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증시 콘서트
한우덕 지음 | 올림
중국 증시 콘서트
한우덕 지음
올림 / 2010년 4월 / 344쪽 / 15,000원
CHAPTER 1 태동, 그리고 출발
혁명전사의 두 아들중국 공산당의 혁명 전사 왕빙난은 부인 장위윈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는데, 이 중 셋째가 왕보밍이었다. 왕보밍은 198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시립대학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컬럼비아대학에서 금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취직했다. 시장분석이 주 업무였는데, 그는 이 일을 통해 미국 증시를 체험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1년여 근무한 그는 홀연 귀국 비행기를 탄다. 중국에 자본시장을 이식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988년 7월 9일. 중국 베이징 완서우호텔의 한 회의실.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금융체제개혁과 베이징증권거래소 설립. 이 젊은이들 가운데 왕보밍의 얼굴도 보였는데, 그의 발표가 끝나갈 무렵 회의를 주재한 왕치산 당시 중국농업신탁투자공사 사장(현 부총리)이 질문을 던진다. "1년 안에 끝낼 수 있겠는가?" "증시 설립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반드시 해야 하네." 이날 회의는 중국 증시 설립의 주춧돌을 놓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중국 증권계에서는 이날 회의를 '완서우호텔 회의'라 부른다.
왕보밍, 그가 중국 증시 설립의 산파역을 맡은 것이다. 왕보밍은 지금도 막후에서 중국 증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는 중국 경제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 중 하나인 《차이징(財經)》을 손에 쥐고 있다. 격주간지인 차이징은 중국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맥을 잘 잡아간다. 왕보밍은 온라인 정보도 장악하고 있다. 중국 최고의 온라인 경제전문사이트인 허쉰왕(hexun.com)이 그의 산하에 있다. 왕빙난의 셋째아들 왕보밍이 중국 증시의 막후 실력자라고 한다면, 장남인 왕동밍은 공개된 실력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최대 증권업체인 중신증권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왕빙난의 아들 왕둥밍과 왕보밍, 그들의 중국 증시 만들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특급 소방수' 왕치산
2008년 4월, 상하이 증시는 연초부터 급락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18일, 강력한 지지선이라 믿고 있던 3100포인트가 깨졌다. 위기감이 퍼졌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주가는 그 이튿날부터 급반등하기 시작했다. 10여 일 사이 20%가 오르더니 5월 초에는 3760포인트를 돌파하기도 했다. 도대체 중국 증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V자를 그리며 반등했을까? 그 '배후'에 왕치산 부총리가 있었다.
급락세가 한창 진행되던 4월 16일, 왕 부총리가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를 방문했는데, 4월 18일자 신문에 그가 한 말이 공개되었다. "펀드매니저들도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한마디가 중국 증시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그의 말은 곧 '정치를 중시하라'는 의미다. 왕 부총리의 말은 곧 내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즉 인민의 입장에서 주식시장을 보라는 주문이다. 기관투자가들에게 주식시장을 살리는 데 앞장서라고 압력을 가한 것이다. 왕 부총리가 펀드매니저들을 앞에 두고 이 말을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매의 주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은 비유통주 문제가 불거지자 일찌감치 자금을 빼냈다. 그 과정에서 애먼 개미들만 당한 것이다. 결국 왕 부총리는 자금을 마구 빼내지 말고 보다 거국적인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왕 부총리로부터 정치에 신경 쓰라는 핀잔을 들은 기관투자가들은 주식 매입에 적극 나섰다. 왕치산 부총리가 중국 증시의 큰 물길을 열었던 완서우호텔 회의에 참가했던 때가 나이 마흔, 그는 이후 줄곧 금융 분야에서 일하며 중국 금융의 길목을 지켜왔다. 왕치산 부총리는 중국에서 '특급 소방수'로 통한다. 국가적 사건이 터지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왕치산은 정치 인생에서 두 명의 귀인을 만나게 된다. 그중 한 명이 야오이린 전 국무원 부총리다. 야오이린과 왕치산의 인연은 문혁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치산은 온 가족이 우파로 몰려 산시성 옌안으로 쫓겨났고, 그곳에서 역시 쫓겨 내려온 야오 전 부총리의 딸을 만나 결혼했다. 왕치산이 태자당으로 분류되는 연유다. 왕치산이 만난 또 다른 귀인은 주룽지 전 총리다. 왕치산은 1990년 건설은행 부행장 시절 상하이에 장기 파견된다. 당시 상하이를 이끌던 인물이 바로 주룽지였고, 주룽지는 왕치산의 상하이 금융발전 방안에 감동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왕치산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업무 스타일뿐 아니라, 정책 방향도 주 총리와 크게 닮았다. 개혁개방에 대한 뚜렷한 신념 아래 시장의 힘을 중시한다. 이것이 그를 '리틀 주룽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CHAPTER 2 레드 캐피털리스트(Red Capitalists)
