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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캐피탈리즘

칼 E. 월터 외 지음 | 시그마북스


레드 캐피탈리즘

칼 E. 월터, 프레이저 J.T 하위 지음

시그마북스 / 2011년 8월 / 300쪽 / 15,000원



1.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회고하다




문화혁명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중국이 그 상황을 성공적으로 탈출하고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3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1978년 경제 개혁을 시작한 중국은 1980년대 말까지 자본의 초고속도로로 상징되는 미국식 금융 모델을 경제 발전의 본보기로 삼았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의 국내 개혁은 미국이 유행시킨 규제 완화 추세를 따랐다. 1992년 덩샤오핑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을 단호히 표명했다. 이처럼 덩샤오핑이 자신감을 피력하자 경제개혁 속도는 급물살을 탔다.

중국 금융제도의 틀이 현재의 모습으로 잡힌 것은 1990년대 초반 장쩌민과 주룽지에 의해서다. 1990년 상하이와 선전에 설립된 증권거래소가 이들의 정책 방향을 잘 상징한다. 1994년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기틀이 잡혔고 4대 국영은행(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농업은행)이 완전히 상업화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주룽지 총리는 부실 은행을 대상으로 자본증자와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중국 정부는 4천억 달러가 넘는 부실채권을 상각한 다음 각 은행에 자본을 수혈하고 세계 최고 은행을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기반을 탄탄히 닦은 4대 은행은 2005~2006년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주식이 공개되었고 400억 달러가 넘는 신규 자본을 유치했다. 중국 은행들의 성공적인 주식 공개는 중국 금융개혁의 정점을 기록하는 사건이었다.

장쩌민과 주룽지가 실시한 개혁 정책의 골자는 국유기업 개혁과 은행 개혁, 증시 설립, 해외 증시 주식 공개,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공산당 지도부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로 바뀐 때부터 개혁 정책은 표류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개혁 정책은 '허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소득 격차를 키웠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2005년이 되자 정책 표류 현상마저 끝이 났다. 금융개혁이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러 파로 나뉜 특수이익 집단들이 중국 공산당이라는 지배적 정치제제 안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구조의 분파화를 이끈 것은 시장경제도 수요공급 법칙도 아니며, 세심하게 균형 잡힌 사회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사회 메커니즘은 정치 지도층을 이루는 혁명계급 출신 가문 각각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무분별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유입이 중국의 엘리트 가문에 미친 영향이나 중국 사회에 법적, 윤리적 균형추가 부재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 중국이 처한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 보호주의 장벽을 벗기고 보면 돈에 대한 탐욕이 체제 내 국유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중국 국가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독과점 집단을 부르는 말이 '국가대표급 기업'이라는 말이며, 중국 사회주의 경제의 대들보인 이들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엘리트 가문들이다. 어떤 국유 대표 기업은 "누가 돈을 소유하고 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돈을 사용하느냐는 것이다."라는 말로 이 같은 상황을 지적했다. 중국의 모든 사람이 그 돈을 사용하고 싶지만 사용한 데 따른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다. 국유경제가 전체 국민이 소유한 경제라는 것은 허울에 불과하다.

국유경제를 실제로 나눠 가진 것은 권력자와 그 가문, 친척, 가신들이며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 추구에만 몰두해 있다. 국가의 후원에 의해 지탱되는 국유 경제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정치 지도층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독차지할 것이다. 국유경제는 오늘날 중국 정치 구조를 떠받들고 있는 기틀이며, 중국 공산당의 보호와 권력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 요새로 둘러싸인 중국의 은행 시스템



