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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마켓(BEAR MARKET)

러셀 내피어 지음 | 예문
베어마켓(BEAR MARKET)

러셀 내피어 지음

예문 / 2009년 7월 / 502쪽 / 25,000원



1장 1921년 8월



1921년 8월까지의 시장


미국 주식시장은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후 급락세로 돌아서 1921년 8월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22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침체장을 맞이하였다. 당시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요인은 1914년 연방준비제도(FRB)의 도입이다. 투자자들이 FRB 도입으로 통화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물가 상승세는 전쟁이 끝난 후에 금본위제 때문에 하락세로 바뀐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칙이었다.

하지만 전후 FRB가 정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탄력적 통화 공급을 하면서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1914~1919년 사이 FRB가 은행에 제공한 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나자 투자자들은 큰 폭의 탄력적인 통화 공급도 가능하리라 믿게 되었다. 이 같은 투자자들의 오판은 1919년 강세장 파티에 뒤이어 1920~1921년 침체장의 원인이 되었다. 통화의 탄력적 공급에는 FRB의 지급준비율 유지 비율이라는 법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19년 들어 지급준비율이 법적 한계까지 하락하자 FRB는 1919년 11월 재할인율을 인상하는 긴축조치를 단행하였고, 곧이어 주식시장에 침체장이 닥쳤다.

1921년 당시 NYSE에 상장한 기업은 총 382개였다. 핵심 산업은 철도, 철강, 석유 등이었다. 다우존스지수는 1921년 8월 24일 63.9로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1899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1899~1920년 동안 미국의 명목 GDP는 383%가 늘었고, 실질 GDP는 88%나 성장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안 주식 투자자들은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기업의 이익 증가율이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 주가가 정체된 또 다른 이유는 주식 가치에 대한 평가의 하락에서 찾을 수 있다. 1922~1926년 평균 기업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시장의 PER은 1921년 7월까지 7배로 떨어졌다. 한편으로 국채가 1915년 11억 달러에서 1921년 240억 달러로 늘어난 것도 주식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자금의 양을 줄이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주식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주식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은 "모든 소식이 나빠질 때 주식을 사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조언을 따랐다면 1921년 바닥에서 주식을 사지 못했을 것이다. 1921년 여름 WSJ(월스트리트저널)에는 경기위축과 주가하락이 함께 끝나가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실렸기 때문이다. 1921년의 사례는 투자 격언과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증시가 극도로 저평가되었을 때는 기업 실적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경기가 회복되는 징후를 보여도 투자자들이 이를 무시하고 주식 매도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921년 여름 낙관론자들이 경기 사이클의 바닥과 침체장의 종말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이들이 반복적으로 인용한 징조는 가격이 점점 안정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격 안정세를 경기 바닥의 신호로 믿었던 전문가들은 가격이 내려가자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는 점을 근거로 경기 바닥을 확신한 것이다.

1921년 시장의 구조

주식시장은 1921년에 기관 투자자들이 통상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곳이 아니었다. 주식은 투기적인 성향이 강한 곳으로 여겨졌고 기관투자자들은 주식보다 채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NYSE에 상장된 기업은 총 382개였다. 당시 핵심 산업은 철도, 철강, 석유였고, 날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던 신성장 산업은 자동차였다. 이외에 고무 및 담배 산업이 성장세를 보였다.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은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훗날 크게 성장한 질레트, 필립 모리스 등이 당시 길거리에서 판매되었다.

침체장 바닥에서: 1921년 여름

주식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밸류에이션이라고 하는데, 큰 침체장에서는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큰 폭으로 낮아진다.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는 주된 이유는 침체장에 앞서, 주가가 경제성장세만큼, 또 기업의 이익 증가세만큼 오르지 못하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모든 침체장의 바닥에서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졌고, 침체장이 시작되기 전에도 밸류에이션이 높았다.

다우존스 지수는 1921년 8월 24일 63.9로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1899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다우존스 지수는 20년간 박스권 안에서 등락을 거듭한 것이다. 이 같은 횡보 장세는 같은 기간 미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뚜렷이 대비된다. 동 기간 중 미국의 명목 GDP는 383%가 늘었고, 실질 GDP는 88%가 성장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미국 기업들의 이익은 전반적인 경제 성장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그 결과 미국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안 주식 투자자들은 이에 걸맞는 수익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모든 소식이 나빠질 때 주식을 사라"는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면 1921년 바닥에서 주식을 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번창하는 20년대의 대세 상승장을 놓쳤을 것이다. 1921년 여름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경기 위축과 주가하락이 함께 끝나가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실렸다. 기업가 및 정치가들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조정과정이 끝났음을 단언했다. 1921년의 사례는 유명한 투자 격언과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증시가 극도로 저평가되었을 때에는 기업 실적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경기가 회복되는 신호가 보여도 투자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주식 매도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1921년 여름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 놓았지만 그 가운데 가격 추세의 변화에 주목했던 사람들이 침체장이 끝났다는 가장 정확한 예측을 내놓았다. 당시 가격안정세를 경기 바닥의 신호로 믿었던 전문가들은 가격이 내려가자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는 점을 근거로 경기 바닥을 확신했다. 당시 금본위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안정성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우 합당해 보인다.

