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좌파 경제학

박연수 지음 | 북오션


좌파 경제학

박연수 지음

북오션 / 2011년 8월 / 296쪽 / 15,000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보호한다는 민주공화국의 이상이 정파적 이념 앞에 굴복하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배경, 경제적 수준에 따라 자신만의 사회, 정치적 가치 체계가 형성된다. 이를 우리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념이라고 한다. 개인의 이념에 대해서 누가 선이고 악인가를 가를 필요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쪽으로 줄을 선다. 이것이 투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이념을 왜곡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너무 많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발붙이지 못했다.

오랜 정당 역사를 가진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경제적 계급 차이로 지지 당원이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들이 오히려 경쟁 붙이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보수 쪽에 가서 자리 잡는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 논리가 지배하던 한반도에서 좌라는 용어는 금기시해야 되는 것이었고 정적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념은 본래 이런 것이 아니다. 이념을 드러내고 논쟁해야 더 나은 길을 찾아 사회가 진보한다. 논쟁을 통한 사회 진보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만 쫓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좌파라는 말도 안 되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국민이 이러한 구도를 깨지 못하면 좌파의 가치는 광장으로 나오기 어렵다.

보수 쪽에서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몰아세웠지만 그는 좌파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는 국토 균형 개발 아젠다를 밀어붙였고 이로 인해 전국 곳곳이 개발로 몸살을 앓았고 이 호재를 타고 전국의 땅값이 상승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받아들이는 데도 그는 적극적이었다. 대학 설립을 자유화하고 대학 등록금도 시장 논리에 맡겼다. 자유무역협정(FTA)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권과 문화적 자유는 진보했을지 몰라도 경제적 불평등은 매우 심해졌다. 이 정도임에도 그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자들은 정신병자다. 좌파는 그의 경제 정책과 대척점에 있는 자들이 주장하는 가치다.

그리고 우파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치 집단의 실상은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극우 정치 집단일 뿐이다. 극우 논리가 판치다 보니 유럽 정당이 대부분 정책으로 받아들인 부유세, 부동산 보유세를 가지고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대중 조작에 나서도 통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테제임에도 정서적 반감에 부딪치고 있다. 세계화 경제를 받아들인 독일도 10년 이내의 부동산 시세 차익은 대부분 세금으로 환수한다. 때문에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이 장기 공공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정치를 떠나 균형과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좌파 경제학이 실현된 모습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좌'의 논리는 박해받았고 정치적으로 해석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만 외칠 줄 알았지, 경제성장의 폐해에 대한 어떠한 처방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암울한 그림자를 거둬내고 만인이 경제성장의 햇살을 받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판을 갈아엎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 위기에 칠판 경제학(주류 경제학)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소위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이 모순 덩어리의 한국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만인이 행복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만인이 행복한 자본주의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행복한 자본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도그마다.

