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
조군현 지음 | 지상사
경제전쟁
조군현 지음
지상사 / 2011년 1월 / 208쪽 / 14,000원
제1장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일본
경제 실패가 초래한 정권교체55년 만의 정권교체: 2009년 8월 30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을 누르고 압승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중의원 의석 480석 가운데 과반수인 308석을 차지하여 정권을 획득했고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가 제93대 총리에 취임하였다. 이는 일본 국민이 처음으로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교체한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55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자민당이 창당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정당에 맥없이 진 이유는 1980년 후반 경기호황시절에 생긴 경제버블이 1990년 들어 일제히 붕괴되면서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되고, 2000년대 들어서는 경제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서민생활이 전보다 피폐해져 민심이 돌아선 때문이었다.
1990년대 중반 우리 경제가 잘나갈 때 매일 많은 샐러리맨들이 강남 일대 술집에서 흥청망청했던 것처럼 버블 당시에는 일본의 샐러리맨들도 도쿄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긴자에 모여들어 요정이나 크라브(우리식으로는 룸살롱)에서 질펀하게 2, 3차까지 마신 후 심야 늦은 시간에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 엔짜리 지폐를 흔들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버블시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지나간 20년 전의 추억을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일본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평범한 샐러리맨들도 대체로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이나 술집과 같은 단골집, 좋아하는 연예인, 지지하는 정당을 좀처럼 바꾸지 않고, 변화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국민들 사이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퍼지면서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55년 만에 '바꿔보자' 신드롬이 퍼진 것이 정권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경제 활력 저하의 원인은 내수부진: 잘나가던 1980년대에는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에 달할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였으나, 1990년대 버블붕괴로 장기불황에 빠진 이후에는 성장률이 연평균 1%대로 급락하게 된다. 이러한 저성장의 주된 원인은 심각한 내수부진이다. 지표상으로도 경제성장에 대한 수출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p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내수기여도는 1991~2008년 중 0.6%p로 급락하고 있다. 즉, 1990년대 이후에는 경제성장이 내수보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은 1980년대 고도의 정밀가공기술 및 제품개발력으로 세계의 테크놀로지 산업을 리드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비디오, CD, 캠코더와 같은 획기적 상품을 개발하고, 통신기기, 반도체 제조장치, 전자부품, OA기기 등 가전 및 산업용 일렉트로닉스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첨단제품을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게 되는데,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일본의 일반 가정은 웬만한 첨단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이미 충분히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이런 제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국가 전체로 보더라도 지방 곳곳마다 도로와 철도가 잘 깔려 있고, 지방 공항도 이미 충분히 건설되어 있어 더 이상 추가로 건설할 여지가 없는 국가가 되었다. 즉, 투자나 소비 등 내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유인이 부족한 '과소유사회'로 진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이미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여 소비력이 왕성한 젊은 세대가 감소하는 것도 내수부진의 또 다른 이유이다.
이처럼 극심한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것은 장기간 경기불황으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면서 직장인들의 월급이 감소하고 있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월급인상률은 1990년대 1%대로 하락한 후 2000년대 들어서는 마이너스로 반전했다. 게다가 버블붕괴의 여파로 주가와 주택가격도 반 토막 나면서 재산 소득도 1990년대 이후 줄곧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고 있다. 소비를 하려고 해도 쓸 돈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급여인상을 결정하는 매년 봄의 춘투시기에 일본의 노사는 금년도 급여인상률을 몇%로 할 것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년도 소비자물가 하락률을 따져서 급여인하율을 몇 %로 할 것인가를 놓고 노사 간에 대립하게 된다. 그만큼 물가하락현상이 일반화되어 근로자도 급여인하에 동의한다는 의미이다.
