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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주식회사

웨이드 로우랜드 지음 | 팩컴북스
탐욕주식회사

웨이드 로우랜드 지음

팩컴북스 / 2008년 12월 / 339쪽 / 15,000원



Part 1 경제는 어떻게 도덕성을 강탈해 갔는가, 왜 이렇게 이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한 순례자의 일대기

캐나다 국영 방송국에서 근무할 때 나는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뉴스 편집실에서 중역실로 승진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나에겐 그런 기능상의 권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회사 상황이 나빠지면서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바른대로 말하면 해고된 것이다. 방송국에서 내가 맡고 있던 '뉴스 및 시사문제 정책개발 국장'이라는 자리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필요하다는 결정이 난 것이다. 해고처리를 맡은 인사부서 직원에게 내 자리가 조직구조상 더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아쉽게 해고되는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 둘 모두 내가 새로 임명된 방송사 CEO와 무모하게 충돌했기 때문에 해고되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새 CEO는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전문 경영인이었다. TV 방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 1980~1990년대 크게 유행했던 합리화 과정을 추진했다. 이는 당시 미국 공중파 방송사들이 거대기업에 매각되면서 불어 닥친 방송의 현대화 및 합리화 추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방송국을 그만두기 직전, 나는 경영진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하고 나서, 뉴스의 품질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리 모두 매출을 증가시키고 원가를 절감하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량 해고와 급격한 예산 절감으로 인해 뉴스의 품질은 크게 떨어졌고,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광고주를 찾는 이권 사업에만 눈을 돌렸다.



해고를 당한 후 나에게는 많은 의문이 생겼다. 내 양심은 왜 내가 해고될 거라고 주장했을까? 회사는 무엇 때문에 뉴스와 같이 중요한 제품의 품질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리고 있을까? 이사회는 왜 담배 회사와 패스트푸드 회사에서 일한 경력밖에 없는 CEO에게 방송국 경영을 맡겼을까? 이러한 의문들을 되짚어보니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는 인간의 도덕적인 행동에서 양심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현대 비즈니스 기업과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 자체가 도덕적 행위자인지, 아니면 기업은 단순히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뿐인지가 의문스러운 것이다. 이는 기업이 과거 반세기 동안 역사적으로 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과 영향력을 갖춘 하나의 제도로 변해 갔기 때문에 새로 생긴 중대한 문제이다.



현대 기업은 이전 시대의 사상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세워진 도덕 체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사상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견해와 태도는 근대과학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들은 과학적 합리주의자들로 교회의 도덕적 권위나 양심과 같은 비이성적인 믿음 대신, 이성을 기초로 한 과학적인 대체물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 오늘날 기업이 교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시장자본주의는 신학이며, 자유경제이론은 신학의 교리이다. 그리고 기업은 복음을 전하고 교리와 의식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관리기관이다. 자본주의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복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호소력 있는 비교이다. 그러나 이 두 이데올로기는 선의 본질과 인간 복지의 구성 요소에 대해 매우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시각차가 너무 커서 기업을 반(反)교회적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물체처럼 두 이데올로기는 반대로 보인다. 거울의 한쪽 면에는 휴머니즘과 고대 그리스의 도덕 철학이 가미된 기독교 가치를 지닌 내세적인 중세 사회가 있고, 다른 쪽 면에는 시장자본주의로 구성된 근대사상이 존재한다. 이 근대사상이란 바로 신성불가침한 법칙을 가진 과학과 결국엔 기업에서 그 전형을 찾게 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과 사리사욕의 윤리를 가리킨다.



