄어들어야 한다(한계효용의 감소).
그런데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조건들 가운데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분배 문제와 관련하여 시장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어떤 분배체제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특히 계획경제에 의한 분배보다는 시장경쟁에 의한 분배가 분명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시장이 정말로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의 답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시장숭배자의 착각: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인위적인 조장 없이는 시장이 결코 형성될 수 없는 일상의 다른 분야에까지도 '보이지 않는 손'의 효력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로 인해 학술시장, 교육시장, 의료시장 또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내부시장과 같은 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 '시장'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경우 '시장'이라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상호 간섭을 받지 않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입장이 맞부딪치는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지만, 이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시장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연출한 시장에는 일반적으로 가격이 전혀 없거나 이 '시장' 외부에서 정한 가격이 있을 뿐이고, 따라서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체계가 조정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 시장이란 단지 한정된 수단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종의 경쟁을 의미할 뿐이다.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성행하는 이른바 '내부시장'을 한번 파헤쳐보자. 기업이란 전통적으로 계급구조를 띤 기관이다. 요즘 사용되는 표현으로 사장이 직원에게 목표를 제시한다는 말은, 결국 사장이 직원에게 지시를 하고 그 수행 여부를 감독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업은 대외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계획경제를 실시한다. 그러니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과 더불어 대규모 계획경제가 사라진 후, 소규모의 계획경제조차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격의 화살을 기업으로 돌린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부시장' 장려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계급에 의한 통제가 시장세력으로 대체되면 그 과정에서 발산되는 기업의 에너지는 창의력으로 발전하는데, 이러한 창의력은 외부시장을 크게 키우는 창의력과 똑같은 것이다." 참고로 MIT슬로언스쿨의 토머스 말론 교수는 내부시장에 대해 "그것이 기업 내부라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동등하게 추구하도록 조성된다."라고 밝혔다. 내부시장에는 사내 재화와 서비스를 파는 장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내부거래가격 또는 기업 내에서 '화폐'처럼 통용되는 점수로써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거래방식을 통해 내부시장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업의 직원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팔면서 그들 스스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한다면 회사 전체의 효율성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계획경제를 실시하는 대기업이나 기업연합이 아직도 필요한가?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은 시장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되는데, 어째서 기업의 계급적 관료주의는 여전히 건재한가? 이와 같은 본질적인 의문은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에 의해 1937년에 이미 제기되었는데, 코스는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해 '기업의 기획비용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내부시장을 형성하고 동등하게 조정하고 유지하려니 너무도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업 내부에서 계획경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한편 밀리뮤카와 같은 내부시장 옹호자들은 새로운 정보기술 덕분에 기획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었다는 사실을 내세워 계획경제에 반대하며, 시장에 꼭 필요한 의사소통과 정보는 오늘날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내부시장의 도입 가능성 또한 대단히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환상을 묘사할 뿐이다. 정보기술 덕분에 훨씬 더 많은 자료를 훨씬 더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교환하고 저장하기만 하면 더 좋은 정보를 얻는가? 그렇지는 않다.
참고로 최근의 금융위기에서도 내부시장이 기업에 크나큰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위스 UBS 은행과 같은 특정 은행의 증권 인수 담당직원들은 자기 부서에서 발행한 새 유가증권을 내부의 다른 부서에 '팔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와 보너스를 챙겼다. 문제는 경제상황이 조금만 변하면 이 증권이 휴짓조각이 되어버린다는 점인데, 이러한 사태는 내부 사정을 아는 증권 인수 담당자들만이 예견할 수 있다.
이성적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 경쟁은 정말 효율적일까?
민영화의 딜레마: 지난 20년간의 정치를 돌아볼 때 인위적 경쟁이라는 정책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정권은 놀랍게도 사회주의 정부들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선두주자는 토니 블레어 수상이 이끄는 영국 정부였다. 그 뒤를 바짝 좇은 사람은 독일의 슈뢰더 총리였다. 슈뢰더는 국정 전반에 걸쳐 경쟁을 선동했고, 마침내 인위적으로 경쟁을 조장하는 일은 '진보사회주의 정부'의 기본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쟁주의 열기는 정치권을 넘어 맥킨지를 비롯한 수많은 컨설팅 회사로 번졌다. 이들 기업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국립대학교나 국립병원에게 '상담'을 해주었고, 이들 공공기관에게 '시장경제의 규율'을 지키라고 가르쳤으며, 천지를 온통 경쟁의 물결로 뒤덮었다.
경쟁주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쟁을 통해 시장 없이도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UBS 은행에서 2005년에 펴낸 『행정관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소책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실려 있다. "국가는 (…)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경쟁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업무나 서비스를 직접 자유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분야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 어떤 이유로 공공 서비스 부문에서 시장경제에 의한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경우에는 경쟁과 유사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학술,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경쟁을 일으키려 애썼고,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운동선수들처럼 최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이상은 순진한 꿈으로 드러났다. '시장 없는 경쟁'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했다면 공산주의 계획경제도 성공했어야 옳지 않은가? 그러나 인위적으로 경쟁을 조장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실패했고, 우리도 오늘날의 인위적 경쟁으로 말미암아 똑같은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계획경제시대에 일어난 다음 에피소드를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에피소드는 오타 지크 교수의 국민경제학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소련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생산량과는 관계없이 일정했고, 그나마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장을 도입하면 매우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 방법은 이념적인 이유로 채택될 수 없었다. 결국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경제전문가들은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기 위해 생산성을 측정할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신발산업의 경우 자재를 많이 사용한 '우수 노동자'에게는 성과에 따라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더 많은 신발을 생산하는 사람은 더 많은 원자재를 소비할 터이고, 원자재 소비량은 무게로 측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오래지 않아 생산되는 신발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업무에 열성을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이 갑자기 원자재 소비를 늘리기 위해 머리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더 많은 자재가 드는 새로운 모델이 끊임없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신발은 마침내 아무도 신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2007년 스위스 일간지는 21세기 초반 영국의 공공업무 아웃소싱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영국의 각 시 당국은 블레어 내각이 불러일으킨 민영화 열풍에 동참해 공공업무를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불법주차 단속 업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단속 업무를 맡은 업체에서는 담당직원의 근무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을 조장했다. 즉 발부한 범칙금 통지서의 수에 따라 담당직원의 보수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자 민영업체의 주차 단속 담당직원들은 구소련의 신발 공장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생산적'이고도 '혁신적'인 직원으로 변모했고, 나아가 시민의 진정한 골칫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직원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가 주차 시간이 만료되기 무섭게 딱지를 끊었고, 또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의 시각을 변조하는 단속요원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구소련과 오늘날의 영국에서 있었던 이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일반적으로 공익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많은 재료를 소비하라고 충동질을 하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다. 가능하면 많은 딱지를 떼게 만드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일처리는 사람들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극도로 무거운 신발을 원하지도 않고, 많은 범칙금 통지서를 발부하는 주차장도 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시장 없는 경쟁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다. 이러한 경쟁에서는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생산할 때 소비자의 욕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자들끼리 경쟁할 뿐이다. 또한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는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상적인 시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품이 생산되지도 않는다. 만약 위에 소개한 신발산업의 경우 시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조야한 신발은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을 터이므로 신발 가격은 곧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러면 공급자들은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신발 생산에 대한 통제를 시장에 맡긴다. 즉 '신발' 생산에는 시장경쟁이 시장 없는 경쟁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불법주차 딱지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여기서는 공익의 '생산'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공공주차장의 질서를 확립하는 문제인데, 이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시장원리에 의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주차 단속은 경쟁 없이도 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러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