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책에게 길을 묻다
매일경제 문화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위기의 시대, 책에게 길을 묻다
매일경제 문화부 편저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3월 / 272쪽 / 12,000원
세계 역사의 배후에는 금융재벌이 있다. 케네디 암살도 화폐발행권과 관련?
《화폐전쟁》, 쑹훙빙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1980년대 중남미는 급작스런 채무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소련과 동유럽의 해체는 루블화의 평가절하가 시작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 등 한창 잘나가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멈춘 것은 1997년 갑자기 덮친 금융위기였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건 같은가. 하지만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그 속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하나하나 사건들을 이어 퍼즐을 맞추다 보면 그 뒤에 큰 그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세계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과 단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아니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결정권조차 '핵무기'가 아니라 '화폐'에 있다고 본다.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즉, 화폐 발행권을 가진 사람들이 화폐 공급량으로 통화 팽창과 긴축을 조정하면서 세계 경제와 정치까지 흔들고 있다는 게 쑹훙빙의 얘기다.
미국에서 금융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쑹훙빙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보며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방대한 정부 문헌과 법률 문서, 개인 서신과 전기, 신문잡지에 실린 글에서 서양의 굵직한 금융사건을 찾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가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음모라는 거대한 퍼즐을 두고 벌였다 10년 싸움의 마침표다.
우리는 대개 세계 제일의 부자를 꼽으라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이나 워렌 버핏 버크셔 앤드 해서웨이 회장을 든다. 하지만 쑹훙빙은 진짜 부자는 자산이 50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초의 국제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 일족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사건과 금융위기의 배후에 작용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되는 곳도 바로 이 유대인 가문이다. 그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쟁 이후 세계에서 일어난 중대 사건의 배후에 늘 있으면서 세계 재산의 흐름과 분배를 통제했다"고 설명한다.
쑹훙빙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이나 가필드, 케네디 등이 암살당한 이유도 화폐발행권에서 찾는다. 전형적인 음모론이지만 근거가 전혀 쌩뚱맞지는 않다. 가령 쑹훙빙이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을 보자. 그는 케네디가 암살당한 원인을 죽기 5개월 전에 발표한 '대통령령 11110호'에서 찾는다. 근거는 대략 이렇다. 미국 달러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이 발행하는 화폐이기 때문에 정부가 돈을 쓰려고 해도 FRB에서 달러를 빌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중앙은행이 민영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주주'들이 JP모건 등 민간은행이기 때문에 돈을 빌리려고 해도 미국 정부가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 정부의 숙원 중 하나가 직접 화폐발행권을 갖는 것이었고 케네디가 이 문제를 정부 보유은괴를 담보로 미 재무부가 직접 은 증서를 발행, 화폐로 쓰겠다는 내용의 '대통령령 11110호'로 해결하려다 세력 약화를 걱정한 국제금융 재벌에게 살해당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제금융재벌이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을 금융위기로 몰아가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쑹훙빙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우선 돈을 많이 찍어내 통화팽창을 일으킨 뒤, 갑자기 통화긴축 상황을 만든다. 그러면 당한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재산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이를 가리켜 '양털 깎기'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그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던 중국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지금 통화팽창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양털 깎기의 시점이 오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중국이 세계 경제의 진정한 강국이 되려면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는 국제 금융재벌들이 일으킬' 잠재적 금융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는 "요즘 국제 금융 강자들이 중국에 대거 진입하는 이유는 중국의 화폐 발행권과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마 황당하다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세계가 수백 년 동안 국제금융재벌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책을 무조건 매도하기도 어렵다. 지은이가 음모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한 역사적 사실들이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이다. 쑹훙빙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도 있다. 이 책이 나온(2007년 6월) 뒤에 발생한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 모두 다 지금의 미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달러체제의 위기까지 전망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지적이다. 벌써 미국의 국채 발행량이 과도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달러가 지금처럼 세계의 유일한 긴축통화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중국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100만 부 이상 팔렸던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출간 후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24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 최대의 인터넷 서점에서 '2007년 올해의 경제경영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이징을 제외한 지방에서 이 책을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다. 또 중국을 넘어 세계 4만개의 포털사이트, 28개의 주류 경제매체, 103개의 대중매체에서 호평이 쇄도, 인터넷 검색 횟수도 수백만 회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인기의 원인을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인의 불안감에서 찾는다. 자본주의 시장 개방을 앞두고 서방의 핫머니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중국인의 심리상태가 반영됐다는 얘기다.
