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 컬처앤스토리
자본주의 4.0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컬처앤스토리 / 2011년 8월 / 478쪽 / 20,000원
1. 자본주의와 진화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민주적 자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시스템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동, 정치 혁명, 세계대전 등 온갖 충격을 겪으면서도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달리 자본주의에는 생명체와 유사한 내부 동력이 있다. 생물학적 생존 본능에 해당하는 민주적 자본주의의 특징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경쟁의 원리에서 비롯되었으며,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시장을 모두 이끌고 있다. 2007~2009년 경제위기에는 민주적 자본주의를 성공적인 문제해결 장치로 보는 관점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직후 통용된 관점은 이와 반대였다. 세계 모든 나라 정부가 과잉부채 문제를 더 많은 부채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은 민주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추구하는 바를 간과하고 있다. 민주적 자본주의에서는 문제해결을 미루는 것도 효과적인 문제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태의 복잡계처럼 자본주의도 복잡하고 정교하다. 자기조직적인 복잡계는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혼돈의 가장자리는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 낸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동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영역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예측불가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복잡계가 살아남으려면 한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시스템이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낼 수 있는 내부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위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스템이 파괴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250년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네 번째 대전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 버전으로 진화를 시작했다.
자본주의 4.0과 그 이전 자본주의와의 핵심적인 차이는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곳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가 여부이다. 자본주의 4.0 경제관에 따르면 이 세상은 통제는 고사하고 이해하기에도 너무 복잡하다. 따라서 이전 버전의 자본주의처럼 시장 메커니즘을 순진하게 신뢰하거나 정부의 능력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이성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만약 모든 사람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몰락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면 이 믿음 때문에 현실은 그렇게 될 것이다. 반대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다시 성장과 번영이 시작된다고 믿는다면 이 확신에 따라 이들이 취한 행동 덕분에 세계 경제는 실제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위기가 발생하기 쉽고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으며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의 결정은 관료주의 갈등에 의해 왜곡되고, 끊임없는 로비의 대상이 되고, 종종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 민주적 자본주의를 믿으면서 동시에 민주적 자본주의의 많은 결함과 모순을 인정하려면 회의주의와 논리를 거스를 수 있는 지적인 용기가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용기를 ‘담대한 회의(audacity of doubt)’라고 부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네 단계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 두 가지를 보면 시장의 혼돈과 불의를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제도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왜 실패로 돌아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인간의 특성이 바로 경쟁심(야망)과 육체적, 물질적 충족에 대한 욕구(탐욕)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으로만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두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하나는 이익과 자본 축적을 도덕적으로 타당한 동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습이나 강압보다는 자발적인 교환과 협력을 경제활동의 주요 원칙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첫째 단계(자본주의 1.0)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부터 시작하여 1929년에 이르는 150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명백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이데올로기를 공통으로 하고 있다. 사유재산과 이윤 추구 동기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세상의 기본 동력이며, 허리케인이나 해일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경제 철칙이라는 믿음이다. 이 시대에는 자유방임주의 철학, 곧 정치와 경제는 인류의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활동이며 계속 별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지배적이었다. 19세기의 사상가들은 정부가 정의 수호나 국방과 같은 의무에 한정해서 업무를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경제활동과 고용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의 경제위기로 인해 전환된 새로운 종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2.0이다. 정부가 거시경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자본주의 1.0의 관점은 1930년대 초반 전 세계 무역과 산업이 무너지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대규모 실업사태로 국민들의 분노가 깊어지자, 사회주의 혁명과 파시스트 독재의 위협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인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자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경제에 관여하였다. 그리고 경제학자와 정치인, 유권자들은 점차 시장과 정부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자본주의 2.0의 결정적인 특징으로 이어졌는데, 바로 자본주의는 정부가 통제하지 않으면 파멸을 가져올 정도로 본질적으로 불안하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철학은 1946~1969년 케인스 경제학의 황금기에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세계 경제는 높은 물가 인상과 대규모 실업 사태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제 혼란이었다.
석유위기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의 황폐함에서 탄생한 것이 자본주의 3.0이다. 자본주의 3.0의 시대는 1980년대 이후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대전환에 영향을 끼친 것은 밀턴 프리드먼이 주도한 통화주의의 추종자들이었다. 통화주의는 정부 개입으로 자유경쟁시장이 왜곡되지만 않으면 시장은 경제안정과 완전고용 등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결과를 낳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자본주의 3.0의 시대는 1979년 대처리즘에서 시작되어 2007~2009년 경제위기에서 끝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3.0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자본주의 4.0)가 세력을 잡으려고 떠오르고 있다.
2. 화살과 고리금융혁명
1989년부터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근본적인 이유는 낮은 물가상승율과 경제안정, 세계화로 인한 지속적인 금리인하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했으므로 금리는 자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저금리라는 메가트렌드 때문에 개인과 은행들은 저금리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했고, 그 결과 전 세계 주택가격이 상승했다. 그런데 주택가격 상승과 금융 부문 규제완화가 맞물리면서 구조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금융규제 완화 덕분에 부동산 투자가 모기지 시장을 통해 쉽게 현금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달 이자만 지불할 수 있으면 원금은 상환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영구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같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생활양식을 누릴 수 있었으며, 일하는 기간 동안 자산과 소득을 고르게 분포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간단하게 대답하면 나무가 하늘까지 자랄 수 없는 법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대출규모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건전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채무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이 수준 이상으로 호황이 계속되면 고통스러운 불황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은행과 규제기관들은 한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대출을 통제하지 않았을까? 탐욕과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 이유는 바로 합리적인 부채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몰랐으며 그것을 결정하는 방법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규제기관은 개인 대출의 적정선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쓸 방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출 규모가 계속 증가하면 거품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조치를 취하거나, 은행들이 자본준비금을 늘리도록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은 이런 딜레마를 직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장이 스스로 적정선을 정할 것이고,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주면 더 잘 작동할 것으로 가정했다. 부채 규모가 너무 커졌음에도 은행이 대출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시장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시장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호황과 불황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경제 사상가들은 금융 부문의 호황과 불황 때문에 웃고 울었다. 따라서 근래 들어 가장 큰 금융위기에 대해 서로 다른 많은 설명들이 제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과도한 저축률부터 미국 연방정부제도의 실책에 이르기까지, 부패한 정치 로비부터 인간의 심리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명이 있었다. 각각의 이론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론을 배제하고 자신만이 완전하고도 옳은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4.0의 실용주의적 정신에 따르면, 하나의 관점이 옳으면 다른 모든 관점들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옳지 않다.
