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경제학
이근영 지음 | 스텝스톤
기독교 경제학
이근영 지음
스텝스톤 / 2010년 7월 / 320쪽 / 14,000원1 기독교 경제학(Christian economics)이란?
기독교 경제학이란 경제학의 한 분야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나 경제학 관련 책에서는 기독교 경제학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정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기독교 경제학을 경제학의 분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의 기독교 경제학이란 기독교인 경제학자들이 기독교 가치관과 관점으로 경제학을 논의하면서, 스스로 이를 기독교 경제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단계라고 하겠다.
2 경제학의 기본 전제와 이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기독교 경제학은 규범경제학으로, 대체로 실증경제학의 과학으로서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경제학의 기본적인 전제에 경제학과 동일한 입장을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경제학이 취하는 기본 전제를 살펴보자.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과 환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첫째, 인간의 본성은 합리적이며 자기 이익의 최대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둘째,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희소하다.
이제 경제학의 두 가지 기본 전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살펴보자. 먼저 기독교는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이해한다. 첫째, 인간이 하나님의 지음을 받고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인간이 '행동과 태도와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덕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더 간단히 표현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마땅한 지위인 최고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 다른 어떤 것이나 다른 인격체를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타락 이후 끊임없이 이러한 죄를 짓는 죄악된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죄악된 본성은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나님 대신 자신을 우선시하는 근본적이고도 적극적인 선택'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기심이라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기독교가 자기 이익을 구하는 이기심 자체를 부정하거나 또는 이를 죄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고로 기독교는 정당한 이기심과 그릇된 이기심을 구분한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구원이나 성화(sanctification)를 원하는 것은 모두 선한 이기심이며 이러한 이기심은 기독교에서 장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하는 것은 악한 이기심이다. 인간의 타락에서 한 가지 알아 둘 점은 창조 때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성으로 삼고 있다가 타락하면서 죄악된 본성을 지니게 되었지만, 이러한 죄악된 본성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선한 마음으로 선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제 경제학의 기본 전제와 기독교적 인간 이해의 내용을 서로 연관시켜서 검토해 보자.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경제 행위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본성을 합리성이라고 본다. 이에 반해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인간은 인간의 존재 전체를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인간 이해는 기독교의 인간 이해보다 그 범위가 좁다. 따라서 경제학의 인간 이해가 기독교의 인간 이해 범위 안에 포함되면서 서로 조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학에서의 인간 이해가 기독교의 인간 이해 범위를 벗어나거나 상충되는 것인지 하는 여부가 문제라 할 수 있다.
기독교적 인간 이해가 경제학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적 인간 이해가 실증경제학 분야에 있어서는 경제학 이론의 수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덧붙이면 인간 행동의 합리성과 자기 이익의 최대화 성향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적 인간 이해는 기독교적 인간 이해에 비해 그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기독교적 인간 이해에 포함되며 특히 타락 측면의 인간 이해와는 일치하고,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인간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원을 이용한다는 경제학의 전제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한다는 기독교적 입장이 표면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러나 기독교 경제학은 경제학에서의 인간 이해보다 더욱 폭 넓고 깊이 있게 경제 활동과 경제 현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실증경제학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3 수요와 소비자 행태
이제부터는 경제학의 주요 내용에 따라 각 장마다 경제학의 이론을 차례로 보고, 이러한 내용에 기독교와 기독교 경제학의 이해는 어떠한지를 함께 보려고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주체 즉, 경제 행위를 하는 행위자는 다음과 같다.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인 가계와 이러한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인 기업, 소비자와 생산자로부터 세금을 걷고, 이렇게 걷힌 세금을 쓰며 또 경제정책도 시행하는 정부다. 그리고 해외 부문이 있는데 이는 한 나라의 경제 주체가 무역을 하고 자금 거래를 하는 외국 기업과 외국인 등 외국의 경제 주체를 모두 합한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학 이론은 먼저 소비자 곧 가계의 상품에 대한 수요와 소비자들의 행동을 말하는 소비자 행태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수요와 소비자 행태 이론은 소비자인 각 개인이 재화와 용역 상품을 어떻게 선택하고 소비하는지 분석한 이론인데, 기독교 경제학이 경제학의 소비자 행태 이론과 차이를 보이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이기적인(self-interested) 존재일 뿐 아니라 이타적인(other-interested) 존재라고 인정하는데, 이타심이란 이기심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와 선호를 자신의 필요와 선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본다. 셋째, 기독교 신앙은 풍성한 삶을 물질적 재화의 측면이 아닌 영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 넷째, 경제학은 합리적인 개인에 의한 선택을 모두 인정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선택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평가한다. 위의 네 가지 차이점 가운데 이타적 존재와 공동체 구성원 항목은 기독교 경제학의 입장에서 볼 때 주류 경제학의 전제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보완하는 의미를 둔 실증적인 사항이다. 반면에 삶의 영적인 측면과 도덕적인 평가 항목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나타내는 가치적인 사항으로 서로 구별된다.