중국의 은행이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사히 헤쳐나왔다는 것은 주룽지가 대대적으로 시작한 은행 구조조정의 성과를 뒷받침한다. 선진국 거대 은행 상당수가 금융위기로 파산한 데 반하여 중국의 은행은 겉보기에 멀쩡하고, 일각에서는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고 주장한다. 주식을 공개한 중국의 6대 은행은 현재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으며, 특히 공상은행은 세계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한다. 반면 미국 최대 은행인 JP 모건은 9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시가총액 데이터로 중국의 은행과 미국의 은행을 비교하는 것은 사과를 오렌지에 비유하는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다. 100% 유통주를 보유하고 있는 JP 모건의 시가총액을 유통주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국 공상은행과 비교할 수 있을까? 중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공상은행 주식 70%를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공상은행의 주식가치는 폭락할 것이다. 이러한 주식 구조와 가치평가의 문제점은 모든 중국계 은행과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진 시장이나 경제 민영화 국가의 주식 공개 기업에 상응하는 시가총액 산출 방법이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은행을 직접 비교하는 방법은 자산을 비교하는 것이다. 중국의 4대 은행은 외국 은행들과 자산 규모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은행이 얼마나 탄탄한지는 알 수가 없다. 은행의 건전성은 자산의 규모가 아니라 자산의 품질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은행들이 어떤 방식으로 부실 채권의 부담을 벗어났는지 알아본다면 어째서 아직도 취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1999년 중국의 4대 은행 부실채권 비율은 39%였다. 2001년 이후 이들 은행이 이전하거나 상각한 부실채권 총액은 48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금액은 1988~1993년까지 5년간 중국 총생산의 20%와 맞먹는 액수이다. 부실채권의 상당 부분은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에서 발생한 것이다. 중국 은행은 국유기업이 민간기업과 달리 안정적이라 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국유기업에 대출을 몰아주고 있다. 공산당 정부는 은행에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을 명령하지만 국유기업에 대출을 상환하라는 명령은 내리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국 정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은행이 국유기업을 지원하기를 원한다. 국유기업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은행 경영진에게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은행은 정부의 대출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만 비난을 받는다. 은행을 구조조정 한다고 국유기업이나 정부의 행태가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과거 10년간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급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국유기업들이 대출 상환을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졌고,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투자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선정하고 있고, 부실 채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상은행 양카이성 행장은 중국의 금융 부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중국은 연간 8% 가량의 거시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중국의 금융 부문을 특정짓는 것은 간접 파이낸싱(은행을 통한 파이낸싱)이다. 반면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 파이낸싱(주식 또는 채권을 통한 파이낸싱)규모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은행 부문에서 중요한 사항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연간 8% 성장이라는 전반적인 경제 목표가 있으며 이는 막대한 자본투자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둘째, 중국의 자본은 주로 은행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은행 대출이 8%대의 GDP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양카이성은 대출 성장률, 수익성, 배당 성향을 전망하면서 향후 5년 동안 중국의 4대 은행이 확보해야 할 신규 자본이 4,800억 위안(약 700억 달러)이라고 말한다. 2005~2006년 은행들이 막대한 규모의 주식 공개를 통해 총 444억 달러를 조달한지 4~5년 밖에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양카이성은 시장리스크, 운영리스크, 자본 요건 강화를 감안하면 훨씬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부실채권으로 말미암은 리스크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것은 공산당이 운영하는 현행 중국의 은행제도가 외부세계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3. 취약한 요새로 둘러싸인 중국의 은행 시스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중국 금융기관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이에 주룽지 당시 중국 총리는 저우샤오촨 중국건설은행 총재 주도의 구조조정안을 지원했다. 1998년 1차 조치로 재정부가 은행권에 수혈한 자본은 은행의 신용도 추락을 막았다. 저우샤오촨 팀은 2단계 조치로서 굿뱅크(good bank)와 배드뱅크(bad bank)제도를 제시했다. 4대 은행의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자산관리공사(AMC)를 은행마다 설치하는 계획이었다. 배드뱅크 역할을 하는 AMC가 우량은행의 부실채권을 인수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중국 국무원이 이 제안을 받아들임에 따라 1999년 AMC가 설립되었다.

2000년 막대한 규모의 부실채권 포트폴리오가 AMC로 넘어갔다. 그 결과 은행은 엄청난 부담을 덜게 되었고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등 전략적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국제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자국 은행이 선진 금융기업의 노하우를 흡수하기를 바랐다. 기반을 탄탄히 닦은 4대 은행은 2005~2006년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주식이 공개하였고 400억 달러가 넘는 신규 자본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은행 구조조정의 성과는 중국내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경쟁관계에 있는 정부 부처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4대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은 재정부 주도로 진행되었다. 4대 은행은 기업 공개를 통해 자본을 유치했으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접근방식은 은행마다 달랐고, 부실채권 포트폴리오의 처리 방식도 판이했다.

중국의 독자적인 은행 시스템이란 AMC에 의해 통합된 과거 은행 시스템의 잔재를 끌어 모은 것에 불과하다. 금융 부문 부실채권이 모두 청산되고 2009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지원하는 대출 잔치가 일어나기 이전에, 4대 은행과 국무원 간에는 AMC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AMC 최고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책적 부실채권의 1차분에서 발생한 손실(1,120억 달러 추정)은 국가가 부담할 것이다. 시중에서 인수한 부실채권의 손실액(640억 달러 추정)은 AMC의 영업이익에서 인민은행의 재대출 이자를 제한 금액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은 AMC가 부실채권 상각을 실시한다면 파산할 것이며, 이에 따라 재정부가 개입하여 남아있는 인민은행 채권과 대출금을 대신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4대 은행은 자본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데, 문제는 과거나 현재나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현 중국 지도층이 은행 대출에 의존한 대규모 부양책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지난 10년 간 중국이 금융 개혁을 통해 맺은 결실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우량은행'이 약화된 반면, 개혁 조치로 설립된 '배드 뱅크'가 앞으로 닥쳐올 개혁 추세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한층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4. 중국의 독점 채권시장



