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념어 사전
곽수종 지음 | 원앤원북스
경제 개념어 사전
곽수종 지음
원앤원북스 / 2010년 06월 / 471쪽 / 15,000원
가격통제_ 지나친 가격 통제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손상시킨다정부의 시장 개입 가운데 환율시장 개입, 시장경쟁을 위한 독과점 규제,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한 공공요금과 일부 제품에 대한 시장가격 관리 감독, 최저임금제도, 이중곡가제도 등이 가격통제에 포함된다. 또한 정부는 재화가 극심하게 부족한 경우와 같은 비상사태에는 수요량을 직접 제한하는 할당제 또는 배급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재지변에 의한 사태가 아닌 이상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이러한 일은 흔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독과점시장의 경우 기업은 완전경쟁시장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는데, 우리 정부는 2007년에 서민중심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생활필수품의 가격통제와 함께 공공요금 인상을 극도로 억제한 바 있다. 이처럼 유가 상승으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의 이용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을 때 정부는 적극적으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생활필수품의 판매가격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는데 2010년에 들어서는 할인매장을 비롯한 많은 도 소매점이 생겨나면서 생활필수품 가격이 보다 경쟁적으로 책정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가격통제는 시장의 정보와 운용메커니즘을 손상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격통제에 의한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혼란은 시카고학파, 즉 통화론자들의 주장에 배치된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과 미국 공화당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제를 운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1년은 베트남 전쟁의 실패와 유가 상승 등으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미국 경제에 가중되던 시기였다. 당시 상황은 지난 2007년 벤 버냉키 의장이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보다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다가 금리 인하 시기를 놓치면서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경착륙한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높은 실업률, 즉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이 같이 존재하는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당시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리차드 닉슨 대통력은 임금 억제와 가격통제를 지시했지만, 당시 정부의 예산을 책임지고 있었던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은 임금억제와 가격통제를 모두 반대했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젊은 보좌관이었던 딕 체니 역시 임금억제와 가격통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으나 닉슨 대통령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던 닉슨 쇼크에서 보듯이 닉슨 대통령의 가격통제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결국 시카고학파가 주장한 가격자유화가 더 설득력을 갖는 전환점이 되었고, 밀턴 프리드먼의 신고전학파는 레이건 정부 시절에 비로소 그들이 주장한 자유시장주의 원칙을 경제 정책에 반영했다. 아마 미국 국민들은 당시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남북전쟁_ 미국 연방의 붕괴 방지가 그 목적이다
미국에서는 1861~1865년 동안 미국 남부와 북부 지역 사이에 노예제도의 폐지 여부를 놓고 내전이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의 명분은 노예 해방 문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부 여러 주의 연방 탈퇴를 막아 연방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전투였다.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을 경영하는 남부 주들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을 늘리고자 노예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반면에 북부 주에서는 공장생산 중심의 산업자본주의가 성행하면서 남부 주와의 세력 균형에 문제가 생겼다. 1820년에 있었던 미주리 협정은 그 타협의 산물이었는데, 이 협정에 의해 북주 자유주와 남부 노예주의 비율은 11대 11이 되었다. 하지만 1820년대 이후 서점운동(西漸運動)의 진전과 민주적인 서부의 발전, 북부 산업의 발달 등으로 이 협정의 균형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편 1831년에 남부의 흑인 노예 냇 터너가 반란을 일으켜 많은 백인이 살상됨으로써 남북 간의 대립이 더욱 악화되었고, 마침내 보호관세 제정 문제를 두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연방 탈퇴 문제까지 제기하는 등 공화당이 연방주의를, 민주당이 분리주의를 각각 주장하는 방향으로 정치 문제화되었다. 특히 1820년대 이후 관세 문제, 토지 개량 문제, 공유지 불하 문제 등으로 남북 간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위기는 1833년의 타협적인 관세 개정 등 토마스 잭슨의 결단력에 의해 일단 모면할 수 있었으나, 1837년부터 밀어닥친 경제공황은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인도적인 문제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변화시켰다.
한편 텍사스 문제로 빚어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획득한 토지에 노예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는 다행히 1850년의 타협으로 봉합되었지만, 이어서 도망노예법이 강화되자 북부의 반노예제도 감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1854년의 캔자스 네브래스카 법령은 노예제도 반대론자들을 결집하게 만들었고, 1854~1856년에 군소정당이 합병하고 공화당이 성립되었다. 마침내 1857년 최고 재판소가 드레드 스콧 사건을 통해 "미주리 협정은 헌법위반이며 노예는 사유재산으로 기본적 인권을 갖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발표함으로써 노예 문제를 남북문제로 비화시켰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감정싸움은 마침내 경제적 공황이 발생하자 정치와 군사적 전쟁으로 치닫았다.