우리는 기독교 경제학과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개인의 소비 행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기독교 경제학의 입장에서는 기존 경제학의 개인의 소비 행태에 대한 가정을 실증적인 입장에서는 인정하지만, 경제학의 가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이해로 이를 보완하는 것을 인간의 경제적 행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기독교는 규범적인 입장에서는 인간의 소비 행태에 윤리적이고 가치적인 요소를 개입하여 주류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4 공급과 기업 행태
경제학에서는 개별 소비자가 자신의 효용 극대화를 이루려고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가 소비자 개인의 상품에 대한 수요로 나타나고, 이러한 각 개인의 수요를 모두 합한 것이 시장 수요로 나타나며, 개별 생산자인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이루려고 상품을 생산하는 행위가 기업의 상품 공급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각 기업의 공급을 합한 것이 시장 공급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경제학은 공급과 기업과 관련하여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기업인은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과 생산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복지를 위해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며 기업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이 이윤 최대화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이윤 최대화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기독교인에게 명하는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라는 기본 목적을 뒤따르는 보조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또한 기업 경영에서 고도의 윤리성과 준법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기업이 기독교적인 사랑의 실천을 최대 목표로 삼는 한편, 이윤 최대화를 부차적인 목표로 해서 경영을 하는 경우에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 최대화를 최고의 목적으로 여기고 경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실패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가치관의 실천을 최대 목적으로 하면서 이윤 최대화를 부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이 직원의 복지를 중시할 때 직원의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커지고, 기업이 소비자의 복지를 우선시할 때 소비자의 기업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경영자가 헌신적 자세와 높은 도덕성을 보이면서 모범을 보일 때 직원들이 경영자를 신뢰하게 된다.
이제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생산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두 가지 주안점이 있다. 첫째, 기독교에서 보는 가장 큰 생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셨는데, 이 행위를 창조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투입물을 가공하여 상품을 만드는 생산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기독교에서 보는 생산의 의미에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이다. 둘째, 기독교는 인간의 생산 활동을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산 활동을 축복하면 그 성과가 엄청나게 클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기업이 투입물의 양을 선택하여 상품을 생산하면 그에 따라 정해진 양의 상품이 생산된다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러한 기계적인 생산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생산의 결과를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5 시장
시장은 1차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을 만나게 해서 거래를 이루고 나아가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의 기능은 시장 참여자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생산 활동에 전문화하도록 도모하면서 2차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경제의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발전을 촉진되도록 한다. 즉 시장은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으로, 시장은 인간 사회의 경제 제도 가운데 핵심적인 존재다. 이제 시장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보도록 하자. 시장에 대한 기독교 입장은 통일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독교인 가운데 어떤 이는 시장을 국가나 가정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만든 창조 질서의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보는가 하면, 인간 본성을 부패되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부자가 가난한 자를 노예로 만든다고 극히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또한 많은 기독교인은 이 두 가지 견해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시장이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단지 필요 불가결한 제도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중도적이고도 일반적인 입장에서 기독교가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견해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는 시장을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인 제도라고 본다. 따라서 시장 그 자체로는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작동하지 않으며, 사랑이나 정의나 평등과 같은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를 개입시키지도 않는다. 둘째, 기독교는 시장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고 이를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한다. 이 점은 결국 앞의 사항과도 연관된다. 셋째, 기독교는 시장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질서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독교는 인간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서로 관계성을 가지는 존재라고 본다. 이는 시장에서 그 구성원인 소비자와 생산자가 다른 시장 참여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자적이고도 개별적인 개인이라고 내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기독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의 이해도 고려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시장의 경우 참여자가 자신의 이해만을 고려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가난한 자와 어려움을 처한 자에 대해 염려할 것은 요구한다. 이에 반해 시장은 이러한 사랑의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넷째, 기독교는 시장이 인간 사회에 유익한 기능과 해로운 기능을 함께 포함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의 해로운 기능을 시정하고 보완하는 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거나, 도덕적 주체가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6 경제체제
경제체제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외에 사회주의 통제경제체제가 있고, 이 두 체제의 중간 성격을 지닌 혼합주의 경제체제가 있는데, 경제체제 문제와 관련해서 기독교가 어떠한 통일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안에는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한편에서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기독교적 입장에 부합하는 체제라고 간주하고 이를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부정의가 존재한다고 보고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해방신학자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기독교적 입장 가운데 여기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기독교 이해를 중심으로 경제체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경제체제 문제라고 하더라도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내용은 성경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경제체제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현재 우리가 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주의경제체제 그리고 이 둘의 혼합형인 혼합경제체제 곧 복지국가 체제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 체제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문제 가운데 먼저 성경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경제체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경제체제 문제에 대한 기독교 이해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이다. 이를 기초로 하여 기독교 입장에서 경제체제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 중심의 사고다. 경제체제 문제를 평가하는 데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기본에 두어야 한다. 둘째, 인간 중시의 사고다. 셋째, 인간이 자연의 소유주가 아니라 관리자라는 사고다. 넷째, 물질주의에 대한 경계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부와 재물과 같은 물질적인 것의 가치를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은 영적인 것의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것에 대해 크게 경계한다. 다섯째, 정의에 대한 강조다. 기독교는 인간 사회에서 정의를 매우 중요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복지국가의 세 가지 경제체제를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나 복지국가 체제 모두가 하나님 중심과 인간 중심이라는 기독교가 지닌 경제체제 관점을 벗어난 체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는 자본주의경제체제가 역사적으로 경제 발전에 있어서 효율성을 보인 효율적인 체제라는 점을 인정한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유로운 역할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에 적절한 통제가 따라야 한다는 점과 경제력이 전 인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한다. 이렇게 볼 때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경제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보장하는 혼합경제체제 즉, 복지국가 체제가 기독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7 정부의 역할
정부의 경제적 기능은 다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시장경제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을 높이도록 자원배분에 영향을 주는 일이며, 셋째는 소득분배를 개선하려는 계획을 시행하는 일이다. 넷째는 거시경제정책을 통해 경제를 안정화하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 개발을 추진하는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정부의 기원에 대해 대체로 정부를 인간 사회의 무질서를 막으려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만들어진 도구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