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이펙트
이치구 지음 | 올림
오라클 이펙트
이치구 지음
올림 / 2011년 3월 / 304쪽 / 14,000원
ORACLE EFFECT 1 오라클 비즈니스가 뜬다_ 세상을 지배하는 오라클 이펙트오라클은 힘이 세다
웬 보물창고가 이렇게나 많지? 그리스 중부의 파르나소스산 끝자락에 있는 델피의 아폴론신전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보물창고들을 보고 하나같이 의아해한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점쳐주는 오라클이 행해졌던 이곳을 돌아보면 보물창고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지가 신전보다 훨씬 더 넓다. 아폴론 성역에 들어서면 시프노스 보물창고가 나타난다. 이 자리에서 발굴되어 델피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된 박공벽(지붕 아래 삼각형 모양의 벽)에는 헤라클레스와 아폴론이 미래예측력의 상징으로 통하는 삼각받침대인 트라이포드를 차지하기 위해 힘을 겨루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신들도 예측력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다툼을 벌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미래예측은 오래전부터 최고의 관심사였다.
오라클을 따르면 부가 따라온다: 이렇게 엄청난 보물창고들이 왜 아폴론신전 아래 지어졌던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미래예측에 대한 보답이었다. 델피의 오라클 덕을 본 60여 개의 도시국가들이 보물창고를 지어 신전에 바쳤던 것이다. 분쟁이 잦고 상거래가 위험했던 이 시기에 정확한 미래예측은 큰돈을 가져다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도시국가들끼리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던 당시에, 델피는 미래를 예측해주는 것만으로 부국을 유지했다. 예측은 정확성이 높았고,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에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시프노스는 무역으로 부자가 된 도시국가다. 시프노스 사람들은 델피에 와서 여사제인 피티아에게 어느 쪽으로 가면 금과 은을 값싸게 확보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동쪽으로 가라는 피티아의 신탁에 따라 이들은 교역을 통해 금은을 얻고, 기원전 600년경에는 그리스 최초로 동전을 제조해 유통시켰다. 그 결과 기원전 5세기 중반부터 에게해의 경제강국으로 떠오른 시프노스는 델피의 오라클에 대한 보답으로 신전에 많은 보물과 함께 보물창고를 봉헌했다. 이것이 바로 델피의 시프노스 보물창고다. 시칠리아 겔라의 참주인 폴리잘로스도 델피의 체전에서 우승을 하고나서 청년이 전차를 몰고 가는 모습의 조각상을 신전에 바쳤다. 이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오라클에 대한 답례로 엄청난 보석과 공예품 등을 델피에 바쳤다.
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 갈수록 부가 축적되자 델피인들은 급기야 델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게 되었다. 델피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세계의 중심으로 묘사된다.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반대 방향으로 날리며 세계의 중심을 찾아가게 했는데 이들이 델피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 된 델피는 더욱 큰 부와 세력을 떨치게 되었고, 역사적으로도 오라클 이펙트의 기원이 되었다. 델피 이후에도 오라클은 인류의 역사와 삶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했다. 오라클을 내리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막대한 부를 축적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에도 세계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무디스, 골드만삭스, 아더앤더슨 같은 회사들은 오라클, 즉 미래예측의 대가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예측은 돈'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다.
무섭게 팽창하는 미래예측시장: 이제 미래예측은 엄연한 사업이자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 무디스의 예측이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나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의 예측도 자국은 물론 해외 경제에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기관이 특정 업종을 유망산업으로 예측하면 그 분야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한다. 노무라연구소가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급성장을 예고하자 실제로 자동차회사를 중심으로 관련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나노산업과 바이오산업이 IT산업을 앞지를 것이라는 유엔미래포럼의 발표가 있자 나노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는 아예 국가적으로 발 벗고 나서는 형국이다. 이처럼 예측기관의 판단이 한 국가의 미래전략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이에 따라 미래예측은 유망산업을 예측하는 단계를 넘어 그 자체로 새로운 유망산업이 되고 있다.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가트너는 종업원이 4000명, 연매출은 2008년 기준 12억 8000만 달러다. 순이익도 104만 달러에 이른다. 미래예측 하나로 이런 거대기업이 된 가트너야말로 오라클 경제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예측산업은 '오라클 마켓'이라 불리는 더욱 크고 다양한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예측기관들은 경영자문 차원에서 예측을 해주는 것 외에 예측에 따른 투자 손익을 감수하려 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잘못된 예측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해주는 사업, 즉 예측보험 산업이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또한 '예측학'이란 새로운 학문도 조만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21세기 경제의 화두가 오라클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바야흐로 오라클 이펙트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ORACLE EFFECT 2 예측은 역사가 되었다_ 오라클의 역사, 역사의 오라클그리스의 운명을 좌우한 한마디
델피는 지형적인 독특함과 바람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이런 매력을 일찍 깨달았던 것일까. 그들은 이곳에 신전을 지어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인 아폴론을 모셨다. 기원전 1600년경의 일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7세기에 다시 거대한 석조신전을 세웠다. 오라클을 받기 위해서였다.