결국 북부에서 공화당이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1860년 아브라함 링컨을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직접적인 단초가 되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선두로 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하고, 1861년 2월에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분리 주들은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회의에서 미국 연방을 조직해 헌법을 제정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하는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이에 북부는 이를 미국 연방의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남부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는 북부 공업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시장의 사실상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며, 미합중국의 국가적 피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초 링컨은 노예폐지론자가 아니었으며, 다만 더 이상 노예제도를 확장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고려했다. 따라서 남부에 대한 전쟁목적을 노예제도의 폐지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미국 연방의 붕괴방지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쟁은 1863년 1월 1일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을 하면서 남부 지역 노예의 동요와 탈출을 통해 남부의 전력 누출을 도모하고, 안으로는 북부군의 전열을 가다듬게 됨으로써 목적을 이루게 되었다. 1865년 4월 9일 남부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고, 5월 26일 루이지애나의 남군이 항복함으로써 남북전쟁은 끝이 났다. 이로써 미국은 근대 국가로서 통일을 완성해 이후 더욱 국력이 강화되었고, 자본주의 국가로서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덤핑 판정_ 독과점 시장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
국내 시장에서의 덤핑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는 가격차별 전략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독과점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완전 경쟁시장에서보다 높다. 따라서 덤핑 전략은 완전경쟁시장에서 상대방 경쟁자를 시장에서 물리치고 최후 승자가 될 경우 독과점 형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수익을 내는 선 이하로 가격을 결정해 판매하는 전략을 말한다.
그런데 약탈적 가격 전략에 빠져든 시장의 경우 최후 승자가 모든 시장의 점유율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는데, 국내 기업 간 덤핑 거래 규제는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대외 무역 거래에 있어 덤핑은 자국에서 생산된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보다 해외에서의 판매가격이 낮은 경우를 말한다. 이때 국제거래에 있어 덤핑거래를 할 경우 외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반덤핑법에 따라 일정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자신들이 수출하는 제품의 가격이 실제 생산단가보다 낮을 경우 이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산업은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런 경우 WTO의 반덤핑 협정에 따라 덤핑에 관한 조사를 신청한다. 한편 수출국의 기업이 정부로부터 받은 수출 관련 보조금이 있을 경우 이는 수입국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들 제품에 적정한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부과되는 관세를 상계관세라고 한다.
레버리징_ 이용이 쉬운 반면에 위험이 높다
금융에서 레버리징은 부채를 이용한 투자를 말한다. 주식투자에 대한 이익 극대화를 위해 투자은행들은 빈번하게 레버리지를 활용하는데, 이용이 쉬운 반면에 고위험 투자방식이다. 이는 모럴 해저드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금융기관 중 투자은행의 경우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위험 주식에 투자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손실은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의 지원에 의해 메워지지만, 수익이 날 경우 보너스 형태로 CEO와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소위 '대마불사'라는 명분하에 많은 투자은행들이 2004년 이후 불어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CDO 파생상품의 규모는 약 55조~6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파생상품과 부실채권 규모가 CDO시장 규모의 약 10%에 이르는 것으로 가정할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총 부실액은 약 5조 5천억~6조 2천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레버리지투자는 '지렛대'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자신의 수익을 최대화하는 투자기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총 자산 가운데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 레버리지 비율을 계산한다. 따라서 투자 실패로 인해 수익보다 비용이 크게 증가 할 경우 사회 경제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을 준다.
레버리지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을 두고 디레버리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레버리지가 자산의 200%를 넘으면 조금씩 부채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주식투자에서 신용거래를 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손실 규모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증권회사는 고객에게 빌려주었던 신용회수를 위해 반대매매를 통해 무조건 일정 규모를 청산한다. 이로 인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신용을 줄이고 자신의 투자금액이 일정 손실 규모 이하로 하락할 때 디레버리징을 해야 한다.
