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다
김준환 지음 | 두리미디어
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다
김준환 지음
두리미디어 / 2008년 6월 / 328쪽 / 13,000원
PART 1 직감적으로 거대한 음모를 느끼다
외자유치가 아닌 매각2003년 9월, 한국외환은행은 미국계 투기성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손에 넘어갔다. 외환은행은 국내 제일의 외환 · 수출입 전문은행이자 정부 기관인 한국은행 및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던 은행이었다. 반면 론스타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부실채권이나 부동산 등을 싼 값에 매입하여 비싼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미국계 투기성 사모(私募)펀드(PEF)였다. 당시 론스타는 정부 지분을 포함한 외환은행의 지분 51%(3억 2,585만 주)를 단돈 1조 3,833억 원에 취득하여 자산규모 63조 원인 외환은행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처음부터 비상식적으로 보이던 외환은행 매각 사건은 이후에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고, 관련 기관들의 고발 · 감사 · 재판이 복합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론스타 관련 재판은 현재 다섯 군데 법정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다. 첫째, 외환은행의 불법 · 헐값 매각 건으로 관련자들이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조작 · 매각하여 외환은행과 수출입 은행 등에 최소 3,443억 원에서 최대 8,252억 원의 국민재산을 손실(감사원, 최대 1조 59억 원)시켰다는 혐의다. 둘째, 외환카드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론스타 펀드와 외환은행이 403억 원의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다. 셋째, 론스타 펀드의 114억 원 조세포탈 및 145억 원 수익률 조작혐의다. 넷째,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금감위의 론스타 펀드 주식 취득 승인 처분 무효 확인' 공판이 진행 중이다. 다섯째,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의 '론스타의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 여부 관련 정보공개 청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판명된다면 현재 진행 중인 법원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외환은행 지분 중 10%가 넘는 부분은 원인 무효가 되기 때문에, 지금 법정에서는 금융위와 시민단체가 서로 사활을 건 승부를 하고 있다. 산업자본 판명시 론스타는 4조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은커녕 인수 시점에 지불한 대금(원금+이자)만 돌려받고 한국을 떠나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1년 GDP 중 10%가 넘는, 자산 108조원 규모의 외환 · 수출입 전문 은행을 다시 찾는 것이다.
내부자의 눈으로 본 외환은행 위기한국은행의 외환부가 빠져나오면서 1967년 설립된 외환은행은 기본적으로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한 운영을 통해 수출 목표 달성과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이렇듯 정부 출자 은행으로 고유한 위상을 갖고 있던 외환은행은 1997년 IMF외환위기를 맞아 다른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자본 확충을 위해 1998년 7월 독일 코메르츠방크로부터 3,500억 원을 증자받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인 결과 외환은행은 금융 당국과 4년간의 조건부 승인으로 MOU를 체결하고 구조조정 체제로 들어갔다.
혹독한 구조조정의 결과 외환은행은 경영상황이 호전되어 갔지만 1999년부터 터져 나온 대우그룹 부실 문제와 2000년 초에 불거진 현대 그룹의 유동성 위기 때문에 또 다시 자본 확충에 나서야 했다. 그 결과 대주주인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의 증자 참여를 위해 외환은행은 2대1 감자라는 수모를 겪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외환은행은 결국 2002년 4월 9일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경영 개선 권고조치를 해제받아 4년간의 MOU체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1997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후 2001년 흑자 전환을 시현한 김경림 행장은 2002년 3월 돌연 사임을 표명했다. 이는 외환은행 매각의 서곡으로 보인다.
2002년 4월 새로 부임한 이강원 행장은 자본 확충을 위해 국내 공모 증자를 추진했으나 재경부의 지시로 보류하다가 주가하락으로 포기했고 별도로 5천~6천억 원 규모의 외자유치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2003년 7월경 외환은행이 대규모로 투자한 SK글로벌 하이닉스 현대 상선 등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었고, 주가 상승에 따라 외환은행의 경영 상황도 안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외환은행 임직원들은 '외자유치'만 성사되면 은행의 경영난이 해결될 것으로 보았고 '매각'이 진행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3년 7월 22일 김진표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회견에서 외환은행을 매각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 당시 론스타가 공공연하게 외환은행과 물밑협상을 벌였지만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외자유치' 차원이었지 '매각'은 아니었다. 이강원 행장이 취임 당시부터 '외자유치'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었고, 은행 내부 공문에도 '외자유치'라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권 교체기였던 9개월간 어수선한 틈을 타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2003년 9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론스타 펀드(이하 론스타)에게 매각 승인하고 그해 10월 인수자금이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외환은행 임직원들은 매각이 아닌 외자유치로만 알고 있었다.