샐러리맨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전반적인 경제성장세 둔화와 함께 노동시장의 구조변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경기부진이 지속되면서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낮아져 근로자의 상여금이나 성과급이 크게 줄어드는 한편 근로자의 구성에서 급여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1990년 20%에서 2008년에는 34%로 높아지고, 여성근로자 비중도 같은 기간 중 38%에서 42%로 상승했는데, 비정규직과 여성근로자의 임금수준은 각각 정규직 남성의 65%, 49%에 불과하여 가계소득의 증가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2년 2월부터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약 60개월간 최장의 경기호황국면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출기업 및 내수기업 간, 대기업 및 중소기업간, 수도권 및 지방 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대부분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이 시기에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엔약세를 유도하면서 자동차, 전기전자 제품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출호조에 따른 혜택이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에만 집중되면서 소득재분배가 오히려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경기호조를 보인 시기에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2001년 364만 명 선에서 2008년에는 545만 명으로 급증하였고, 소득 면에서 정규직과의 격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경제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출급감과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글로벌 경기침제가 2002년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의 맥을 끊으면서 일본 경제는 또다시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특히 최근 경기회복을 거의 수출에만 의존하던 터에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유럽의 수입수요가 급감하면서 일본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일본 경제성장률은 2008년 -1.2%, 2009년에는 -5.2%로 선진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였고, 실업률도 1953년 이래 최고치인 5.7%까지 올라가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엔화환율과 도요타로 일본을 컨트롤하는 미국1950년대부터 시작된 수출드라이브 정책: 1968년 서독으로부터 세계 2위 경제대국(G2)의 자리를 빼앗은 일본이 2010년에는 중국에게 G2지위를 넘겨주었다. 일본을 그동안 G2 지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일본 주식회사의 수출 제일주의 전략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일본은 질 좋은 제품을 서구에 수출하는 것이 대동아공영권 같은 허황된 국가전략을 추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된다. 2009년 여름 일본 민영방송인 TBS-TV에서 방영되었던 '관료들의 뜨거운 여름'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좌절감에 빠진 관료, 기업인, 기술자들이 단결하여 수출드라이브에 몰두하면서 선진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수출드라이브 정책 초기에는 일본도 와이셔츠, 의류 등 단순한 섬유제품을 만들어 미국시장에 수출했고, 그것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수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게 된다. 이후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자동차, 전기전자제품 등 점점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 수출하면서 일본 제품은 1970~1980년대에는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
미국의 경제 풍향에 의존하는 일본: 2007년 이후 중국의 소비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일본의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높아졌으나, 중국시장이 부상하기 전까지 일본의 최대 수출시장은 미국이었다. 일본 수출기업들은 미국시장에 매년 전체 수출의 20% 정도를 내다 팔면서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2006, 2007년 중에는 약 천억 달러에 달하는 등 엄청난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게 미국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다. 일본 경제의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2000년대 들어 다소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미국 경제의 후퇴가 일본의 수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경기하강 압력으로 작용하는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경기가 둔화될 경우 곧바로 대미 수출이 감소한다. 또한 미국의 경기위축으로 신흥시장국의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일본의 수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신흥국에 대한 수출도 감소하는 효과가 중첩된다. 또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엔고-달러가치 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업수익도 크게 감소했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엔 달러 환율이 달러당 1엔 하락할 때마다 연간 40억 엔의 영업이익이 감소한다고 한다.
No라고 말하기 시작한 일본정권 교체 후 미국의 정책에 반하는 민주당화 후텐마 기지: 전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은 대외정책면에서 기존의 자민당 정권이 유지해온 정책과 차별화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의 일방적인 미국 중심의 외교정책을 버리고, 아시아 중시 외교로 전환하겠다고 야심차게 천명한다. 일본보다 국력이 약한 한국의 노무현 정권이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겠다'는 외교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이다.
2009년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정권은 일본의 의사를 미국에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대외정책을 천명한다. 당시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는 "이라크전쟁 실패와 금융위기는 미국 주도에 의한 세계화에 원인이 있다"고 언급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일본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오키나와현에 있는 후텐마 미군 기지를 현 밖으로 이전하고,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에 대한 원유지원을 중단하며, 주일미군의 지위협정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다.