칸막이 증시한 중견기업의 평범한 샐러리맨인 김 과장. 그는 '중국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말한다. 차이나펀드가 화근이었다. 2007년 가입했던 차이나펀드가 1년 사이 반토막 났던 것. 폭락 장세를 견디지 못한 그는 2008년 가을 펀드를 모두 해지했고, '상투'의 고통을 맛봐야 했다. 2009년 상하이 주가가 80%가량 올랐다는 얘기를 들으니 속이 더 뒤집어진다. 김 과장은 그렇게 당하고서도 차이나펀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김 과장은 아직도 중국 증시에 대해 '까막눈' 수준이다. 그는 이참에 중국 주식을 공부하기로 하고 '중국 주식 박사'로 통하는 한(韓) 도사를 찾아갔다. 한 도사는 "종목 좀 찍어주소"라는 김 과장의 요구에 미지근한 반응이다. 대신 그는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숲을 보아야 하듯, 시장을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플레이어들이 뛰고 있고,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도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 증시는 상하이ㆍ선전ㆍ홍콩 등 3곳에 설립돼 있다. 상하이ㆍ선전 본토 증시에서는 크게 A주와 B주가 거래되고 있다. A주는 중국인만 투자할 수 있고, B주는 외국인도 투자가 가능하다. 선전 증시에는 특이하게도 중소기업만 거래되는 중소기업시장이 있다. 벤처기업 중심의 차스닥 시장이 설립된 곳도 선전 시장이다. 상하이는 대형 업체 중심으로, 선전은 중소기업 위주로 발전시키겠다는 게 중국 증권당국의 구상이다. 홍콩 증시에는 H주와 R주가 있다. H주는 중국의 국유기업 종목으로 칭다오맥주, 중국공상은행 등 대륙의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R주 역시 대륙에 기반을 둔 기업이지만 H주와 다른 점은 법인 등록지가 대륙이 아닌 홍콩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주식시장은 이처럼 시장에 따라 주식의 종류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고, 주식의 종류에 따라 투자 주체도 다르다. 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거대한 주식시장 안에 여러 칸막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은 이론상으로는 상하이ㆍ선전 증시의 B주와 홍콩 증시의 H주ㆍR주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투자하고 싶어도 거쳐야 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차이나펀드다. 김 과장은 차이나펀드에 가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중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과장이 가입했던 차이나펀드는 어느 시장에 투자되었을까? 한 도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기존 차이나펀드는 대부분 중국이동통신, 중국공상은행 등 홍콩 증시에 상장된 H주에 투자되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B주에 투자되기도 하지만 극히 적다." 김 과장은 자신의 펀드자금이 홍콩 증시에 투자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무늬만 차이나펀드구나?'라며 놀란다. 중국 경제를 더 적절히 반영하는 본토 증시의 A주에 투자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답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국내 증권사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인 '본토기업 투자 펀드'가 그것이다. 한 도사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 정부는 허가받은 외국기관에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A주 투자를 허용한다. 이를 'QFII(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라 한다. QFII펀드 운용 허가를 받은 해외 기관투자가는 90여 개에 이르는데, 국내에서는 푸르덴셜코리아ㆍ미래에셋ㆍ삼성투신ㆍ한화투신ㆍ산업은행ㆍ우리은행ㆍ한국투자신탁 등 7개 기관이 자격을 얻었다. 이들이 판매하고 있는 QFII펀드에 가입하면 간접적으로 A주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A주 종목의 수익률이 반드시 H주보다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대륙 증시의 A주는 '비유통주'라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위험요소가 크다. 한 도사는 마지막으로 비유통주 문제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2009년 말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시가총액은 약 25조 위안(약 4160조 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이 주식이 모두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이 중 78%만 거래될 뿐이다. 나머지 22%는 '매각이 제한된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풀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 비유통주를 시장에 완전히 풀기 위해 개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2012년쯤에 가서야 완전히 끝날 것이다." 비유통주의 존재가 중국 주식시장을 이중 구조로 만들고 있고, 비유통주 개혁 문제를 알면 중국 주식시장 구조의 절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CHAPTER 3 개혁과 성장통
긴 호흡으로 돈을 묻어라비유통주 개혁의 목표는 증시 체질 강화다. 시장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약간의 보완책은 나올 수 있지만, 2012년까지 비유통주를 시장에 완전히 풀겠다는 상푸린 증감위 주석의 방침에는 한 치의 변화가 없다. 그는 오히려 어설픈 미봉책은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2009년 말 비유통주 개혁 작업은 전환물량 기준으로 볼 때 이미 68%를 넘어섰다. 종목 수를 기준으로 하면 2009년 말 현재 전체 상장 종목의 65% 이상이 전(全) 유통을 실현했다. 2010년이면 90%, 2011년이면 거의 전체 기업이 전유통주로 편입된다.