꿀벌의 우화

1600년대부터 유럽은 중세의 낡고 갑갑한 틀을 벗어 던지고 활기찬 근대사상을 받아들이며 대대적인 변신을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역사가들이 말하는 과학혁명이 갈릴레이, 데카르트, 홉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인간 행복의 주요 원천으로 신의 섭리를 외치던 성직자들은 신학과 도덕 철학이라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우주의 신비를 풀어내고 그 지식을 이용하는 진보를 이루는 일은 과학에 맡겨졌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사상가들은 경제활동에도 관심을 돌렸다. 그들은 경제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이 중세 시대 내내 유럽 경제를 지배해 왔던 규범들과 충돌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러한 규범들을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철저하게 검토해야 곧 등장하게 될 자본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탐욕에 대한 배척은 중세 서양 문명이 기초한 유대 기독교 전통의 중심 기둥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들은 돈에 대한 사랑과 물질적인 부의 추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커다란 엔진을 움직이는, 과학적으로 정당화된 동력으로 간주했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가진 도덕적 모순은 네덜란드의 버나드 멘더빌이 1705년 발표한 <꿀벌의 우화>라는 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악과 탐욕의 근원 그 저주받은 심술궂은 악덕이 방탕한 생활에 사로잡혀 있다네, 그 고상한 죄악, 사치가 가난한 백만 마리의 벌들을 부리는 동안 질투심 그 자체와 허영이 산업을 일으켰지. 먹을 것, 가구, 옷에 흥청망청 돈을 쓰고 변덕을 부리고 그 기이하고 우스운 악덕이 무역을 돌린 그 바퀴가 되었지. 그런 것들이야말로 왕국의 축복이었고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그들을 더욱 힘 있게 만들었고, 정치를 통해 천 가지의 교활한 속임수를 배운 선은 운 좋게 감화를 받아 악덕과 친구가 되었네."

- 버나드 멘더빌의 <꿀벌의 우화> 중에서 -



멘더빌의 작품은 사물의 궁극적인 목적보다 사물의 실제 상태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갖는 합리주의 사상가의 단호한 집념을 보여준다. 멘더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주는 위대한 원칙이다. 그것은 굳건한 기초이며, 모든 무역과 직업을 만들어내며 사회의 밑받침이 된다. 거기서 모든 예술과 학문의 진정한 기초를 찾아야 하며, 악이 사라지는 순간, 사회가 전적으로 와해되지는 않을지라도 망가지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간의 악덕에 대한 적절한 태도는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스피노자 이후로 100년 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 시장이 갖는 놀라운 기계적인 과정을 이렇게 서술하였다. "인간이 가진 개인적인 이기심과 열정으로 인해 모든 사회의 물품은 전체 사회의 이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비율로 분배된다." 스피노자가 말했을 때는 무신론자의 품위 없는 악담이라 배척되었던 내용이 애덤 스미스에 의해 사회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최신의 학문인 경제학의 굳건한 정설이 되었다. 개인의 탐욕이 시장의 자동조절장치에 의해 공공선(public good)으로 바뀌면서, 거울용 유리의 한쪽 면을 차지하던 악덕이 다른 면에서는 선으로, 아니 그보다는 더 사회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의 커다란 도덕적 모순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기심의 학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기심이 어떻게 열정적으로 제도를 관리하며 사회복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상업과 교역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회제도들이 인간의 악덕을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내는 방향을 바꿔 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완벽한 경쟁 상태에 있는 시장 자본주의는 개인 기업가들을 상대로 질서 있는 교역에 필요한 준칙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반사회적인 행동을 억제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스미스의 이론은 도덕적 행동을 제도 내의 자율적이고 자기조절적인 과정들과 합성하는, 다시 말해 도덕의식을 그런 과정으로 대체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스미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도덕을 하찮은 문제로 만들고 개인 생활만의 문제로 전락시켰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쁜 결과는 윤리적인 잘못이라기보다 운영상의 잘못(아무의 잘못도 아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도덕성은 절차의 문제로 축소되었고, 경제적인 상황에서 보면 옳고 그름이 아닌 효율성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었다. 그의 사상은 혁명적이었으나 스미스는 실험적인 환경에 사는, 지적인 혼란에 휩싸인 공룡과 다름없었다.



스미스가 인간은 도덕적으로 민감하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데 반해,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동물로 보았다. 공리주의 윤리에 따르면 최대 다수를 위해 쾌락에서 고통을 뺀 차이를 가장 크게 만드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성이란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되는 수단이나 동기 혹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눈에 보이는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필수였던 공리주의는 19세기 정치적 자유주의와 자유방임적 시장자본주의가 당당히 자리를 잡는 데 기초가 되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쾌락 극대화가 경제학의 과제"라고 말했다. 물론 공리주의만이 유일하게 근대 시장자본주의에서 활약하던 도덕철학은 아니다. 스미스와 제번스, 그리고 그들의 계승자들이 생각했던 체계의 이론적 구조 내에는 윤리적 이기주의라 불리는 근원적인 전제가 깊숙이 깔려 있다. 윤리적 이기주의란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복지만을 추구하는 행동을 선택하려는 마음을 유전적으로 갖고 있다는 주장을 말한다. 심리적 이기주의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궁극적으로 개인 행복에 대한 관심, 즉 이기심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인간이 언제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심리적 이기주의 주장은 윤리적 이기주의라는 하나의 철학으로 강화되었고, 이는 인간이 언제나 자신의 최고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사람이 언제나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믿을 만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기이한 도덕철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홉스가 보았던 지옥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에 이를 것이 뻔하다.