쑹훙빙《화폐전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쑹훙빙은 1968년 쓰촨에서 태어나 둥베이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으며 정보공학과 교육학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오랫동안 미국 역사와 세계 금융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다. 연방정부와 굴지의 금융기업, 의료업, 통신업, 정보안전, 미국 매스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몸담았으며, 현재는 부동산 대출 자동 심사시스템의 설계나 금융 파생기구의 세무계산 분석, MBS의 리스크 평가 등의 일을 하며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때 미국정부보증기관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컨설턴트 고문을 맡기도 했다. 이때 쑹훙빙은 미국의 금융 파생산업에 깊게 접촉했고 최종적인 시스템 회계와 고객을 겨냥한 제품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런 경력은 《화폐전쟁》을 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의 '배후세력'에 관심을 갖게 된 쑹훙빙은 오랜 연구 기간을 통해 이 책을 완성해 중국 경제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세계 금융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열정으로 《화폐전쟁 중국대책 편》과 《화폐전쟁 유로화 편》을 준비중이다. 대표적인 달러 가치 폭락론자로 달러의 기축통화 시대가 끝나고 금본위 시대가 다시 돌아오거나 엔화와 위안, 유로 등으로 통화 권력이 다극화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믿고 싶은 대로 시장 해석한 게 문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 조지 소로스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는 문제가 왜 일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전망하는 일은 전문가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단 이런 면에서 조지 소로스의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눈에 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한 금융위기 속에서 모두 눈치만 보는 가운데 '나는 시장의 미래를 이렇게 본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는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나오자마자 금융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 2007년 4월에 미리 나왔던 전자책은 2008년 경제 전망과 관련해서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언론에 소개됐으며, 종이책은 2008년 5월에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실 소로스가 세계 경제에 관한 자신의 전망을 내비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소로스는 '금융 재앙'을 이야기하거나 '자본주의 종말'을 내다보는 등 비관론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엔 주장의 강도가 더 심하다. 그는 "지금의 금융위기는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이 될 재앙의 전조일 뿐"이라며 "금융시장의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시장의 미래를 이렇게 예측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25년간 세계에는 여러 차례 금융위기가 닥쳤고, 그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간신히 막아왔다. 하지만 소로스는 당시의 해결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신용팽창만 가속했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시장의 주체들에게 정책 당국이 늘 책임져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만 심어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제 25년간 꾸준히 만들어졌던 유동성 버블에다 주택 버블까지 겹치면서 '슈퍼 버블'이 만들어졌고, 그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지금 미국 주택대출 시장은 완전히 붕괴됐고 이젠 슈퍼 버블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소로스가 단순히 금리,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지표만 분석해서 이와 같은 전망을 낸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 일어나는 위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1980년대 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장을 주도했던 경제학 이론과 사상적 기조, 장부정책 등을 하나의 용광로에 담아 자기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녹여 분석했다. 그 결과 소로스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시장 근본주의가 당시부터 득세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가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시장이 스스로 자기 통제를 완벽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손을 놓았던 정책당국자들의 믿음이 위기를 불렀다는 얘기다.
즉,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못된 가정 하에 쌓인 모순들이 터져버린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인간의 합리성'을 기본적인 가정으로 삼는 주류 경제학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 지금의 금융위기고,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소로스의 최종 주장인 것이다.그렇다면 그는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볼까. 여기서 소로스는 재귀성 이론을 제시한다. 사실 소로스는 서문에서 "책을 집필한 이유는 이 이론의 타당성과 중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금이 위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재귀성 이론이 하나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귀성 이론은 소로스가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투자원칙으로 삼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자산 가격이 주류 경제학에서처럼 균형 상태로 자연스럽게 수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며 완벽할 정도로 자신의 이기심을 따르는 존재다. 게다가 굉장히 이성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소로스는 "지금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버블을 보면 인간이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한다. 즉, 사람들은 완벽하게 합리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비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지면 합리적인 지점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한 방향으로만 몰리는 '자기강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러다 자기강화 때문에 시장이 현실과 괴리가 심해지면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주택시장 거품은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대출 실적을 올리려는 금융회사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실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거품이 붕괴했고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비록 그의 이론은 아직 학계에서는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재귀성 이론만으론 미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약점은 소로스 자신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개념을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첫 걸음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지금은 금융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이고, 이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토론에 재귀성 이론이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소로스의 얘기다. 세기의 투기꾼, 자본주의 악마에서부터 20세기의 연금술사, 박애주의 실천가까지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아온 소로스의 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분석을 담았다는 점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조지 소로스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변호사였던 아버지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나치가 유럽을 장악하면서 늘 죽음의 위험 속에 살았다. 1947년 동유럽이 공산화되면서 소로스는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사한다. 그곳 런던경제학교에서 칼 포퍼의 제자로 철학을 공부했고 1952년에는 런던경제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소로스는 이때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철도역의 짐꾼, 여행 세일즈맨, 은행의 수습사원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1956년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간 후 월스트리트에서 펀드매니저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 소득을 올리는 펀드매니저로 두각을 나타낸다. 1969년 1만 달러로 시작한 소로스의 투자회사 '퀀텀펀드'는 20여 년 후 2,100만 달러의 기금을 가진 회사가 됐고, 이 과정에서 그가 달성한 종합성장률 연평균 35%는 금융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하지만 소로스에 대한 평가는 20세기의 연금술사에서부터 세기의 투기꾼, 자본주의 악마까지 극단을 오간다. 특히 1992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상대로 파운드화 매도에 나서 하루만에 10억 달러를 벌고, 영국은 반대로 33억 파운드라는 손실을 봤던 일화는 유명하다. 게다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마하티르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가 그를 외환위기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이런 평가는 더 가속됐다. 하지만 소로스는 기부 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자선단체인 '열린 사회 재단'을 설립해 옛 소련 및 동구권의 순조로운 체제전환을 위해 매년 3억 달러의 거액을 지원했고, 2002년 5억 3,60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아 그해의 6위 기부가(<비즈니스 위크>)로 기록되기도 했다.
20: 80을 넘어 1:99 사회로. 싹쓸이 경제학의 빛과 그림자
《승자독식사회》 / 로버트 프랭크 · 필립 쿡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한국에서 뛰는 모든 프로축구 선수들의 연봉을 합한 것보다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버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런 일들이 왜 가능할까. 인간이 속한 집단의 범위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시아의 한쪽 끝에 앉아서도 프리미어리그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세계 최고만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집단의 재주꾼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다양하고 적당한 재능을 뽐내며 살았다. 어떤 사람은 동굴벽에 그림을 그렸고, 어떤 사람은 사냥을 잘했다. 그들은 불과 몇 십 명 내지는 몇 백 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정도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집단이 어마어마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혁명으로 인간이 속한 집단은 전 세계로 확장됐다. 이제 세계 최고의 재주꾼이 아닌 사람은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세계적인 사람 몇 명으로도 그 분야는 이미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