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중국경제를 말하다
홍순도 외 지음 | 서교출판사
베이징 특파원 중국경제를 말하다
홍순도 외 지음
서교출판사 / 2010년 6월 / 328쪽 / 15,000원
제1부 누가 중국경제를 움직이는가?경제대국의 새 트렌드 홍색 귀족과 신흥부호
《환추런우(環球人物)》는 재계를 중심으로 하는 각계각층의 명사를 소개하는 중국 언론계의 유명 인물 전문 잡지다. 이 잡지는 2009년 7월 예정에도 없는 유명세를 탔다. 바로 이달의 잡지에 세련된 한 중년 여성을 표지 모델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여성은 표지와 본문 기사에 실린 사진만 보면 유럽 귀족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했다. 세련된 옷차림이나 목걸이와 귀고리, 시계 등을 봐도 세계 최고 수준 패션 감각을 가진 여성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기품 있는 그녀의 용모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에서 그리스 선박왕의 부인이 된 재클린 오나시스 같은 대재벌의 상속녀를 연상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잡지 표지 모델은 재벌의 상속녀가 아니었다. 연예인도 아니었다. 바로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49) 중국전력공사 CEO였다.
홍색 귀족 리샤오린은 리펑 전 총리의 딸: 그녀는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이른바 '홍색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 최고 간부들의 자손들로 그 엄청난 후광에 힘입어 귀족처럼 양손에 부와 명예를 움켜쥔 채 활동하는 특권 계층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미적 감각과 교양까지 두루 갖춘 그녀는 두 달 뒤인 9월에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50대 여성 CEO’ 27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크고 작은 특혜를 받는 홍색 귀족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부정한다.
"나는 기업인일 뿐이다. 내 집안과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주기 바란다. "내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대단히 엄격하셨다. 아버지는 내게 이상과 신념 그리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집안 배경이 나의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영향을 미쳤다면 그건 인정하겠다. 나 역시도 내 자식들이 집안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홀로 서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공평해진다."
리샤오린은 자신이 신입 사원으로 출발해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면서 늘 집안 배경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앞세웠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리샤오린은 중국 이공계 최고 명문인 칭화대 전력계통 자동화학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졸업 후에는 미국 현지 세계적 기업에서 나름대로 충분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샤오린의 오늘이 있기까지 전력 분야 전문가로 총리직까지 오르기까지는 아버지 리펑의 그늘이 넓고 길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리펑을 비롯한 중국 혁명 원로들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고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에 걸친 개혁, 개방 정책에 힘입은 쾌속 발전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리샤오린 같은 지금의 홍색귀족들은 아버지 세대와의 판이하게 다르다. 집안배경을 활용해 해외유학을 거쳐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귀족 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살고 있다.
태지당, 상하이방 등이 거대 중국경제 움직여: 리샤오린의 경우는 밖으로 드러난 홍색 귀족의 일부 사례에 자나지 않는다. 권력을 장악하면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마련 아닌가. 진정한 홍색 귀족은 이른바 태자당(太子黨)으로 불리는 정치 세력이다. 이들은 당, 정, 군, 재계 고위층의 자녀들로 덩샤오핑의 자녀 및 사위를 비롯해 약 4,000명이 핵심 요직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 정쩌민 전 주석 등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경제의 실세로 등장한 상하이 출신 상하이방,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명문 칭화대 출신 칭화방이 거대 중국경제를 움직이는 중심 세력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차기 당정 최고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57) 국가 부주석이다. 아버지가 국무원 부총리와 전국 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지낸 시중쉰이다. 시진핑은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려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회적인 냉대와 핍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 뒤 복권된 시중쉰은 광둥성위원회 제2서기와 제1서기를 지내면서 경제특구의 기초를 닦아 중국 개혁, 개방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시진핑은 그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최근 중국 내 범죄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둬 해외에도 널리 이름을 알린 보시라이(61) 충칭시 서기 겸 중앙 정치국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보이보 전 부총리의 아들이자 군부 내 실력자였던 구징셩의 사위로 다롄 시장과 랴오닝성 성장, 국무원 상무부장을 역임했다. '중국의 케네디'로 불리는 보시라이 당 서기는 서부대개발의 중심인 충칭의 경제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20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아들도 홍색 귀족: 현역 정치 지도자의 자녀들 중에도 홍색 귀족은 많다. 