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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라인

라구람 G. 라잔 지음 | 에코리브르


폴트라인

라구람 G. 라잔 지음

에코리브르 / 2011년 2월 / 496쪽 / 23,000원



가계 대출로 국민의 입을 막아버리자




제인은 비영리 연구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서 겸 타이피스트로 일을 시작한지 32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제인처럼 비서 겸 타이피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 중 상당수는 이미 직장을 잃었다. PC가 그들이 하던 일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은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시도를 통해 인간을 대체한 세계화의 파고에서 살아남았다. 비서직이 사라지자 연구기관 내부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녀가 찾아낸 일은 바쁜 연구원들이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잡다한 일을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회식할 식당을 물색하여 예약하는 일, 외부 인사에게 연락하고 스케줄을 짜는 일, 불만 있는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등이다. 그녀의 변신은 현명했다. 그녀가 수행하는 일은 PC가 절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제인은 9명의 보스를 챙기면서 일에 치여 지내지만 해고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반면 제인의 보스, 즉 연구원들은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큰 혜택을 보고 있다. 그들의 연구논문이나 기사가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층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공유한 덕분에 전혀 모르는 곳에서도 강연이나 자문 요청이 밀려들고 있다.

제인의 사례에서 보듯 기술 발달은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제인이 했던 비서 겸 타이피스트 업무, 즉 고졸 학력으로 충분했던 업무는 컴퓨터로 대체되어 사라졌다. 반면 고학력을 요구하는 창조적인 업무는 오히려 컴퓨터와 협력적 공생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기술 발전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가져오며, 사람들이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후유증은 오래 지속된다. 오늘날 미국인 10명 중 7명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이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소득이 정체하거나 감소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언제 기술 발전에 의해 밀려나거나 외국으로 아웃소싱 될지 알 수 없는 경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다. 의지가 없거나, 의지는 있지만 경제력 능력이 없어 못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기술 발전에 따라 높은 숙련도와 실력을 갖춘 인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데 교육의 문제로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미국에서 소득 불균형과 사회 불평등이라는 결정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정치인들은 소득 불균형과 사회 불평등 심화로 인해 날로 커지고 있는 미국 유권자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불만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병통치약을 고민하던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주택 금융 확대였다.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의 흐름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쉽게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금융 산업의 대출 분야가 크게 왜곡되는 현상으로 나타났고, 결국 심각한 단층선, 즉 폴트라인을 형성했다.

정부의 정책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항상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 가계 대출 확대 정책을 지나치게 큰 규모로 실시했다. 그 결과 주택 가격이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출 확대 정책 때문에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던 많은 빈곤층 가정들이 너도나도 주택 구입에 뛰어들었고 오늘날 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아놓은 작은 저축액마저 다 털린 채 자기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대출금 상환 부도로 인해 민간 금융기관이 입은 손실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번졌고 글로벌 경제 불황의 위기까지 맞았다. 우리는 이번 위기의 교훈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닫혀 있던 마개를 열어 대출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정책과 더불어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는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한 위기 해결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의도와 달리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결과를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 성장을 위한 수출