2004년 9월 필자는 6개월의 안식년 휴가를 받아 미국으로 갔다. 거기에서 교민 대상 금융설명회를 몇 차례 진행하면서 교민들로부터 외환은행이 왜 하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게 매각됐고, 론스타는 왜 외환은행 LA 현지 법인인 퍼시픽유니온뱅크(PUB)를 매각했으며, 또 외환은행 매각에 깊이 관여한 검은 머리 외국인(겉으로는 외국자본의 투자인 척하면서 국내 금융권과 편법적 이익을 취하는 한국계 외국 시민권자들을 통칭하는 증권가의 은어)들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때서야 필자는 외환은행 배후에 뭔가 비정상적인 거래가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필자는 안식년 휴가 2개월을 남겨두고 사직서를 썼다.
론스타 게이트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한 직후 LA 현지 법인 퍼시픽유니온뱅크를 팔아치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뱅크홀딩액트(Bank Holding Act)라는 은행지주법에 따르면 은행 지분을 25% 이상 획득하려면 해당 기업의 모든 것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외환은행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51%의 지분을 확보한 론스타는 미국의 은행지주법에 규정된 25%를 훨씬 상회하는 지분을 가졌다. 법대로라면 론스타 내부 자료 모두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론스타는 투자자와 투자처 모두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사모펀드기 때문에 내부 자료를 모두 공개한다면 가장 중요한 비밀인 투자자의 인적 사항과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영업망이 드러난다. 외환은행을 인수해 얻을 시세 차익 이상의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외환은행은 외환은행대로 인수하면서 미국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외환은행의 미국 현지 법인을 매각하는 것이다. 미국의 은행지주법은 미국 내에 있는 은행만 그 대상으로 한정하므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후 LA 현지 법인을 2개월만에 단돈 1,835억 원에 처분해 '꿩 먹고 알 먹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PUB는 매년 1,100만 달러 안팎의 순익을 내는 '알토란' 같은 미국 내 거점은행이었다. 론스타가 정상적으로 은행을 소유해 경영할 생각이 있었다면 미국의 현지 법인들을 더 성장시켜야만 했었다. 그런데 내부 비밀을 지키고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자마자 2개월만에 현지 법인을 팔아치운 것이다. 이는 론스타 스스로 금융회사가 아닌 투기성 사모펀드, 즉 산업자본임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PART 2 한강을 건너려면 '등'이 필요하다
제1관문 프로젝트 나이트'프로젝트 나이트(Project Knight)'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암호명이다. 2002년 9~10월경 론스타 재무 자문사인 살로만스미스바니SSB의 김은상 대표(경기고)가 이강원 행장을 만나 론스타의 투자 의향(10억 달러에 51% 지분 확보)을 전달하고, 이어서 10월 하순경 재경부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경기고)의 소개로 론스타코리아의 스티븐 리와 유회원(경기고)이 이강원 행장을 방문한다.
이후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의 12월에 들어서자 변양호 국장은 이강원 행장에게 '보안을 유지하며 매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지시하였고,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 등 대주주를 배제한 채 외환은행-론스타간 비밀 준수 협정(2002.12.13)에 이어 실사 평가(2003.4.7∼5.7)까지 외환은행 매각은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급물살을 탔다. 외환은행이 추가 자본 확충을 위해 필요한 금액은 당초 3천억 원~5천억 원이었는데 어느 순간 1조 원으로 늘어난다. 자산 규모 63조 원의 대형 시중은행이 단 돈 1조 원에 매각되는 과정은 정권교체기를 틈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시작되었고,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은행을 경쟁 입찰 없이 수의 계약으로 매각을 진행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치밀한 사전 계획과 행동들은 모두 '프로젝트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론스타가 접촉해 온 두어 달 후, 외환은행의 외자유치 대상 기관은 론스타 하나로 좁혀지고, 유치금액도 5천억 원에서 1조 원 이상으로 올라간다. 1조 원이 넘는 금액은 '외자유치'가 아닌 '매각'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여기에 외환은행 매각 의혹의 핵심이 있다. 정부가 최대 주주로 있는 공적 은행을 재정 금융 당국 국장과 은행장 등 몇 사람의 결정으로 매각할 수는 없다.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정부차원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생긴다. 정부 차원의 압력이 있었다면 그런 압력을 가한 실질적인 주체는 누구일까?