물어라, 답을 주리니: 델피 오라클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아폴론 찬가'에서 아폴론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이곳에 사람들이 오라클을 받을 수 있는 영광된 신전을 짓겠노라
기름진 펠로폰네소스의 사람이든, 바닷물에 휩쓸려간 섬사람이든
모두 소중한 제물을 갖고 이곳으로 질문을 하러 오리니
그러면 나는 이 부유한 신전에서 절대 틀리지 않는 오라클을 주리라
아폴론의 선언대로 사람들은 거대한 신전을 짓고 그의 오라클을 기다렸다. 신전의 규모는 놀랍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많은 돌을 험한 산기슭으로 옮겨왔을까 싶을 정도로 수만 톤에 이르는 돌기둥과 반석들이 신전 터 곳곳에 널려 있다. 아폴론신전의 서쪽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직육면체 석재들로 구성된 신전 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거대한 신전 터의 서쪽 지하에 오라클을 행하던 '아디톤'이라는 비밀의 장소가 있었다. 아디톤은 아폴론의 조상을 가운데에 두고 그 앞에 트라이포드라는 3개의 다리를 가진 받침대가 놓인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받침대 위에 여사제인 피티아가 걸터앉아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아폴론에게 물어본 뒤 그의 대답을 전해주는 방식으로 오라클이 진행되었다.
델피 오라클은 그 절대적인 권위 때문에 그리스 세계의 미래예측을 주도했다. 이곳에서 오라클을 받은 사람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하고 역사를 바꾸었다. 피티아의 말에 따라 한 도시국가의 사람들이 모두 새 식민지로 이주하는가 하면 이웃나라에 쳐들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아폴론신전에서 이루어진 오라클은 당시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고, 그것은 그대로 당대의 절대적 기준이자 법칙이 되었다.
ORACLE EFFECT 3 오라클은 누구에게 미소 짓는가_ 지구촌의 오라클러들디자인이 돈이다_ 피터 뱅/스벤드 올룹슨
덴마크의 음향기기 제조업체인 뱅앤올룹슨(B&O)의 제품은 무척이나 비싸다. B&O가 내놓은 홈시어터를 패키지로 사면 1억 원을 넘어선다. 회사 관계자에게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한다. 디자인값, 기술값, 마지막으로 품질값.
지금까지는 '디자인이 경쟁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이 회사를 보면 앞으로는 '디자인이 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B&O는 디자인을 팔아 연간 7,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기업에 정작 디자인실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디자인을 외부에 맡기고 내부에서는 시스템만 관리한다. 따라서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다. 디자이너들이 외부에 있어야 회사나 상사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콘셉트 디벨로퍼'를 두고 있다. 이들은 회사에 소속되어 외부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해 엔지니어의 의견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일명 '아이디어 랜드'라고 불리는 B&O 고유의 시스템이다. 이제 기술과 품질은 기본이요, 차별적인 디자인으로 고가전략을 펴야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을 고문한다?: B&O는 사내에 디자인실이 없지만 고문실은 있다. 사원들을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고문하는 곳이다. 10년의 수명 보장을 위해 1~2미터 높이에서 제품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는 식이다. 커피를 쏟을 경우에 대비하여 제품에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한다. 가장 심한 고문은 TV화면을 45킬로그램의 쇠망치로 깨부수는 것이다. TV가 깨졌을 때 파편이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처럼 B&O는 다양한 고문을 통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량과 위험성을 제거한다. 세계적 명성의 회사답다.
B&O의 기술적인 완벽함은 창업정신에서 출발했다. 창업할 무렵의 일이다. 당시 라디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배터리에 대한 불만을 호소했다. 배터리가 닳으면 매번 갈아 끼워야 하는 데다 배터리값도 너무 비쌌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피터 뱅과 스벤드 올룹슨이었다. 라디오 마니아였던 두 사람은 전기로 작동되는 라디오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1925년 뱅앤올룹슨(B&O)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들은 처음부터 기업을 키우기보다 최고의 기술과 품질을 갖추는 것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창업한 다음 해인 1926년 B&O는 배터리 없이 전기(AC) 플러그에 꽂아 사용할 수 있는 라디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다이얼을 돌리는 대신 버튼을 눌러 주파수를 맞추는 라디오도 선보였다.
