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과 실책
딘 베이커 지음 | 휴먼앤북스
약탈과 실책
딘 베이커 지음
휴먼앤북스 / 2009년 5월 / 236쪽 / 12,000원
제1장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가지난 십 년간 주식 시장과 주택 시장에서 발생한 버블의 대부분은 1980년대 초부터 선택하기 시작한 정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전의 삼십 년 동안 미국 경제는 강했고 견고한 기반 위에 서 있었다. 예로 1947년에서 1973년까지 미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고,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낮았고, 경제 성장의 혜택은 골고루 분배되었었다. 그런데 1973년 이후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생산성 성장이 둔화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유가의 큰 폭 상승이었고,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의 피해에서 복구된 유럽 및 일본과의 경쟁 심화였다.
1970년대에는 생산성 성장의 혜택이 다소 균등하게 분배되었는데, 1980년대에는 성장의 혜택이 거의 다 소득 수준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소득의 상향 재분배는 대부분 의도적인 정책 변화로 인한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레이건 행정부의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또 1990년대에 체결된 무역 협정들 역시 소득의 상향 재분배에 기여했고, 이민 정책 또한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었고 집행되었다.
그런데 1980년 이후의 소득 상향 재분배는 경제가 전후 시기를 특징짓는 선순환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임금은 꾸준히 오르지 않아 노동자들은 소득으로 더 많은 것을 구입할 수 없었으며,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구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저축을 줄이고 빚을 늘렸다. 한편 경제, 특히 제조업 분야의 국제화 정도가 심화되면서, 미국 내 수요의 증가와 새로운 미국 공장 및 설비에 대한 투자 증대 사이의 관련성이 약화되었다. 왜냐하면 미국 기업들은 해외 생산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이 시기의 정책 변화는 증가하는 생산성, 임금, 소비, 투자의 선순환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고, 미국 경제는 점점 더 생산성 이득과 광범위한 번영보다 훨씬 덜 고결한 무엇인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예로 주요 기관들은 단기 성장을 좇아 리스크가 큰 투기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에 의존했고, 그래서 우리는 버블에 빠졌다.
제2장 클린턴 시대와 주식 버블의 발생버블 경제는 1990년대 중반에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의 폭발적인 성장은 지속할 수 없는 두 가지 버블 - 주식 시장과 과대평가된 달러 - 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처음 2년 동안, 경제 실적이 그저 그랬다고 한다면, 세 번째 해에는 바뀌기 시작했다. 초기 경제둔화 추세는 의도된 정책의 결과였는데, 그린스펀은 1994년 2월부터 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해서, 1995년 3월까지 연방기금금리를 3%에서 6%로 올렸다.
그린스펀이 이렇게 금리를 올린 근거는 물가안정실업률 개념 때문이었다. 즉 실업률이, 당시에 5.6%에서 6.4% 사이라고 생각했던 물가안정실업률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자율을 올린 근거였다. 만약 실업률이 물가안정실업률 아래로 떨어지면, 노동자들은 생산성 성장을 뛰어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고, 기업은 임금 인상분을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전가할 것이며, 이는 노동자들이 미래의 임금 협상에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만들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린스펀은 연방기금 금리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현저하게 정책 기조를 변경했다. 즉 1995년 여름, 경제가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연방기금금리를 낮췄던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이렇게 이자율을 낮추자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1995년의 2사분기부터 1996년의 2사분기까지 성장률이 거의 4%에 이르렀다.
한편 이 시기에 나타난 또 다른 정책 변화는 달러 가치에 관한 것이다. 즉 클린턴 행정부의 낮은 달러 정책은 1995년 1월 로버트 루빈이 재무부 장관이 되었을 때 바뀌었는데, 루빈은 강한 달러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단기에는, 하지만 강한 달러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수입이 늘어나고 수출이 줄어듦에 따라 무역 적자가 증가하게 되고, 막대한 무역 적자는 외국인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양의 달러를 미국에 빌려주지 않는 한, 점점 달러 가치를 낮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러 가치의 하락은 수입품 가격의 상승, 더 높은 물가 수준, 더 낮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단기에 달러를 쏟아 부음으로써 클린턴 행정부는 버블 경제의 생성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정책의 변화는 1990년대의 경제 성장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지만, 더 중요한 다른 발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컴퓨터의 등장이었다. 개인용 컴퓨터의 사용이 가정과 직장에서 늘어났고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발달은 - 대부분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지만 - 신경제(인플레이션 없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한 경제 환경)의 가능성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경솔함은 후에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쳤는데, 다우존스 지수는 1997년에 22.6% 상승했고 1998년에는 16.1% 상승했으며, 나스닥 지수는 1997년에 21.7% 상승했고 1998년에는 40.2%나 상승했다.
