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커스(THE BANKERS)
마틴 메이어 지음 | 지식노마드
뱅커스(THE BANKERS)
마틴 메이어 지음
지식노마드 / 2009년 5월 / 780쪽 / 30,000원
1부 돈의 정치 경제학
돈은 무엇인가돈은 교환수단이자 가치척도며 가치의 저장 수단이다. 첫째, 교환수단. 돈은 자기 노동의 결실을 타인 노동의 결실인 재화 및 용역과 교환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통화이다. 돈이 없다면 분업화도 불가능하고, 모든 경제는 사회 지도자가 모든 구성원의 역할을 지시하는 중앙 통제 경제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 가치척도. 돈은 사람들이 팔고 사는 물건의 가치 척도이다. 재화와 용역마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시장은 가격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정보를 활용해서 최대 보상을 받는 쪽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수리 경제학자 오거스틴 쿠르노는 판매 계약이 대중화된 것은 가치척도의 안정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판매 계약을 물물교환 계약과 구분 짓는 핵심은 화폐로 사용되는 금속이 일반적인 거래의 유효 기간 동안 절대 가치가 변하지 않는 데 있다."
셋째, 가치 저장 수단. 돈이 있기에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다. 이 저축금은 미래의 생산 수단에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그래샴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에 따르면 사회에서 유통되는 화폐가 두 가지인 경우 그중 하나만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될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화폐는 거래에 사용되지만, 가치가 높은 화폐는 사람들의 옷장 안에서 잠자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누구라도 당국의 감독 없이 은행을 설립할 수 있었고 모든 은행은 자사의 은행권을 발행했다. 은행권은 귀금속으로 주조된 정금 화폐로 담보되며, 은행권 보유 고객이 창구에서 은행권을 제시하면 그 사람에게 정금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급속도로 평가 절하되는 은행권을 발행하는 불량 은행은 은행권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1,600개 은행이 발행한 7천여 종의 은행권이 있었지만 그중 대다수는 쓸모가 없었다고 한다.
화폐 공급량 증가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18세기 중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인지한 사실이다. 그는 "어떤 국가든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화폐가 유입되기 시작하면 노동 및 산업 성장주기 등 모든 것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증가한 양의 금과 은이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오로지 화폐 유입 시점부터 물가 상승 시점 사이의 시기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의 양이 늘어나면 화폐 환상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더 풍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소비가 촉진된다. 그러나 늘어난 수요만큼 재화 공급도 늘어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물가만 상승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데이비드 흄 이후 200년이 지난 1967년 힉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적응하고 물가 상승을 예측하게 되면 이미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 일어난 것뿐이므로 더 이상 경제에 자극제가 되지 못한다."
현대 경제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는 위험부담이 따르기도 하지만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1970년대 미국은 고용은 늘지 않으면서 물가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휩싸였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의 회복에 필요한 조건을 조성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인플레이션 압력이었다. 1970년에는 내일이면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빌려서 소비할 명분이 생겼고 정부예산이라는 자동안정제는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정해졌으며, 결국 생산 시설의 고용 상황이 완전히 회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돈은 어떤 일을 하는가?황제들이 동전을 주조하던 시절 유통되는 화폐의 액수는 제조에 따른 약간의 수수료를 제외하고 정부가 발행한 총액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돈을 쌓아놓는 구두쇠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정확히 얼마나 유통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화폐가 부족하면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고 다른 것들의 가치가 하락하며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이유로 구두쇠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그들이 감춰둔 동전 일부의 빈자리는 위조 화폐가 메웠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금화가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동전을 깨물어 보기도 했다.
