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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눈과마음 / 2008년 11월 / 292쪽 / 12,000원

1장 독점 공급자로서의 예술가 : 고흐의 그림은 왜 비쌀까?


예술품의 가치는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미술 시장에서는 상품의 가치가 곧바로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못하고 오랜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재화의 가치와 가격 간에 괴리가 생기는 것은 예술품 자체의 본원적 가치가 그것을 향유하고 느끼는 소비자들의 유효가치와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특성 때문에 예술품의 가치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미술평론가나 큐레이터와 같은 전달자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상품에 대한 시그널(signal)을 보내주는 전달자(매개자)가 있으면 시장의 기능은 원활해지고 소비자들은 적합한 소비자 잉여(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가격과 시장에서 실제로 지불된 가격 간의 차이)를 획득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평가와 해석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창조적 예술품이란 어쩌면 창조자 자신 이외에는 '좋은' 해석을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그 이름만은 익히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동생 테오가 <붉은 포도밭>을 4백 프랑에 팔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1987년, 일본의 한 보험회사에서 고흐가 남긴 <해바라기> 가운데 하나를 2천475파운드에 구입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일본의 한 사업가가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8천250만 달러에 구입했다. 고흐가 죽은 지 꼭 백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백 년 동안에 고흐의 그림 값은 어림잡아 무려 백만 배 이상 뛴 셈인데 그의 그림 값이 이렇듯 비싸진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란 자신의 그림을 미술 시장에 공급하는 유일한 생산자라는 점에서 순수 독점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재화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 생산자들은 공급량을 늘리고, 그렇게 공급량이 늘어갈수록 가격은 오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미술 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수요가 급증하면 그대로 가격의 앙등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2장 세잔의 단순함과 몬드리안의 추상성 그리고 경제 이론의 구성

폴 세잔(1839~1906)은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인상파와 입체파를 연결해주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상파에 이르기까지의 화가들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인 입체감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러나 세잔은 실제의 구체성보다는 단순함을 추구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구조와 형태에 집착했는데, 자연속의 모든 것은 삼각형과 사각형, 혹은 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가령 그의 작품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카드놀이를 하는 두 남자의 머리와 손은 구(球), 모자는 삼각뿔, 팔뚝과 몸통과 다리는 원통으로 치환된다. 입체에 대한 이 같은 세잔의 구도는 나중에 피카소나 브라크 같은 입체파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며,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등에 의해 사물의 구성을 점, 선, 면이라는 조형 원리로 단순화하는 추상미술의 효시가 된다.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보이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질서와 규칙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러한 생각을 수평선과 수직선과 같은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표현했는데, 수평선은 세상의 바탕이자 토대가 되며, 수직선은 그 바탕에 존재하는 것들, 즉 사람이며 나무와 같은 생명체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 수직선과 수평선들이 합쳐지면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컴포지션>을 보면, 나무나 건물이 궁극적으로는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선들이 만들어내는 면으로 표현된다. 몬드리안이 이와 같이 단순한 표현 방식으로 복잡하고 심오한 주제를 그려냈듯이 경제학에서도 복잡한 경제 현상 속에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법칙을 이끌어내기 위해 단순화한 경제모형을 사용한다. 그런데 어떤 모형이든 단순화 작업에는 일련의 가정(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론(theory)의 어원은 그리스어 'theoria'에서 유래되었다. 'theo'는 '본다'를 뜻하는데, 이때 본다는 것은 막연히 보는 'see'와는 달리 '본질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겉모습 안에 보이지 않는 불변의 본질적 속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로 복잡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들은 먼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소거하는 단순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추려진 본질적 부분들을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추상화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물론 추상화된 모형의 세계는 결코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체적 현실이 아닌 추상적 모형을 통해서 어떤 현상이 더욱 잘 설명되고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의사들이 실제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환자의 질병을 알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3장 마르셀 뒤샹의 파격과 선택의 가치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술품이란 사람이 만든 인공물로, 자연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적인 정의에 따른 것이다. 그리스적 정의에 의하면, 미술품은 일단 인공물이어야 한다. 가령 자연 상태의 나무토막은 그것이 아무리 미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미술품이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 나무토막이라도 사람이 깎아서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미술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적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그는 창조되지 않고 단지 발견된 대상, 즉 오브제(object)에 대해서도 미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기성품'인 물체를 '오브제'로 채택하여 많은 작품들을 제시했는데, 그중 경제학자의 주의를 끄는 작품이 바로 <샘, Fountain>이라는 작품이다.

1917년 뒤샹은 뉴욕의 독립예술가협회에서 연 전시회에 <샘>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뉴욕의 한 가게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단지 옆으로 눕힌 것이었다. 뒤샹은 그것에 리처드 머트라는 가명을 붙여 출품했다. 전시회의 심사위원들은 이것을 '천하고 저속한 표절주의'라고 평가절하고 전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뒤샹은 자신의 본명으로 '머트 씨'를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샘>에 대한 미학적 논쟁을 제기하면서 "일상생활에 흔히 쓰이는 사물이라도 예술가가 지각하고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그것의 기존의 용도는 사라진 것이며, 따라서 하나의 미술품으로 변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뒤샹의 안목은 경제학의 출발점과 맥이 닿아 있다. 경제의 문제는 항상 그 출발선상에 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활동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합리성에 따라 결정된다.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주체자의 목표의 극대화와 행위의 효율성에서 도출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장을 보러 갔을 때, 장바구니에 채울 물건들은 보통 세 가지 요소에 의해서 선택된다. 돈과 재화의 가격, 그리고 재화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가 그것이다. 이러한 합리성을 전제하여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경제적 행동에 대해서 예측 가능한 추론을 내리게 된다. 뒤샹의 선택은 예측 가능한 합리성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가 한 대상을 선택함으로써 그 대상은 본원적 예술 가치로 치환된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가공물이 어느 순간에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경제에서 '생산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가' 하는 문제에 닿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부가(잉여)가치가 창출되어야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4장 <보이지 않는 선수>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에 속한다는 평을 받는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다다이즘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구 문명 전반에 대해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시적인 조형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과, 돌, 새, 벨 등, 낯익은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 epaysement) 기법'으로 사물의 '고립', 그리고 두 사물의 이미지를 하나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그리고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을 한 그림에 넣는 '패러독스' 등을 즐겨 썼다.