의문의 팩스 문서2006년 3월 19일 방영된 KBS 탐사 보도팀의 기획취재인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은 정부가 개입된 정황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2003년 7월 15일 조선호텔에서 '10인 비밀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비밀대책회의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도 출처와 작성자, 지시자가 후련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의문의 팩스' 문서에 대해서 살펴보자. 김진표 부총리의 블룸버그 통신 회견 중 '외환은행 매각 계획' 발언 하루 전날인 2003년 7월 21일 금감원으로 '5장의 문서'가 팩스로 전송된다. 이 팩스에는 외환은행이 중립적인 시나리오인 경우 외자유치 없이도 2003년 말 BIS 비율이 9.33%고, 비관적인 시나리오일 경우 외자유치가 없으면 BIS 비율이 6.16%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수치가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당시 금감원에서 공식 점검 · 발표한 외환은행의 공식 BIS 비율 추이를 보면 2003년 3월 말 8.48%를 제외하면 매각 전인 2000년 이후부터 2003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9% 이상을 유지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도 당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최저 8.49%로 밝혀졌다. 그런데 공식 문서가 아닌 이 팩스 문서에는 예상 수치가 6.16%까지 낮게 산정되었고, 이 팩스 문서의 수치를 주요 근거로 해서 외환은행의 매각이 승인된다. BIS 비율 전망치는 추정 목적 및 전제에 따라 다양한 값이 나오기 때문에 금산법 등 금융관련법령에 따르면 부실우려금융기관을 지정하거나 적기시정조치 대상을 정할 때 '추정치'가 아닌 '실적치'를 기준으로 한다. 외환은행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중요한 문서가 왜 공식 경로가 아닌 한낱 팩스로 전송돼 왔을까? 그리고 이 팩스는 누가 지시하고 작성해서 보낸 것일까?
10인 비밀대책회의
론스타의 외환은행 1차 실사 기간 중(2003.4.7~2003.5.7)인 4월 15일에 부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고, 실사가 끝난 후 이강원 행장도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틀 전인 2003년 5월 9일 청와대 방문 직후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한국본부장을 만났다. 이후 이강원 행장은 2003년 7월 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관계자가 참석한 '10인 비밀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이로부터 고작 한 달여가 지난 8월 27일 마침내 외환은행은 경영권 매각에 해당되는 51%의 지분을 '외자유치'라는 명분으로 론스타와 계약을 체결한다.
감사원 자료에 '조선호텔 관계 기관 회의'라고 명시된 '10인 비밀대책회의'는 2003년 7월 15일 아침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참석 기관은 청와대(주형환 행정관), 재경부(변양호 금융정책국장 · 추경호 과장), 금감위(김석동 감독정책 1국장 · 유제훈 과장), 외환은행(이강원 행장 · 이달용 부행장 · 전용준 부장), 외환은행 측 자문사인 모건스탠리(신재하 상무) 그리고 변호사 등 10여 명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현 법률상으로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어떻게 하면 문제없이 매각할 수 있겠느냐는 점을 집중 논의했다.
이 날 논의된 시나리오 중 1안은 론스타를 금융기관으로 인정하는 방안, 2안은 은행법이 정하는 '예외 승인'이며, 3안은 론스타가 일본에 갖고 있는 도쿄스타뱅크 은행과 합작투자를 말하나 BIS 비율 등이 기준 미달이 되어 인수자격이 안 된다. 4안은 ABN AMRO와 합작 투자 안이다. 마지막으로 '도장값'이 거론되는데 KBS방영 이후 이 발언이 물의를 빚자 2006년 4월 발언 당사자인 김석동 국장은 도장값은 인수 가격 인상을 위한 협상용이었으며, 실제로 최종 인수 가격이 50원 상승했다고 언론에 해명했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은 "'도장값'은 자격 요건이 안 되는 론스타가 승인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리베이트"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해서 외환은행은 이강원 행장이 부임한 지 1년 5개월여 만에 '외자유치'가 '경영권 매각'으로 둔갑된 채 투기성 사모펀드인 론스타로 넘어가게 된다. '10인 비밀대책회의' 이후 론스타에게 인수자격 부여라는 '제1관문'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외환은행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매각에 대한 역할분담은 재경부와 금감위, 외환은행의 삼각구도로 이루어졌고 극소수 관계자들만 매각 과정 정보를 공유하면서 모처에서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젬스톤
'프로젝트 젬스톤(Project gemstone)'은 외환은행 매각 자문사인 모건스탠리가 국내외 투자자를 물색하고 매각 가격과 절차, 일정 등이 담긴 '전략문건명'이다. 젬스톤은 원래 보석용 원석이라는 뜻으로 원석이 세심한 공정을 거쳐 귀중한 보석이 되듯 투자자 물색 후 외환은행이 높은 가격에 매각될 수 있도록 '정교한 조율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즉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은 '프로젝트 나이트 프로젝트 젬스톤 프로젝트 스콰이어'인 셈이다.
프로젝트 스콰이어-외환카드의 가치를 떨어뜨려라
'프로젝트 스콰이어(Project Squire)'에서 스콰이어는 나이트를 보필하는 시종을 뜻한다. 2003년 한국에 카드대란이 발생한다.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협상이 진행된 시기가 바로 이 카드대란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금융 당국은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체결(2003.8.27)하면서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외환신용카드(주)를 외환은행에 합병시킨다는 조항을 넣었다. 론스타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것이다.
론스타는 1조 3,833억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외환은행 지분 51%의 주식을 매입해 경영권자가 되었다. 그런데 외환카드와 합병하게 되면 추가로 인수대금이 들어가면서 전체 지분율마저 50%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