1921년의 낙관론자들은 주식 시장의 반등을 시사하는 주요 기술적 요인들과 가치에 비해 너무 저렴한 주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장의 이익 전망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주식시장은 1921년 8월에 바닥을 쳤지만 기업 이익은 이때부터 1921년 12월 최저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37%가 감소했다. 기업의 이익이 회복되는 시기는 주가보다 상당히 늦게 찾아온 것이다.

투자자들은 당시 시장의 전반적인 움직임도 면밀히 관찰했다. 거래량이 특히 적은 가운데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낙관적인 신호로 여겨졌다. 이는 투자자들의 전적인 항복 선언이 있어야, 즉 거래량이 급증하며 증시가 마지막 폭락세를 연출해야 침체장이 끝난다는 현대 주식시장의 격언과 상반된 것이다. 1921년 당시 마지막 하락은 거래량이 극히 부진한 가운데 일어났다. 아마도 거래량이 이처럼 급감한 것은 주식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주식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하면 앞으로는 주식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된다.

2장 1932년 7월



1932년 7월까지의 시장


1929~1932년의 침체장은 20세기 여타 3번의 큰 침체장과는 다른 특징들을 보여준다. 1921~24년까지의 호화장 기간은 기업들의 이익과 주가에 대한 가치평가가 침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기간이라 정의할 수 있다. 당시 호황장을 분석해보면 많은 원인을 찾아낼 수 있지만 모든 중요한 호황장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2가지 핵심적인 현상, 대대적인 기술 혁신과 대출의 용이성이 1920년대 호황장에서 매우 뚜렷했다. 특히 미국 전기산업의 급성장은 호황장을 촉진하는 3가지 핵심요인, 즉 생산성 향상, 물가상승률 억제,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 급증 효과를 제공했다.

기술적 진전이 미국 전체에 번영을 가져올 때 FRB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 FRB는 금본위제의 원래 작용을 해치지 않으면서 탄력적으로 통화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예외적인 환경이 있다고 믿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1920년대에 전반적으로 통화정책이 과도하게 완화되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1920년대 후반기 투기 활동의 본거지는 월스트리트였다. 증시가 한창 상승세를 보이며 강세장이 무르익고 있었던 1925년 FRB는 너무 많은 대출이 투기적인 목적으로 월스트리트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FRB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FRB는 증권과 관련된 대출이 과도하게 많은 은행에 대해서는 어음을 재할인해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1928~1929년 FRB가 취한 금리 인상 정책이 월스트리트의 투기 열풍을 끝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투기 활동의 핵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경제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증시는 1929년 9월 3일 고점에서부터 11월 13일까지 48% 하락했다. 주가하락이 이례적으로 빠르긴 했지만 반등 역시 이례적으로 빨랐다. 1930년 4월 17일까지 증시는 낙폭의 52%를 회복하면서 1929년 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때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너무 불운했다. 이들은 다우존스지수가 다시 고꾸라지며 1932년 7월 다시 바닥을 치기까지 무려 86%가 폭락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이때의 침체장과 다른 침체장들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은 은행 시스템의 붕괴를 들 수 있다. 은행 시스템 붕괴에 이은 대규모 인출 사태가 국가 통화체계에 미친 엄청난 타격과 함께,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연방준비제도의 무대책이 결합되면서 1930년대의 단순한 경기침체는 1931~32년의 대공황으로 악화되어 갔다.

투기 열풍이 끝난 후 증시를 강타한 마지막 급락의 원인은 미국에서 금 유출이 재개된 데 있다. 1932년 3~7월 사이 미국의 금 보유액은 12%가 줄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경기침체 타개를 위한 정부 지출 확대를 목표로 한 많은 법안들이 의회에 쌓이고 있기 때문에 금이 빠져나간다고 보았다. 재정적자 급증 가능성이 높아지자 투자자들이 미국의 금본위제가 위험에 처했다고 믿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FRB가 공개시장에서 대규모로 국채를 매입하자 외국이 투자자들이 겁을 먹은 것이 금 유출의 더 큰 이유였다. 투자자들은 FRB의 조치가 적정 통화량이 아니라 리플레이션(통화 재팽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금본위제를 시행하고 있던 외국 중앙은행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에서 자산을 빼가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에서는 달러화가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았다. FRB의 뒤늦은 리플레이션 정책이 월스트리트의 마지막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달러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기악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침체장도 지속되었다. 결국 다우존스지수는 1929년 10월 대폭락과 1930년 10월 제1차 은행위기, 1931년 제2차 은행위기, 그리고 마지막 1932년 금 유출로 4차례 폭락을 겪은 후에야 간신히 바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1932년 시장의 구조