핀란드는 보편적 사회복지를 실천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유연하게 대응해왔다. 어떠한 일에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사회 연대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핀란드는 13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독립할 때까지 재정러시아 내의 핀란드공국이었다. 20세기 초에 독립의 꿈은 이뤘지만, 신생 독립국 핀란드의 정치/경제적 여건은 불안정했고 계층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리한 환경이 사회 통합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핀란드의 사회복지는 1895년에 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에서 독립한 1917년, 8시간 노동제를 유럽 최초로 시작했고 의무교육법은 1921년에, 국민연금을 1937년에 만들었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핀란드는 '국민 복지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진다'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편에서 참전함으로써 종전 후 소련에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했다.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국민은 궁핍했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의 이상은 후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됐다. 국가가 어려울수록 과감한 개혁이 추진되고 복지국가 건설을 향한 노력이 가속화되었다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한다. 핀란드는 어려울수록 국민의 삶에 녹아드는 진보적 복지 프로그램을 내놨고 이를 사회통합의 계기로 삼았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가 넘는다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당시 유럽의 후진국으로 국가적 역량이 부족했던 핀란드에서 이런 과감한 복지 정책이 짧은 기간에 추진됐다는 것을, 그것도 70년 전에 말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배경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납득되지도, 납득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핀란드는 GDP의 8%를 복지 정책에 쏟아부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 이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었고 이것이 주춧돌이 되어 오늘날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이것이 얼마나 효용성 있는 정책이었는가를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세계화가 만연된 신자유주의하에서도 각국의 정부들은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치의 복지 수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40%다. 독일 우파는 '왜 40%를 위해 전국민이 내는 세금이 쓰여야 하나'라는 논리로 '사회적 평등'의 역차별을 말했다. 결국 2006년 독일에 등록금제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독일 대학생들은 1학기에 500유로(약 75만 원)를 내게 됐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들을 해소하기 위해 등록금제를 도입했다는 우파의 주장과 달리 등록금제 도입으로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업 중단사태가 속출했다. 결국 대학 등록금 제도는 바이에른, 니더작센 두 개 주를 빼고 대부분 폐지됐다. 등록금제가 폐지된 주에서는 학생카드비로 130유로(약 20만원) 정도만 내면 각종 사회적 혜택과 버스, 근거리 기차 등의 공공 교통 요금도 면제받는다. 생활비는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대학진학률이 80%로 이미 의무교육 수준에 와 있는 대학민국에서는 역차별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런 인식과 절박함이 없다. 여전히 세원 타령이다. 가본 적이 없는 길은 항상 두렵다. 그러나 그 길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면 어떤 장애도 넘어서야 한다. 그 대안은 20세기 복지국가 모델을 현실화시킨 좌파 경제학을 정치성을 배제하고 적극 수용하는 것이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 날개로 나는 경제 체제로는 만인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라(노동)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꿈꾼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 4,320원을 받고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한 달에 20일을 일하면 한 달 수입은 691,200원이다. 주 6일을 일하고 야근, 잔업을 해도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120만 원이다. 1인당 GDP 2만 달러라는 경제선진국에서 자국 노동자들이 이러한 처우를 받는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성에 기준하여 상상이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영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저임금 구조는 대기업의 하청, 재하청 구조에서 발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자본은 국적이 없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곳이 바로 그들의 정착지다. 2009년에 삼성전자는 130조 원의 매출, 10조 원의 이익을 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고용한 노동자는 오히려 줄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중 60%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도 조만간 국외 생산이 더 많아진다. 관세 회피, 상대국의 보복 무역 등 전략적 이해관계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해외에 생산 시설을 만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이것은 21세기 경제 노마드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유럽의 독일, 프랑스, 그리고 강소국을 지향하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의 기업은 대부분의 다국적기업이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에게도 국적은 있다. 이들에게 사회적 공헌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은 국민의 희생과 국가의 지원에 의해서 성장하지 않았던가.

유럽에 장기 여행을 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럽이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기반 서비스 시설이 부족하여 일을 처리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절차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사람값이 비싼 사회다. 인간의 노동 가치를 효율성으로만 따지지 않는다. 핀란드 대통령이 내한했을 때 호텔에서 자신의 옷을 직접 다려 입는다는 것이 국내 언론에 알려졌었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가십성 기사로 흘려 읽었을 것이다. 핀란드는 유럽의 소국이지만 유럽에서 가장 빨리 노동기본권과 여성참여권을 보장한 나라이다.