윤리적 이기주의는 스스로를 논리적인 궁지 속으로 몰고 갔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분명한 길은 없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사회와 문명을 어떻게 조직할까?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나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행동이 이웃의 이기적인 행동을 방해하는 경우가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것이다. 개인이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 사람들이 동시에 전체 복지를 위해 행동하게 만들어 줄 어떤 마력과도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이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러한 역할을 할 것이다.



도덕성의 의미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샤프츠베리 백작은 도덕감각론으로 알려진 이론을 고안했다. 이 이론은 인간 각자에게 미적 감각과 유사한 도덕 감각이 있어, 인간이 어떤 사건이나 타인에 대해 즐겁게 혹은 불쾌하게 반응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옳고 그름의 감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행이 공공선이라는 보편적 체계에 인간이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간주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선한 인간은 이기심과 선행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인간이다.



인간에게 도덕적 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 최근의 학자는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다. 그는 인간의 본능은 도덕적인 행동을 좋아하지만, 때로 사회제도와 구조가 반인간적인 행동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제도를 바꾼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 본능이 주도권을 잡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의견은 도덕감각 이론의 부활을 상징하는데 이를 지지하는 지그문트 바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냥 주어진 사실이다."



도덕적 가치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내는 방법에는 다른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철학자 로버트 케인은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변형시켜 절대가치로 확립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객관적인 가치를 정의내리기 위해 몸이 아픈 데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침울해진 한 화가를 상상하는 정신 실험을 제안했다. 이 화가의 부자 친구는 대리인을 시켜 유명한 수집가의 이름으로 높은 가격에 화가의 작품 몇 점을 구입할 계획을 세웠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케인은 다른 상황도 가정했다. 이번에는 진짜 수집가가 정말로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여 그림을 고가에 구입하였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화가는 자신의 재능이 인정받았다고 믿으며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오직 두 번째 상황에서만 그의 믿음은 옳았다. 케인은 이렇게 말한다. "화가가 두 가지 상황에서 똑같이 행복했을지 몰라도, 이 두 상황의 가치에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객관적인 가치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화가의 판단은 주관적인 느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가치를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대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필자의 생각에 도덕적 충동은 도덕적 절대가치, 즉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적용되는 도덕적 지침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있어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인 것 같다. 도덕적 절대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도덕적 상대주의가 일관된 철학으로 인정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에게 도덕의식이 있고, 그 의식이 진실한 목소리로 인간 모두에게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인식은, 분명 보편적으로 옳은 행동이 있음을 의미한다. 도덕적 절대가치는 정말로 존재한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했다면, 이제 우리는 도덕적 절대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가능한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려 애써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도덕적 절대가치의 발견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모순은 인간이 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도덕적인 충동 내지 의지를 타고 났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타고나기를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제도들에 의해 순순히 지배당한 채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인간의 도덕적인 본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본질을 부인하는 시장제도와 기업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Part 2 별나고 1차원적인 기업세상, 기업은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가



현대 비즈니스 기업의 출현

1990년대 미국의 인권 단체들은 저임금에 건강과 안전 관련 규정이 미비한 제3세계 국가에 하청을 주었던 나이키와 같은 대기업의 노동착취 관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이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사에 서한을 보내는 조치로 맞대응했다. 그러자 마르크 카스키라는 한 시민이 나이키가 대중을 현혹하는 비즈니스 관행을 범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나이키가 서한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의 해외 노동관례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소송은 나이키의 언론을 통한 맞대응이 커머셜 스피치(광고 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대중적인 중요성을 띤 이슈를 다루는 논쟁에 참여한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 변해 갔다. 전자의 경우라면 카스키는 나이키를 고소할 권리가 있다. 거짓말은 불법 광고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키가 단순히 대중 논쟁에 참가자로 행동했다면, 나이키의 거짓말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의사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이것은 법이 기업을 사람으로 취급하여 헌법상의 인권 조항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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