중국의 채권시장을 처음으로 창출한 것은 은행개혁을 이끌었던 개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2005년 은행 부문에 집중된 과도한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마비 상태에 빠진 은행 간 국채시장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해외기업이 발행하는 상품을 본뜬 채권상품을 도입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발행물량, 수천 명에 달하는 시장 참가자, 다양한 상품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채권시장은 아직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원시성은 해외 주요 시장과 달리 추진동력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해외시장의 추진동력은 여러 수준의 리스크를 평가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시장의 능력이다. 보통 무위험 자본비용은 시장이 결정하는 수익곡선을 기반으로 산출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정부가 이를 산출하는 척도를 직접 제시한다. 중국 정부가 제시하는 척도는 1년 만기 예금 비율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시장인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인수비용이나 채권가격이 실수요가 아닌 은행 대출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일이 허다하다. 1차 시장에서 채권 발행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인수한 채권을 매각하면 인수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중국 국채와 여타 채권의 하루 거래량은 기껏해야 몇백 건을 넘지 않는다. 채권가격을 인위적으로 책정했기에 채권 발행 기업은 다양한 채권상품이 있는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채권은 대출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채권으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인 탓에 인수자와 투자자가 채권시장에 냉담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무슨 이유로 채권시장을 운영하나? 중국이 채권시장을 개발한 일은 1998년 시작된 은행 개혁 과정의 첫걸음으로 생각된다. 활발한 채권시장이 존재하면 은행을 제외한 금융기관들의 회사채 보유를 부추기고 리스크도 분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시장을 국가의 통제 아래 있지 않은 투자자들에게 전면 개방하지 않는 한, 채권시장 활성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정부는 국가 예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 시장을 이용하여 왔다. 따라서 채권시장에서 국채와 회사채의 인수가 정치적인 의무로 부과되는 관행이 여전하다. 시장에서는 유동성이 부족하여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 채권가격이 1차 시장에서 실제 수요를 가리키는 수준보다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발행 수, 인수절차의 진화, 발행사 공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개방성 등 표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채권시장은 교묘하게 정체를 감춘 대출시장에 가깝다.

중국 채권 시장의 1차 딜러사 24군데 가운데 2개사를 제외하고 모두 은행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중국에서는 은행이 전체 채권의 70%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은행들은 채권을 인수한 후 대출과 마찬가지로 만기 때까지 투자 계정에 넣어놓는다. 은행 등 1차 시장의 가격책정 메커니즘이 왜곡되어 있으므로 증권사 역시 리스크 있는 자본의 가치를 책정하는 기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인민은행이 국채의 시장거래 공식 가격과 1년 은행 예금이율까지 정해주기 때문에 굳이 자체적으로 책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 중국 채권시장을 둘러싼 투쟁



2001년 중반에 일어난 은행구조조정과 주식시장 폭락은 중국 채권시장의 역동적 성장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채권시장의 성장은 2002년 저우샤오촨이 중국 인민은행 총재에 임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그해 9,330억 위안의 채권이 발행되었고, 이 중 상당수가 국채와 정책 은행 채권이었다. 2009년까지 채권 발행액은 2.8조 위안을 기록했고 중국의 총 채권유통액은 17.5조 위안에 달했다.

중국 국가개발은행의 자금조달과 대출이 급증한 것은 2003년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새로운 지도부가 입성한 것과 시기를 같이한다. 국가개발은행이 계획경제로의 복귀와 천연자원 위주의 대외정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지도부의 총아가 된 것이다. 당시 국가개발은행 천위안 총재의 목표는 국가개발은행 포트폴리오에 투자은행과 증권사를 추가함으로써 중국 최초의 국제 은행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책성 은행인 국가개발은행은 국가예산을 지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 시장에서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충당해야만 했다. 2005년부터 국가개발은행의 채권 발행이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재정부로부터 입지를 위협받던 인민은행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후 국가개발은행은 중국 제2의 재정부 역할을 하면서 채권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나섰다. 국가개발은행은 2009년 재정부의 발행액에 맞먹는 6,200억 위안을 발행했다. 전체 시장의 30%에 가까운 발행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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