경제의 호황-불황 주기 이론들은 많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주장한 투자주도 경제순환주기 모델은 적정선의 위아래로 움직이는 금리변동에 의해 투자 규모가 극심하게 변동하는 것을 토대로 한다. 케인스는 기업의 사업 전망은 ‘야성적 충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는 통화정책뿐 아니라 기술적, 지정학적,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민스키는 금융 불안정성 가설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경제 안정성은 은행들의 모험성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조지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은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과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 이론이 일반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후기케인스주의와 네오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위기가 노동자의 임금과 기업의 이익 사이의 수익 분배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아마도 경제순환주기 위기 전체에 대한 최고의 설명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 소로스의 이론, 민스키의 이론을 결합하고, 여기에 통계적 오류 때문에 매우 확대된 금융 불안전성과 소로스의 이데올로기적 슈퍼 거품을 추가하면 될 것 같다. 여기에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세, 서브프라임 호황, 미국과 중국 간의 국제적 불균형이 발생한 이유는 신케인스주의-마르크스주의 접근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호황-불황 주기에 대한 모든 설명의 핵심 논점은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이 때문에 금융이 다른 경제활동과 다르며 불안정한 것이다. 금융 부문의 본질적인 예측불가능성이 의미하는 바는 금융시장에서 가격(금리, 환율, 주가 등)들이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정상적인 시장 경쟁을 통해 이런 가격 오류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종 금융시장이 비정상적인 수준의 탐욕과 공포에 굴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호황-불황 주기가 발생한다.
3. 시장 근본주의의 자멸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경제적 귀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근본 이유는 규제기관의 어리석음이나 은행의 오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저지른 일련의 오판 때문이었다.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이다. 그가 저지른 첫째 실수는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시킨 것이다. 리먼의 파산은 금융기관들에 대한 예금주와 채권자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전 세계 모든 은행에서 예금인출 사태를 촉발했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유례없는 붕괴를 겪자 소비, 국제무역, 산업질서 등의 실물 경제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만약 리먼의 파산이 세계 최악의 금융공황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세계 경제가 이렇게 심각한 불황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공황은 두 가지 방법을 써서 피할 수도 있었다. 리먼을 구하거나 아니면 리먼 파산 직후에 정부가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 포괄적이고 무조건적인 지급보증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재앙이 된 이유가 애초부터 공격한 뒤에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듯이, 리먼브라더스도 파산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적절한 계획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럼스펠드는 끊임없이 사후 평가를 받았지만 리먼을 파산시킨 미국 재무부의 무모한 결정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데 된 데에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은 정부의 핵심 역할이지만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레이건 이후 미국의 정치신념이 근원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금융위기 동안에도, 금융시장의 인수합병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며 경제적 관념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정치인들은 전쟁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지만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전형적인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착각이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자본주의 4.0에서는 사라질 것이다. 폴슨이 저지른 더 큰 실수는 미국 정부가 설립했고 보증을 제공해주던 모기지 회사들을 구제(국유화)한 것이었다. 이 조치로 인해 당시 금융시장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폴슨이 모기지 회사들을 국유화한 결과 금융기관에 대한 장기 투자자들은 당국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의 주식이 하루아침에 청산될 수 있다는 리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반면 금융기관들의 붕괴에 판돈을 건 투기꾼들은 미국 재무부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주식가치가 거의 제로로 떨어질 수 있음을 미국 재무부가 보여주자 투기꾼들은 미국의 모든 은행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투기꾼들이 차례대로 은행들을 공격하여 배를 불리면서 금융대란은 미국, 유럽에 이어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당시 폴슨이 금융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깊은 이데올로기적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시장이 경제를 이끌거나 합리적인 자산 가격을 형성하는 데 틀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추가 이제 흔들리고 있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막으려면 우리에게 더 강력한 정부나 더 상세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존중하지만 시장의 한계와 결점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뛰어난 정부가 필요하다.
깡통따개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경제학자, 화학자, 물리학자가 함께 무인도에 고립되었다. 식량은 콩 통조림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깡통따개가 없었다. 물리학자가 말했다. "햇빛을 뚜껑에 모아봅시다. 그럼 녹아서 구멍이 생길 거요." 화학자가 말했다. "소금물을 뚜껑에 부으면 녹이 슬어 뚜껑이 열릴지도 몰라요." 이때 경제학자가 말했다. "그런 복잡한 아이디어는 시간 낭비에요. 그냥 따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 우스갯소리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근거 없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을 좋아하는 현대 경제이론 때문에 정치인과 규제 책임자, 은행가들은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세계에서는 금융 안정성이 자동으로 유지되며, 정부 개입만 없으면 효율적이며 전지전능한 시장이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리먼 파산 이후의 사건들로 인해 경제사상에도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학자들이 가장 당황스러워 했던 것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 아니라 위기가 일어난 뒤에 정치인이나 중앙은행들에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원래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분석에 실패한 것이 예측에 실패한 것보다 훨씬 비난을 들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