비효율적인 국내 기업을 길들이면서 동시에 상품 시장을 확대하는 방법은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국내 대기업은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어 좋고, 동시에 더 넓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국내 시장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좋다. 수출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도국은 세계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큰 산업 분야를 선택한다. 일단 섬유 같이 기본 산업에서 기초를 닦은 개도국은 기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더 복잡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70년대 대표적인 수출상품은 섬유였는데 오늘날에는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이 주를 이룬다.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이 성공했다고 해서 정부가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오히려 경제개발 초기보다 더 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보통은 정부가 환율 저평가 정책 또는 저임금 유지 전략을 통해 수출업체를 지원한다.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채택한다고 모든 나라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전략을 채택한 국가의 부가 점점 증대하면서 그 나라 경제에 생각지 못한 문제점이 나타난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채택하는 나라에서 수출업체들은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비무역분야의 경우에는 그런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독일과 일본의 비무역분야 업체의 생산성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비효율성은 시장의 힘에 의해 감소 및 제거되어야 하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그것이 강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을 롤 모델로 삼는 국가들에 경종을 울릴 만한 사실은 일본이 뒤늦게 방향 전환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일본은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를 올렸다. 엔화 절상으로 수출이 큰 타격을 받자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했다. 중앙은행의 조치는 대규모 주식투자와 부동산 투자를 유발했고, 일본 경제는 거대한 거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은 중앙은행의 의도와는 달리 국내에 생산 공장을 짓는 대신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 지역에 투자를 했다. 일본 내에서는 건설경기와 개인소비가 크게 붐을 누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자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일제히 폭락했고, 일본 경제를 덮고 있던 거대한 버블이 일시에 터져 버렸다. 일본 경제는 지금도 당시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수출 의존적 경제에서 균형 잡힌 경제로의 변신은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출업체의 저항과 영향력을 무시한다고 해도 변화에 필요한 비용은 막대하다. 그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정부의 도구에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을 시도하려면 임금 하락이 필수적이지만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변화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된 국내산업 보호와 지나친 규제 후유증을 극복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외채 도입



1980~90년대 사이 독일과 일본 같은 수출국은 무역흑자로 넘쳐나는 돈을 흡수해줄 시장을 찾고 있었다. 이들이 찾는 나라는 일인당 소비수준과 투자수준이 낮은 빈곤한 개도국이었다. 지출과 생산 사이의 격차가 심해지자 개도국들은 해외에서 부족자금을 차입했다. 일부 개도국은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돈을 빌려오고 그 돈을 무분별하게 지출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개도국은 1980~90년대 끔찍한 금융위기를 겪게 되는데, 바로 그 위기를 통해 개도국은 외채에 의존해 지출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깨닫게 되었다.

선진국에서는 외국 투자가들도 국내 투자가에 버금가는 정보와 권리를 취득할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외국 투자가는 어떤 특권이나 특혜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비난받을 뿐 정부를 상대로 돈을 대신 상환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도국은 다르다. 개도국에서 외국자본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최후에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국내 은행과 기업의 결탁 관계를 잘 모르고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신도 적기 때문이다. 외국투자가들은 안전을 위해 외화로 단기 대출만 하려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개도국 금융제도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아 마지막 순간 끼어든 외국투자가들이 더 심한 요구를 하고, 먼저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 받을 수 없는 특권을 누리거나 정부 보증을 통해 납세자들의 돈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 투자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보호 혜택만 믿고 방만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정부라는 막강한 존재가 그림자 역할을 한 미국 서브프라임 시장의 위기가 선진국형 기준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개도국형 기준에 따라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발생한 금융위기는 개도국 경제를 여러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큰 정부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위기를 겪은 인도와 국내 저축액이 적어 위기를 맞았던 브라질은 이를 계기로 국내시장지향적 관리 모델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시장자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정부 규제 완화, 환율 자율화 등의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인도나 브라질은 내수 시장 규모가 커서 굳이 수출 분야를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고, 국내 기업의 체질이 강하여 가계 소비를 억제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날 두 나라 모두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은 채 내수와 수출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균형 성장 경제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반면 1990년대 위기를 경험한 동아시아 수출국들은 수출은 더 늘리고 투자는 대폭 축소하며 외채 의존성을 줄이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외환보유량을 늘리며, 국내 저축 확대를 시도했다. 또한 이렇게 비축한 자금으로 자신들의 넘치는 자금을 흡수해줄 더 약한 국가를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러나 투자할 만한 상품 시장은 이미 크게 축소되었다. 위기에 질린 전 세계 국가들이 외채에 의존하는 투자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도국의 무역흑자 자금은 돈을 빌려다 아낌없이 쓸 다른 국가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매고 있다.



취약한 안전망



바드리는 25년 전 미국에 학생 신분으로 입국했다.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7년 워싱턴 근처 최첨단 메모리칩을 제조하는 독일과 미국의 합작 회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실력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주당 70시간 넘게 일을 했다. 얼마 후 회사는 2개로 나누어졌는데 하나는 논리칩 생산에 주력하고, 다른 하나는 메모리칩 생산에 주력하는 회사였다. 바드리는 메모리칩 제조 회사 쪽에서 일했는데,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양한 칩을 제조하는 업무에서 메모리칩 한 가지만 생산하는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2008년 그의 회사는 신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미국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였다.

