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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하루야마 쇼카 지음 | 이콘
서브프라임

하루야마 쇼카 지음

이콘 / 2008년 4월 / 191쪽 / 9,800원

프롤로그 - 붕괴의 시작


서브프라임이 일으킨 금융 위기 : 2007년 느닷없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한마디로 말하면 저소득자 대상의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이다. 더 정확히는 소득수준이 낮고 대출 연체 이력이 있는, 우량 고객(프라임) 대상이 아닌 신용 하위층에 대한 주택 대출을 뜻한다. 바로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2007년 6월부터 8월에 걸쳐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이 기간 세계의 주식시장은 고점 대비 10% 이상의 대폭락을 경험했고, 환율시장에서는 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졌다. 이러한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급락에 동반하여 일부 금융기관은 도산하고, 관련 상품에 투자했던 펀드는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문에서 대출 규모 2위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은 2007년 4월 2일 파산을 신청했고, 1위인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은 자금 조달 불능에 빠졌다. 미국의 대형 증권사인 베어스턴스 산하의 한 헤지펀드는 주택대출 증권화 상품에 투자하다 지난 6월 청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라는 '서브프라임'은 대체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일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집은 '행복'의 상징이다. 그런 '행복'을 저소득자도 누리게 할 목적으로 미국 정부는 각종 주택 구입 촉진책을 도입해왔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중남미에서 이민이 증가하여, 흑인 히스패닉을 합친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라 불리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그들은 대부분 은행계좌를 갖고 있지 않는 등 일반적인 주택 대출의 신청기준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원래 그러한 상태로는 정부의 주택 구입 촉진책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층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싶어한다. 그 수요를 노리고 탄생한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인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당초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악질적인 금융기관이 이러한 시스템을 악용한 것이다. 이들 금융기관은 얼핏 보면 매력적이지만 결국 저소득층이 매월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환조건으로 대출을 해줬다. 이들 상환조건은 처음 2년 정도의 상환 부담을 가볍게 하여 융자해주지만, 거치기간 경과 후에는 상환액이 급증하는 형태가 많다.

서브프라임은 원래 대출 연체 이력이 있을 법한 저소득층 대상의 대출로, 통상적인 금리에 3%정도를 덧붙인 고금리로 설정되어 있다. 다음 사례는 금리 개정 후 상환금리가 10% 이상이 된 예를 보여준다. 서브프라임 이용자층이 구입하는 주택은 대부분 주로 20만 달러 이하인 저가의 중고주택이다. 전형적인 차입 패턴을 보면 연수입이 4만 달러인 사람이 20만 달러를 30년 만기로 상환하는 대출을 받는다. 이 대출의 상환금액은 거치기간인 최초 몇 년간은 약 1만 2천 달러(금리 6%)이지만 거치기간 종료 후의 연간 상환액은 이자만 연간 약 2만 2천 달러(금리 11%)로 늘어난다. 수입의 55%를 이자 상환에만 쏟아 붓는 꼴이 된다. 또한 실제 지불액수는 통상적으로 그 이상이 된다. 따라서 금리 11%로는 상환을 계속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2004년 중반 이후 금리는 급상승했고, 당연히 많은 대출이 우대기간 경과 후 상환 불능에 빠지게 되었다.



당초 수입이 낮아도 성실하게 갚고자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이었던 서브프라임이 어느새 대출채권의 전매라는 금융기법의 발달로 인해 증권사의 손을 통해 '어차피 남에게 전매할 테니 부도가 나도 상관없는 대출'로 탈바꿈한 것이다. 도적적 해이(모럴 해저드)이다. 이렇게 되면 빌리는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된다.



주택 버블의 시대적 배경

주택우대세제 :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미국에 건너온 사람은 우선 직업을 찾고 그 후 자동차와 집을 산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반드시 성공해서 벤츠나 렉서스를 타고, 휴일에는 정원이 딸린 내 집에서 가족과 잔디밭에서 바비큐파티를 열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집은 바로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이다. 이민자들은 '언젠가는 저택에 사는' 그런 날을 꿈꾸며 일한다. 미국의 주택 대출은 이들의 강력한 수요와 함께 정부 정책이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하여왔다.



