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위기와 신국제금융체제
김용덕 지음 | 박영사
1. 아시아 외환위기
동남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 전개1997년 7월 태국 정부는 환율 제도를 복수통화바스켓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변경하고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 태국 바트화는 환율 제도를 변경한 다음 날 20%가 폭락하였으며, 그 해 태국 주식시장은 75%가 폭락하였다. 태국에서 발생한 외환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인근 국가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몇 달 후 타이완, 홍콩, 한국 등으로 확산되었다. 태국의 외환위기가 동남아를 거쳐 아시아 외환위기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 동아시아 모든 국가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절하되는 등 지역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가 발생하기까지 10년 동안 모두 5~10%의 고도성장을 구가하였다. 또한 자본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이들 국가의 금융기관들은 낮은 금리로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차입하여 국내 시장에서 높은 금리로 운용하였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당국은 민간금융기관들의 대규모 해외차입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단기적인 상황변화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오자 자산시장 버블이 꺼지면서 담보가치가 하락하고 연체가 증가하면서 은행위기가 심화되었다. 이어 핫머니가 유출되고, 단기 채무 상환이 중단되면서 외화유동성이 급격히 고갈되어 외환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근본 요인은 대외경제의 불균형 현상 지속이다. 1990년대 중반 동남아 국가들은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과 멕시코에 밀려 수출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외환위기 발생의 토양이라면 단기외채 급증은 위기 발생의 직접요인이다. 단기외채가 급증한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 보전을 위해 해외차입을 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금융 글로벌화로 인한 국제자본의 이동성 증가, 아시아 국가들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누적, 경제의 기초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 무리한 환율정책 운용과 이로 인한 외환보유고 소진 등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통해 국제사회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정적인 거시경제정책의 운용이 중요하다. 따라서 경기호황 국면에서 자산버블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동성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경상수지를 건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가 증가하면 다른 거시 경제변수가 양호하더라도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금융 감독 역량을 향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 감독 당국은 상시 감시체제를 구축하여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넷째, 정책과 통계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정보 왜곡이 일어나고 위기에서는 일시에 자금이동이 발생하는 공황상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국제 감시활동 강화와 외환위기 전염 효과의 예방이다. 오늘날 외환위기는 해당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일단 한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더 이상 전염이 되지 않도록 지역단위의 감시활동 강화와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외환위기의 발생과 전개외환위기 이전 한국경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첫째, 기업의 부채증가와 수익률 하락현상이 심화되었다. 둘째, 은행의 재무구조가 악화되었다. 한국기업의 재무구조 취약성이 은행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국제적으로 은행들의 투명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셋째, 단기대외채무가 크게 증가하였다. 외채규모 자체는 높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1년 이하의 단기외채가 595억 달러로 총 외채의 약 53%를 차지하여 외채의 만기구조가 문제가 되었다. 넷째, 금융감독이 매우 취약하였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해외차입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국내 금융기관들은 위험관리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이 부족하였고, 이들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건전성 감독도 매우 취약하였다.
1997년 1월~5월 중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발생하였다. 한보, 삼미, 진로 등 대기업의 도산이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재벌기업의 취약점(비합리적 재무구조, 높은 부채비율)이 노출되면서 한국기업의 신용도뿐 아니라 국가신용도도 크게 하락하였다.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7월에는 기아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기아그룹의 부도처리 과정은 국제금융계에 부실기업 처리에 대한 한국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한국금융기관들의 단기외화자금 만기 연장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외채를 적기에 상환하지 못하는 금융기관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금융, 외환시장은 10월 말 이후 급속히 경색되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해외차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외화자금 이탈이 가속화되자 원화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외환보유고도 급격히 감소하였다. 1월 말 271.5억 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고는 11월 말에는 73억 달러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11월 중순부터는 기아 부도처리와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대외 신인도가 계속 하락하고, 단기외화자금 만기연장이 더욱 어려워지자 외환시장에 패닉 현상이 나타나면서 극도의 외환수급 불균형 상태가 발생하였다.