그런데 주식 시장의 급등은 경제를 혼란스럽게 했다.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신생 업체들이 순식간에 수십억 달러의 평가를 받으며, 구경제(신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통적인 산업에 기반을 둔 1990년대 이전의 경제 체제를 말함)의 거인들을 작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가의 폭등은 경제에 불균형을 낳았다. 예로 가계, 연금펀드의 매니저, 재단, 다른 투자자들은 당시에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던 주식을 샀으나, 주식 버블의 붕괴로 큰 손실을 입었다. 반면 버블이 지속될 동안 혜택을 입은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과 버블 붕괴 전에 빠져나온 운 좋은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이익을 주었다.
한편 롱텀 캐피탈의 이야기는 버블에 대한 정부 대응을 잘 보여준다.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 펀드'는 그 시기의 가장 성공적인 헤지펀드 중 하나였는데, 이 펀드의 전략은 높은 비율의 차입 자본을 이용한 아비트리지 거래(arbitrage bets, 동일한 상품이 장소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불합리한 가격 차이는 결국 시장 기능에 의해서 없어지게 된다는 기대에 근거한 투자)였다.
예를 들면, 이 펀드는 네덜란드와 미국에 모두 상장되어 있는 석유 회사인 '로열 더치 셀'이 미국에서보다 네덜란드 주식 거래소에서 더 비싸게 거래된다는 사실에서 아비트리지 기회를 찾았다. 즉 네덜란드 시장에서는 '로열 더치 셀'의 주식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하에 투자를 했고, 미국 시장에서는 '로열 더치 셀'의 주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여 주식을 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러시아의 금융 위기로 인해 '로열 더치 셀' 주식의 네덜란드와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이 계속해서 서로 멀어졌고, '롱텀 캐피탈'은 순식간에 파산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린스펀이 개입했다. 왜냐하면 '롱텀 캐피탈'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즉각 매각하게 되면, 이어지는 공황매도로 인해 특정 자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악순환이 유발되고, 이것은 다시 주요 은행들에게 매우 큰 손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요 채권자들에게 새로운 자본을 회사로 투입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린스펀의 개입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낳았다. 첫째, 이 사건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자산 가격의 하락에 대해 염려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둘째, 이 개입으로 투자자들은 그린스펀이 그런 매도 사태를 막기 위해 주요 은행들의 행위를 조정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더 큰 리스크도 감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3장 주식 버블의 붕괴신경제는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요구했는데, 대부분의 신생기업들이 사용한 주요 회계 지표는 EBITDA(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였다. 그래서 시장은 EBITDA의 분기 발표에 초점을 맞췄지만, EBITDA는 명확하게 정의된 회계 개념이 아니었고, 회사들은 산출방법을 조정할 수 있는 상당한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온라인'은 온라인 부동산 회사인 '홈스토아닷컴'과 음모를 꾸며 복잡한 리베이트 수수 과정을 통해 '아메리카 온라인'이 마치 성장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도록 매출을 크게 계상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 온라인'의 수상한 거래는 새로운 경제의 슈퍼스타였던 '엔론'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엔론'은, 수십억 달러의 빚을 자회사에 숨기고, 자신의 장부에는 이익만 나타나게 했는데, 그들에게는 '아서 앤더슨' 회계 법인이라는 자발적인 공범도 있었다. 2001년 12월 '엔론'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최고경영자는 기소되었으며, '아서 앤더슨'도 무너졌다. 그리고 '엔론'의 사기 행각이 2001년에 알려지면서 이상 과열의 시대는 마감하게 되었다.
회계 스캔들이 주식 버블의 부차적인 줄거리였다면, 핵심 문제는 방향이 잘못된 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치솟는 주가는 첨단 기술 기업가들이 자본을 모으기 쉽게 해주었지만, 이러한 많은 기업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진지한 전망이 없었다. 반면,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재정비할 자본을 얻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그래서 국제 시장에서 더 효과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아가 주식 버블은 제조업체에서 자본을 빼내간 것뿐만 아니라, 달러를 더 팽창시킴으로써 제조업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다. 수천억 달러가 나스닥의 상승세에 합류하고 싶었던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유입되었는데, 이 막대한 유입은 1990년대 말의 고(高)달러를 지지해 주었고, 결국 높은 달러 가치는 미국 제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한편 주식 시장 버블의 붕괴로 명목 투자는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50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경기 침체가 투자 감소로 인한 것일 때는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더 힘들다. 왜냐하면 이자율을 대폭 낮춰도 투자에 아주 작은 영향만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를 2000년 12월 6.5%에서 2001년 여름 3.7%로 낮추었고, 2001년 9월 테러 이후에는 연말까지 1.75%로 금리를 더 낮추는 것으로 대응했다.
