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한국은 어디로?
김영기 외 지음 | 홍익출판사
일본은 왜? 한국은 어디로?
김영기 외 지음
홍익출판사 / 2010년 2월 / 318쪽 / 15,000원
1부 세계 1등의 자존심이 무너지다
일본의 자존심 도요타의 좌절도요타 렉서스는 20세기 말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고의 품질과 브랜드를 인정받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이다. 그런 도요타가 21세기를 불과 10년도 채 넘기지 않아 자신들을 오늘날의 성공으로 이끈 바로 그 땅에서 추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2009년 9월 미국 경제를 양쪽에서 떠받치고 있던 월스트리트(금융)와 디트로이트(자동차)가 추락한 지 한 해를 갓 지난 시점에 미국 전역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벨의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정적인 일본이었다. 그것도 일본의 자존심이요, 최고 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을 발표한 것이다. 일본의 심장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리콜을 실시해 왔지만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는 상황이 달랐다. 2009년 도요타는 미국에서 시판되는 승용차 캠리 등의 바닥 매트가 가속페달에 걸려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380만 대를 회수한 후 무상 수리해주겠다고 밝혔다. 도요타가 미국의 심장부에 발을 디딘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리콜이다. 하지만 리콜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0년 1월 도요타는 가속페달 결함으로 인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에서 판매된 총 8개 모델 230만 대를 추가 리콜하겠다고 밝혔다. 3개월 만에 리콜 대상이 걷잡을 수없이 늘어난 것이었다. 또한 도요타는 유럽에서도 200만 대의 리콜을 결정했고, 미국에서는 리콜 대상인 8개 모델의 판매와 생산이 중단되었다.
차량 부품의 결함을 시인한 도요타의 뒤늦은 고백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도요타는 대규모 추가 리콜을 단행한 지 일주일 만에 두 번째 추가 리콜을 발표했다. 리콜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대를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 의회가 도요타 리콜 사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도요타의 리콜 사태를 매일 대서특필했다. 언론과 정치권이 전방위적으로 도요타를 포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도요타는 창업자의 손자인 아키오 사장이 직접 나서서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1등을 자부해 온 도요타로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도요타의 갑작스런 몰락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아웃소싱의 실패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은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조립시간을 단축했을 뿐 아니라 재고량까지 줄이는 등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다. 하지만 오늘날 도요타를 만든 원가절감 방식은 역설적으로 몰락을 자초하는 양날의 칼이 되고 말았다. 도요타는 2000년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해외 생산을 대폭 확대했다. 일본 본사에서는 차량 설계 및 경영 전략 등 총체적인 것을 맡고, 실제 생산과 판매는 현지 지사들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다. 몸집 불리기를 위해 핵심 영역을 제외한 기타 영역들의 아웃소싱은 불가피하지만 이 경우 관리 감독의 손길이 깊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품질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철저한 생산관리가 핵심인데 일본 본사가 전 세계 사업장의 수많은 부품들을 일일이 체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점에서 도요타의 글로벌 아웃소싱은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것들이 일련의 악재와 겹치면서 한꺼번에 폭발한 셈이다.
둘째. 초심을 잃어버린 대가이다. 도요타가 렉서스를 처음 내놓은 것은 1989년이다. 당시 도요타는 일본차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고객 서비스에 최선을 다했다. 차량에 결함이 있으면 영업점 직원들이 고객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서 자동차를 다시 찾아와 수리한 후 세차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연료통에 휘발유를 가득 채워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고객이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날의 도요타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오늘날 도요타는 초심을 잃어버렸다. 도요타의 자동차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2007년부터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를 무시했다. 고객 감동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초기의 경영방식을 잊어버린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미리 징후를 포착해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고객 감동 경영을 표방하는 모든 기업의 태동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러한 기본 정신을 스스로 저버렸다.
셋째. 미국에서의 언론 대응 실패이다. 도요타는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이 부품 결함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속페달을 공급한 미국 부품업체에 잘못을 전가했다. 이는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춰졌고, 기업 이미지를 스스로 크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가뜩이나 악의적 기사로 도요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 언론의 입장에서 볼 때, 책임을 전가하는 도요타의 모습은 '우리를 마음껏 짓밟아주세요!'라는 요청이나 다름없었다. 겸손을 잃은 도요타는 언론 대응도 실패한 것이다.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이제는 그 누구도 도요타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었다.
