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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길1

장샤오진 지음 | 크레듀
부흥의 길1 - 중국 인도 편

장샤오진 지음

크레듀 / 2008년 2월 / 238쪽 / 12,000원

1. 비상하는 거룡(巨龍), 중국

1) 동아시아의 환자에서 아시아의 거인으로

낙오되면 짓밟힌다

근대 중국이 겪은 불행의 시작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대변혁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 양 끝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는 유럽이 있다. 18세기 유럽은 자본가계급을 주축으로 한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바탕으로 상당한 자원과 힘을 쌓아 올렸다. 이로써 평등했던 기존의 세계질서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과학 혁명은 유럽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재패할 수 있게 해주었다. 1840년, 영국은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90만 상비군을 보유했던 청나라는 겨우 1만 5000명 남짓한 영국군에게 대패하고 굴욕적인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했다. 이후 영국의 뒤를 쫓아온 유럽 열강들은 중국이 아편전쟁의 후유증에 빠져있는 틈을 타 저마다 한몫 챙기기에 바빴다.



중국, 다시 일어서다

중국은 1950년대 중 후반부터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는 동시에 소련과도 형제국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58년 소련이 제기한 무선방송국과 연합함대 건설은 중국의 민족 감정과 주권의식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이에 중국은 소련의 연합함대 건설에 강력히 반대하며 소련이 중국을 그들의 일부 혹은 자국의 방위를 위한 완충지대로 보는 전통적인 제국주의 사고를 철저히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9년 9월 9일, 소련은 타스 통신사를 통해 중국과 소련의 분열 상황을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1960년 6월, 부쿠레슈티 회의에서 소련은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드러냈다. 같은 해 7월, 소련 국경 수비군은 중국 신장 보쯔아이거얼 산 부근 중소 국경 지역에서 첫 군사 도발을 시작했다. 이 사건 이후 중소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소련의 무력 도발은 유혈 사건으로 번졌고, 결국 1969년 3월 전바오다오 사건으로 이어졌다. 전바오다오 사건 중 소련 국방부 장관은 자국이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하면서 중국을 향해 원한다면 그 위력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다. 1970년대 후반, 소련은 중소 국경 지역에 대규모 군사 배치를 실시했고 몽골인민공화국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베트남이 중국에 반기를 들며 감행한 캄보디아 침공을 지지했고, 아프간을 침공하여 바다에 면한 동부를 제외한, 중국을 전면 포위하는 형세를 만들었다.



2) 중국,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쟁자

발전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이다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고,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의 확고한 신념이자 역사가 부여한 위대한 임무였다. 물론 중국공산당이 지금까지 중국을 구하고 발전시켜 오는 동안 때로는 먼 길로 돌아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실수를 하고 절호의 찬스를 놓쳤으며, 막대한 손실을 낳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현재 중국은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올라 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중국은 중국만의 개성을 지키며 세계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근본 요인은 중국공산당이 '발전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이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중화민족은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광활한 영토와 막강한 국력에 대해 특별히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6년, 다시 복귀한 덩샤오핑은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중국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었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화대혁명 10년의 혼란기 동안 우리는 커다란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인이 맛본 고통은 이 10년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그릇된 좌파운동은 이미 1957년에 시작되었다. 대외적으로 폐쇄정책을 펼치고 대내적으로 계급투쟁에 몰두하느라 생산력 발전을 간과했다. 당시 실시된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에서 크게 벗어난 것들이었다." 1980년, 덩샤오핑은 다시 한 번 분명한 뜻을 밝혔다. "지금 우리는 건국 이후 30년의 경험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보자. 첫째,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무리하게 단계를 뛰어넘으려는 극단적인 좌파 방법을 피해야만 한다. 둘째, 어떤 일이든 반드시 생산력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과연 당시 중국이 생산력 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객관적인 외부 환경을 갖추고 있었을까? 그렇다. 이를 위해 덩샤오핑은 평화와 발전을 중요한 시대의식으로 꼽았다.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세계의 공장'

중국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누구나 탐내는 가장 매력적인 소비시장으로 전 세계에 무한한 상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 비행기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에어버스사는 1994년 "2015년이 되면 중국은 500대 이상의 비행기를 구입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보잉사는 1995년 "2010년 중국에 필요한 비행기는 최소한 800대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예측이 쏟아지면서 서구 기업들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영원히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21세기 초 전 세계에 관심을 집중시킨 최고의 화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앞으로 중국 정부는 한층 더 새로운 발전관을 마련하고 적극 시행하여 세계 여론을 더 크게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 중국의 굴기는 세계 평화라는 절호의 찬스를 이용하여 강대국을 향한 행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의 발전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민주(民主)를 강조하다

우리에게 개혁이란 곧 혁명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이 직면한 근본 문제는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제도를 계속 이어가야 할까, 아니면 사회주의 노선 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까? 비록 수많은 곤경에 직면해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여전히 사회주의의 미래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오직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주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생산력 발전이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결국엔 자본주의가 발전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큰 생산력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생산력을 기초로 인민의 물질적인 삶의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시켜 나갈 것이다"는 말과 함께 이를 위해 "우리의 정치 노선은 앞으로 4대 현대화 건설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끝까지 우리의 기본 노선을 지켜나갈 것이다. 중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반대하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발전과 건설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4대 현대화 건설의 최종 목표는 20세기 말까지 기본적인 삶의 틀을 갖추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교수인 페리 링커(Perry Linke)는 중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단기간에 발전하기 위한 의식 형태로 '돈' 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 우선 나라가 가난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낮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 문화 중에는 가업 저축 투자 개념이 비교적 강한 편이고 이는 부국 정책을 실현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 셋째, 경제 발전과 더불어 중국인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돈은 지금 중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돈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가 더 많아 질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의식 형태는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중국다운 것일까? 그렇다. 중국에게는 오직 개혁만이 살길이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은 "우리에게 개혁이란 곧 혁명이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다