비유통주의 더 큰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상장 매각제한주'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증시 개혁 이후 상장하는 기업에 대해 주식의 상당 부분을 매각제한주로 묶어놓았다. 우리말로 하면 보호예수다. 이 주식은 해당 기업이 갖고 있거나 외부 투자기관이 상장을 앞둔 선투자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 '상장 매각제한주'를 갖고 있는 주주들 역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유 물량을 시장에 팔 수 있게 된다. 그 규모를 보자. 2007년 11월 5일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의 경우, 2009년 말 현재 이 회사의 총주식 수는 약 1,830억 주에 달하지만, 이 중 상하이 증시에서 유통되는 주식(A주)은 40만 주에 불과하고, 211억 주는 홍콩 증시에서 H주 형태로 거래되고 있어, 13.7%(251만 주)만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셈이다. 나머지 1,579억 주는 매각제한주 형태로 남아 있다. 이 주식은 2010년 11월 상장 3년 만에 전량 매각제한주에서 해제돼 상하이 시장에서 팔 수 있게 된다. 주식 상장을 앞두고 일부 대주주 지분을 보호예수로 묶어놓는 것은 서방 증시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도 상장을 앞두고 기관들이 받은 물량에 보호예수기간을 둔다. 증시의 정상적인 자금흐름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체 상장주식의 86.3%를 보호예수로 묶어 두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상장 매각제한주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만약 앞으로 상하이 증시 주가가 어떻게 가겠느냐고 누군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장기적으로 보고, 긴 호흡으로 돈을 묻어라"라고 답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 이유 역시 비유통주 개혁에서 찾는다. 2010년을 넘기게 되면 비유통주 개혁은 마무리 단계로 들어선다. 2010년 3,830억 주가 풀리고 나면, 2011년 풀릴 물량은 1,106억 주로 크게 줄어든다. 2012년에는 744억 주, 2013년 29억 주, 2014년에는 7억 주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쯤이면 중국 증시는 서방 증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증시 체질이 개선되는 것이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 다가올 큰 장을 위해 중국 증시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지혜를 쌓아야 한다. 중국 주식시장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증시의 대부 상푸린2005년 6월, 국무원의 신문판공실이 베이징 특파원들에게 기자회견을 통보했다. 주제는 증시 개혁이었다. 기자들은 회견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인공이 입장했다. 상푸린.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이하 '증감위') 주석이었다. 당시 상하이 주가가 장중 한때 1000포인트 이하로 밀렸을 만큼 폭락세를 보이고 있었던 터라 이와 관련한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기자들의 질문은 주가 폭락의 '주범'이었던 주식개혁에 모아졌다. 한 기자가 묻는다. "증시 개혁 이후 주가 폭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상푸린 주석, 이제는 공부 끝내라'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습니다. 증시개혁이라는 실험을 끝내라는 요구인데, 지금이라도 증시 개혁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상푸린의 대답은 간결했다.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기자회견을 끝냈다.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라는 선언이다. 이 말이 상푸린 주석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그가 '중국 증시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상푸린, 그는 누구인가? 2002년 12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정부 전 부문에 걸쳐 인사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 인민은행장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두고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가 부딪쳤다. 주 총리는 측근인 왕치산을 앉히려고 했고, 장쩌민 주석은 저우샤오촨을 밀었다. 당 총서기와 총리의 대립. 힘의 저울은 총서기에게로 기울어 주룽지는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주 총리는 인민은행장 인선을 장쩌민에게 넘기는 대신 공석이 된 증감위 주석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혔다. 그가 바로 상푸린이었다.
상푸린의 성향은 한마디로 '토박이 시장주의자'로 요약된다. 그는 베이징 차이마오 학원에서 학사과정을 마쳤고, 시난 재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해외 유학 경험은 없지만 시장의 중요성을 알았으므로 스스로 "나는 시장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시장은 '자유주의적 시장 방임주의'와는 다르다.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되 이로 인해 어느 특정 계층이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상 주석의 증시 철학은 분명하다. '주식시장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신뢰 구축일 뿐, 가급적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상 주석은 조용히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한번 추진한 일은 어떤 반발이나 역풍이 불어도 과단성 있게 추진한다. 상 주석의 다음 자리는 중국인민은행장일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그가 앞으로 중국 금융지도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CHAPTER 4 주식회사 차이나(China Inc.)
심판과 선수들잘 알다시피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나라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니,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하고, 경제는 시장경제하겠다는 것 아닌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썩 시원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해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 대학생들이 배우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펼치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전체 사회의 공동 발전을 추구하되, 자원의 배분은 시장 원리에 맡기는 체제이다." 결국 사회주의를 추구하되 경제 운용의 툴(tool)로서 시장경제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애매하다. 도대체 정치경제를 어떻게 꾸려나가겠다는 것인지 확실히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