후진타오(68) 국가 주석 겸 총서기의 아들인 후하이펑(39)이 대표적이다. 중국 굴지 국영 IT 기업인 칭화퉁팡의 총재로 일한 바 있다. 또 원자바오(68) 총리의 아들 원인쑹(38)도 유망 IT 기업인 유니허브의 총재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런 홍색 귀족은 전국적으로 최소한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이 있다. 과거 당, 정, 군 각 분야에서 부장이나 장군 이상을 지낸 선대들의 후광을 바탕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본인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다. 현재 중국 경제의 노른자위마다 이들 홍색 귀족이 포진하고 있다. 권력을 대물림한다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정계보다는 재계로 많이 진출한 이유도 있다. 홍색귀족에게는 나름대로의 규칙이나 관례가 있다. 부모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선배나 후배를 자처하면서 서로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관시는 당연히 기본이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취안쯔(圈子), 즉 커넥션 문화도 형성하게 된다. 현재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을 맡고 있는 저우샤오촨(62)은 혁명원로인 저우젠난의 아들이다. 저우젠난은 장쩌민 주석을 발탁했고, 장쩌민은 저우샤오찬을 인민은행장으로 끌어올렸다. 장쩌민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우샤오촨은 오늘날 세계경제가 주목하는 '미스터 위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관시와 취안쯔는 중국의 권력지도를 보는 키워드다. 후진타오에 이어 2013년 차기 당 총서기로 유력한 시진핑 부주석은 혁명원로의 아들로 태자당이기도 하면서 장쩌민이 거쳐간 상하이방 총서기를 지낸 상하이방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후진타오가 졸업한 칭화대를 졸업해 칭화방으로도 분류된다. 이처럼 여러 방면으로 권력의 그물망을 촘촘히 짜온 그가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의 차세대주자로 후진타오의 직계로 분류되는 리커창(55)보다 권력서열에서 한발 앞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신흥 부호들과 졸부들의 천국: 중국경제의 쾌속 항진은 홍색 귀족뿐 아니라 신흥 부호 역시 적지 않게 탄생시켰다. 신흥부호는 보통 2~3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유지해온 홍색 귀족과는 달리 대부분 맨손으로 출발해 오늘의 부를 일궜다는 특징이 있다.
기업인 중 신흥부호의 대표주자는 대륙 최고 부호로 불리는 비야디(BYD) 그룹의 왕촨푸(44) 회장이다. 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 오너로 군림하다 최근 전기 자동차 생산 시장에 뛰어들어 돌풍을 일으켰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왕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자동차 산업에 매진해 중국 최고 부호로 우뚝 올라섰다. 주식폭등은 순식간에 최고 부자를 갈아치우기도 한다. 2010년 4월 25일 《환추스바오環球時報》에 따르면 제약업체 하이푸루이가 중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이 회사 최대주주인 리리, 리탄 부부가 426억2900만 위안(7조2469억원)을 거머쥐어 왕촨푸 회장의 재산 350억 위안을 넘어섰다. 이렇듯 중국 대륙에서는 중원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듯 부자 순위도 수시로 바뀐다. 또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떼돈을 번 졸부도 많다.
제2부 거대한 대륙경제의 현장대물 지향의 DNA 본능
중국인들은 넓은 땅에 살아 그런지 확실히 대물(大物)을 지향하는 DNA가 있다. 만리장성 하나만 봐도 그렇다. 경제가 쾌속 질주하는 지금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전국 곳곳에서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이 무엇보다 이런 대물에 대한 DNA 본능을 잘 말해준다.
지난 2009년 12월 26일 오전 9시는 중국으로서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13억 중국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후베이성 우한과 광둥성 광저우를 연결하는 우광 고속철도가 드디어 역사적인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우한역과 광저우역을 각각 출발한 허셰하오 첫 열차는 무려 1068km 구간을 불과 2시간 46분 만에 주파했다. 속도는 기존 열차의 4배 가까운 평균 시속 341km였다. 보름 전인 12월 9일 시운전에서 기록한 최고 시속 394km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도라는 기록을 세운 순간이었다. KTX가 서울~부산 408km 구간을 주파하는 데 2시간 40분이나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그 속도와 기술력을 짐작케 한다. 이 뿐만 아니다. 베이징~상하이 노선이 2012년에 개통되면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 지역이 1~8시간대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게 된다.
2020년이면 고속철도로 대륙 전역 반나절권: 2012년까지 예정된 고속철도 노선들이 모두 예정대로 완공되면 전체 길이는 대략 3,000km 전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고속철도 노선을 2020년까지 1만 8,000km로 늘려 대륙 전역을 반나절 만에 왔다갔다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고도성장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돼 온 동부와 서부 간의 지역 격차, 도농 간 격차 등을 해소할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 더불어 전국 주요 경제권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국가 균형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이 고속철도 같은 대규모 인프라스트럭처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경기 부양을 통해 내수 기반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의지다. 일자리 창출과 GDP 확충 효과를 노린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기에다 세계 최고, 최대의 역사 완공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부수 효과까지 더하면 엄청난 시간과 공사비는 별로 아까울 것이 없다.
