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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의 타조

민경훈 지음 | 이콘
모래 속의 타조

민경훈 지음

이콘 / 2009년 9월 / 334쪽 /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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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대공황 이래 유례없는 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불황은 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과 그 붕괴,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다 다시 부푼 부동산 버블과 그 붕괴의 필연적 결과다. 증시와 주택 광풍이 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을 경고했으나 이는 무시됐다. 이번 금융 위기가 터지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째서 아무도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몰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른 것이 아니라 경고를 들을 귀가 없었던 것뿐이다. 어떤 불황도 어떤 호황도 반드시 끝난다. 사상 최악의 불황이던 대공황도 결국은 끝났고 인류는 그후 수십 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번 불황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후에는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호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장기 호황이 방탕함과 부주의, 낭비를 부추겨 불황의 싹을 키우듯이 불황은 검소와 조심, 아낌을 길러 호황의 씨앗을 낳는다. 불황과 호황의 되풀이는 흉년과 풍년의 반복처럼 바뀌지 않는 세계의 원리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숙적 카르타고를 물리친 후 그 폐허 위에서 "언젠가는 로마도 이렇게 되겠지"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잘나갈 때 조심하고 안 풀릴 때 버티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사는 큰 지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간은 현재가 마냥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고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처럼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지 못한다.

버블, 버블



인터넷 마니아의 함정


튤립은 터키말로 터번이란 뜻이다. 터키의 민속의상인 터번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세기 중반 튤립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도 터키를 통해서였다. 유럽인들 중 튤립을 가장 좋아한 민족은 네덜란드인들이다. 17세기 초에는 집안에 제대로 된 튤립 한 송이 없이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할 정도로 튤립 열풍이 불었다. 이와 함께 튤립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하여 가장 비싼 '셈퍼 오거스터스(항상 장엄하다는 뜻)'는 뿌리 하나에 5,500플로린을 호가했다. 당시 황소 한 마리 가격이 100플로린 정도였으니까 튤립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귀족부터 하녀까지 모여 앉으면 튤립 이야기로 날을 지샜고 튤립을 사고팔아 거부가 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튤립 열풍이 끝난 것은 1636년이다. 아무리 비싼 값을 내놔도 날개 돋친 듯 나가던 튤립이 어느 날 갑자기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살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사버렸던 것이다. 튤립이 팔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튤립을 금보다 비싼 값으로 올려놓았던 사람들의 탐욕은 졸지에 가진 것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공포로 바뀌었다. 일확천금을 거머쥐고 떵떵거리던 알부자가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변했다. 네덜란드 경제가 튤립 광풍으로 빚어진 혼란을 극복하고 정상을 되찾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이와 똑같은 일이 100년 후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났다. 아메리카 대륙이 희망의 땅으로 떠오르면서, 프랑스가 갖고 있는 미시시피 일대의 땅을 개발하기 위한 미시시피 주식회사와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을 맡아 하기 위한 남양(South Sea)회사가 프랑스와 영국에 수년 간격으로 세워졌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대륙과 장사를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퍼지면서 이들 두 회사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 미시시피 회사의 창립자인 존 로의 대기실은 그를 한번 만나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며 존 로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후 그의 방으로 실려가 주식 팔기를 애원하는 귀부인까지 나왔다. 이들 두 회사의 투자가들이 건 돈의 99%를 날리고서야 열풍은 끝났다.

마니아가 항상 먼 나라 옛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은 새 세기에 대한 희망에 들떠 있었다. 비행기, 자동차, 라디오, 전화 등 첨단 테크놀로지의 잇단 발명과 대중화로 국민생활에 대혁신이 왔을 뿐 아니라 제1차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세계 1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920년대의 대호황과 주가 폭등이 이같은 낙관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1929년의 증시 대폭락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한때 일본이 전세계를 제패할 것이란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다. 도쿄 땅값이 미국 전체 땅값과 맞먹었고 첨단기업은 전부 일본 소유였으며 하와이가 일본 땅인지 미국 땅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불과 10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금도 일본 주가는 당시 절반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과거 예를 살펴보면 마니아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열풍에 휩싸인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신대륙 개발도, 20세기 초 미국도, 얼마 전 일본 광풍도 모두 당시 상황으로 볼 때는 주식이 그렇게 오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역사적인 가치척도가 아니라 '신시대'에 대한 황홀한 기대가 투자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남들이 손쉽게 떼돈을 버는데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초조함과 누가 뭐래도 이번만은 다르다는 망상이 사람들의 심리를 지배한다.