지금 도요타 자동차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굴욕을 무릅쓰면서까지 리콜 사태와 관련해 수차례에 걸쳐 공개 사과를 하고, 넓은 영토를 자동차로 침식시켰던 미국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미국인을 향한 일본인의 사죄요, 일본경제가 세계인에 보내는 부활의 다짐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는 지금 이 순간 도요타의 변신을 지켜보고 있다.
2부 1등의 함정에 빠진 경제대국
성공신화에 발목이 잡히다"세계 최고 기능을 갖춘 일본의 휴대폰들은 왜 일본 바깥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것일까?" 2009년 7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가 이 같은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주제의 이 기사는 좁은 세상에만 갇혀 진화를 거듭한 결과, 더 큰 세상에서는 적응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어쩌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을 절묘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본 휴대폰은 기능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다. 인터넷 접속은 물론이고 이메일 송수신, 신용카드와 탑승권, 체지방 측정기 역할까지 한다. 첨단기술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일본 휴대폰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애플의 아이폰보다 훨씬 기능이 앞서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미국 시카고나 영국 런던에서 일본산 휴대폰을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원인은 바로 1등이라는 자만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휴대폰 메이커들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1990년대 2세대 네트워크 표준을 만들었지만 일본 이외의 시장에서는 배척당했고, 2001년에 3세대 네트워크를 도입했지만, 이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앞서 나갔다. 일본 휴대폰 업체는 자국 시장에서의 경쟁에만 몰두했지만 국제 표준을 등한시하여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특히 세계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일본만의 통신 방식과 통신 사업자 주도의 판매 방식 시스템은 치명적이었다. 그 결과 1997년 22.6%였던 일본 휴대폰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5년 6.8%로 추락했다.
뒤늦게나마 일본 휴대폰 메이커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휴대폰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데만 주력한 나머지 소프트웨어 개발은 뒤처져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세계시장은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저가 소형 휴대폰과 첨단 기능 소프트웨어 결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에 반해 일본의 휴대폰은 고가이면서도 소프트웨어는 낮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해외 진출이 지지부진한 사이, 가장 폐쇄적이었던 일본 시장은 애플의 아이폰에 완벽하게 뚫렸다. 철옹성이 무너진 것이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일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일본은 휴대폰뿐만 아니라 가전, 자동차 등에서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과거의 히트 상품에 안주한 나머지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변화에 둔감해지면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공룡 일본의 추락은 어느 곳에서도 예외가 없다. 2005년 1월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삼성 1조 엔 이익의 충격'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삼성이 2005년 기록한 이익은 일본 상위 10대 전자 메이커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2배나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 전자업체 몰락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본의 간판 전자업체 소니는 2009년 창사 이래 처음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이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겨왔던 일본이 한국 업체에 역전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복잡한 것 같지만, 답은 명쾌하다. 시장의 흐름보다 기술을 우선시했고, 기존의 성공에 도취하여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9일자 《뉴욕타임스》는 일본 기업들이 복잡한 기술 구현에 집착한 나머지 디자인이나 사용처 등 소비자들을 단번에 매료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니의 워크맨이 애플 아이팟보다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제품의 인기가 낮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리콜 파문으로 파생된 도요타 사태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일본은 물론이고, 일본에게서 세계시장을 빼앗은 한국기업들도 언제나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이다. 2010년 2월 10일자 일본 도쿄 신문은 일본 주요기업의 경영 실패에 대해 예스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비판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에도 시대의 번(제후가 다스리던 영지)과 같은 체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정신이 사라진 기업문화 탓에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3부 노쇠한 일본, 길을 잃다
또 하나의 재앙, 저출산과 고령화일본이 늙어가고 있다. 시골과 도시를 막론하고 일본 어디에서도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저출산 문제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일본의 장기불황을 이끄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에서는 아무리 부지런한 국가와 민족이라 할지라도 돌파구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 늙어가는 일본이라는 담론 안에 지난 세월 일본이 겪었으며, 앞으로 또한 겪을 초창기 불황의 모든 인과관계가 담겨 있다.