주택 추진 정책의 하나로서 등장한 것이 여러 차례 강화된 주택우대세제이다. 간단히 말해서 주택 대출로 지불하는 이자가 고스란히 소득에서 공제된다는 법률이다. 이 주택우대세제의 핵심은, 주택 대출의 이자 지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절세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1가구 2주택이라도 이 세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고소득자는 주택 대출을 받아 집 한 채를 더 구입하고, 다시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이른바 '레버리지'라는 편법을 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고액의 대출이자가 발생하지만 그 이자만큼 세액공제가 되므로 오히려 절세 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이 수법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맞물려 급속히 퍼져갔다. 이 주택우대세제는 결과적으로 주택 버블과 서브프라임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주택 붐이 도래했다 : 불행한 운명은 또 찾아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이 바로 그것이었다. 부시 정권과 금융당국은 금리를 올리는 일에 매우 신중했다. 전쟁 중에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경기 회복 기조를 유지해야만 했다. 결국 정권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초저금리는 또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부동산 시장으로 이동하는 부작용을 수반했다. 초저금리 덕택에 주택 대출의 월 지불이자는 1999년과 비교하여 30~40%나 적어졌다. 그러자 주택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이 오르고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대거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자, 금융업계는 과거라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주택의 담보가치가 급등하고 있었으므로 지불이 어려워도 주택을 처분하면 충분히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부동산은 싼 편이다! : 미국의 주택 붐이 시작되었을 무렵, 여기에 더한층 기름을 붓는 요인이 발생했다. 바로 유로화 강세, 달러 약세의 움직임이었다. 유럽 입장에서 보면 같은 금액의 유로로 더 많은 달러 제품을 살 수 있는 셈이었다. 미국 부동산이 유럽보다 싸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의 미국 부동산 투자가 급증했다. 미국 우량 부동산에 외국인 투자자가 모여들기 시작하자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이 외국인에게 팔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로 전 세계의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약탈적 대부로

금융기술의 진보는 리스크를 타인에게 떠넘기고 도덕성을 상실케 했다 : 주택 버블을 확대시킨 요인으로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증권화'라는 금융기술이다. 증권화라고 하면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흐름을 가리킨다. 우선 500~1,000건의 주택 대출을 은행이 하나로 모아 증권사 등에 매각한다. 그 매각된 대출의 집합체를 증권사가 채권 비슷한 것(구조화채권)으로 만든다. 그 구조화채권을 소유하고 배당 받을 권리(지분권)를 여럿으로 나누어 다수의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증권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주택 대출을 빌려주는 쪽은 이자와 수수료를 챙기는 한편, 대출이 부도가 나서 손실을 볼 위험도 안고 있었다. 돈을 벌려면 리스크가 따르는 것은 비즈니스의 법칙이다. 그러나 '증권화'라는 수법에 의해 빌려주는 쪽은 맛있는 부분만을 취하고 대출 자체는 남에게 매각하여 장차 발생할 부도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비즈니스 도덕성을 상실해갔다. 이 비즈니스 도덕성 상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택 대출의 자금을 대는 쪽은 은행이고 주택 대출을 알선하는 쪽은 브로커라 불리는 별도의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통상 브로커는 계약을 성사시키면 그만이므로, 누구라도 좋으니 주택 대출을 계약시키고자 한다. 한편 은행은 계약 후 끝까지 돈을 갚을 수 있는지 여부를 중시한다. 수상한 상대에게는 빌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브로커를 감시한다. 즉 브로커와 은행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권화로 인해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제하고 주택 대출을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이 당연하게 행해지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수상한 상대에게는 빌려주지 않는다는 은행의 도덕성이 붕괴되었다. '주택 대출을 증권화하여 팔아서 얻은 자금을 또 다른 사람에게 주택 대출자금으로 빌려준다. 그래도 부도날 염려는 없다. 증권화하여 다시 팔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쌀 한 톨로 몇 번이고 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사고방식이 주류가 되어갔다. 그러니 견제도 대충하게 되었다. '대출은 금방 팔아버리면 되니 빌려주는 상대를 꼼꼼히 조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행이 대출을 끝까지 보유하지 않게 된 결과 마침내는 대출 비즈니스에서 성립해 있었던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브로커의 수입이 연간 50만 달러 : 일본이나 한국의 대출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낮선 이름 '주택 브로커'라는 존재. 이 브로커야말로 서브프라임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주택 대출 브로커는 여러 금융기관의 주택 대출을 취급하여 고객에게 알선한다. 고객에게 어떤 주택 대출이 적절한지 정보를 제공하고 대출의 신청 절차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소위 금융기관 주택 대출 부문의 별동대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수수료를 받아 살기 때문에 계약 건수를 늘리는 일이 최우선이다.