외환보유고가 소진되고 국가부도 사태가 목전에 닥치자 정부는 11월 21일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12월 3일 한국정부와 IMF는 긴급자금 지원과 그에 따른 한국정부의 이행사항 등을 담은 의향서에 서명하였다. IMF와의 초기합의 내용은 고금리 정책기조로 전환하여 외자유입을 촉진하는 한편, 경제성장률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고 재정긴축을 함으로써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것이었다.
IMF의 금융구조개혁 프로그램은 기업부실과 금융부실의 악순환을 단절하고 금융 부문의 건전성을 조속히 회복하는 한편, 자율적인 여신심사기능을 통해 금융 본연의 중개기능을 복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특히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신속하고 과감하게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IMF의 기업구조개선 프로그램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제공자로서 한국 대기업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권고하였다. 특히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자발적 추진을 권고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구제 금융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무역 및 자본자유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IMF 지원체제하에서 정부는 외화유동성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하여 은행 등 금융기관의 기존 단기외채 만기연장을 추진하는 한편, 신규외자조달을 별도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한국이 조기에 외화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성공은 1998년 1월 뉴욕에서 최종 합의한 국내 은행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이었으며 두 번째 성공은 1998년 4월 한국정부를 차입자로 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40억 달러의 발행이었다. 이어 1998년 6월 외자조달을 위해 외국인 토지 취득의 전면 자유화 조치를 단행하였고, 외국인 직접 투자 및 외국인 증권투자를 대폭 자유화하였다.
또한 정부는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강력 추진하였다. 금융 부문 구조조정은 부실금융기관 중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금융기관은 정리하고, 나머지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신용도를 회복시켜 자본 중개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기업 부문 구조조정은 기업의 과다한 부채구조를 개선하고 전근대적인 경영체제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노동 부문에서는 개혁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사갈등을 조정하기 위하여 새로운 협력모델인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공공 부문에서는 중앙 정부조직을 축소하고, 인력을 감축하였으며,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0년 9월 한국은 IMF 대기성차관 60억 달러의 조기상환 방침을 밝히고 IMF 졸업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2000년 12월 IMF 프로그램을 정식 종료하였다. 이로써 한국경제는 소위 IMF 신탁통치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정식 졸업을 하고 정책주권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국제투기자본과 IMF 체제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및 전개에 있어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은 위기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헤지펀드 형태로 운용되는 국제 투기자본은 특히 태국 및 홍콩 시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자기실현적 집단적 행태를 초래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국제투기자본의 태국 공격 사례〉
태국은 1983년 이후 복수통화바스켓 환율제도를 시행해 왔으나, 사실상 미 달러화에 고정된 환율체제를 유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외채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태국 바트화에 대한 절하 압력이 누적되어 왔다. 이에 바트화의 평가절하가 임박했다고 판단한 헤지펀드들은 역외시장에서 바트화를 차입하고 동 자금을 선물증거금으로 활용하여 대규모 선물환 매도를 실시하였다. 아울러 저금리의 일본 엔화를 차입하여 태국 금융시장에 투자하였던 투기세력들이 바트화 금융자산을 일시에 처분하고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바트화의 평가절하를 촉발하였다.