1974년 일본의 출산율은 2.14명이었지만 2005년 기준으로 1.26명까지 떨어졌다. 2005년에는 일본의 인구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인구가 전년보다 2만 명 줄어들어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고령자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서 200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21.5%에 달하는 상황이며, 오는 2050년에는 39%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저출산 상황과 맞물려 있는 재앙이 있으니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그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1차 베이비붐 세대로 그 규모가 68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일본경제의 호황을 축복처럼 맞이했던 세대이자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경영의 전성기를 누린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은퇴 후에 보유한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 하락이 이어졌고, 연금 수령에 따른 재정 부담 증대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이 70~80대로 접어드는 향후 10~20년 뒤에는 일본 경제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향후 일본 경제의 성장 잠재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개인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던 데는 인구 구조의 고령화와 깊은 관계에 있는데 그 중심에 단카이 세대가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저출산 현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일본이 저출산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산시장이 무너지고, 노동시장이 활력을 잃으면서 장기침체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구 문제 전문가 필립 롱맨은 이렇게 말한다. "소비와 생산의 원동력인 청장년층이 줄어들고,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일본경제가 기본적인 동력을 잃어버렸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일본의 인구구조가 불황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최근 일본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S&P는 보고서는 일본정부가 인구 감소 추세와 늘어나는 국가부채를 해결할 성장 전략을 내놓지 않는다면, 신용등급을 한 단계 더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일본의 신용등급까지 깎아내리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4부 일본을 흔드는 일본병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의 고리2차 대전 이후 일본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양축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서양인들은 경제 외적으로는 일본에 경외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후진적인 일본의 정치사회적 지배구조 때문이다. 서구 전문가들은 지난 45년 동안 사실상의 정권교체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특이한 나라 일본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본의 민주화 지수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일본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온갖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담합 등이 만연하여 부패할 대로 부패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일본병의 원인은 특유의 관료주의 사회질서에 있다. 오늘날 일본의 법률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법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 관료의 재량권이 커지다 보니 법에 의한 행정이 아니라 법에 의하지 않은 행정이 팽만해지게 되었고, 이것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관료들은 여당인 자민당과 강하게 유착되었고, 이는 입법과 행정의 분리는 물론이고 어떤 견제기능도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재계 유력인사들은 천문학적 정치자금을 쏟아 부으며 정부와 내각에 영향력을 넓혀감으로써 입지를 보장받았고, 유리한 정책을 마음껏 획득했다. 만성적인 부패에 특정업체 편들기, 이익추구에 눈이 먼 정·관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명하달의 사회구조는 일본 사회를 비판과 합리성이 실종된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갔던 것이다.
이 같은 그들만의 잔치는 1960년대 이후 일본의 성장기에는 강한 추진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합리성이 결여된 조직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본병이 잃어버린 10년을 구체화하고, 다시 잃어버린 20년의 위기구조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일본의 위기를 가중시키며 일본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고용불안도 정경유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버블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심각한 장기불황이 초래되면서 기업 도산이 줄줄이 이어지자 일본 재계는 정부에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1995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늘어나면서 2003년에는 전체 노동자의 30%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1996년 이후 파견근로제가 자리 잡으면서 고용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의 유보금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기업들이 서민의 삶의 질을 담보로 배를 불린 결과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별다른 국제적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한 점도 이 같은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전쟁 범죄에 대한 별 다른 사과 없이 국가를 운용해 왔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은 일본과의 관계 증진을 통한 수혜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위상을 민간부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꺼려왔다. 이는 적극적인 사과와 과거사 조명을 통해 EU의 맹주로 부상한 독일과는 현저히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사를 사과할 수 없는 일본이 이어지는 까닭은 일본 특유의 고인 물 구조와 관련이 깊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것처럼 일본 정치인들도 대를 이어 정계에 몸담아 왔다. 세습 정치인들이 만연하다 보니, 일본사회에서 과거사 청산이란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또한 의원직 세습은 지역 이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세습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 명문가 출신이고 형제나 친인척들이 지역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일본 내에서 부정부패의 고착화가 나타나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자민당 독재를 끝내고 야심차게 출범한 하토야마의 민주당 정권에서도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고질적인 유착구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