미투 마케팅_ 노력 없이 '묻어가기'는 무임승차일 뿐이다
미투 마케팅은 광고지상에서 자주 접하는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나도 똑같이'라는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점유율이 높지 않은 제품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낮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판매율 1위인 제품의 인기에 편승해 매출을 늘리고자 할 때 사용하는 홍보 전략이 바로 미투 마케팅이다. 이에 대응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면서 '유사제품에 주의하라'는 식의 멘트를 광고 끝 부분에 삽입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식점 간판이나 광고에서 자주 보는 '원조'라는 문구의 확산 역시 미투 마케팅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미투 마케팅 기법이나 상품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시장점유율 1위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대체재의 역할을 통해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독점적 횡포를 막을 수 있다. 반면에 1위 제품의 외형이나 일부 성능만을 복사하는 식으로 전혀 연구개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무임승차 효과를 통해 이익을 노린다는 점에서는 소비자 후생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미투 마케팅의 구체적인 예를 들면 롯데제과의 자일리톨 껌과 오리온의 자일리톨, 남양 불가리스와 매일 불가리아, 오리온의 초코파이와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동화제약의 비타천 같은 제품들을 들 수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미투상품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장흐름을 반영한 전략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국 '묻어가기' 또는 '김빼기 전략'과 같은 무임승차 전략이고, 남의 것을 모방한 '짝퉁 전략'일 뿐이다. 이와 같은 부도덕한 상도가 용인되는 한 기업과 국가에 대한 대내외적 신인도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 것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진리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복지국가의 위기_ 경제주체 모두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상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사회적 시민권에 의한 복지 대상의 확대를 경험하면서 복지국가가 새롭게 출범하는 유행을 맞이했다. 20세기 초 이러한 현상에 위기가 닥쳐왔지만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전후 폐허로부터 부흥을 내세우며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통해 위기에서 빠르게 탈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결국 빠른 경제성장이 복지국가의 위기를 구제한 셈이다. 소위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 제도적 복지국가, 기업가 정신에 있어 자본과 노동의 토드주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를 지탱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복지 제도의 남용으로 각종 사회 안전망들이 개인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려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따라 제기된 문제를 보완하는 형태의 새로운 복지국가제도가 등장했는데, 20세기 후반 이후에 등장한 복지국가는 집단적 복지 수요의 해결보다 개인적 복지 수요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즉 다시 20세기 초입에 경험했던 복지제도의 시장실패를 향해 시장 중심으로 복지체제가 이동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와 사회연금 제도의 개인화 등이 이런 추세를 설명하고 있으며, 21세기 초입에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는 곧 성장의 위기가 가져온 재정적자의 증대로 이해된다.
20세기 초 글로벌 경제의 대 불황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심화됨에 따라 공공 지출, 특히 실업수당 등 사회적 지출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다. 반면에 경기침체는 정부의 세수 감소를 촉발하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결국 정부의 재정수입과 지출간의 심각한 차이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 부문의 차입을 동시에 늘리면서 2010년 이후 OECD 국가들의 GDP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80%선을 넘어설 수 있음을 말한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있는 복지 제도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자본주의 및 혼합주의를 모두 지칭하는데 복지국가의 위기에서 '위기'는 이들 국가의 경제체제가 더 이상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정부, 기업, 가계의 경제주체 모두가 복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지 문제란 질병, 실업, 은퇴 등 인구학적 변화와 같은 사회보장 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학적인 문제인 사회 행복, 윤리규범의 완성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정의를 기초로 한다.
세계시장의 3가지 축_ 세계 경제는 무역 금융 가격에 의해 형성된다
세계시장에서는 3가지 축이 있는데, 그 첫 번째 축은 무역이다. 세계 경제가 개방 경제로 진전되면서 국가 간 교역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18세기에 상업발달이 급진전되면서 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국가 주도의 중상주의 정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중상주의 정책은 곧바로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의 토대가 되면서 당시 경제학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진화 과정을 이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근대경제학이 탄생했고, 자유주의와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수정자본주의 등의 과정을 거쳤다.
두 번째 축은 금융이다. 초기의 교환은 사실 물물교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방경제의 틀 안에서 실물 경제의 국제적 움직임이 가속화되기 시작하면서 화폐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화폐란 것은 교환의 매개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약속된 바 있다. 이에 시장은 화폐의 3가지 주요 기능인 지급, 가치저장, 계산 등을 통해 실질적인 상품이나 재화의 직접적인 이동 없이 비용절감과 배분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인류 역사 속에서 화폐는 상품, 금속, 지폐, 예금, 전자화폐 등으로 진화되어 오고 있다. 이처럼 화폐의 등장은 국가 지역 간 교역활동을 더욱 증가시켰다. 상품을 직접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 만큼 비용이나 효율적 측면에서 경제적 비경제경 파급 효과는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심리적 측면에서는 신뢰라고 하는 비경제적 요소가 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