투자의 급격한 감소는 연방 정부의 효과적인 조치를 필요로 했는데, 부시 대통령은 2001년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세금 삭감을 약속했고, 부시의 세금 삭감은 2001년과 2002년에 경기를 부양시켰지만, 아마도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쉬웠을 것이다. 즉 만약 의회가 기반시설 계획, 교육, 청정에너지 또는 에너지 절약에 동일한 금액을 쏟아 부었더라면, 효과는 더 크고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더 효과적인 세금 삭감 방식을 고안하는 것 또한 쉬웠을 것이다. 즉 만약 소득 분포의 중간층 또는 하위층의 납세자에게 상위층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더라면, 세금 삭감은 더욱더 유익했을 것이다.
당시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불균형은 2001년 거의 3,700억 달러에 육박하면서 GDP의 3.6%에 달하게 된 큰 무역 적자였다. 당시의 올바른 정책은 무역 적자를 손쓸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시키기 위해 달러 가치를 낮추는 것 - 예를 들면 국제 통화 시장에서 달러를 파는 것 -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금 증가가 얼마나 심각하게 필요한지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세금 증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낮은 달러를 요구하지 않았고,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이 방안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미국은 다음 금융 버블을 향해 질주했다.
제4장 주택 버블의 시작주택 버블의 경우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떤 지역의 주택 소유자들이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의 주택 가치가 두 배, 혹은 세 배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주택은 고도로 레버리지 - 구매자들은 보통 주택 가격의 작은 부분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빌린다 - 되기 때문에 상승하는 시장에서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 큰 부자가 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예로 20만 달러짜리 주택을 현금 1만 달러로 사고 나서 주택 가격이 두 배 오른 주택 소유자의 경우, 2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매년 가격이 오르면서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은 주택 가격의 빠른 상승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현재 40만 달러짜리 집이 가까운 미래에 50만 달러에 팔릴 것 같다면, 40만 달러라는 가격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상승하는 주택 가격의 예상가는 구매자 스스로 만들어 간다. 결국, 이와 같은 자발적인 과정이 주택 가격을 오르게 했다.
주식 시장의 붕괴는 주택 버블을 두 가지 방법으로 자극했다. 먼저 주가 폭락으로 덴 투자자들에 의한 단순한 반응이 있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주식 시장의 큰 변동성을 경계하게 되었고, 투자자들은 서로에게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집에서 살 수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두 번째 방법은 간접적이었는데, 주가 폭락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자율을 거의 50년 동안 제일 낮은 수준으로 낮췄고, 이는 이미 심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던 주택 시장의 가격 상승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택 가격을 상승시킨 또 다른 요인은 덜 부유한 가구도 주택을 소유하도록 만든 여건이었다. 먼저 정부는 담보대출 이자에 대한 세금 공제와 주택에서 얻는 자본 소득의 세금 면제 등 여러 정책을 통해 오랫동안 주택 소유를 장려해 왔다. 그리고 주택 소유를 촉진하기 위한 지원금 중에는 저소득층 가구가 집을 구입할 때 자기 부담금을 지원해주는 부시 대통령의 아메리칸 드림 펀드가 있었는데, 이에 부시 대통령의 독려로 사기업이 참여했다. 즉 정부가 설립한 대규모 모기지 업계의 거인인 '페니매이'와 '프레디맥'을 포함한 금융 기관들은 주택저당증권에 포함되어 있는 수천 달러의 서브프라임과 알트-A 모기지를 사들이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버블을 촉진했다.
주택 가격의 상승은 더 많은 소비로 이어졌고, 2001년의 경기 침체와 뒤이은 불경기에서 경기를 부양시켰다. 하지만 경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에 올라 있지 않았다. 숙취를 해장술로 해소하는 알코올중독자처럼, 미국인들은 주택 버블을 주식 버블의 붕괴 여파에서 경제를 회복하는 데 이용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이 좋지 않게 끝날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제5장 최종 붕괴주택 가격이 소득이나 인구 성장과 같은 기본 계수를 초월해서 성장하자, 금융계는 성장을 계속 유지하려고 보다 혁신적인 금융상품들을 만들어냈는데, 이 중에는 비표준 모기지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주택담보대출의 거의 대다수는 고정 금리를 채택했다. 하지만 주택 버블 시기 동안에 변동금리담보대출 상품 종류와 수가 한층 늘어났는데, 변동금리담보대출은 고정금리담보대출과 같은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또 상당한 수준의 소득과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나 중간 등급의 신용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알트-A 모기지 영역에서도 붐이 일어났는데, 이 대출 중 많은 수는 투자 부동산의 매입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대출 가운데 많은 것이 소위 거짓말쟁이 대출(liar loan)이었다. 즉 대출을 받는 사람이 대출자의 자격을 기재할 때 허위 사실을 기재했으며, 이런 일은 흔히 모기지 담당자의 권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