많은 사람들이 1932년 증시는 매우 거래가 부진했고 투자자들의 극심한 외면을 당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1932년 NYSE에 상장된 총 주식수의 32%가 거래되었으며, 상장된 주식의 종류도 1921년에 비해 2배나 많았다. 다우존스지수는 1929년 9월 고점 대비 89% 추락했지만 상장된 주식의 총 시가총액은 1924년 말에 비해 단지 40% 감소했을 뿐이다. 1929년 고점 때 시가 총액 비중이 가장 큰 3대 산업은 철도, 석유, 화학 업종이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가계와 기업에 전기 보급이 확산되면서 전기기기 제조업체가 호황을 누렸고 전력 회사의 주식도 급등했다. 하지만 1929~32년 침체장에서 모든 산업에 걸쳐 주가가 하락했다. 자동차는 88%, 석유는 74%, 철강은 92%나 하락했다. 이때는 공공설비나 식음료 같은 방어적 성격의 산업조차 투자자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이는 모든 산업의 주가가 적정 가치 이상 과도하게 올라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심각한 경기침체가 전력과 가공식품 같은 기본적인 산업마저 주가를 큰 폭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침체장 바닥에서: 1932년 여름

1932년은 20세기 나타났던 다른 큰 침체장 바닥과 여러 측면에서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고평가 상태에서 저평가 상태로 내려갈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다른 침체장은 밸류에이션이 느리게 떨어지다 결정적인 급락세를 맞았지만 1932년 침체장은 주가가 고평가에서 저평가로 떨어지는 데 채 3년이 안 걸렸다. 1932년의 침체장은 밸류에이션이 거의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기업의 이익이 경기 위축 정도를 뛰어넘을 정도로 급감하자 주가가 급락하면서 나타난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과거 신문 기사를 읽다보면 모든 뉴스가 다 부정적이 되어야만 비로소 시장이 바닥을 친다는 증시 격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1932년 당시 암울했을 때조차 긍정적인 뉴스들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1921년처럼 1932년 침체장 바닥도 악재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기보다는 투자자들이 호재가 나와도 별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1932년 침체장에서도 투자자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주식시장이 바닥에 근접했다는 가장 결정적인 신호는 상품가격과 생산자물가의 안정이라는 점이다. 1921년처럼 1932년에도 1차 상품 중심으로 가격이 안정되더니 이러한 추세가 점차 확산되었고 마침내 생산자 물가 지수가 안정되었다. 1932년 7월 저점 밑으로 확실하게 떨어졌던 생산자 물가는 1933년 2월 이후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였고, 이와 동시에 주식 시장도 1937년까지 가장 급격한 주가 상승의 시기를 맞았다.

투자자들은 침체장이 언제 끝날지 가늠할 때 FRB의 통화정책과 시중 유동성의 개선 정도에서 단서를 얻으려 한다. 하지만 FRB가 주식시장이 바닥을 치기 직전인 1932년 4월부터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주식시장을 전망하는 근거로 유동성 완화에 거는 기대가 매우 부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당시 경제 상황이 통화 분석에 모든 답이 있다고 기대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의 사용 자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3장 1946년 6월



1946년 6월까지의 시장


1932년 7월 시작된 위대한 강세장은 1937년 3월까지 이어졌다. 1932~1937년의 강세장은 1933년 이후 지속된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개선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금융 시스템이 안정되면서 주식에 대한 밸류에이션이 평균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경제와 기업이익이 개선되면서 증시는 강한 상승 탄력을 받게 되었다. 실질 국민 순생산은 연간 12%씩 성장했고 기업의 이익증가세는 명목 GDP 성장률의 3배에 달했다. 물가상승률은 낮게 유지되었고 금리는 하락 기조를 이어갔다. 이런 식으로 이익 증가, 배당금 확대, 금리 하락세라는 주식에 강력하고 긍정적인 조합이 마련되었다.

경기회복이 1937년 갑자기 끝나버린 이유가 재정적자 때문인지 아니면 통화정책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FRB가 1936년 8월 은행의 지불준비금을 높이면서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이후 산업생산은 1937년 경기 고점에서 1938년 바닥 때까지 1/3이 급감했고, 기업 이익은 50% 줄었다. 1937년 3월부터 12개월간 다우존스지수는 49%가 급락하여 1933년 중반 수준으로 돌아갔다. 경기는 1938년 6월부터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증시하락세는 잦아들지 않았다. 1941년 12월 까지 기업 실적은 두 배 늘었지만 다우존스지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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