요즘 한인타운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미국이 인터넷 열풍에 휩싸여 있다. 누가 인터넷 회사를 상장시켜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됐다는 뉴스 아니면 누가 인터넷 도메인 네임을 사재기했다가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는 봉이 김선달 같은 이야기들뿐이다. 2세들 사이에는 힘들게 의사나 변호사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 회사를 차려 일확천금을 벌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1세들 사이에서는 인터넷 주식으로 한탕할 수 없을까 하는 공상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대다수 인터넷 업체들은 상장조차 해보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e토이즈 같은 장난감 전문업체나 밸류 아메리카 같은 온라인 판매업체는 주가가 80~90%나 폭락한 채 언제 문을 닫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아마존, 야후, 아메리카 온라인과 같은 대표 기업도 주가가 이미 수개월 전 최고치보다 30~40%나 하락한 상태다. 인터넷이 장차 인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인터넷 업체가 살아남지는 못한다. 미국에 항상 자동차 회사가 GM, 포드, 크라이슬러 셋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함께 등장했던 수십 개의 나머지 자동차 제조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다. 실리콘 밸리의 인터넷 전문잡지 《레드 헤링》의 창립자인 앤서니 마이클 퍼키스 형제는 최근 『인터넷 버블』이란 책에서 대부분의 인터넷 회사들이 얼마나 엉터리이며 인터넷 창업자들이 어떻게 자기들끼리 주식을 나눠가진 후 가격을 부풀려 일반에 팔아먹는지 등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인터넷 버블이 터질 때 대부분의 닷컴도 투기꾼들의 탐욕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2000.01.31)

대공황의 그림자

플로리다는 예나 지금이나 은퇴자들의 낙원이다. 새하얀 백사장과 새파란 바다, 연중 따뜻한 날씨는 북동부의 매서운 한파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늘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다. 월가의 호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이곳에 별장을 사는 사람도 늘고 그와 함께 땅값도 올랐다. 처음에는 경치 좋고 생활이 편리한 곳의 부동산이 뜨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위치가 해변인지 늪지대인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손을 뗄 때가 됐다'고 판단한 순간 붐은 버스트로 바뀌고 막차를 탄 사람은 알거지가 돼 나왔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계속된 플로리다 부동산 버블의 모습이다. 땅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이때 구입자의 90%는 투기꾼이었다. 1925년 <마이애미 헤럴드>는 미 역사상 최대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투기 바람이 꺼지기 시작한 1926년 이곳을 강타한 허리케인은 확실하게 거품을 터뜨려줬다.

플로리다 부동산의 붐과 버스트는 월가의 축소판이었다. 자연은 허리케인을 통해 버블의 위험성에 관한 뚜렷한 경고를 보냈지만 욕심에 취한 인간들은 이를 듣지 못했다. 1920년대부터 말까지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10배가 올랐다. 이처럼 주가가 한없이 오르자 너도나도 빚을 내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어핑 피셔 예일대 교수 같은 전문가들도 "미국 주가는 영원한 고지에 올라섰다"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1990년대 주식 버블의 원동력이 인터넷 등 하이테크였다면 1920년대 주식 버블의 원인은 자동차였다.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포드 모델T의 등장과 함께 중산층의 필수품이 되면서 철강에서 석유, 도로 등 자동차 관련 산업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월가에 투기 세력이 가세하면서 당시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플로리다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슬슬 발을 뺄 때가 됐다'고 판단한 순간 주식 버블을 터졌다. 1929년 9월 3일 정점에 도달했던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들더니 10월에는 가속적으로 떨어졌다. 10월 23일과 24일 폭락했던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28일에는 13%, 29일에는 15% 폭락했다. 이와 함께 1920년대의 호황은 끝나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대공황은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됐지만 주가 폭락이 대공황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가 돈을 찾으면서 은행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신용경색으로 기업들의 돈줄이 막히면서 연쇄 부도와 함께 대량 실업 사태가 터진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 미국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비즈니스 지도자들과 회의를 하며 미국경제가 근본적으로 튼튼함을 역설했다. 기업 총수들로부터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며 미국 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높이는 스무트 할리 관세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경기가 나쁘고 물가가 내려가는데 임금을 줄이지 못하게 된 기업은 감원하거나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상품을 팔 수 없게 된 외국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무역 장벽을 치는 바람에 미국 기업들의 수출 길은 막히게 됐다. 사정은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취임해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실업자들이 군대로 가고 미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으면서야 경기는 살아났다.

