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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 부키
프롤로그 : 나라가 부자가 되려면

최근 들어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45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실로 괄목상대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볼 때 포르투갈이나 슬로베니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도약했다. 또 주요 수출품으로는 텅스텐 원광과 어류, 그리고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 정도나 꼽혔던 나라가 이제는 전 세계가 탐을 내는 맵시 있는 이동전화와 평면 TV를 수출하는 하이테크 강국이 되었다. 영양 공급 및 의료 기반의 개선으로 요즘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기대 수명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보다 무려 24살이 늘어난 77살에 달한다.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78명에서 5명으로 줄어 과거처럼 자식을 잃은 슬픔에 가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맛봐야 하는 부모의 수도 대폭 줄었다. 이러한 수명 관련 지표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아이티가 스위스가 된 것만큼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을 추구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 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 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도록 육성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부족한 외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외환 관리법을 위반한 사람은 사형을 받을 수도 있을 정도로) 한국 정부의 절대적인 외환 통제권은 신중하게 선정된 외환 사용의 우선순위 목록과 함께,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가 중요한 기계설비류와 산업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되도록 보장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해서 변화해 나가는 경제 개발 계획에 따라 특정한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가 하면, 다른 특정한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완전히 금지하는 식이었다. 또한 '역설계'를 격려하고, 특허 상품의 '위조품 제조'를 눈감아 주는 등 외국의 특허권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이다. 한국 정부는 공산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을 말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자유 시장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시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시장이 정책 개입을 통해서 조정되어야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의 사례가 '이단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거의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해서 부자 나라가 되었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여겨지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랬던 부자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에는 아예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품은 의도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해를 끼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느냐에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 -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오늘날 도요타의 고급 승용차 렉서스는 세계화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세상의 절반은 보다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데 반해, 나머지 절반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싸움에 열중해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먼의 견해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그가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이라고 일컫는 특정한 경제 정책 국영 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 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등 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이 같은 프리드먼의 해석을 비롯하여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석은 자신의 나라를 경제적인 번영의 길로 이끌고자 하는 정책입안자들을 위한 지도로 간주될 정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해석은 근본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으며,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正史)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1950~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던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다.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다. 통제된 세계화 시기의 세계 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 분배도 훨씬 균등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발도상국들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정사는 이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를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로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기록을 퍼뜨리는 의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반(反)혁명의 선두에 섰던 마거릿 대처 수상은 '대안이 없다'는 말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물리친 적이 있는데, 세계화에 대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설명 방식에는 바로 이 '대안 없음'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즉,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화를 통신과 운송 기술의 거침없는 발전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며,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어느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시대에 뒤떨어진 현대판 러다이트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만일 기술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870년대보다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대화된 운송과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1970년대에 세계화가 덜 진전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은 세계화의 외부적인 경계를 규정지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 세계화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어떤 국제 협정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 없음'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다니엘 디포의 이중생활 -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다니엘 디포는 토리당 정부를 위한 스파이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는 휘그당 정부를 위해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중생활을 했는데. 휘그당을 이끌던 월폴은 부패한 사람으로 유명했지만 매우 유능한 경제 관료였다. 월폴은 수상이 된 후, 1721년에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영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그에 따라 수입된 외국 공산품에 대한 관세는 크게 올랐고, 제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에 대한 관세는 크게 낮아지거나 아예 폐지되었으며, 공산품 수출은 수출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려되었다. 또 마지막에는 파렴치한 제조업자들이 해외 시장에서 영국산 상품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공산품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직물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까지 도입되었다. 월폴의 이런 보호 무역 정책은 다음 세기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 덕택에 영국 제조업은 유럽 대륙의 제조업을 따라잡은 것은 물론, 결국에는 앞서 나가게 되었다. 영국은 이렇듯 19세기 중반까지 고도의 보호 무역 국가였다. 영국은 관세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의 선진적인 제조 활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금지령을 내렸고, 식민지들이 자국의 제품과 경쟁하게 될 만한 제품을 자국이나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 식민지에 대해 1차 상품의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미국에서도 알렉산더 해밀턴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그것을 목표로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해밀턴은 1791년 미국 의회에 「제조업에 관한 보고」를 제출했다. 그는 여기에서 미국이 산업 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견해의 핵심은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국의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 방법 가운데는 보호 관세와 수입 금지령, 보조금, 핵심 원자재의 수출 금지령, 산업 원자재에 대한 수입 자유화와 관세 리베이트, 발명품에 대한 포상과 특허 부여, 상품의 표준에 대한 법령 제정, 금융과 운송의 하부 구조 개발 등이 포함된다. 비록 해밀턴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다 진전시킬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결국 1820년대에 가서 그의 프로그램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후 19세기 내내, 그리고 1930년대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 무역 국가였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이처럼 자유 무역의 옹호국인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경우 세계를 지배하는 산업 강국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 무역 경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부자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보호 무역을 실시했던 나라였다. 흔히 보호 무역주의의 본가처럼 알려진 프랑스나 독일, 일본 세 나라도 늘상 영국이나 미국보다 관세가 훨씬 낮았다. (물론 이는 영국과 미국이 경제적인 우세를 점한 후 자유 무역으로 선회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부자 나라들도 영국과 미국처럼 유치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관세, 보조금, 외국 무역에 대한 규제와 같은) 국가주의적인 정책을 사용했다. 결국 우리는 역사를 통해 거의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만약 여섯 살 난 나의 아들 진규가 지금 학교를 그만둔다면 설령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제의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다 해도,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자유 무역은 좋은 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통파의 핵심 이론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전제이다. 이들은 무역 자유화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득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득을 본 사람들이 얻은 이득이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잃은 것보다 많으므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입은 손해를 모두 보상하고 나서도 자기 몫으로 챙길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무역 자유화가 반드시 이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무역 자유화의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얻는 이득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입은 손해만큼 많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무역 자유화는 성장률을 감소시키고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는데,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이런 일들이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이득을 본 사람들이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손해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본다 하더라도 시장의 작용을 통해서 그 보상 과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예전보다 더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유 무역주의 이론이 주어진 자원을 단기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와 관련된 이론이지,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서 가용 자원을 늘려가는 것과 관련된 이론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무역과 산업 정책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할 수 없게끔 방해하고 있다.



한편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 발전에 가장 좋다(또는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더 좋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무역을 해야만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유치산업이 발전하여 노련해지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보호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바꾸어가면서 보호와 개방 무역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한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대단한 '비결'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대부분이 부유해진 비결이며, 최근에 성공을 이룬 개발도상국들이 성공을 거둔 비결과 똑같은 것이다. 보호가 발전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보호가 없는 발전은 무척이나 어렵다.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 -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흔히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드는 외국 자본 중에서 회사 경영에 일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다른 형태의 외국 자본의 흐름과 달리 안정적이며, 돈뿐만 아니라 조직 및 기능·기술의 향상을 가져옴으로써 투자 유치국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키는 '테레사 수녀님 같은 외국 자본'으로 환대 받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직접투자에도 한계가 있고 문제점은 있다. 첫째,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개발도상국들의 금융 혼란 시기에 외국인 직접투자의 흐름이 매우 안정적이었다고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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