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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위기 이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한스미디어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한스미디어 / 2010년 2월 / 504쪽 / 17,000원



01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




금융허브 신기루가 사라진 아이슬란드를 가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모범생 아이슬란드는 2007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유엔 주도 설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면서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이제는 '1976년 영국 이후 최초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서방국가'라는 치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게 됐다. 이런 아이슬란드의 급속한 도약, 그 도약보다 더 급속한 추락은 지난 30여 년간 '시대정신'으로 군림해오다 그 지위를 도전받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과 전력자원, 온천과 간헐천, 빙하를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 외엔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나라였고,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이 항상 골칫거리였고, 정부는 금융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다비드 오드손 총리 주도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1991년부터 14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공격적인 금융 자유화를 추진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법인세도 순차적으로 내리고, 정부 소유 대규모 은행의 지분도 매각해 주요 은행들의 민영화는 2003년 완료됐다.

그러자 세계 각지에서 높은 이자율을 좇아 돈이 몰려들어 외국 자본이 넘쳐났고, 아이슬란드 크로나화는 강세를 보였다. 그러자 민영화된 은행들은 아이슬란드 내부 시장이 너무 작아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영국ㆍ네덜란드ㆍ노르웨이 등 유럽으로 나가 몸집을 키워나갔고, 정부는 사실상 투기에 가까운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용인했다. 참고로 카우프싱ㆍ란츠방키ㆍ글리트니르 등 3대 은행의 자산규모는 아이슬란드 GDP의 12배 가량에 달했는데, 이 중 70%는 해외 자산이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기반이 낮은 아이슬란드는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2008년 2ㆍ4분기 대외채무는 약 1205억 달러로 GDP의 7.3배를 기록했으나, 외환보유액은 36억 7000만 달러(9월말 기준)에 불과했다. 결국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자신들이 복제했던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자금 회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학 교수는 "아이슬란드 위기는 금융 자유화에 따른 은행의 과잉성장과 그것을 제어할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 발 금융위기의 특징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 있는 사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것이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번개가 내리꽂혔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먼이란 불씨는 순식간에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를 집어삼켰고, 불길은 다시 전 세계를 불태웠다. 지구에 발 딛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 불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들뿐이 아니다. 유럽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 파리 외곽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 런던 교외의 노점상, 도쿄 시내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 일자리를 찾은 베이징의 젊은이도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특징에 대해 한밭대 조복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금융위기와 유사하게 기본적으로는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즉 가장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금융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은행의 대출채권 부실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유동화증권 등 유가증권 부실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위기가 급속히 세계적 성격을 띠면서 세계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이번 금융위기의 특성은 선진 금융기법이나 효율적인 감독체제라 할지라도,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속에서는 금융의 본성인 투기적 거래와 금융팽창을 억제할 수 없고, 금융위기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대신 금융안정과 경제발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질서와 공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2008년 7월 중순 유가가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배럴당 무려 147.17달러. 그러자 연말이면 2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는 '슈퍼 스파이크' 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그러나 불과 사흘 만에 유가는 10% 폭락했고, 두 달 후엔 90달러 선까지 무려 50달러나 떨어졌다. 세계 석유수요가 별로 줄지 않았음에도, 더구나 중동 산유국들이 하루 5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의하고, 송유관이 지나는 그루지야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석유가격은 계속 추락했다.