마그리트 작품의 '제목'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제목이 사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표작 중의 하나가 <보이지 않는 선수>이다. 이 그림에서 한 남자는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고 또 한 남자는 장갑을 끼고 서 있다. 그리고 마치 작은 방에 가두어진 것 같은 여인은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입까지 가려진 채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허공에는 검은색 물체가 떠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거북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림 전면에 한쪽으로 묶여있는 커튼은 마치 이 그림을 연극무대처럼 보이게도 한다. 이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선수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좀처럼 파악할 수 없다.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다는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철학적 회화관이 담겨져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경제학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의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처음으로 보여주려고 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이다. 그는 자원의 가장 효율적 배분 상태를 의미하는 균형 상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언급한 예화는 이 문제에 대한 함축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가 아침에 먹는 따뜻한 우유와 빵은 전날 열심히 우유를 짠 목장 주인과 아침 일찍 일어난 우유배달부 그리고 빵 가게 주인 등의 정성과 수고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목장 주인이나 빵 가게 아저씨가 이러한 수고와 노동을 감당한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이익과 소득을 위한 것이다." 이렇듯 이기적 동기에 의한 산물로서의 경제활동이 공공의 선을 가져오게 되는 힘의 작용을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시장 메커니즘은 후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장균형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되었고, 이들의 논증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비로소 보이게 되었다.



5장 <저울을 든 여인>과 중상주의 그리고 행복의 저울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베르메르(1632~1675)의 동명의 그림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다. 베르메르의 삶과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이 영화는 그의 그림들처럼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다. 예를 들면 베르메르의 작업실은 아주 밝은 색감으로 연출되어 우중충한 도시의 배경과 대비를 이룬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약 35점 가량 되는데 그중 28점이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실내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렇듯 베르메르가 빛과 명암에 집착한 것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네덜란드의 기후여건 때문이기도 했다. 화창한 날이 별로 없었던 네덜란드에서 햇빛은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리창은 베르메르에게 빛을 통하여 실내의 진풍경을 드러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베르메르의 작품은 마치 그림 속 인물들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하는데, <음악 교습 시간>은 이러한 특징이 뚜렷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 음악교사가 막대기를 짚고 서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는 거울이 걸려 있는데, 그 속에 비친 얼굴 표정이 그녀의 불편한 속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인의 왼쪽에서 들어오는 유리창의 빛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섬세한 질감을 보여주고 있어 그녀의 경제적 지위를 알 수 있게 한다.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베르메르의 그림이 주의를 끄는 점은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데에 있다. 당시 유럽은 신대륙의 발견과 동인도 항로의 개척으로 격심한 상업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시대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중상주의라는 경제 사상이 싹텄다. 무역을 통해서 획득된 부는 신흥 상인 계층을 급속히 증가시켰고 이들의 향상된 생활수준은 문화와 교육에 대한 지출을 증가시켰다. 웬만한 신흥중산층 가정에서는 여인들의 교양 증진을 위한 소양교육이 유행처럼 행해졌는데, <음악 교습 시간>은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서 중상주의 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 <저울을 든 여인>이다. 이 그림에는 하얀 두건을 쓴 여인이 창가 테이블 앞에서 저울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진주와 금화가 흩어져 있는데, 아마도 그녀는 이것들을 저울에 재어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울의 접시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유추해보면 아마도 이 여인은 물질적인 부의 무게를 재어보고 나서 자신이 진정 바라는 정신적인 만족의 무게와 비교해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울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의 무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마도 그녀는 재화의 덧없음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소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만족도(효용) 역시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재화의 수량이 증가할수록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만족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6장 사실주의 화풍과 노동의 가치

19세기 중반 프랑스는 왕정복고, 7월 혁명, 2월 혁명, 파리코뮌 등 역사적 사건들로 점철된 격동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밀레, 쿠르베와 도미에 같은 화가들은 당대의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음으로써 그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사실주의 화풍을 유행시켰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노동자들의 누추한 모습과 중산층 부인들의 뚱뚱하고 세속적인 모습을 담아 당시의 전통과 사회 관습에 저항했으며, 시사 만화가로 활동했던 도미에는 당대 권력자들의 초상과 부르주아적 풍속을 담아냄으로써 기존 정치 체제와 법률 등을 냉소적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밀레는 육체노동의 고귀함을 화폭에 담아, 화면에서 귀족을 밀어내고 농부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 화가였다. 그의 그림 <이삭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은 모두 그러한 구도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이삭줍기>를 보면, 추수가 다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보리 이삭이라도 주어 끼니거리를 마련하려는 남루한 옷차림의 세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인들의 뒤쪽 멀리 번듯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짚단을 마차에 싣고 있는 농민들과 농장 주인쯤 되는 사람이 보이고, 말을 탄 사람도 보인다. 그림 전면의 세 여인과 뒤편의 사람들은 신분상에 분명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밀레는 하층민의 모습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두 집단 간의 차이를 역설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노동을 표의문자인 한자로 쓰면 '勞動'이다. 노동이란 두 글자에 모두 힘(力)자가 들어가 있으니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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