이로써 바드리는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11년 동안 일했지만 회사가 파산했다는 이유로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손에 들어온 것은 주당 400달러짜리 실업급여수표가 전부였다. 그 돈으로 네 식구를 먹여 살리고 모기지 대출금도 상환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는 의료보험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직장 의료보험에 한 달에 50달러만 내면 되었지만 직장이 사라지자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개인 보험을 가입하려 했지만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취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수백 군데 보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국 실업급여기간이 끝나고 먹고살 방법이 없어진 그는 아들 대학 학자금으로 마련해 놓은 저축을 깰 수밖에 없었다.

바드리가 겪은 고통을 보면 미국 정부가 왜 경제 확장 정책을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미국 근로자들은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 먹고살 방법이 없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복지에 대한 투자를 기피해 왔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 1990년대 이전에는 경기가 저점을 찍고 8개월이면 고용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이 기간이 23개월로 늘었다. 고용 회복 기간이 길어지면 실업자의 상심이 늘어난다. 저축한 돈은 없는데 실업급여 수급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의료보험도 없어 불안은 가중된다. 이러한 불안은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부시가 클린턴에게 선거에서 진 이유도 1990~91년 경기 후퇴 때 일자리를 잃은 유권자의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부시의 패배로 미국 정치권은 실업률이 선거 결과를 결정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정부기관들은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 각종 경제 확장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FRB(미국연방은행)이 도입한 정책들이 적정하지 못해 주택금융 부분에서 엄청난 버블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이유는 사회시스템 때문이다. 미국 기업은 공급업체, 은행, 고객, 직원들과 냉정하고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유럽과 일본 기업은 공급업체, 은행, 고객, 직원과의 장기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미국식 시스템은 혁신과 자원배분에는 효율적이지만 근로자의 기득권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 결과 창조와 파괴가 일어나는 경제 불황기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한다. 실업급여 수령 기간이 짧기 때문에 해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기업 간 인력 이동이 워낙 많아서 미국인에게 실직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시스템도 아니므로 외부 사람도 취직하기 쉽다. 반면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과 유럽의 시스템에서는 인력 이동이 활발하지 않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전문화된 내부자와 외부자의 구분이 뚜렷하다. 기득권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이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 나라에서 실업급여는 외부인들이 실업자로서 갖는 분노를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각각의 경제 시스템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실업급여 제도를 채택해 운영하는 셈이다. 앞의 사례에서 바드리는 전문화된 직업이 있음에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실업급여가 그런 경제 체제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경제 체제가 그런 실업급여를 가져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나의 버블에서 또 다른 버블로



2001~2002년 나스닥 지수가 무너지고, 이로 인해 경기 후퇴가 초래되자 FRB는 꾸준한 금리 인하 조치를 통해 투자 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금리는 2003년 6월 1% 수준까지 떨어졌다. 1971년 FRB가 변동환율 제도를 도입한 이래 이렇게 금리가 낮은 적은 없었다. 경제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챘고 낮은 금리로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주택 구매에 뛰어들었다. 가계의 주택 구매가 늘어나자 저금리로 이미 혜택을 받은 건설 산업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다. 생산성 증대와 함께 기업 생산도 늘어났다.

하지만 국민과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기다린 것은 고용이었다.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성장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치로 느껴졌다. 불행히도 그토록 기대했던 고용 증대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제조업체와 서비스 업체는 계속 해고를 단행했고, 경기 후퇴가 끝났다고 인정된 시점인 2003년 6월 실업률은 오히려 최고조에 달했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율은 낮고 실업률은 높은 현상이 발생하자 FRB는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 내 고용이 증대되지 않았던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들이 달러화에 비해 자국 통화의 시세를 약하게 유지했고,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그러한 정책의 시정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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