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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이슈 12

헌터 루이스 지음 | 한스미디어
이코노믹 이슈 12

헌터 루이스 지음

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 256쪽 / 13,000원

1. 21세기 경제의 불편한 진실



지금의 10달러를 복리로 불리면 1천년 후 5조 5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액수가 된다. 이것은 현재 세계전체의 부의 절반이 넘는 액수이다. 장기간 누적되는 복리효과는 신비로울 정도로 엄청나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인류의 삶은 왜 좋아지지 않은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 역사에 걸쳐 자본이 만들어졌다가 파괴되는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과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의 결과로 말미암아 인류는 놀랄만한 부의 축적을 실현하지 못했다. 나아가 삶과 사회를 어떻게 조직함으로써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지적 혼란만 거듭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해법을 찾고 동의해야 한다. 사회는 그 자체의 자본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유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는 서로 협력함으로써 부유해질 수 있다. 협력하면 협력할수록 자본을 보존하고 투자하며 성장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원리를 놓고 볼 때 이것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낼 것인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정립시킬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이다. 과학적 접근법은 오류와 진리를 구분함으로써 우리가 좀 더 쉽게 합의와 협력에 도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에 과학적 접근방식을 적용할 수 없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첫째, 경제학의 궁극적인 주체인 인간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은 이것을 원했다가 내일은 다른 것을 원하는 등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둘째, 사람을 관찰하는 경우에는 관찰대상이 된 사람과 관찰하는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결국 경제학은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과학이 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에 합리적인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하고 실제로 답을 찾고 있다.

2. 부자는 사회악인가?



"부자는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지금까지 인간사회가 평등분배의 원리로 운영된 적은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부자를 반대하는 평등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주장 1. 부자는 기본적으로 기생충이다. 그들은 일하지 않으면서 돈만 벌고 있다. 주장 2. 부로 인해 빈곤이 생긴다. 부자가 없다면 가난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주장 3.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한다. 구약성서에 "너희는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은 것을 너희 집에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개념은 세대마다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애빌 록펠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와 빈곤은 뒤섞여 있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다.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주장 1. 경제는 부자들을 필요로 한다.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자본의 성장을 가져오려면 저축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부자들은 상당한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소비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들이 저축을 할 수밖에 없다. 주장 2. 적절하게 투자하면 지나치게 많은 저축이란 있을 수 없다. 편견과 달리 부자들의 소비는 가난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부자들의 저축을 생산수단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대중이 사용하는 필수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든다.



주장 3. 부자들은 매우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데,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의 돈을 잃게 된다. 부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하든지 중요한 것은 투자의 결과다. 현명한 투자를 하는 부자들은 계속해서 부유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경제시스템은 즉시 그들의 부를 날려버릴 것이다. 주장 4.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줄 목적으로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자들은 채권, 주식, 부동산의 형태로 부를 소유한다. 부가 재분배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이러한 자산을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가격은 폭락할 것이다. 한편 저축의 미래흐름을 믿지 못하는 기업들은 투자를 중단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직할 것이다. 결국 부자들의 재산몰수는 경제를 뒷받침하는 자본만을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것이 된다.



3.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을 들어보자. 주장 1. 부자들은 의도적으로 민주주의를 방해한다. 부자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구매함으로써 민주주의 프로세스를 파괴한다. 민주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법률은 점점 조롱당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차이는 더욱 커진다. 주장 2. 우리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이 한 표라는 사회주의 개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은 불균형할 정도로 우월한 발언권을 갖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 이념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예: 1달러당 1표라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부와 민주주의가 공존하지 못하면 긴장이 야기된다. 이러한 긴장은 민주주의를 포기하거나, 모든 사람들의 부를 평등하게 만들 때만 해소될 수 있다.