15세기 이후 화폐는 은행이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은행들은 금화나 국채와 같은 비축 자산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했고, 신용장이나 어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대출 과정에서 통화를 만들어 냈다. 은행권 발행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었는데 영국이나 프랑스 같이 정부가 승인한 단일 기관이 화폐 발행 사업을 독점하는 것이 보편적인 통제 장치였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주 정부가 은행 설립 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은행들은 부정행위에 대한 대책으로 할인가에만 다른 은행의 은행권을 받았다. 따라서 발행 은행이 그 화폐를 교환해 줄 자원(발행 액수만큼의 정금)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타행은행권 취급은 더없이 좋은 사업이었다.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거래에 사용하는 돈, 즉 유통 중인 통화와 은행의 요구불 예금을 합쳐 M-1이라고 한다. 1960년대 미국의 금융 전문가들은 은행 잔고를 분석함으로써 향후 6개월 뒤 경제 활동 수준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후 이자를 주는 요구불 예금 상품이 등장하면서 M-1은 경제 활동 예언자로서의 마법을 상실했다. 1995년 워싱턴 회동에서 폴 볼커 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은 당시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에게 물었다. "M-1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러자 그린스펀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예전에는 제법 좋은 소총 이름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M-1에 온갖 종류의 저축성 예금이 포함되고 MMF까지 추가된 M-2가 등장했다. 하지만 M-2는 경기 전망 역할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으며 M-2의 변동과 실물 경제 성장 간의 시차는 빈번하게 조정되었다. 이후 미국인들이 미국 은행 해외 지점에 유로 달러로 예치하는 예금 계좌와 다양한 금융기관의 계정으로 구성된 M-3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어떤 통화량 기준도 연방준비위원회가 바라는 것처럼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는 일부 통화량 목표 설정이 미국, 영국, 독일에서 일반적인 정책이 되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매주 목요일 오후 시장이 마감된 후 통화량을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의 연방준비위원회 전문가들은 통화량이 발표되기 전날에 수치를 예측하고 발표된 직후 그 수치가 정책 변화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그런데 갈수록 그 수치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은행이 통화량 분석에 연방준비위원회 보다 더 열심이었다. 이에 런던정경대 교수 찰스 굿하트는 "중앙은행이 감시하는 모든 통화량은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내용으로 굿하트의 법칙을 제시했다. 2부 은행 100년의 발자취
은행은 진화하고 있다내가 정의한 은행 업무에 대한 명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은행은 사회 공동체의 예금 잔고를 모아서 이자를 받고 영리 목적의 기업에 대출해 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의 정의에 맞는 은행들은 1980년 이후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은행들이 먼저 대출 상품을 만든 다음 돈을 찾아 나선다. 은행 자금의 출처는 더 이상 고객들의 예금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61년 뉴욕 내셔널시티 뱅크는 DCA(Discount Corporation of America)와 계약을 맺고 은행이 자금 조달을 위해 판매하는 대규모 양도성 예금증서 시장을 조성했다. 이후 은행의 대출 및 투자 한도는 은행에 유입된 예금 액수로 제한되지 않았다.
오늘날 모든 상업은행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저축 계좌 상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1996년 은행업계의 자원 중에서 85%가 예금보험 대상 계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은행 자산을 조달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은행업에 대한 나의 정의는 빛을 잃었다. 특히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은 은행에 생명수나 다름이 없다. 시티코프는 연간 20억 달러 이익을 내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신용카드 사업에서 나온다. 요컨대 은행은 능력껏 자금을 확보하여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수익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한다. 은행은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에 판매할 상품을 개발하고 그 판매 자금을 투자하기 위해 또 다른 상품을 개발한다. 그 과정에서 은행은 보험회사, 증권회사, 뮤추얼 펀드, 모기지 회사 등 다른 금융서비스 기관과 직접적으로 경쟁한다. 은행은 더 이상 고객의 거래 잔고를 모아서 이자를 받고 기업에 대출해주는 기업이 아니다.
1930년대 이전만 해도 은행 대출 책임자의 전문지식은 지역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은행은 담당 지역에서 대출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시카고 퍼스트내셔널뱅크는 대출 책임자가 전문가 못지않게 대상 산업 업계에 정통했던 최초의 은행이었다. 그 뒤를 이어 체이스맨하탄 은행이 정유회사와 보험 산업을 중심으로 전문지식을 확보했고, 시티 은행도 1954년 산업 전문가 체제를 구축했다. 특정 산업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은행들은 차용인의 판매재고를 토대로 대출금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을 탈피하여 대출 자금으로 구입한 장비 및 자재의 지속적인 가동 전망을 토대로 현금흐름을 판단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무담보 대출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차별대우가 되는 특징을 보여 왔다. 대출 책임자는 지역, 문화, 인종, 종교, 교육적 측면에서 공감대가 있는 같은 도시의 주민에게 대출해주는 게 관례이고 따라서 은행은 언어, 피부색, 성별이 같은 집단의 구성원에게 대출해주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로 상호를 바꾼 이탈리아 은행은 인종차별로 가장 유명한 대출기관이며 의회가 특정 인종을 우대하는 행위를 금한 법안을 가결한 이후에도 암암리에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재미 한국인 사회는 미국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기피하고 모국의 계열회사로부터 자금을 빌리기 때문에 미국 은행 감사관의 감사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또한 중국 이민 사회를 고객으로 하는 중국계 미국 은행의 자금 출처가 대만 은행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부자로서의 은행1980년대 중반 나는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후발 개도국을 상대로 한 자금 대출의 문제점에 대해 증언한 적이 있다. 나는 자국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사회적 기능을 무시한 채 국채 및 파생 상품에 대한 투기성 투자와 라틴 아메리카를 상대로 대출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은행의 작태를 비판했다. 그러자 케미칼 뱅크 사장 톰 존슨이 나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보시오. 요즘 세상에 순수한 대출사업이 어디 있단 말이오?"