중국의 캐시카우, 자동차 반도체 LCD
캐쉬카우(Cash Cow)란 간단하게 설명하면 수익성이 높은 산업을 가리킨다. 중국경제는 솔직히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쾌속 성장을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캐시카우가 별로 없었다. 그저 저가 공산품이나 완구, 의류 등이 중국을 대표하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 산업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조선을 비롯해 철강, 해운, 전기, 전자 부문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국의 대표적 캐시카우 업종인 자동차와 반도체, LCD 산업 분야에까지 영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더구나 기술력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한국과의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중국 산업의 한국 추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분야는 조선 산업이다. 중국은 2009년 11월 선박 수주 잔량에서 34.7% 대 33.8%로 조선 분야 세계 최강국인 한국을 사상 처음으로 추월했다. 한국 조선업이 수주 잔량에서 2000년 2월 일본을 앞지른 뒤 10년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왔으니 거의 10년 만에 정상 자리를 빼앗긴 셈이다. 전자나 자동차 분야도 한국이 바짝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하이얼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급성장했고 비야디나 지리는 더 이상 짝퉁 자동차 생산 업체가 아니다.
연간 자동차 생산량 1,000만대 돌파: 2009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생산 및 판매국이 되었다. 생산량만 1,360만대였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중국의 2010년 자동차판매량은 경제성장 및 내수 증가에 힘입어 전년의 1,360만대에서 25% 증가한 1,700만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자동차 시장의 약진에 대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해외 기업 및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승용차 생산 1~5위는 모두 합작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토종 기업은 생산 차량이 소형차에 집중돼있을 뿐 아니라 품질은 비롯해 디자인, 안정성, 기능 등이 떨어져 인기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출도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기상도는 맑다고 단정해도 좋다. 정부의 강력한 몰아주기 정책 때문이다. 중국은 2009년 야심적인 자동차 수출 장려 조치를 발표했는데, 우선 2009~2011년의 1단계는 연평균 10% 이상 수출 증가율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1~2015년의 2단계는 자동차 수출액을 850억 달러로 늘리면서 연평균 성장률까지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2015~2020년의 마지막 단계는 자동차 및 부품 수출액을 전 세계 자동차 무역 총액의 10%까지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반도체, LCD산업 급성장 예상: 중국의 반도체 산업도 괄목상대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했다. 2005년 이후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 되었다. 2010년에는 세계 시장의 30% 전후인 780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서도 훌쩍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한국을 넘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당시 산업연구원은 중국 기술에 대해 "한국보다 5년은 늦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지금 이 격차는 점차 좁혀져서 한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중국은 35정도로 평가된다. 또 설계기술, 제품 개발력, 품질 수준은 각각 85, 80, 75 정도로 판단된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2011년을 전후해 전반적인 기술이 한국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반도체의 수준은 아직 선두권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 국가별 매출 순위에서 미국을 비롯해 일본, 한국, 대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그 어느 산업보다 밝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성장 전략이 상당히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토종 기업은 생산 하도급업체로서 제조 및 조림을 중심으로 성장을 유도하면서도 글로벌 메이커들에는 중국내 생산설비를 D램과 칩셋, 300mm 팹 등의 최신 라인으로 전환시키려는 전략이 두드러진다.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함과 동시에 세제 혜택을 적극 주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여기에다 전자제품 및 통신기기 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연매출 2억 달러 이상의 토종 반도체 설계 기업 30개를 육성한다는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또한 LCD 산업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강력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09년부터 중국 정부는 기존의 반도체 중심의 육성 정책에서 LCD 산업도 병행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기술 개발 지원, 보조금 외에 수입 관세 부과, 세금 감면으로 LCD 산업을 육성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외국산 LCD TV와 패널에 각각 30%와 3%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자국 산업을 보호함과 동시에 관세 회피를 목적으로 한 외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중국의 LCD 기술은 일본과는 3.4년, 한국과는 2.5년의 격차가 있다는 것이 세계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그래도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것이 세계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정부의 장기적인 목표 설정과 방향 제시에 따라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또 막강한 중국의 자금력으로 언제든지 해외 기술을 도입하고 선진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6~8세대 라인이 본격 가동되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