그들의 철학적 관점은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 힘든 일은 약자에게 시키지 않으며, 몰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의 공통적 특성은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에 대한 보상이 매우 크다는 데 있다. 독일은 의사와 지멘스 노동자의 시간 단위당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잡셰어링의 나라 덴마크에서는 사무직 노동자보다 사무실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노동자가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급여와 사회복지 혜택을 누린다. 핀란드에서는 아스팔트 공사 노동자가 고소득 직업군으로 분류되기까지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금융 산업과 제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사회 통합을 위협할 정도로 그 간극(chasm)이 확대되고 있다. IMF 이후 국내 은행 임원들 급여는 7배에서 15배까지 증가했다. 반면 제조업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낮아졌다. 기업이 비교 우위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정말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OECD 국가가 될 것이다. 이미 그 징조는 시작됐다. 미성년자를 고용하면서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부모 동의도 받지 않고 최저임금 4,320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을 지불하는 사업주들이 많다. 한 달을 일해도 88만 원의 절반도 못 번다. 청년들의 노동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만큼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은 없다. 최저임금제는 노동력 착취를 막고 노동 환경을 개선시키고 빈곤을 없애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다. 어찌보면 최소의 비용으로 사회안 전망을 확보하는 경제적 행위다. 2008년 기준으로 OECD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최저임금이 낮은 국가는 멕시코, 터키와 동유럽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뿐이다. OECD 평균최저임금은 6.44달러다. 우리나라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3.12달러(2008년 기준)다. 평균 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32%로 폴란드 37%, 루마니아 34%보다도 낮다.

덴마크에는 "불행한 의사보다 행복한 청소부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의사와 청소부 간의 실질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고 직업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다치게 하는 사회 풍토가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덴마크 국민은 아이들의 진로에 간섭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건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다면 누가 굳이 대학을 가려 하겠는가. 대학에 많이 가는 것을 탓하기 전에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학력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사람값이 비싼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다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봐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와 그 적들(인물)



한국 재벌은 온 국민이 키웠다

대한민국 재벌을 상징하는 삼성, 현대가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 더 이상 욕심을 내면 남는 것은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았던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길뿐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재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건희, 정몽구 회장이 여생을 한국의 록펠러, 카네기처럼 후세에 만인의 칭송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 보냈으면 한다.

삼성과 현대의 성장사에서 가장 혜택을 입은 집단은 주주가 아니다. 삼성, 현대에 고용된 임원들이다. 이들은 삼성이 망하든 흥하든 매우 만족스러운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 사업상 발생하는 리스크 모두는 대주주를 겨냥하고 있다. 삼성, 현대는 빛의 속도로 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경쟁과 성장이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삼성, 현대는 국가적 자산이다. 삼성, 현대를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 이 정도면 그룹의 회장은 한 개인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큰 명예를 얻은 것이다. 더 이상 욕심 부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다. 당연히 목표한 대로 가게 돼 있었다. 5/16 군부 세력의 머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지식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천지개벽할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뤘을까? 사실 독한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국가 자원의 총동원, 국가 기간산업의 완전 장악, 계획경제, 인권 무시, 정경 유착, 반공주의로 정치 세력 억압, 그래도 안 되면 고문과 협박, 이 정도의 배짱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장면 총리 같은 민주주의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87년에 민주화되지 않고 군부가 계속 집권했다면 대한민국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압축 성장해온 우리 경제에서 정부는 시장의 강력한 통치자였다. 정부의 눈 밖에 난 기업은 여지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정부는 한 기업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시장에서의 가격 통제, 수출 쿼터량까지 정부가 교통 정리하던 시대였다.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도 정부가 지배했다. 저개발국가가 단기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정치는 군부의 공포정치 아래에 있었으며 개인의 노동권은 유보되었다. 정경 유착의 최고 수혜자는 재벌이다. 한국 재벌들의 성공 뒤에는 국민의 희생이 있었다. 한국 재벌은 공정한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은 매우 노골적이다. 소위 MB노믹스의 핵심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이론적 배경은 트리클다운이론(trickle-down theory)이다.

적하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해괴한 이론은 물이 넘치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으로 얻어진 과실은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도 돌아간다는 것이다. MB노믹스의 설계자 강만수는 개발 독재 시대에 관료로 입문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친재벌 정책이 나온 것은 사필귀정이다. 그는 기업에 대한 감세 정책도 모자라 세무 감사유예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또 고환율 정책으로 한국 재벌들이 사상 유례없는 실적을 내는 데도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그가 재직하는 기간에 금산 분리 완화를 추진하고 지주회사 규제를 대폭 풀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공정위는 상호출자, 채무보증제한을 완화하고 출자총액제한제를 없애버렸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