원인은 명확했다. 금융투기세력들이 급속히 석유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에너지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투기가 있었다. 단지 수급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말은 투기거래에 깊숙이 참여했던 JP모건체이스의 투자본부장 마이클 셈블리스트가 2008년 9월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의 일부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그토록 떠들어대던 수요 급증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피크 오일 등에 의한 공급의 감소ㆍ차질이 주요 원인이 아니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나아가 아이티 사람들로 하여금 '진흙쿠키'로 끼니를 때우게 만들었던 식량위기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2008년 3월 부셸당 12.70달러까지 치솟았던 밀 가격은 현재 5달러 수준이다. 당시 호주 곡창지대의 가뭄과 미국 중서부의 토양 침식 등 미디어들은 갖가지 원인들을 내세웠지만, 식량 폭등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유가급등과 바이오디젤 열풍을 틈탄 금융투기세력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누구의 작품이었나(주연 배우들) : 유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초이다. 그때까지 20달러 선에 지나지 않았던 원유는 1년 후 40달러를 돌파하고 조정기를 맞는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준 무티'다. 그는 유가가 장기상승국면에 들어섰다며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과감한 예측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2006년 말 그 예언이 현실화되자 '석유업계의 카산드라'로 불리며 명성을 얻는다. 이후 유가가 조정기를 맞을 때마다 상승 모멘텀을 제공하던 그는 2008년 5월 유가가 130달러 선에서 주춤거리자, 이른바 '슈퍼 스파이크' 론을 내세워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선언하여, 치솟는 유가에 불을 붙였는데, 아준 무티는 바로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였다. 주지하듯이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데, 기업공개 주선 등 기업 금융부문과 모기지 채권 등을 다루는 자산운용 및 증권부문 그리고 상품 선물 등을 취급하는 자기자본투자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자기자본 투자부문은 사실상 헤지펀드와 거의 같은 활동을 한다. 한편 2007년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악화되고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자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의 뒤를 따르는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는 640여 개로 급증했고, 간접투자를 원하는 연기금, 펀드들이 대거 시장에 유입됐다.

안간힘을 다한 공조(조연 배우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공 드라마는 물론 그들의 힘만으로는 연출될 수 없었다. 유가가 급등했던 2008년 상반기 내내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관련 지면을 장식했던 분석은 이른바 '중국ㆍ인도 책임론'이었다. 즉 신흥공업국에서 수요가 급증해 수급이 극히 타이트해졌다는 논리였다. 또 '자원민족주의 유죄론'도 뒤를 이었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서방의 석유회사들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생산능력이 정체 또는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이란 등에서의 지정학적 위기도 대서특필되며 아직 유가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수급상황론에 대해 반론이 높아지자 새로운 논리들이 출현했다. 즉 석유업계 및 금융업계와 연계된 연구소들이 "오랫동안 채굴장비와 선박들에 대한 투자와 인력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기간 내에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며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했다. 여기에 부시, G8재무장관 등이 가세하고, 감독기관인 CFTC(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나서서 "어떠한 투기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등 풀코트 프레싱이 펼쳐졌다.

이미 방영됐던 예고편(엔론 함정) : 석유와 식량 등 상품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의 발호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2000년에 만들어진 '상품선물현대화법' 때문인데, 이 법에 의해 장외시장, 역외시장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런데 상품선물현대화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한 기업이 바로 한때 세계 최고의 혁신적 기업이라 불렸던, 그러나 실제로는 교묘한 수법으로 회계 장부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려 발표했던 엔론이었다.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 그 불안한 미래 : 1971년 5월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하자 달러투매와 자본유출이 벌어지고 결국 3개월 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 발표된다. 그에 따라 달러화의 급락세가 계속되자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다시 '강한 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키신저 등의 주도로 세계의 금융 및 정치계 내부자들의 비밀회합이 잦아졌다. 그리고 식량위기, 중동전, 1차 오일쇼크가 연이어 일어났다. 결국 4배나 폭등한 석유가 달러로만 결제되는 '석유-달러체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달러의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고전적 브레턴우즈체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변동 환율제로 이행했고, 그 후 '강한 달러'를 바탕으로 30여 년에 걸쳐 금융자본 우위의 신질서가 구축돼 왔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가 되고 중동과 일본을 위시한 신흥공업국들은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무역흑자로 미국 국채를 사주는 국제 달러 환류 시스템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로 그 '글로벌 불균형'이 다시 전반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패러다임이 새로 구축될 것인가? 지금으로선 어떠한 예측도 섣부를 것이다. 대신 무엇보다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 미국 금융자본과 석유자본의 융합관계와 그들의 동향이다.