또한 브로커가 되기도 쉽다. 자격도 불필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 주택 버블이 절정일 때의 이야기인데, 친구의 영어 가정교사가 갑자기 미국으로 귀국해버렸다. 주택 대출 브로커가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듣자하니 그 가정교사의 친구가 미국에서 주택 대출 업무를 하는데 연수입이 50만 달러 이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일을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주택 버블 시절에는 졸지에 주택 대출 브로커가 된 사람들이 급증했다. 그들이 대출 알선을 위해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있던 모습은 지금에 와서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한편 2007년 여름 블룸버그가 발행하는 잡지에 '서브프라임 시장이라는 거대한 함정'이라는 타이틀로 서브프라임이 특집으로 실렸다. 거기에는 악덕 브로커 회사에서 일하던 직원의 참회가 실려 있었다. '주택 대출과 금리의 시스템 따위는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이 입사한다. 입사한 그 날부터 일단 타깃이 될 만한 고객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게 한다. 대출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는다. 대체로 전화로 하는 세일즈는 내용도 잘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한 주택 대출은 월스트리트에서 사 간다. 그러니 상사로부터는 '주택 대출 계약을 최대한 성사시켜라, 이번 달은 100건이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목표치가 하달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객들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



장차 소송을 당할지도 모르는 대출계약 체결 업무(악역)는 브로커에게 시키고 있다. 즉 소송 등 뭔가 불상사가 생겼을 때, 은행은 브로커에게서 계약을 전달받았다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 증권사는 정당한 대출계약을 선의의 제3자로서 구입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여차하면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가 있다. 투자자(=연금, 해지 펀드)도 마찬가지다. 브로커 이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추궁 받지 않는 선의의 제3자로 보호받는다. 다행히 IT 버블 붕괴로 중단되었던 '차입자 보호' 관련 법안이 입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은행, 증권사, 투자자 등이 선의의 제3자 역할을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2000년대의 서브프라임 소동은 역사에 남을 이벤트가 될 것이다.



세계 경제의 톱니바퀴가 역회전을 시작하다

건설업자가 백기를 들다 : 미국 주택 붐의 정점은 2005년 후반이었다. 같은 해 4월, 당시의 스노우 재무장관은 주택 버블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에 이를 부정했다. 정치가로서는 당연한 발언이었겠지만, 정작 실물경제에 접하고 있는 주택 대출매수 최대 금융기관인 페니메이는 주택 버블을 염려하고 있었다. 투자 목적의 주택 구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비율은 2003년 전체의 6%였던 것이 2004년에 9%를 기록하고 있었다. 플로리다, 라스베이거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30%에 달하여, 이미 정상을 벗어난 상태였다. 버블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 상징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건이란 지금까지의 들뜬 기분을 날려버릴 만한 것이어야 한다. 일단 그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들뜨고, 도를 지나치고, 비상식적'인 만취 상태에서 깨어나 비로소 잔치가 끝났음을 깨닫게 된다.



최초 공포는 2006년 12월에 찾아왔다. 세계적인 거대은행 HSBC의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미국의 주택 사정 악화 등으로 부실채권이 증가했다고 발표한 것이 그 이유였다. 신규 주택 대출이 줄고, 더불어 기존의 주택 대출이 부실채권화하기 시작했다. HSBC는 세계에서 세 번째의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 우량은행이다. 경영 자세도 보수적이고 부실채권 관리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런 금융기관이 이런 상태까지 이른 것이다. 경영 규율이 느슨한 미국의 다른 은행들도 틀림없이 심각한 상태이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HSBC의 주가 급락은 주택 대출 문제가 금융기관의 문제로 확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간격을 두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폭탄이 터졌다. 우선 주택 대출 전문 은행 오닛 모기지 솔루션(Ownit Mortgage Solution Inc.)이 파산했다. 주택 대출의 지불 연체가 급증했기 때문에 대출을 전매하여 다음 고객에게 다시 대출을 해주는 접시돌리기식 운영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어서 저소득자 대상 주택 대출 전문 금융기관인 뉴센츄리 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실적 부진 뉴스도 보도되었다. 신규 주택 대출을 받은 지 3개월여 만에 지불 불능에 빠지는 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금 융통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36%나 하락했다. 2007년 2월에는 주택시장의 회복을 꿈꾸던 건설업자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업계 내에서도 흐름의 변화를 포착하는 데 뛰어나다고 알려진 미국 최대 고급 주택 건설업체 톨 브러더스가 "2007년이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초부터의 상황을 지켜보니 2007년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 따라서 2007년 예상 실적을 하향 수정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으로 주택 버블의 붕괴는 소문이 아닌 결정적 사실이 되었다. 장대한 주택 버블이 완전히 끝났음을 전 세계에 고하는 종이 울린 것이다.

2006년 12월의 HSBC, 오닛 모기지 솔루션, 뉴센추리 파이낸셜, 그리고 2007년 2월에 발생한 톨 브러더스 등의 사건을 계기로 주택 버블의 붕괴는 단순히 미국의 문제라는 단계에서 전 세계를 끌어들인 금융 위기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2007년 8월에 도래한 '경악의 17일'까지 반년을 남기고 있었다.

유동성 붕괴의 공포 :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을 깨달았다면 물을 끼얹어 끌 수밖에 없다.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폭발을 예견한 투자자는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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