이번에는 반대 주장을 들어보자. 주장 1. 자유 시장은 처음에 나타나는 모습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수적으로 월등하게 많고 따라서 부자가 아닌 소비자들의 돈은 부자 소비자들의 돈보다 양적으로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방향을 실제로 조정하는 사람들은 바로 평균적인 소비자들이다. 주장 2. 부자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수탁인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평균적인 소비자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면 우리는 명목적인 지배자들(부유한 사업의 소유자들)의 역할을 적절하게 정의해야 한다. 이에 대해 빌헬름 뢰프케는 '수탁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비즈니스 소유자는 엄격한 성과원칙에 따라 선발되어 생산수단을 탁월하게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엄청난 금융손실이라는 즉각적인 형벌을 받는 수탁인이라는 것이다.



주장 3. 수탁인으로서의 비즈니스 리더 개념은 부자들이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부자는 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야말로 최고의 시험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런 조건이 없다면 부자들은 민주주의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주장 4. '1달러당 1표'의 자유 시장경제는 '1사람당 1표'의 정치적 민주주의보다 뛰어나다. 소비자민주주의에서 내가 제품 X에 대해 투표를 하면 나는 제품 X를 얻는다. 당신이 제품 Y에 투표를 하면 제품 Y를 취득할 수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후보자만이 승리할 수 있고, 최종결과에서는 어떤 표도 크게 중요하지 않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대비된다.





4. 사적이윤은 탐욕인가, 성장의 원천인가?



평등주의자들은 사적이윤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한다. 주장 1. 민영기업은 소유자들과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다. 사업자는 소비자들에게 부당한 가격을 부과하거나 종업원의 임금을 줄임으로써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이윤획득시스템은 모든 사람을 패배하게 만든다. 노동자의 수입을 제한하는 시스템은 노동자들의 소비자로서의 구매력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 2. 이윤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이익은 순수한 생산비용 위에 쌓여 있는 불필요한 특별비용이다. 이것만으로도 이익시스템은 낭비적이다. 이러한 낭비를 제거한다면 가격은 떨어지고 모든 사람이 잘 살게 될 것이다. 주장 3. 이익시스템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모든 사업은 지금 당장 이익을 실현하려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객들의 현재나 미래의 필요성이 아니라 소유주들의 즉각적인 이익기회에 집중한다. 사실 '이익을 위한 생산'과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생산' 간에는 확연한 갈등이 있고, 기존 시스템 하에서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생산'은 후순위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이익 동기는 생산의 중요한 목적을 이익으로 삼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들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 시시한 것들을 생산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사적이윤은 필요하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주장 1. 가격과 이익은 필요불가결한 신호 장치로서 함께 기능한다. 이익이 없는 재화의 가격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사과소스를 제조하는 사업을 하는데 이익이 높다고 가정해 보자. 높은 이익으로 인해 나의 생산성은 더욱 증가한다. 다른 생산자들 역시 나와 동일하게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사실은 경쟁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할수록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소비자 가격은 올라가지 않고 떨어질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서 비용을 줄이려 애쓴다. 경쟁의 역동성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결국 제품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주장 2. 이익은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중요한 동기시스템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채찍이 당근만큼 중요하듯이 이익시스템은 이익 및 손실 시스템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익이라는 당근과 손실이라는 채찍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를 수용하거나 추진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성장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수반하며 과거의 끝없는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사냥을 하거나 수렵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주장 3. 이익시스템은 우리에게 혼란이 아닌 질서를 제공해 준다. 이 질서는 소비자들의 희망에 따라 인도되고 지도된다. 이는 수 세기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되어 온 관습, 문법, 어법과 같은 자발적인 질서다.



5. 이익시스템과 경제 불황의 함수



주장 1. 이익주도 시장의 맹목적인 이기심은 고용안정과 양립하지 못한다. 조지 소로스는 말한다. "시장이 스스로를 교정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시장의 힘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영역에서 완전한 권한을 부여받으면,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 전 세계적인 경제시스템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거시경제를 확실히 안정시키는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오게 된다.



주장 2(주장 1에 대한 반론). 현실적으로 이익주도시장은 스스로를 조직하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정부가 시장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획기적인 발명품이 아닌 비참한 기만인 것으로 밝혀져 왔다. 심지어 정치인들조차 거품 경기 동안에 어떤 소비자들보다도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 그들은 거품경기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소비를 한다.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이들의 무모한 태도로 인해 거품경기는 붕괴된다.