B&O는 제품개발에만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고장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도 만전을 기했다. 그래서 고문실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이처럼 철저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힘입어 B&O는 전 세계 오디오 애호가들을 충성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디자인이 미래다: 음향기기 마니아들에게 B&O는 세계 최고의 기술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B&O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폭넓은 호응을 얻는 것은 기술에 디자인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첨단 스피커인 베오랩5만 봐도 그랬다. 아무리 봐도 스피커처럼 보이지 않는 종모양의 외형은, 어느 자리에서 들어도 악기가 연주하는 원음 그대로를 들려주기 위한 디자인이다. 홈시어터인 베오링크는 인테리어제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 밖에 각종 오디오제품, TV, 전화기, CD플레이어 등도 뛰어난 디자인을 자랑한다. B&O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고급 휴대폰 세린을 선보인 바 있으며, 아우디와는 승용차 내장용 카오디오를 합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디자인도 영원할 것이다. '디자인이 미래다'라고 선언한 B&O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ORACLE EFFECT 4 오라클 경영의 현장을 가다_ 창업에서 최강 기업으로벽이 있으면 돌아서 간다_ 에스텍파마
한국의 제약업체들이 선진국에 의약품을 수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의 의약당국이 임상시험 자료 등 갖가지 서류를 요구하면서 자격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진국의 비관세장벽에 막혀 제약업체들은 수출을 지레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험난한 수출 장벽을 독특한 전략으로 뛰어넘어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한 회사가 있다. 에스텍파마(대표 김재철)라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천식치료제, 알콜중독치료제, 당뇨병치료제, 항우울제 등을 생산하는 전문의약품 제조업체로서, 그동안 당뇨병치료제인 글리메리피드 등 의약완제품을 선진국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번번이 비관세장벽에 걸려 실패의 아픔을 맛보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에스텍파마는 기존의 전략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완제품이 안 되면 원료로 뚫는다: 에스텍파마는 의약완제품으로는 도저히 수출길을 열 수 없다고 판단, 의약원료를 수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자동차 수출이 막히자 부품을 수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에스텍파마의 수출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길이 열린 것이다. 일본 다이요에 천식치료제 원료 2,194만 달러어치를 8년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프랑스의 바이오가란에도 알코올중독치료제 원료 592만 달러어치를 수출하기로 했다. 의약완제품 대신 의약원료를 수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2009년 2월 이후 10개월 만에 3,173만 달러어치의 원료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독일, 호주 등에서도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알콜중독치료제인 아캄프레세이트의 원료 주문이 급증했다. 미국은 TPN 등 3개사가, 호주는 메드레이치 등 4개사가 5년간 총 1,462만 달러어치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독일도 AET를 비롯한 2개사에서 간질치료제 원료 등에 대한 구입 의사를 밝혀왔다. 한 해 동안 에스텍파마가 주문받은 총수출 규모는 2,757만 달러에 달한다. 이 회사는 2010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 매출은 전년 대비 24.1% 증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33.6%가 늘었다.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는 "선진국에 의약완제품을 수출할 경우 동물학적 동등성시험 등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구비하는 데 걸릴 시간과 비용을 신의약 연구개발에 투자해 새로운 의약원료를 만들었고, 원료를 수출하는 전략으로 바꾸자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급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일인자만이 살아남는다: 김 대표는 2007년 초, 잠을 자다가 갑자기, 세계 1인자가 되지 않고는 중독치료제 의약원료 분야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라클을 받은 그 순간부터 그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매출액의 14%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나자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알콜중독치료제인 아캄프로세이트는 물론 MRI조영제인 GDM, 천식치료제인 프란투카스트, 빈혈치료제인 폴리사카라이드 등 4개 품목의 원료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해내는 성과를 일구어냈다. 성과는 곧 매출로 이어졌다. 에스텍파마는 앞으로 브릭스(BRICs)지역 수출도 늘릴 계획이다. 이미 브라질은 메들리 등 8개사, 인도는 란박시 등 3개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중국과는 지우파이 등 3개사와 거래를 시작했다. "회사를 세계적인 의약원료 생산업체로 키우겠다."고 말하는 김재철 대표의 꿈이 영글 날도 머지않았다.
ORACLE EFFECT 5 미래예측은 어떻게 가능한가_ 미래를 읽어내는 기술트렌드를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미래예측의 구루 앨빈 토플러는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신문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대학생 때는 문학잡지를 창간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장에 취직하여 용접공, 프레스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동 관련 잡지에 꾸준히 글을 기고했고, 그런 인연으로 용접산업 전문기자가 되어 본격적인 언론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포춘》의 편집장에까지 오른 앨빈 토플러는 『문화의 소비자』라는 책을 써서 작가로 이름을 알린 뒤, 마침내 1970년 『미래의 충격』으로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0년 뒤 1980년에 『제3의 물결』을 내놓아 미래학자로서 자리를 잡았고 이어 1991년에는 『권력 이동』을, 2006년에는 『부의 미래』를 써서 미래예측학의 기초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