이에 대해 태국 당국은 외국인에 대한 바트화 표시 대출을 금지하고 역외시장에서 바트화 차입 금리를 올리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또한 외환보유고를 투입하여 바트화 방어에 나섰는데 그 결과 1997년 5월 태국의 외환보유고는 230억 달러에서 25억 달러까지 격감하였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되는 가운데 헤지펀드의 태국 바트화 투매 현상이 지속되자 태국정부는 1997년 7월 2일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누적된 환율절하 압력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결국 환율 방어에 실패하고 1997년 8월 11일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는 기업 및 금융 부문의 취약성 및 개별 국가 내부의 구조적 결함 이외에도 IMF를 근간으로 하는 국제금융체제가 급속히 확대된 세계자본 이동의 위험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의 IMF 자금지원이 이루어지고 공적자금 지원과 연계된 강력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집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신속하게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IMF 자금지원과 함께 시행된 강력한 재정, 금융 긴축의 초기 처방이 금융시장의 신뢰회복에 실패하고, 심지어 국가부도 사태까지 발전하자 IMF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IMF가 위기 발생국의 구조적 취약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초기 단계에서 금융 감독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금융기관들을 강제로 폐쇄하여 오히려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패닉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IMF 체제에 대한 비판은 외환위기의 원인을 국제금융체제의 불안정성에서 찾고, 이에 적극 대응하는 처방을 제시하여 향후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논의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 신 국제금융체제
아시아 외환위기와 국제금융체제 개편 논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본격 진행되어 온 국제금융체제 개편 논의는 1999년 2월 독일 본에서 개최된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G-7 국가들은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금융위기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융안정포럼(FSF)을 설치하고 이 문제를 IMF 등 국제기구들과 집중 논의하기로 하였다. 이후 1996년 6월 독일 콜론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에서 국제금융체제 강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①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② 금융정보의 투명성 제고 및 국제기준의 개발 ③ 선진국의 금융건전성 규제의 강화 ④ 신흥시장국의 금융제도 강화 ⑤ 금융위기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민간부문의 참여 확대 ⑥ 환율제도 개편의 필요성이다.
현재 국제금융체제 개편의 논의는 주로 G-7, 금융안정포럼, G-20, IMF, APEC 등을 통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안정포럼은 ① 헤지펀드의 투기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축소 ② 채권국과 채무국의 급격한 단기 자본 이동으로 인한 금융체제 약화 ③ 역외금융센터의 시장참가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평가하고 국제적인 건전성 기준 마련을 1차 과제로 채택하고 있다. G-7국과 주요 신흥시장 국가들로 구성된 G-20 회의는 안정적 환율제도, 대외채무관리 개선, 위기해결을 위한 민간부문 참여확대, 국제기준의 개발과 이행 문제 등을 중점 논의한다. 9.11테러 사태 이후에는 국제 테러 조직의 불법 활동 자금조달 억제가 기존 역외금융센터를 통한 자금세탁 및 조세회피 등 국제금융체제의 남용방지 분야에 추가되는 등 국제금융체제 개편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1998년 12월에는 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국 간에 'ASEAN+3'가 창설되어 역내 금융협력뿐만 아니라 지역경제협력체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ASEAN+3'은 외환위기 시 역내 중앙은행 간 외환보유고를 상호 지원하는 자금지원 협정에 합의하였으며, 최근에는 아시아 채권시장 육성방안 등 역내 금융안정과 경제번영을 위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신 국제금융체제의 주요 이슈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헤지펀드는 100명 미만의 소수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사모형식으로 모집하여 기금을 설립하고, 파생거래 등 다양한 투자기법을 이용하여 자금을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 등에 투자 및 운용한 뒤 투자실적에 따라 배당하는 파트너십을 말한다. 헤지펀드들은 조세피난지에 본거지를 두고 아무런 국내외 규제 없이 작은 자본으로 다양한 위험 회피 수단을 이용하여 세계 각 국의 취약한 금융시장을 공략하면서 고수익 투자를 추구해 왔다. 헤지펀드는 파생금융상품을 집중 거래하기 때문에 이들이 동시에 움직일 경우에는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하루 1조 5천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G-7은 헤지펀드의 고위험 투자행태가 금융구조가 취약한 국가에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정보공개 및 투명성 강화, 이들의 영업근거지인 역외 금융센터에 대한 규제강화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헤지펀드에 대한 설립 인허가제 도입, 자본금 규제 등 직접적인 규제는 헤지펀드의 본산인 미국 월가의 강력한 반대로 G-7 국가들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헤지펀드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국내 자산운용업의 전략산업화와 금융허브정책 방향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헤지펀드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이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환율제도 개편 1990년대 이후 불완전한 환율제도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정 국가의 환율이 장기간 기초경제 여건과 괴리되어 움직이면 궁극적으로 투기세력의 공격을 유발하여 외환위기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세계 중요 통화 간 환율을 어떠한 방식으로 안정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시장기능을 신봉하는 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