주장 3. 이익주도경제는 본질적으로 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불황이 일어나면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단하는 사업 소유주들이 성급하게 임금을 낮추려 하는 까닭에 불황이 일어난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노동자 역시 소비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임금을 적게 받은 소비자들은 생산된 모든 제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된다. 월터 리프먼은 바로 이것이 1930년대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구매력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주장 4(주장 3에 대한 반론). 주장 3은 잘못된 것이다. 종업원에게 임금을 적게 준 사업소유주는 이익을 실현해서 그것을 경제에 재투자함으로써 결국 종업원들이 돈을 벌게 만들거나 다른 기업의 종업원들이 생산한 사치품을 구매할 것이다. 나아가 재투자로 인해 이익이 발생하면 주주들은 배당을 받아서 투자를 하거나 재화를 구매할 것이다. 자금이 이런 식으로 회전하는 한 수요위기는 없어야 한다. 시스템을 실제로 전복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저임금이 아니라 임금, 가격, 이익, 투자의 불균형이다.

6. 자유무역은 세계 경제 발전의 대안인가?



전 지구적 자유무역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주장을 들어보자. 주장 1. 자유무역은 특히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없앤다. 피터 린치는 말한다. "당신이 소비자에게 돈을 주면 그는 그 돈으로 일제 자동차를 사고, 당신은 미국 경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다른 국가들은 제품을 헐값으로 팔고, 모든 미국인을 직장에서 쫓아낸다. 이처럼 불공정한 무역은 없다."



주장 2. 규제가 없는 전 지구적인 자유무역은 노동 및 환경표준을 무색하게 만든다. 자유무역의 결과로 치열한 경쟁 뿐 아니라 노동의 덤핑, 사회적 덤핑, 환경적 덤핑까지 일어난다. 사실 전 지구적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어떤 정부든 아동보호노동정책, 억압적 노동조건 규제정책, 최저임금제도, 그리고 환경보호정책을 없애버린다. 주장 3. 자유무역은 궁극적으로 착취에 관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개도국에 대한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가 자선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투자는 절대적인 의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번에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주장1. 자유무역은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장래성 없는 정책은 없다. 모든 사람이 석기 시대부터 자신의 직업을 보호했다면 우리 모두는 사냥과 수렵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저렴한 외국제품을 구입할 경우, 우리는 그 국가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도록 조력을 제공하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저렴한 수입품을 국내에 들여옴으로써 노동자들은 더 생산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따라서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주장 2. 전 지구적 시장은 노동 및 환경기준을 철폐하지 않는다. 바그와티는 말한다. "보다 획일적인 글로벌 기준을 시행하라는 요구는 해외 라이벌 기업들의 생산비용을 높이려는 욕망을 반영한다." 주장 3. 전 지구적 자유무역은 착취와 전혀 관련이 없다. 가축 한 마리만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만약 자유무역이 없다면 그는 이 가축을 최고의 가격으로 팔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판매할 수 없다. 반대로 수입된 제품을 구입할 경우,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에는 아마도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치품보다도 높은 관세가 매겨져 있을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말한다. "전 지구적 무역의 반대론자들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7. 명백한 불평등



주장 1. 경제적인 방식은 완전히 제쳐두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좋은 길이다. 이스라엘 키부츠는 나누는 삶의 세계적인 대표모델이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하고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철저하게 나누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에 시달리며 점염병과 싸워야 했고, 가진 것이라고는 자루를 꿰맨 옷, 원시적인 공중변소, 끊임없는 육체노동 등이 전부였다. 오늘날에는 예전의 혹독한 생활은 없어졌지만 나누는 삶의 이상은 남아 있다. 사티쉬 쿠마르는 말한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영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

주장 2(주장 1에 대한 반론). 대규모 평등주의는 그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 나눔이 국가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강요되어야 한다. 강요하려면 일부 개인에게 정책에 대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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