'후텐마 기지 이전' 발표에 약이 오른 미국: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밖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이 미군기지 이전 공약을 제시한 것은 오키나와 현 주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대미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중시 외교를 추구하고자 하는 하토야마 대표와 민주당의 정책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예상대로 오키나와현의 네 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했다. 미군기지 이전을 바라는 지역주민의 민심이 표출된 결과였다. 주민들의 요구대로 후텐마 기지의 현 밖으로 이전을 주장한 민주당은 전후 처음으로 미국에 대해 No라고 주장하는 정권이 되었고, 이는 일본 정부가 '친미노선에서 반미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비쳤다.
미국도 오키나와가 가진 전략적 가치 때문에 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곤란한 처지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5만 명 중 절반인 2만 5천명이 주둔하고 있고, 미군 시설의 75%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오키나와는 서울과 타이베이가 가까워 북한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또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게 될 경우 미군 전체의 재편계획도 변경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미국은 전후 처음으로 일본의 대외정책 변경에 대해서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였다. 2009년 11월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방일하여 하토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기존 미 · 일간 합의를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상회담에서는 '나를 믿어달라'고 답하고는 바로 다음날 '백지상태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긴밀했던 미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미국과 국민 여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하토야마 총리는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다가 결국 실각하고 만다.
미국의 과도한 도요타 때리기과도한 '도요타 때리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 도요타의 대량 리콜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미국 정부나 언론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오버하여 도요타 사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미국인들은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차를 몹시 좋아한다. 미국에서 조금 산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동차를 두 대 이상 굴리는데, 그중 한 대는 대부분이 일본 차이고, 제조사는 도요타 아니면 혼다다. 사실, 일본 차는 품질 신뢰도가 높아 중고차 가격도 동일한 기간 사용한 미국 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차를 되팔더라도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미국에서 팔리는 일본 차는 대부분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므로 현지에서 생산되는 일본 차를 미국 차로 인식하는 미국인도 많다. 이처럼 일본 차는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데, 미국 정부 및 언론이 도를 넘게 '도요타 때리기'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요타는 1980년대 미국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둔 이후에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퍼지고 있는 안티세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1984년 GM과 절반씩 출자해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시에 누미(NUMMI) 합작공작을 설립하였다. 누미 공장에서는 소형차 캐롤라와 소형트럭 타코마를 생산하며, 종업원 5천 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그런데 도요타자동차는 2009년 해외사업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적자를 핑계로 만성적인 적자를 보여 온 누미 공장을 폐쇄하고 철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및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이 공장이 폐쇄될 경우 종업원 5천 명이 일자리를 잃고, 부품업체 등에서 2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며,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며 폐쇄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미 · 일간 경제우호 협력의 상징인 합작공장을 도요타가 이처럼 일방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하자 미국정부 및 자동차업계는 분개하였다. 출자금 1억 5천만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공장을 폐쇄한 도요타의 처사는 안 그래도 세계 제1위 자동차 대국의 지위를 일본에 빼앗긴 미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그동안 미국 차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도 심심찮게 자발적 리콜을 단행해왔다. 또, 미 정부당국(도로안전관리국)은 품질결함을 나중에 발견하고 자발적 리콜을 잘해준다는 것은 소비자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인식해왔는데, 갑자기 도요타의 리콜문제를 과격하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하는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려고 하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겪었던 하토야마 정권이 물러나고, 간 나오토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간 정권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대외정책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본 것까지는 좋았으나, 미국 정부 및 언론의 무차별 '도요타를 비롯한 자동차업체 때리기'로 사실상 항복한 것이다.
특히 미국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경기회복의 조짐이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의료보험 개혁, 민주당의 중간선거 패배 등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오바마 행정부가 결국 일본과 그 대표선수인 도요타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제2장 미·일간 환율전쟁의 내막
미·일간 환율갈등의 역사일본에 환율 트라우마를 안겨준 '플라자합의': 1980년대 초 미국은 인플레이션율은 낮은데,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면서 미사일방위시스템의 구축을 추진하자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 재정수지의 적자폭이 커진다. 이에 따라 자금수요가 늘어나고, 미국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미국의 고금리는 달러가치를 지속적으로 밀어올리고, 이런 달러가치의 급등으로 수출경쟁력이 하락하면서 경상수지도 적자를 보인다. 미국은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직면하여 어려움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