미국은 지금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안이 통과됐는데도 전세계 주가는 폭락하고 신용 경색은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 위기가 진행된 과정은 192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다행인 것은, 현재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가 대공황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란 점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와 GE 등 우량기업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을 대신해 지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이 2조 달러의 자금을 갖고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과연 미국은 대공황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인가? 아니기를 빌 뿐이다.(2008.10.07)

미국 경제의 현주소



달러의 운명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후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주로 사냥을 하거나 산나물을 뜯어먹고 연명했다. 이 단계에서는 그날그날 배를 채우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교환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1만여 년 전 농업을 시작하면서 잉여농산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노동의 전문화가 이뤄지면서 다양한 물건이 만들어지고 이를 교환할 필요가 발생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돈이다. 칼부터 조개껍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이 돈으로 사용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진짜 돈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금과 은, 그중에서도 금이다.

귀하고 아름다우며 변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황금은 '지상의 태양'이라는 상징성까지 겹쳐 어떤 물건보다 보편적인 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이집트 시대에 황금 1온스는 좋은 옷 한 벌을 살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 지금도 황금 1온스(현 시세로 약 900여 달러)면 좋은 양복 한 벌은 살 수 있다. 황금의 가치보존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반면 금이 아닌 정부 발행 화폐의 가치는 예외 없이 시간이 갈수록 하락한다. 아무리 큰 제국도 마찬가지다. 로마 금화와 은화의 가치는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서 순도가 계속 떨어져 결국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 로마 멸망에 일조한다.

지폐는 더 쉽게 가치를 잃는다. 한때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는 세계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지만 말년에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를 남발하여 결국 휴지가 되면서 나라가 망했다. 휴지가 된 지폐 이야기는 옛날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등으로 인한 재정 적자를 마르크화를 찍어내 해결하려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리어카로 마르크화를 실어 날라야 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1980년대 브라질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몇 년마다 0을 몇 자리씩 떼어 새 화폐를 만들어내는 일을 되풀이했다.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19세기 영국 화폐인 '파운드 스털링'은 신용 그 자체였다. '스털링'이라는 말 자체가 순금을 뜻하는 것처럼 대영제국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세계 어디에서나 황금과 똑같은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대공황의 충격으로 금본위제를 폐기하면서 파운드화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국 전성기 때 1파운드면 4~5달러를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달러 40센트 선으로 추락했다.

과거 영국이 걷던 길을 비슷하게 밟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제2차 대전의 승리로 사실상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의 달러화는 지금까지 세계의 기축 통화 노릇을 해왔다. 세상 사람들이 달러를 기축 통화로 인정해주는 한 미국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만큼 무한히 찍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 때 달러는 기축 통화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세계 투자가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달러를 사들이는 통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금융 위기의 본산인 미국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기축 통화 소유국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려운 수술을 감행하기보다는 쉽게 화폐를 찍어 이를 해결하려 하며 결국 이는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미국 재정 적자는 1조 7,000억 달러에 이르며 추가 부양책이 나올 경우 앞으로 그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미국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그렇게 되면 달러도 과거 파운드와 마르크화가 밟았던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파운드화도 대공황 후 반짝 올랐으나 결국 다시 추락하고 말았다. 한때 영국의 채권국이자 세계의 공장이었던 미국은 지금 중국에게 채권국과 세계의 공장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 위안화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마는 것인가.(2009.03.17)

미국 사회의 단면들



모래 속의 타조


<여인의 향기>는 제목과는 달리 눈 먼 퇴역 장교와 고등학생 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동부 명문고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아이들이 교장 차에 못된 짓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본다. 교장은 그에게 범인이 누군지 대라고 문초하고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퇴학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찰리는 친구를 배신하고 살아날 것인지 의리를 지키다 인생을 망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그는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장님을 돌봐달라는 광고를 보고 그에 응한다. 그렇게 만난 퇴역 중령 프랭크는 괴팍한 성질로 사사건건 찰리를 괴롭히지만 함께 뉴욕 여행을 하는 동안 둘 사이 정은 깊어가며 장님 생활에 지쳐 목숨을 끊으려던 프랭크를 간곡한 호소로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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