02 신자유주의 모델, 그 파국적 종말



의료 민영화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희 씨(40)의 세 자매는 우연히도 10년 전 서로 다른 세 대륙에서 각각 첫 아이를 낳았다. 김 씨는 서울에서, 큰언니는 미국에서, 작은언니는 이탈리아에서 각각 출산을 했다. 세 자매 중 의료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은 작은언니였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산모 등록을 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정기 검진비부터 출산 전후로 4박 5일 동안 병원에 머무른 비용, 심지어 출산 후에 아기가 잘 크는지 확인하는 사후 관리 비용까지 전부 무료였다. 참고로 당시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던 작은 형부는 월급 중 약 40%는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영희 씨는 어땠을까? "저도 작은언니처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녔어요. 병원에서 권유하는 피검사, 초음파 검사 등은 다 받았죠. 검사 비용은 비싸야 10만 원대였고, 진료비는 2만 원 정도였어요. 출산 때는 4박 5일 동안 입원했는데 병원비는 36만 원 정도 나왔어요.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 작은언니에 비하면 비싼 것 같지만, 제가 낸 보험료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어요." 김 씨는 월 27만 원 정도를 의료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미국에서 출산한 큰언니가 가입한 의료 보험은 임신과 출산 비용 혜택이 제외된 것이었다. 이렇게 보험 없이 치른 출산의 대가는 컸다. "큰언니는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저나 작은언니처럼 검사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겨우 병원에 입원하고, 다음 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퇴원했어요. 산후조리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맡으셨죠. 병원은 호텔처럼 으리으리했대요. 하지만 그 호텔에서 1박2일 머문 대가가 2000만 원이었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출산 후에 아이에게 맞혀야 하는 예방접종 때도 한 번 맞을 때마다 수십 만 원씩을 내더군요." 미국의 큰언니 가족은 매년 초에 의료 보험료로 약 250만 원 상당을 한꺼번에 내고 가족 의료 보험에 가입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큰언니가 다른 두 동생과 달리 높은 출산 비용을 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공보험이 없다. 미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는 공공보험인 노인의료보험(메디케어)과 저소득층 및 장애인 의료보험(메디케이드)에 가입돼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인구의 약 67.5%는 민영 의료보험에 의존한다. 미국의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환자들이 먹는 약값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미국 뉴욕 주의 한 대형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이현호 씨(28)는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약국에서는 매일 경험한다"고 말했다. 미국 의료체계에 대해 아널드 S. 렐만(미국 하버드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의료 민영화의 폐해 중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장 논리에 따라 운영이 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너무 비싸고 비효율적입니다.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의 건강과 안정을 우선시한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합니다. 의료업 종사자들의 윤리적인 기준을 무너뜨린다는 점도 심각한 일입니다.

민영화 이후의 미국 의료제도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못가고,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걸까요?: 현 미국 의료 민영화 시스템에서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은 많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로비 등의 활동을 통해 미국 정부가 현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그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할 수 있을까요?: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의료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할 재정을 마련하자고 의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 가진 경제적인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나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최근 미국 모델을 따라 의료보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의료 민영화가 더 큰 의료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논리는 증명된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민간 의료보험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고, 서비스에서 파생되는 더 비싼 행정 비용은 국민에게 떠넘겨지게 됩니다. 의료 보험 민영화 추진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환경 파괴

2005년 6월 백악관이 발칵 뒤집혔다.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환경담당보좌관인 필립 쿠니가 지난 5년간 환경청 발간 보고서들을 검열하고 멋대로 편집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쿠니는 200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환경청의 연례 환경보고서와 대기오염 보고서에 손을 댔다. '굴뚝이나 파이프 등의 배출가스가 부분적으로나마 지구 온난화에 기여했다'는 문장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로 바꾸었고, '지구 온난화가 건강과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내용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잘라냈다. 2003년 크리스티 휘트먼 환경청장은 쿠니의 이런 검열에 대해 "반쪽짜리 진실을 전달하느니 내용 자체를 없애는 것이 낫다"며 기후변화에 관한 장 전체를 통째로 덜어내고 연례 환경보고서를 출간한 뒤 사직했다. 이에 쿠니는 "환경청장의 사임과 보고서 문제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곧 물러나야 했다. 그 후 미국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쿠니가 새로 얻은 일자리가 엑손 모빌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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