중국은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성공적인 개혁 개방을 위해 민주제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중국의 2세대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제도의 규범화, 당 위원회 내부의 민주화를 강화했다. 이와 관련하여 덩샤오핑은 "해방과 전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민주집중제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화대혁명 이후 민주적 기초를 쌓아 올리기 위해 중국 정부는 '삼불주의(三不主義)'를 제창했다. 여기에서 삼불이란 남의 약점을 끄집어내지 않고,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헌법과 공산당 헌장에서 규정한 인민의 권리, 당 위원회의 권리, 당 위원회 위원의 권리 보장에 힘썼다. 이외에 중국공산당은 당 전체와 나라 전체를 한 두 사람의 역량에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옳지 않은 일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민 전체의 지혜와 지도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경제체제 개혁은 중국 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중국의 발전은 반드시 자질을 갖춘 권력 기구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며, 더 이상 먼 길로 돌아가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당의 지도하에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제도를 건설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4) 유구한 역사 문명의 부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힘

세계 각국은 대외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외교 이념을 확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EU는 외교 분야에서 인권과 환경보호를 특히 강조하고, 인도주의적 내정 간섭을 마다하지 않고, 남북문제 해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남북문제 해소와 관련해서 EU는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도상국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미국과 전혀 다른 국제이념을 규범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강대국들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또한 EU는 이란 핵 문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협상, 북한 핵 문제 등 여러 가지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하여 그들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강화하며 그들의 외교 이념을 구현했다. 반면 미국은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일방적인 단독 노선과 패권 정책을 고집하여 미국 내에서조차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인도양 해일 재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난구조라는 명목으로 내정간섭을 서슴지 않아 큰 비난을 샀고, 미국의 외교 영향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 중심론과 아메리칸 스타일

인류 역사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역사는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이다. 또한 중세 계몽운동과 근대 산업혁명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높은 문화 자긍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기반으로 유명한 동방의 유교문화, 인도문화, 이슬람문화는 개인과 집단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는 윤리 도덕적 문화로 각 시대와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들 동방 문화는 융통성 없는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서양의 산업 문명과 충돌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방문화는 일찍이 16~17세기에 유럽인들의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곧 근대 산업문명을 발전시킨 유럽인들은 더 이상 동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인들의 야심은 점점 더 커져갔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이제 동방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럽의 선진 문명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유럽의 사상가와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유럽 중심' 사상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냉전 종식은 세계 각국이 소프트 파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발전 공간을 제공했다. 오늘날 세계 하드 파워(hard power)의 절대 강자인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월등히 우수한 소프트 파워까지 겸비하고 있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불리는 이것은 미국식 민주 자유 체제, 미국식 경제 발전 모델, 미국식 문화 가치관 등을 모두 포함한다.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인들은 스스로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며 위대한 하늘의 사명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미국은 스스로 독창적이고 뛰어난 대중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미국은 오늘날 세계 초일류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법규를 제정하고 규범화된 행동 양식과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기존의 국제조직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후진국에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자신들이 정한 행동 양식에 따르도록 요구했다. 제도 패권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시스템, 규정, 상벌 조치 등이 주도권을 가진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조화로운 세계를 향하여

'평화공존'에서 '조화로운 세계'로

근대 이후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해 중화 민족은 끊임없는 화염 속에 모진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중화 민족은 용기를 잃지 않고 기나긴 투쟁을 벌여 끝내 모든 두려움과 굴욕을 벗어던지고 '천지개벽'이라 할 만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00여 년간은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은 중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히 평화와 안정,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원했다. 신 중국 성립 무렵 중국은 만신창이에 빈털터리 몸뚱이뿐이었고, 그들의 눈앞에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당시 중국의 경제와 문화는 매우 낙후되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 년간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때문에 중국은 내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평화롭고 안정된 국제 환경이 절실히 필요했다. 신 중국 성립이후 중국은 안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여유와 시간을 확보하고, 밖으로는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통해 더 많은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주력해왔다. 이것은 곧 중국과 세계가 함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변화하는 중 미 관계

오늘날 세계 정치에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비상하는 중국이 과연 21세기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과 동방의 신흥 대국인 중국이 21세기의 세계 질서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미관계는 조화로운 세계 사상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냉전 종식 이후 하버드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1990년 이후 심화된 양안 위기의 핵심을 이렇게 분석했다. "소련은 쇠락하고, 중국은 아직 선진 경제기반을 갖추지 못했으며, 유럽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은 여전히 경제 대국에 머물러 있지만 군사력이 없으므로 국제적으로 다양한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찰스 크로서머(Charles Krauthammer)의 지적은 더욱 날카롭다. "냉정 종식 이후 세계는 다극화가 아니라 단극화가 되었다. 세계 권력의 중심은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전략 전문가인 폴 케네디는 "현재 미국의 세계적 지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소련 해체 이후 역사상 유래 없는, 막강한 군사력과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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