과거 은행은 다른 대부자들이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정보를 일상 업무를 통해 확보했기 때문에 대출해줄 돈을 가진 자와 돈을 빌려야 하는 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하반기 들어 이런 장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제 은행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은행가는 적은 비용만으로도 책상에 앉아 대출 업무에 필요한 금융시장 정보와 모든 기업의 신용도에 관한 통계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부터 은행의 대출 감소가 시작되었다. 자동차 업체들이 딜러의 재고 확보와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 자금 융자를 위한 자금을 비금융권이나 여유 자금을 보유한 기업에서 조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중개인 역할을 하는 은행을 거치지 않으므로 비용 절감 효과도 크고 아울러 융자 조건을 조정하다 보면 새로운 마케팅 기회도 발생하는 등 부수적인 장점이 있었다.
마이크 밀켄은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었던 중소기업 시장에서 자금을 조성하는 새로운 방법(정크본드)을 찾아낸 사람이다. 그는 "정크본드(고위험 고수익채권)는 시장의 검증을 받기 때문에 은행의 장기할부금융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채권에 대한 권리를 갖는 대신 무담보로 자금을 제공하는 밀켄식 거래(메자닌 금융)는 채권이 시장에서 팔릴 때까지의 리스크를 은행이 떠안아야 하는 문제가 부각되었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시티 은행과 케미컬 뱅크가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을 LBO(피인수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해 회사를 인수하는 금융기법) 방식으로 매수하는데 실패한 1989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그리고 메자닌 금융은 1992년 은행제도의 위기를 초래한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것은 대형은행들이 다른 은행뿐 아니라 연기금, 보험회사, 뮤추얼 펀드까지 끌어들인 대규모 신디케이션 론이었다. 1993년 신종 기업 융자로는 세계 신기록에 해당하는 950억 달러를 조성했던 신디케이션 론의 대가 짐 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팔 수 있지만, 좋은 거래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까지 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는 은행이 대규모 사업에 투자할 방법을 찾는데 앞장섰다." 메릴린치의 댄 나폴리는 신디케이션 론을 두고 "거액의 차입 자본을 이용한 대출이 증권보다 더 유동성이 좋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질서를 향한 합종연횡199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은행의 인수합병 바람은 예금 사업 중심 은행과 대출 사업 중심 은행이 결합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결합의 적합성이나 지리적 확장을 고려한 합병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지점 설치 규제가 완화된 1988~1993년에는 인접한 주의 은행 지주회사끼리 이뤄진 합병이 75%를 차지했다. 그런 합병은 단지 포화상태에 이른 지점 수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웰스파고의 크로커 은행 인수가 그런 유형의 합병 사례이다. 웰스 파고는 합병직후 정리 사업에 착수하여 75%의 지점을 폐쇄하고 직원 중 75%를 감원했다. 그러나 예금 고객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한 덕분에 원하는 모든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1995년에도 합병은 계속되었다. 보스턴 은행은 베이뱅크스의 CEO에게 3년간 합병 은행의 CEO 임기를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20억 달러에 베이뱅크스를 매입했다. 퍼스트 시카고는 디트로이트의 내셔널 뱅크와 합병했다. 내셔널 뱅크는 방어적 재정관리가 돋보였던 반면, 퍼스트 시카고는 그렇지 못했던 점이 합병의 주된 이유였다. 같은 해 말 케미칼뱅크와 체이스맨하탄 뱅크는 미국 최대 은행으로 거듭나는 초대형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종류의 합병이 지속된 결과 1990~1995년 기간 중 은행업 종사자 수는 156만 명에서 140만 명 이하로 떨어졌고 1980년대 이미 12,200개에서 9,200개로 줄어들었던 은행이 7,500개 이하로 줄었다.
1980년대 이전 경제학자들은 은행업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어 규모가 큰 은행일수록 업무 처리 원가가 줄어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1982년 조지 벤스톤은 은행 영업소당 1천만 달러에서 2천 5백만 달러 사이의 수준에서만 규모의 경제가 작용할 뿐 그 이상의 수준에서는 규모의 비경제를 겪는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은행은 자산 규모 1~2억 달러 정도에서 규모의 경제가 소멸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등장했다. 1980년대 은행 합병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자 통화감독국은 인수를 추진한 은행이 피인수 은행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영 향상 효과는 규모의 경제로 인한 영향이기보다 능력이 떨어졌던 경영진이 우수한 경영진으로 교체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합병 은행 소유주들은 인수한 은행의 총자산이 합병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요컨대 대형 은행들은 합병이 이루어졌을 때 기존의 두 은행 규모를 합친 것보다 작아진다. 또한 모든 합병 은행들은 은행 본래의 영역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에드 퍼래쉬는 "300개의 대형은행 중에서 중개 사업에서 40%, 증권화ㆍ금융공학 같은 자본시장에서 20%, 소비자 금융ㆍ투자관리ㆍ모기지 금융ㆍ신용카드 처리사업 같은 수수료 사업에서 40%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은행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대형은행들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사업에서 수익을 거두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업무를 통해 수수료를 버는 한편 부유한 고객들의 모든 금융업무를 일대일로 관리해주는 PB(Private Banking)를 키우고 싶어 한다. 이러한 금융자문은 전문 분야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은행의 전공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부유한 고객과 은행의 관계 확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